〈 58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밴드부에 들어갔다고?”
“응.”
다음 날. 정우가 밴드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은혜는 입을 떡 벌리며 정우를 바라 보았다. 노래하는 남자. 기타치는 남자가 얼마나 인기를 많이 끄는 지 속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 돼!’
이 이상 그의 인기가 올라가선 안 된다. 안 그래도 이미 라이벌이 수두룩한데, 얼마나 여자를 더 늘리려고.
그러나 그런 은혜의 생각이 어떠하든, 정우가 밴드부에서 나올 마음은 없었다. 애초에 여자를 꼬시러 들어간 것도 맞긴 하고.
“나, 나도! 나도 들어갈래!”
“너 칠 줄 아는 악기 있어?”
“어…… 리코더랑 단소는 어느정도…….”
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러운 특기. 밴드부에서 리코더랑 단소? 차라리 캐스터네츠를 들고 딱딱 거리는 게 더 보기 좋으리라.
그만큼 두 악기는 밴드랑 어울리지 않았으며, 너무나 대중적이었다. 밴드는 다르게 말하면 록(Rock). 로클롤. 마이너 장르의 극한이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
평생 펑범이란 단어에서 벗어나 본 적 없는 은혜에게는 안드로메다 은하보다 먼 개념이었다.
“그럼 안 돼.”
“저, 정우 너는 할 줄 아는 거 있어!?”
“대충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우가 100포인트짜리 스킬을 구매한 순간부터, 클래식, 근대음악, 현대음악, 아이돌 노래나 EDM까지. 정우가 못 하는 장르의 음악은 사라졌다.
당장 아무 악기나 들어서 노래하는 모습을 찍어 방송국에 보낸다면 그 날 바로 연예기획사 사장이 집으로 찾아올 레벨이었다.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요리도 잘 해, 노래도 잘 해, 악기도 잘 다뤄.”
“못 하는 건 못 해.”
예를 들어 싸움이라든지, 배우지 않은 건 정우라도 못 한다. 물론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굳이 그걸 상기시켜 은혜를 이 이상 좌절에 빠트리진 않았다.
은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우림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럼 나는?”
“넌 뭘 할 줄 아는데?”
“피아노 조금 칠 줄 아는데.”
물론 우림이가 배운 건 클래식 피아노지만, 전자 키보드와 큰 차이가 없으니 조금만 배우면 쉽게 칠 수 있으리라.
그녀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정우는 오히려 그녀가 밴드부에 들어오는 걸 환영했다. 지금 밴드부에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까.
‘못 해도 4명은 모아야지.’
밴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이 4명은 필수다. 물론 기계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밴드의 정수.
라이브를 위해선 4명이 모여야 한다. 마침 정우가 알고 있는 사람이 3명이었고, 이 중 연주를 할 수 있을 법한 사람은 2명 있었다.
‘피아노엔 우림이를 넣고…… 마리한테 드럼을 시키면…….’
요리를 배우느라 바쁜 그녀였지만, 고등학교는 졸업해야한다는 사상하에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고 있었다.
물론 장래가 결정된 이상 학교 수업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건지 매일같이 잠에 빠져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학교에 나오고 있었다.
“마리야.”
“으음…… 아, 정우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리가 곧장 눈을 뜬다. 예전처럼 새벽까지 일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몸에 그득히 쌓인 피로는 여전했다.
피로를 떨쳐내며 겨우 일어난 그녀는 정우를 올려다 보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매우 친절해 보이는 그 모습에 반 아이들이 의아해하며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원체 다른 사람의 시선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너 밴드부 할래?”
“……갑자기 왠 밴드부?”
“할 거야 안 할거야?”
“하라면 하지. 누구 말인데.”
이걸로 드럼까지 확보. 기타보컬인 성예슬 선배와 베이스인 자신, 건반에 우림이와 드럼에 마리까지 구했다.
4인 밴드를 구성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 때, 혼자 따돌림 당한 은혜가 달려와 물었다.
“그, 그럼 나는!?”
“할 줄 아는 거 없다며?”
“배, 배우면 되지!”
그러나 정우는 그녀에게 일절의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재능 없는 소녀. 평범의 극치. 그게 바로 이은혜였으니까.
“음, 그렇네. 배우면 되지.”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따돌리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분명 그녀도 노력한다면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생기리라. 그런 생각하에 정우는 세 사람의 입부 신청서를 가지고 담임선생님에게 다가갔다.
“너희 셋도 입부하겠다고?”
담임선생님은 나락으로 동료를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을 보는 눈으로 정우를 노려보았다. 마리는 그렇다 쳐도 우림이나 은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가지고 있는 참한 학생이었는데!
“으음, 청춘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걸 잊지 마라.”
그러나 임용고시 시절 꿈꾸던 교사가 되기 위해 보았던 일본 교사 만화에서 배운 열정을 아직까진 가지고 있던 신주희는 그들에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내뱉지 못 했다.
그저 학생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덕담을 건네주는 게 겨우였다.
입부 신청을 끝낸 세 사람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이 되자마자 부실로 달려갔다. 어차피 그들은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우고 있고,
그들의 선배인 예슬은 점심도 거르고 기타를 주구장창 연습하고 있을 게 분명했으니 소개도 할 생각이었다.
지이잉─
부실 근처로 가자 들리는 익숙한 음. 그건 어제 정우가 예슬의 앞에서 연주했던 노래의 기타 편곡 버전이었다.
“우와─ 기타 잘 치네.”
“우리 선배야?”
은혜와 우림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 하고 질문세례를 퍼붇는다. 그만큼 단순히 듣기에는 우리와 같은 1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솜씨.
재능충이라는 말을 들어도 모자란 천재 중의 천재 싱어송라이터의 기타 연주를 엿들은 그들은 반 억지로 참가한다는 생각에서 세계에서도 통할 재능을 지닌 천재와 청춘을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교복을 입고 기타를 만지는 데 열중하던 예슬 선배를 보고 가볍게 목례한다.
오늘은 옷을 입고 있던 예슬은 부실로 들어온 정우와 세 사람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너희? 왜 이 시간에 왔어?”
“선배가 온 거랑 같은 이유로요.”
“엑, 너희들도 밴드부에 입부했어?”
2학기에 입부하는 별종이 또 있을거라곤 생각치 못 한 그녀는 세 사람을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만한 수가 있으면 학교 동아리만으로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게임에서 그녀는 주인공 이외에 단 한명의 부원도 구하지 못 해 결국 성인이 될때까지 빛을 보지 못 했지만.
지금처럼 정우가 사람을 끌고 온다면 얘기가 다르다. 동아리 부원만으로 경연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된다.
그건 그녀의 꿈이었다. 이 밴드부에 처음 들어온 1학년때부터 쭉 갖고 있던 그녀만의 꿈.
“진짜로?”
꿈이라는 이름의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 * *
“나는 성예슬이라고 해. 2학년이고, 일단은 밴드부 부장.”
“왜 2학년이 부장이에요?”
“부원이 나밖에 없거든. 오, 이거 맛있네.”
정우가 싸온 도시락을 음미하며, 그녀는 밴드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1학년땐 2학년, 3학년들이 잔뜩 있었지만 지금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마땅한 성과도 없고, 어려우니까.’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유명한 밴드가 몇 개나 있는가? 전 세계로 따져도 두 자릿수요, 한국에서만 보자면 두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외모를 겸비한, 그러니까 아이돌 밴드가 아닌 온전히 실력으로 이루어진 밴드라고 한다면 더더욱 소수.
그러니까 단적으로 얘기해서, 60억 인류중에서 성공하는 밴드가 100개. 단순 비율로 따져도 수천만 분의 1.
로또 1등의 확률도 고작해야 815만분의 1이라는 걸 생각해봤을 때, 인생을 걸고 도전하기엔 너무나도 미련한 확률.
대부분의 학생들은 재능을 핑계로, 재미를 핑계로 하나둘씩 밴드부를 떠났다. 2학년이던 선배들이 3학년이 되면서 학업에 열중해야한다는 핑계로 퇴부,
어느새 밴드부에는 그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밴드부를 떠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게 즐거우니까. 기타를 튕기는 게 재밌으니까. 노래에는, 음악에는 꿈과 희망이 있으니까!
“이야, 너희들 뭐 칠 줄 아는 거 있니?”
“어, 저는 아무것도…….”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저는 피아노는 조금.”
피아노를 배웠다던 우림이를 제외하면 두 사람은 음악, 그러니까 밴드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다. 즉, 두 사람은 아는 게 없는 초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슬은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 괜찮아, 괜찮아. 나도 1학년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였거든? 배우면 돼.”
“네? ……기타를 배운 게 1년밖에 안 됐다고요?”
“응! 3학년 선배중에 진짜 잘 치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한테.”
“겨, 겨우 1년이라니…….”
은혜는 예슬의 실력이 오랜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에서 왔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1년 뒤 예슬처럼 기타를 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압도적인 실력이었으니.
은혜가 좌절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예슬은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
“괘, 괜찮아! 노력하면 누구나 다 이렇게 칠 수 있어!”
“그럴까요…….”
그러나 공허한 위로였다. 은혜는 세상에 재능이라는 게 있고, 그게 자신에게만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