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62/218)



〈 62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린다. 대회에 나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주를 할때도 이만큼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왜, 왜 이러지…….’

혹여나 그의 말대로 자신은 그를 좋아하고 있던걸까, 물론 그의 얼굴이 상당히 취향인 건 사실이고. 사뭇 여자를 여럿 울릴만한 얼굴인 것도 사실이지만.

‘얼굴만이 아니야.’

그것만으로 이렇게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그녀는 얼굴만 보고 가슴을 뛰게하는 그런 얼빠가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밴드를 하는  아니라 아이돌 빠돌이가 되었겠지.

‘그와의 추억이…….’

그가 밴드부에 들어오고 한 달. 사랑이 싹 틔우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그저 명랑한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그와 단 둘이 부실에 남아 같이 연주를 하고, 기타를 튕기고, 가끔은 등뒤에 딱 달라붙어 교습을 시켜주기도 하고.

이런 저린 일들이 쌓이고 쌓여, 그녀의 가슴에 진득하게 눌러 붙었다. 한 번 달라붙은 흔적은 절때 사라지지 않는다. 떨어져 나갈때도 흉터를 남긴다.

약간의 흉터로 칠해져 있던 그녀의 심장은, 지금 그로 가득 차 있었다.

“……싫을 리가 없잖아.”

자신을 이해해주고, 따라와 주고, 앞에서 이끌어주는.
꿈속에서나 그려왔던 이상향이자 이상형.
그런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싫을 리 없다.

“그럼 좋다는 거에요?”

“……응.”

“선배─ 저를 좋아한다고요.”

“……어.”

“그래요?”

그 말을 들은 정우는 다리를 피고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그리곤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움찔대기 시작했다.

방금 전 까지 두근거렸던 예슬도 이쯤되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 뭐, 뭐야?”

“아뇨─ 선배.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누굴 사귈 마음이 없어서…… 푸흡!”

“야!”

놀림 받았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열에 박쳐 소리를 지르며 정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팔뚝으로 정우의 머리를 붙잡아 헤드락을 걸었다.

“이자식이! 선배를 놀려!?”

“아아악! 아파! 아파요! 그만!”

헤드락에서 벗어난 아려오는 정우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예슬이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정우를 노려보았다.

“한 번만 더 선배 놀려봐. 다음엔 진짜 국물도 없어.”

“네이네이.”

예슬은 정우를 강하게 노려봐준 뒤, 다시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마음을 다 잡았다. 후배한테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심장이 두 개여도 모자랄 듯.’

심장이 터질듯이 뛰쳐 올랐으니까. 만일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면 심장병이라도 생겨 쓰러질 지도 모른다.

* *

일주일 뒤.

학교 정문에 현수막이 개시되었다. 내용은 학교 밴드부의 전국대회 우승. 아이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밴드부가 듣도 보도 못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현수막에 이름이 달렸다는 사실에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림아! 우승 축하해!”
“우승 축하해!”
“기타도 잘 치는구나.”

밴드부에 대한 그렇다할 지식이 없는 아이들은 당연 우림이 밴드부의 부장이요, 당연 가장 눈에 띄는 기타를 맡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림이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어차피  밝혀질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야. 나는 키보드.”

“키보드는 뭐야? 컴퓨터 키보드?”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우림이는 밴드부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을 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은혜가 아쉽다는 듯 허탄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하고 싶었는데.”

“뭐 어때, 솔직히 매니저도 필요했어.”

“……그래도.”

“나중에 일대일로 알려줄게.”

“정말? 정말이지?”

은혜는 정우가  달라붙어 기타를 알려준다는 말에 방방 뛰며 크게 기뻐했다. 솔직히 밴드부에 들어간 것도, 잡무를 맡으며 매니저를  것도 모두 정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으니.

그가 자신을 신경써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알았어.”

“앗싸!”

“정우야.”

그때, 평소 대화를 하지 않는 반장이 다가와 정우를 찾았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반장을 바라보며 시선을 마주쳤다.

“왜?”

“쌤이 불러.”

“담임쌤이?”

담임선생이 부른다는 말에 정우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로 들어가자 선생이 기쁨이 그윽한 미소로 그를 반겨 주었다.

“쌤, 부르셨어요.”

“우리 예쁜이 왔구나.”

선생님은 성희롱에 가까운 말투로 정우를 반겼다. 먼 미래였다면 성희롱으로 교직에서 물러나도 할 말이 없었지만, 훈육이라는 이름의 폭력도 근절하지 못한  시대엔 그런 게 없었다.

정말 대놓고 가슴을 주무르거나 하지 않는 이상 교직에서 짤릴 일도 없었고.

“무슨 일이에요?”

“별  아니고, 너희들 연주 일정을 받아달라고 해서.”

“아…… 부장인 선배한테 말 안 하시고.”

“아니, 밴드부 대부분이 우리 반이잖니? 그래서 나한테 짬을…… 아니, 업무를 맡기셨어.”

교장에게 갑작스런 업무 폭탄을 짬 맞은 선생님은 약간 짜증을 느껴 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기쁨도 살짝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자기가 맡은 학생들이 스스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가 결과를 가져왔으니. 선생된 이로써 기쁘지 않을리 만무하리.

“그래서, 언제가 편하니? 가능하면 이번 축제때 해줬으면 좋겠는데.”

“저희도 그때가 편할  같네요.”

그러고 보니 학교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몇 주 안 남은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나면 곧바로 축제.

‘축제라.’

원래 세계에서 고등학생때 축제를 즐기지 않고 담을 넘어 PC방에서 게임이나 했던 기억밖에 없는 정우는 축제라는 감미로운 단어에 약간의 갈증을 느꼈다.

밴드부 애들에게 알려두겠다고 말한 정우는 곧장 교실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개꿀이네.”

어차피 강제 참여해야하는 축제, 밴드부 연습을 핑계로 여러가지 잡무에서 빠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뻐했다.


“선배도 그거 알아?”


“아니, 아직 모르실 걸.”

“그래?”


우림이  마디를 하고 나서 휴대폰을 꺼내 휴대폰 자판을 마구잡이로 클릭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고, 우림이는 씨익 웃으며 문자를 보여주었다.


“알았대."

"선배 휴대폰 있었구나.“

“요즘은 다 있지. 오히려 정우 너는 휴대폰 왜 안 들고 다녀?”
“어, 음. 좀 불편해서?”


정우는 평소에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없는 건 아닌데 이 시대 휴대폰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과 눈이 썩어 들어가는 용량 200Mb짜리 휴대폰을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나서 도저히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어플 스토어도 없고.’

최근엔 코코아톡같은 문자 어플이 출시된  하던데, 정작 2G를 사용하는 휴대폰으로는 문자가 더 빠르고 편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다니던 원래 생활에서 떨어져, 아예 휴대폰을 놓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현대로 돌아가도 좋은 습관으로 남을테고.

“아, 맞다. 그리고 상금은 인원수대로 나누기로 했어.”

“난 딱히 필요 없는데. 정우 너 가질래?”


“그럼 부 회비로 저금할까?”


“그럴까?”

200만원 상당의 기타와 300만원의 상금. 우승 상금이  500만원이라는 이 시대, 밴드라는 아직은 마이너한 분야치곤 커다란 상금.

갑자기 인당 60만원이라는 큰 돈이 생기긴 했지만, 마땅히  곳도 생각나지 않았다.

애초에 정우와 우림이는 용돈도 풍족하게 받아 돈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으니, 두 사람은 돈을 모아 부비로 저죽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돈을 모은다는 소리를 들은 은혜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도 그리 하겠다고 말했다.

“나, 나도…… 나도 넣을게.”

“무리  해도 되는데.”


“아냐! 괜찮아! 응! 어차피 없던 돈인데 뭐!”

“나도 내야 하냐?”


“응? 아니?”

 소식을 들은 마리도 잠깐 고개를 내밀어 돈을 내야하냐 물었지만, 솔직히 이건 쓸데가 없어서 모아 놓는 용도에 가까웠지, 반드시 내야하는 게 아니였다.


그렇기에 내지 않아도 된다 설명해주니 마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곤 좌절에 빠졌다.


“그, 그 돈이면 피크닉이 천 개…… 매일 먹어도 3년간 먹을 수 있는 돈인데…….”

그러나 뒤늦게 돌려달라기에도 자존심 상하는 일. 은혜는 안절부절하며 10분 전 자신을 후려패고 있었다.

“그냥 모으지 말까?”

“응?”


“아니, 뒤늦게 생각해보니 왠지 아까워서.”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은혜를 보고 있던 정우는, 그냥 회비를 모으는 걸 그만두었다. 이런 일로 남들이 마음 상하게 된다면, 안 하는 게 나았다.

“아, 안 모은다고? 아. 진짜 아쉽다! 내려고 했는데!  우리 밴드부를 위해 쓰려고 했는데!”


“그럼 은혜 너는 내.”

“……죄송합니다. 까불어서 죄송합니다.”

역시 은혜는 놀리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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