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66/218)



〈 66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짜잔! 네가 어제 해봤다고 한 야겜 받아왔지롱!”

예슬이는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악마같은 미소를 띄었다. 순수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득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뒤에는 정우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악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악의도 아니지.’

아마 성욕에 가까우리라.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는 걸 즐기는 성벽. 사디스트에 가까운 성벽.

‘선배는 S였던가.’

어차피 게임에선 자지에 박히고 앙앙대다 끝나는 게 전부라, 그렇게까지 세세한 설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디스트건 마조히스트건 그 성벽이 크게 발휘되지 않는다면 일반인이랑 큰 차이도 없고.

“선배, 우린 미성년…….”

“에이, 그런 소리 할 거야? 너도 야겜 했다며. 그건  미래에서 하고 과거로 돌아왔냐?”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정우는 순간 멈칫했다. 그런 정우를 보고 예슬은 곧바로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아니, 잠.”

짹쨱짹쨱─

따듯한 햇살이 내려쬐고, 방안에 잠든 남자아이가 비춘다. 벌써 토악질이 나온다. 버틸 수 없는 구역질에 정우가 고개를 돌리자, 무얼 오해한 것인지 예슬이 옆으로 다가와 화면을 내민다.

“왜 안 봐?”

“……치워요.”

“에이, 부끄러워 하는…….”

“치우라고.”

정색을 하며 반말을 하는 정우를 보며, 예슬이 당황한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미, 미안. 내가  심했지?”

그리곤 곧바로 사과한다. 그녀는 에고이스트이긴 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쓰레기는 아니었다. 정우는 가볍게 심호흡하며 구역질을 억누르고 다시 예슬과 눈을 마주했다.

“됐어요.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아, 아니! 역시 학교에서 야겜은 좀 그렇지? 아! 우리 대회 연습이나 할까?”

“아뇨. 전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그 말을 남긴 뒤 곧바로 가방을 챙겨 부실에서 빠져 나간다. 저벅저벅, 걸음이 빨라진다. 뒤에서 뒤늦게 선배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미 늦었다.

정우는 남자 화장실로 대피한 뒤 변기칸에 들어가 변기를 잡고 크게 호흡했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한 뒤 변기를 잡고 일어선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성욕이 왕성하니, 원래 여자가 하던 역할을 남자가 맡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건 이해하고 있다.

TV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만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활발히 뛰어 노는 만화도.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원래 세상과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야동과 야겜은 아니었다. 주 고객층이 여성인만큼 등장인물은 모조리 남성. 물론 남성을 위한 야동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원래 세상의 여성용 야동이 그렇듯, 이 세상의 남성용 야동도 그리 써먹을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진짜는 좀 힘드네.’

그리고 그런만큼, 정우는 지금껏 그런 야동들을 멀리 해왔다. 원래 세상에서도 남자가 당하는 물건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건 대부분 여자가 남자를 희롱하는. 그러니까 여자의 야함을 강조하기 위한 물건에 가까웠다.

그러나  세상에서 야동은 남자가 미친 듯이 쾌락에 울부짖으며 앙앙대는, 진짜 여자와 남자의 위치만 바뀐 그런 야동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이 세상에 온 뒤로 야한 걸 하나도 보지 못 했다. 아직은 시장이 그리 크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봐도 꼴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걸로 기회가 왔다.’

예슬 선배와의 관계는 크게 진척되지 않았다. 같은 밴드부고, 같이 대회를 나가 우승하고, 같은 세계를 볼 수 있는 재능충이라는 사실은 같았지만.

예슬은 정우를 그저 살짝 두근거리는 동아리 후배 정도로만 보았다. 그 이상으로는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크게 한 번 선을 넘으려 했고, 크게 넘어졌다.

‘선배 성격이면  사과하러 오겠지.’

같이 야동도 보는 사이다! 예슬은 그런 친밀감을 원했겠지만 결과는 파국이나 다름없었다. 정우는 역겨움을 내뱉으며 도망쳤고, 예슬은  자리에서 수습하지 못 했다.

아마 지금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할지 그 생각만 하고 있겠지. 그게 기회였다.

‘이번에 아예 좀 크게 나가야겠어.’

지금까지 큰 이벤트가 없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갔지만 어느 벽을 넘지는 못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을 부수고 싶지 않은 그녀는 그를 보수하려 할테고, 그녀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그 무엇이든 양보하려고 들리라.

‘락커니까…… 조금 록하게 가볼까.’

정우는 예슬과의 관계를 진척시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수업을 마친 정우는 부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에도 같이 밥을 먹느라 만나긴 했지만 정우와 예슬 두 사람 사이에서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선배는 이미 도착해 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안녕.”

“…….”

“미안. 아직도 화났어?”

“…….”

“내가 잘못 했으니까 용서해줘.”

정우는 아무 말 없이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예슬은 부실로 들어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를 보고서 긴장이라도   손가락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시험.”

“응?”

“시험 잘 보면 용서해줄게요.”

“어, 정말?”

그건 예슬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어차피 시험은 잘 봐야 하는데 시험을 잘 보면 용서 해준다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좋아써! 그럼 열심히해볼까!”

“아, 그리고. 하나 더. 시험 끝나면 저랑 데이트해요.”

“……잠깐, 내가 요즘 귀가 안 좋아서. 뭐라고?”

“시험 끝나면 저랑 데이트하라고요.”

그 말을 들은 예슬은 정우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곤 3초 뒤 시뻘개진 얼굴을 돌리며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리야? 넌 애인 있잖아?”

“누구요?”

“우림이랑 사귀는  아니었어? 그런 티를 팍팍 풍기던데.”

예슬이라고 정우가 싫어서 대시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녀도 분위기를 파악할 줄은 안다. 정우를 따라다니는 여자애들이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그와 붙어다니는 게 아니라는 사실또한 이미 파악했다.

‘하긴, 숨기지는 않았으니.’

앞에서 대놓고 애정행각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굳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숨기려는 노력또한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정우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어장남이었고, 은혜와 우림, 마리는 그 어장에 빠져 헐떡이는 불쌍한 물고기였다.

그래서 예슬도 정우와 있을 땐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했다. 누가봐도 친구 이상의 사이라는 걸 알게 행동하면서도, 세 명이나 낚은 그 실력에 낚이지 않도록.

그러나 늦었다.

“지금 사귀는 사람 없어요. 애초에 모솔이라고요. 저.”

“……모솔? 너 모솔이었어?”

정우가 모태솔로라는 말을 꺼내자 예슬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생겼어, 요리 잘해, 기타 연주 잘해, 운동도 어느정도 해.

부족한  하나 없는 미남이. 아니,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남자 주인공이 여기 있는데 손을 대지 않을  없다. 그러니까 그건 즉슨.

‘정우 눈이 높구나.’


그의 눈이 너무나도 높아서, 그 누구도 꺾지 못한 절벽 위의 꽃이 됐다고 생각하는  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예슬은 자신이 그 꽃을 꺾는 최초의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왜냐,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녀 자신은 멋지니까. 쿨하니까. 섹시하니까.

‘기타  치고 예쁜 여자, 인기 많잖아.’

외모는 어찌됐건 노래와 기타연주가 수준급인 건 틀림 없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정우를 자신에게 반하게 할 자신이.


“공부하자.”


 사람은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달라붙기 시작했다.


* *


중간고사. 어느새 2학기 중간고사가 도래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보는 시험도 이걸로 3번째. 중간중간 모의고사까지 포함하면 5번은 시험을 쳤다.

“자, 이제 익숙하지? 자리에 앉아. 컨닝할 생각도 하지 말고.”


익숙하다 못해 노련해진 학생들이 재빠르게 시험지를 넘기고, 뒤집은  시험을 시작한다. 정우는 머릿속으로 예슬 생각을 하며 시험문제를 빠르게 풀어 나갔다.


‘어떻게 할까.’

데이트를 하자고 하긴 했지만, 정우도 딱히 생각이 있진 않았다. 예슬이와는 공통된 취미도 있고, 재능도 있으니 같이 길거리 라이브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일단 집에는 꼭 초대해야지.’

복수겸 이것저것으로 보여줄 게 있었다. 그러니 집에 초대하는 건 필수적인 코스였다. 대충 일정을 정한 정우는 시험문제가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바로 OMR카드에 답을 찍어넣고 엎드린다. 시간이 흐른다. 다음 시험이 시작한다. 이걸 일주일간 반복하면 그렇게 시험이 끝난다.


“선배. 준비됐어요?”


“왔구나.”

중간고사가 끝났다.
약속의 날.
정우는 예슬과 데이트를 하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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