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65/218)



〈 65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예슬이의 머리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외워야 하는 코드가 몇 개고, 외워야 하는 노래가 몇 갠데 기타치는 사람의 머리가 나쁠리 없다.

다만, 그녀는 그 머리를 공부에 쓰는 방법을 몰랐다.

“아니, 이걸  몰라요?”

“어, 음…… 모르진 않아.”

“틀렸잖아요.”

“실수했어.”

“그게 모르는거지!”

그녀는 훌륭한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답게 강렬한 에고이스트였다. 자아가 강한 사람. 영어로 하면 있어보이고 멋있지만 쉽게 말하면 이기주의자였다.

“선배는 이기주의야.”

“아니, 문제 하나 틀렸다고 이기주의까지는…….”

“선배, 인성 문제 있어요?”

“그러니까 시험 문제 틀렸다고 이기주의에 인성까지 나올 건 없지 않나…….”

예슬이는 정우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도 그리 반론하지는 못햇다. 그녀도 알고 있는거다. 이기주의. 그러니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뛰어난 기타리스트는 되지 못 한다.

‘시선도 있고, 성공하는 사람도 적으니까.’

물론 성공한 뮤지션은 각광받는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셀럽중의 셀럽. 그러나 그런 뮤지션은 한 줌의 한 줌도 되지 않는다.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만큼의 뮤지션이 있으며, 그  손아귀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뮤지션만이 돈을 벌어 먹고   있으며, 손을 털고 남은 수만큼의 뮤지션만이 성공한다.

확률로 치자면 정말 수백수천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 극악의 확률. 그런 확률에 도전하는  정신 나간 바보나 끝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에고이스트밖에 없다.

“하아…… 답도 없네. 이거.”

“……그렇게 심해?”

“1학년한테 과외받는 2학년이라니…… 만화나 야겜에서도 안 써먹을 똥 같은 설정이잖아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머리 좋은 동급생이나 선배에게, 그게 국룰이다. 물론 가끔 천재 유녀 캐릭터가 월반하여 주인공과 같은 반을 쓰는 클리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 천재는 가르치는 데 어설프다는 클리셰 때문에 상쇄되고.

자기 욕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 너도 그런 거 하는구나.”

“예?”

“야겜.”

“……아.”

정우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시대 야겜이라고 한다면, 취작이나 미행같은 진또배기 19금 야겜이다.

물론 H씬이 포함된 건전 미연시가 없는  아니지만, 그런 건 야겜으로 치지 않는다.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린 평범한 여자 캐릭터가 미남 캐릭터들을 희롱하고 강간하는 것만이 야겜이다.

그리고 지금, 정우는 그런 야겜에서도  나오는 설정이라고 단언했다. 그건 다르게 말하자면 그런 야겜을 해봤다는 뜻이다.

“남자도 그런  하는구나─.”

“……아니, 뭐. 저도 사람이니까요.”

“흐응, 무슨 게임인데? 응? 나도 궁금한데.”

남자가. 그것도 정우가 야겜을 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그녀는 정우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아마 사실대로 말하기 전까지 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겠지.

“공부나 해요.”

“싫어─ 지루하단 말이야. 아아, 정우 네가 뭐하는지 얘기해주면 신나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을텐데.”

“그거 성희롱인건 알죠?”

“락커는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건 라커가 아니라 정신나간 놈이라고 얘기하려다가, 자신이 그녀를 성희롱으로 고소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은 정우는 한숨을 내뱉은 뒤 조근조근 속삭였다.

“……의 리얼.”

“그거 명작이지!”

“아, 그만. 공부나 하세요.”

만일 그녀가 알고 있는 게임이 자신과 알고 있는 게임과 같다면, 이 주제로 사흘 밤낮을 지새우며 떠들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분위기를 이어나가 집에서 라면도 한 개 끓여 먹을 수 있었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녀가 알고 있는 게임은 정우가 알고 있을 게임과 달랐다. 정우 입장에선 웃기지도 않는 게임이었다.

“응!”

예슬은  그리 좋은 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우도 긴장을 풀고 그녀의 공부를 도왔다.

“아, 여기 또 틀렸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녀요?”

“……인성은 너한테 문제 있는 거 같은데.”

그러나 진척은 없었다.

* *

다음 날. 그녀는 가방 속에 무언가를 들고서 부실로 찾아왔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또 무슨 장난감을 가져왔느냐 타박하려던 정우는 그녀가 꺼내든 물건을 보고 멈칫했다.

“짜잔! PMP다!”

이 시대의 스마트폰. 휴대용 컴퓨터(Portable Multimedia Player). 기타  돈은 없다면서  비싼 전자기기를 살 돈은 있었는지 그녀는 PMP를 흔들며 자랑했다.

“이번에 상금 받은 걸로 샀지.”

“아.”

그러고 보니 상금이 있었다. 1인당 60만원. 학생에게는 쓸데없이 큰 돈. 정우와 우림, 은혜는  돈을 저금했지만 예슬과 마리는 곧장 돈을 받아갔기에 어디에 썼나 궁금했는데.

“그렇게  써도 돼요?”

“응? 뭐가?”

“상금이요.”

“뭐, 다음에 또 우승하면 되겠지.”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도 오만했다. 물론 처음 나간 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니 자신감이 붙을만도 했지만 지금의 태도는 좋지 않다.

‘너무 건방져.’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세계 제일급 기타 실력? 솔직히 평범한 프로가 연주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일반인들은 구분하지 못 한다.

직접 콘서트에 갈 정도로 열정 있는 자들은 그 차이를 몸소 깨닫고 그녀의 팬이 되겠지만, 그 전까지 일반인들은 그저 유행을 쫒는 계륵이나 다름없다.

‘유명해진 다음에야 상관없지만.’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든 뭘 하든 네 편을 들어줄거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일단 정상에 오르면 그녀의 오만함도 자신감으로 포장되겠지만.

지금 그녀의 경력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냥 흔하디흔한 기타리스트 중 하나.

물론 그녀의 재능은 인정한다. 업계의 선배들도 결코 그녀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올 콩고물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그렇기에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그렇기에 그녀를 막지 않는다. 재능이 크면 클수록 망가트리기는 쉬우니까.

기차는 커다란 몸체와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정해진 라인에서 조금만 탈선해도 쉽게 무너지듯이.

마찬가지로 그녀의 커다란 재능은 그녀를 매우 빠른 속도로 정상까지 데리고 가겠지만, 아주 작은 탈선만으로 그녀를 쉽게 망가트린다.

“선배.”

“응?”


“돈은 어떻게 쓰든지 신경 안 쓸게요.”

그건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벌어들인 돈이니까. 자신이 그녀의 부모도 아니고 경제관념까지 교육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을거라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그녀처럼 잘나가는 사람의 약점을 잡아내려 하니까. 만일 잡아낼 약점이 없다면 만들어내서라도.


“어, 음. 뭐 잘못됐어?”

“아뇨, 선배는 잘못한 게 없죠.”

잘못이 있다면,  세상을 만든 신과 그 세상이 흘러가게 만든 자신에게 있으리라.


만일 정우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세계적인 뮤지션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갔을 테니까. 정우의 존재로 그녀의 미래는 고정되었다.


슬픈 운명의 예술가와.
하렘 엔딩의 육변기로.

동시에 이 세상이 시간이라는 힘을 갖고 미래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정우는  세상의 미래를 쉽게 예언할 수 있었다.


‘질투의 시대. 옮고 그름이 아닌, 좋고 싫음으로 싸우는 미친 감성시대.’

이 세상에도 그런 시대가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우가 겪은 대로 그런 미래가 이 세상에도 온다면 예슬은 그저 아름다우면서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매장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미래에선 문화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연예인보다, 회사 주가가 더 중요했다.


“조심해요. 선배. 언제 뒷통수 맞고 잘려나갈 지 모르는 게 연예계니까.”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락커인데?”

“락커라고 뭐 길바닥에서만 연주해요?”


애초에 락(Rock)또한 다른 종류의 음악들과 마찬가지로 한 종류의 음악이다.  나라에서 음악을 하면서 연예기획사 손을 안 탈수가 없다.

그리고 연예기획사는 기업. 이익을 준수하는 단체다. 그녀가 달콤하다고 생각될 때는  잡아 먹어 안달이겠지만, 조금이라도 쓴맛이 느껴지면 곧바로 뱉어 내리라.

‘차라리 조금만 더 미래였더라면.’

아직 인터넷 미디어도 제대로 발달하지  했다. 유튜브보다 국산 UCC의 조회수가 더 높은 시대. 만일 3년, 4년 정도만 더 지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발달했더라면 이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는데.


“그래서, 그건  가져왔어요?”


“아, 맞다.”


정우가 PMP를 가리키자, 그녀는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주섬주섬 PMP의 전원을 키기 시작했다. 그리곤 씨익 웃은 뒤 정우와 화면을 공유했다.


“짜잔! 네가 어제 말했던 야겜! 받아왔지롱!”

“……네?”

제정신인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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