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시간이 흐르고 목요일이 찾아왔다. 수상식은 점심. 오전 수업을 들은 밴드부 아이들은 또 다시 합법적으로 학교 수업을 빠지고 수상식으로 향했다.
“시선이 꼬이네.”
“정우가 잘생겨서 그런거 아니야?”
“그런가?”
우승자가 일개 고등학생 팀이라는 걸 알게 된 다른 밴드들의 매서운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나이도, 재능도, 실력도 자신들이 위라고 생각하는 강렬한 에고이스트들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뭘 꼬라봐?”
그들에게는 세계 제일의 에고이스트이자 세계관 최강자, 마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렬한 자아로 똘똘 뭉친 기타리스트들이나 드리머들도, 타고난 강자이자 양아치인 마리 앞에선 꼬리를 내렸다.
거기엔 마리의 외모도 한몫했다. 자연스러운 금발. 염색으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타고난 자질. 외국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그 특이한 모습에 지레 겁 먹은 것도 컸다.
“아! 성실고 밴드부 맞죠?!”
그리고, 그들을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동시에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날 무대 세팅을 보조했던 스태프 중 한 사람이 그들을 알아보고 한걸음에 달려온다. 스태프는 심사위원을 제외하면 그들의 노래를 들은 유일한 사람들 중 하나.
코앞에서 그런 연주를 듣고 팬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스태프는 운이 좋다는 듯 가지고 있던 짐무더기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예슬이에게 건넸다.
“저기! 싸인 좀 해주세요.”
“싸, 싸인이요?”
“네. 안 되나요?”
“안 되긴요. 당연 해드려야죠.”
예슬은 얼떨떨한 감정을 감추며 종이와 펜을 받아들였다. 사인을 해달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평생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 없기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그냥 이름 석자 써줘요. 선배.”
“그, 그럴까?”
뒤에서 정우가 하는 말을 들은 그녀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기 이름 석자를 대충 휘갈기기 시작했다.
성예슬이라는 이름이 A4용지 위에서 휘날렸다. 사인을 받은 스태프는 왠지 모르게 그럴싸한 싸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며 자리를 떴다.
“후, 후후. 내가 싸인이라니…….”
“와, 선배. 저도 싸인해주세요.”
“그래! 얼마든지 해줄게!”
“아, 그럼 나도. 나중에 팔아먹어야지.”
“……넌 안 해줄래.”
“아아, 선배. 넝담넝담.”
싸인을 팔아먹겠다는 마리와 티격태격대던 예슬은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겠다는 언질을 남겼다. 실제로 이 싸인은 나중에 가면 수십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중고 거래됐으니, 백 장쯤 챙기면 엄청난 이득이다.
‘이 선배는 이런데 에선 천재니까.’
나중엔 아예 사인을 시즌제로 바꿔서, 매 콘서트마다 다른 사인을 남겨 주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활동했던 기간동안 뿌린 모든 싸인을 모은 팬들은 드래곤볼을 모았다며 자랑하기도 했고.
‘이번에도 그렇겠지.’
아니, 오히려 이번에는 더더욱 그녀의 사인이 값비싸지리라. 원래 세상에서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이 지난 이후였지만.
이번엔 고등학생때부터 데뷔. 심지어 자신과의 협연으로 인해 그녀의 전성기는 너무나도 빨리 나타났다.
즉, 몇 년이나 이른 슈퍼스타가 탄생했다는 뜻이다.
“가자!”
자신 앞에 펼처진 화려한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예슬은 그저 사인을 받는 팬이 생겼다는 기쁨에 미소 지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심사위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저희가 심사숙고한 끝에 우승 팀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성실고등학교 밴드부!”
짝짝짝짝짝짝!
진심이 담긴 박수와, 아무런 감정 없는 무미건조한 박수가 시상식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모두 화려한 조명 아래서 그들을 축복한다는 건 다름 없었다.
“축하해요.”
시상을 맡은 심사위원, 어딘가의 교수라고 말했던 사람이 예슬이에게 직접 상금이라고 적힌 판넬과 기타를 수여한다.
눈앞의 교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수여 받은 기타에 시선을 빼앗겨 두 눈을 반짝이자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내뱉는다.
“흠흠.”
“아! 감사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예슬은 눈앞의 교수와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은 뒤,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는 그녀라도 아직은 나이가 어린 소녀.
그에 맞는 소감문을 대신 작성하느라 진땀뺀 정우는 그녀가 긴장하지 않고 외운 그대로 소감문을 읊어 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모두 저희를 좋게 봐주신 여러분의 덕이며…… 어린 나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노력한 끝에 이 상을 수상했다 생각합니다.”
사회성이 메마른 숱한 천재들과 달리 상당히 멀쩡한 소감을 발표하는 그녀의 모습에, 대다수의 심사위원이 그녀를 해맑은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천재라는 이유로 오만하고, 괴상한 소감을 발표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예슬의 발표는 매우 신사적이고 이성적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박수세례를 받은 뒤, 단체 사진을 찍고 2등, 3등의 소감도 발표되고 시상식이 끝난다.
시상식이 모두 끝난 뒤, 심사위원들이 서로의 눈치를 슬금슬금보다 그들에게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생각 있으면 연락해요.”
“네? 그게 무슨…….”
“아, 김교수. 치사하게. 이쪽도 전화해.”
한 명이 물꼬를 트자 다른 사람들이 차례차례 명함을 건넨다. 유명 음대의 교수부터 연예기획사 실장등 이름만 들어도 알 유명인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냈다.
“가, 감사합니다.”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 없던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명함을 건네받았다. 잠시 후 그녀의 양손에는 명함이 가득 들려 있었다.
“와, 인기 많네요. 선배.”
“그, 그런가?”
평생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는 사람들의 이유없는 호의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잠시 후, 한 번 심호흡을 한 그녀는 다시 원래 성격을 되찾았다.
“돌아갈까.”
“네.”
시상식이 무사히 끝나고 정우와 아이들은 학교로 복귀했다. 학교에 아무 문제 없이 상을 수여 받았다는 걸 알리고 다음 주.
학교 정문엔 밴드부의 우승을 알리는 현수막이 떡하니 매달렸다.
* * *
정규 수업이 아닌 동아리 활동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해주는 시간. 그 시간에 수많은 아이들이 밴드부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 여기가 우승했다는 그 밴드야?”
“나도 기타 쳐봐도 돼?”
“근데 악기 죄다 낡았네.”
진심으로 밴드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 그저 흥미본위로 밴드부에 들린 아이들, 그 중에는 밴드부가 타먹었다는 상금과 값비싼 기타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야, 뭐야. 안 꺼져?”
“뭔…… 미, 미안!”
“우리 아무것도 안 했어!”
그들에게는 무력의 화신 마리가 있었다. 물론 실제 실력은 보이지 않고 소문만이 무성한 마리였지만, 그 누구도 그 소문의 사실여부를 자기 몸으로 시험해보려 하지 않았다.
“쯧, 요즘 저런 애들이 왜 저리 많냐.”
“원래 인기가 늘면 날파리가 꼬이는 거지, 뭐.”
“콩고물에 수저 한 번 대보겠다는 놈들만 보면 얼마나 짜증나는데.”
태생적으로 모든 일을 자기 노력으로만 해결했던 마리는 남의 노력에 얹혀 가려는 쓰레기들을 혐오했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진정시킨 뒤 밴드부 부장인 예슬에게 물었다.
“얼마나 늘었어요?”
“……삼 십.”
“그거 다 못 받아들이잖아요.”
그들이 밴드부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 와중에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고 덤으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은혜가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자신의 생기부에도 우승 기록 한 줄이라도 남겨 보려는 얌생이들이 늘어났다.
만화 속 부활동과 다르게, 부활동에 참여하고 퇴출하는 데 있어 부장은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 했다.
모든 학생은 원하는 부활동에 가입할 권리가 있고, 학교는 그를 지원할 의무가 있으니.
“말해서 자르죠?”
“……순순히 안 들어줄걸. 은혜도 있잖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은혜를 내보내죠.”
“어!? 나 나가야 해?”
대를 위해서 희생될 입장에 쳐해진 은혜가 당황하고 있을 때, 예슬은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은혜도 우리 부원이야. 내보낼 순 없어.”
“그럼 어떻게 하자고요?”
“……은혜야. 너도 이제 어느정도 연주할 줄 알지?”
“네? 그쵸. 드럼이든 키보드든, 남들만큼은 못 하지만.”
잡무만 한다고 알려져 있던 은혜지만, 사실 자리가 없어 양보했을 뿐. 그녀도 기본적인 그루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가 아니다. 그 사실을 노린 예슬은 애기했다.
“시험을 보자.”
“시험이요.”
“그래. 밴드부에 들어오겠다는 애들이 기본적인 지식도 없으면 안 되지.”
이 시대는 먼 미래처럼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세계제일의 천재들과 그를 약간 밑도는 수재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쉽게 쉽게 공개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정보는 감춰져 있고, 모든 노하우는 숨겨져 있다 업계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만 공개되는 그런 시대다.
즉, 독학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상당히 힘든 시기라는 뜻이다.
“혼자서 배울 정도의 노력이면 얌체짓은 안 할테고.”
“생기부나 상금 목적으로 들어온 애들은 알아서 걸러지겠네요.”
“그렇지.”
의견을 정리한 그들은 곧바로 밴드부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다. 원래라면 일면식도 없는 3학년 음악 선생이었다만, 정우네 반에서 4명이나 되는 인원이 밴드부에 들어가자 담당도 그들의 담임인 신주희로 바뀌었다.
주희를 찾아간 정우는 곧장 그녀에게 밴드부 입부에 제한을 걸어 달라고 말했다.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네.”
“너희들, 동아리가 무슨 취지인지는 아는거냐?”
“학생들이 서로 하하호호 웃고 놀면서 취미를 즐기라는 거죠.”
“그걸 알면서도, 시험을 보라?”
주희의 눈은 매서웠다. 그녀는 누구보다 학생을 위하는 선생이지만, 그게 꼭 정우네 만은 아니다.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대하는 이 시대의 참선생인 것이다.
“네. 보게 해주세요.”
“이유는?”
정우는 지금 사태를 이야기했다. 원래라면 전혀 관심 없던 수많은 아이들이 생기부와 상금 공동 분배, 그리고 부상으로 주어지는 콩고물에 욕심을 부려 찾아온다고.
그 대부분이 실속 없는 일반 학생이었으니, 이제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는 명분까지 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희는 단호했다.
“원래 학생은 배우는 입장이다. 그걸 경험자만 뽑겠다고?”
“한 달 정도만 독학해서 익힐 수 있는 수준으로 할 거에요. 저희 목적은 의지 있는 초보자까지 쳐내는 게 아니라, 할 의지도, 의욕도 없는 거머리들을 방지하는거니까요.”
“……같은 학생에게 거머리는 좀.”
“그럼 모기로 할까요?”
그의 말투에서 주희는 정우가 상당히 날이 서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긴, 기껏 일궈놓은 땅에 누군가 멋대로 서리를 해간다면 열이 받을 수 밖에.
그 노고를 이해하여 주희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야기는 해보마.”
“감사합니다.”
“확정된 건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교장은 지금 밴드부를 매우 좋게 보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건 일단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됐다고.
심지어 밴드부 대부분이 성적까지 우수한 우등생들. 성적과 취미를 동시에 챙긴다는 이미지를 퍼트리기엔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었다.
결국 교장은 밴드부 입부에 시험을 거는 사상초유의 일을 시행했다. 학생들이 반발했지만, 이미 정해진 일을 철회하는 일은 없었다.
대부분이 성과를 날로 먹으려던 학생들임에, 결국 그 해 밴드부에 입부한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