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67/218)



〈 67화 〉NO.4 성예슬의 예술성

[데이트. 남자와 여자가 짝짓기를 하기 전 하는 행위.]

‘아니야.’

[데이트. 연인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하는 행위. (모든 커플은 섹스를 하기  데이트를 했다는 통계가 있다. 즉, 데이트는 섹스의 전희다.)]

‘이것도 아니야.’

예슬은 인터넷을 뒤져 남자와의 데이트 코스로 무얼 해야 하는지 검색했다. 남자를 잘 리드해야 좋은 여자. 데이트 때 어물쩍거리는 건 실패하는 지름길이라 들었다.

‘아니, 이 사람들 진짜 애인 있는  맞아?’

그러나 이 시대 인터넷에 제대로  답변이 있을 리 없다. 익명성으로 치장된 인터넷 세계는 가면  수록 질척해졌지만, 초창기엔 순정  자체인 광기가 도사렸다.

[Q. 남자랑 데이트, 어떻게 해야하죠?]
[A. 보지 만질래? 한 마디 하면 끝납니다.]

“미친놈들 진짜.”

그녀는 모니터 너머의 장난스런 답변자들을 욕하며 제대로 된 데이트 코스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에 무얼 올린다는 생각 자체가 드문 시대.

애초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넣는다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대. 이제 막 스마트폰이 등장한 IT 시대의 태동기였기에 예슬은 제대로  정보는 얻지 못 했다.

“무슨 죄다 광고야?”

일단 약속장소를 기준으로 남자애들이 좋아할만한 장소, 식당, 놀거리를 검색했으나 진짜 명소는 인터넷에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다.

진짜 명소는 소개 받거나, 소개 하는 게 아니라 밝혀지는 곳이다. 당연히 그런 명소들을 밝히는 인플루언서들은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단 지도를 뒤져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음식점들을 외운 예슬은 자신만만하게 데이트 장소로 나갔다.

“옷! 옷은 뭐 입지!?”

아니, 아직 준비가 한참 남은 모양이었다.

* * *

‘괘, 괜찮겠지?’

자신이 가진  중에서 가장 그럴싸한 옷을 챙겨입고 데이트 장소로 나온 예슬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정우를 기다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티셔츠에 얇은 가디건. 짧은 핫팬츠와 110데니아 짙은 검은색 스타킹까지. 9월 날씨에 딱 맞는 패션이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어디 이상하지 않나?’

인기를 끌고 싶어 시작한 밴드였지만, 정작 인기를 끌게 되면 어떻게  지 전혀 알아보지 않았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에만 집중하는  그녀의 장점이었기에.

 장점이 지금은 독이 되었다. 데이트에 대해 아는  없으니 그토록 바라던 남자와의 데이트를 하게 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그녀의 또 다른 장점이자 아이덴티티인 자신감의 상실!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무언가에 공포심을 느끼듯, 그녀는 아예 생전 처음하는 데이트에 두려움을 느꼈다.

혹여나 실패하진 않을까, 망치진 않을까. 만일 이번 데이트에 실패하여 영영 데이트를 하지 못 하고 평생 솔로로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악몽들이 머리속을 휘감을 때, 누군가 예슬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정우…… 누구세요?”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그녀를 향해 어색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성이 자신을 건드리자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남자가 말했다.

“저, 그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아.”

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헌팅.

자신은 남자에게 헌팅당할 정도로  꾸미고 왔다는 뜻이 됐다. 그 사실에 자신감이 생긴 예슬은 자신에게 말을  남자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지금 애인을 기다리고 있어서.”

“아, 애인 있으시구나.”

물론 정우는 애인이 아니었지만, 데이트는 애인 사이가 하는 행위니 반쯤 연인관계라 해도 상관없으리라.

“그럼 수고하세요.”

“네? 네.”

그러나 남자는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띄우며 저 멀리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자신에게 거절당해 부끄러워 그러는 거라며 지레짐작한 뒤, 정우를 기다렸다.

정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등장했다.

“선배.”

“정우야. ……뭐 좋은 일 있어?”

“아뇨, 그냥─ 푸흡.”

낙엽만 떨어져도 웃는다는 고등학생답게, 정우는 예슬의 얼굴만 보고도 웃음을 참지 못 했다. 그게 대체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슬은 몰랐다.

“왜 웃어?”

“……선배. 아까 번호 따였죠.”

“어, 어?”

설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나, 괜히 콧대가 높아진 예슬은 가슴을 피며 말했다.

“응. 어때, 네 선배의 모습이. 자랑스럽지? 귀엽지? 사랑스럽지? 왠지 놓칠까봐 막 불안하고 그러지?”

“아니 그게, 그 사람. 제가 보낸 알반데요.”

“……뭐?”

정우의 말을 들은 예슬은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면 남자의 상태가 이상하긴 했다. 첫눈에 반했다면서 곧바로 포기하고,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표정도 그러했다.

“너 정말……!”

“선배가 긴장을 했더라고요.”

“……응?”

“지금부터 즐거운 데이트인데, 긴장해서 망치면 안 되잖아요?”

정우에게 화를 내려던 예슬은 그 의도가 좋은 의도였다는 사실에서 감동받고, 정우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정우야…….”

“아, 그냥 냅둘걸 그랬나? 긴장하는 선배도 보고 싶었는데.”

“너어!”

예슬은 예전과 같이 자신을 대하는 정우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붙잡고 헤드락을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우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선배.”

“아─.”

딱딱하게 정색한 목소리. 흐르는 싸한 분위기. 예슬은 천천히 정우를 잡은 손을 헤쳐 놓았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실수…….”

“……괜찮아요. 가죠.”

“으, 으응.”

시작부터 망했다. 그게 그녀가 느낀 데이트의 감상이었다.

* * *


“여, 여긴 어때?”


예슬은 아까 전 망친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미리 조사해놓았던 데이트 코스를 제시했다.

모두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장소였지만, 결국 정우가 싫다고 하면 모두 폐기될 장소이기도 했다. 예슬에게서 몇 가지 선택지를 들은 정우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다 별로네요.”

“그럼 거기로……응?”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정우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정우는 진심으로 예슬이 제시한 데이트 코스를 별로라고 일갈했다.

‘망했다.’


그녀가 ‘인터넷을 믿으면 안 됐어. 비싸더라도 서점에서 데이트 코스 모음집같은 걸 샀어야 했나’ 같은 자책에 빠져 있을 때. 정우가 입을 열었다.

“저기로 가죠.”

“응?”

정우가 가리킨 곳은 버스킹 존이었다. 아직 연주하는 연주자도 구경하는 구경꾼도 없는 조용한 버스킹 존.

어째서 저기로 가자는지는 몰랐지만 정우가 원하니 예슬은 입을 꾹 닫고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무 연주자도 없음에도 버스킹 존 앞에 착석한 정우는 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도 없잖아.”


“왜 없어요? 여기 있잖아요.”

정우는 그리 말하면서 예슬이를 가리켰다.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하며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지목했다.

“나?”

“네. 선배.”

“나 지금 기타도 없고, 앰프도 없고, 뭣도 없는데?”

“이제 올 거에요.”

그녀도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우는 그 머리위에 있었다. 정우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사람  명이 끌차에 앰프와 기타, 마이크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주문 감사드립니다!”


사내는 앰프를 설치한 뒤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정우는 아무  없이 예슬이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녀는 연주하고 싶지 않았다.

‘기껏 데이트인데.’


그러나 그 다음 정우의 한 마디로 그 결심은 깨졌다.

“앵콜 선언 받으면 용서해줄게요.”

“응?”

“저한테 그런 짓 하신거, 용서해줄게요.”

“조금만 기다려. 여기 사람들 아랫도리에서 질질 싸게 만들어줄테니까.”


용서해준다는 그 한마디에 예슬은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쉬운 일이다. 그녀는 천재니까. 전국대회 우승자니까.


사람들은 대낮부터 연주를 위해 앰프를 깔고 기타를 든 예슬을 보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복장이 특이한 점도 있었다. 누가 봐도 연주하러 나온 복장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하다. 애초에 연주할 생각도 계획도 없이 데이트를 하러 나왔으니까.


‘조금 창피하네.’

연주할 때 입는 복장이 아닌, 완벽히 꾸미고 나온 미소녀의 연주가 시작되려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띠링─♬

줄을 튕겨 기타의 상태를 확인한다. 좋다. 너무나 좋다. 명품이다. 어디서 이런 기타를 가져온 건지 신기할 따름.

앰프도 연결했겠다. 기타의 상태도 조율했겠다. 예슬은 가볍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He is Know─.”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빠져든다. 이 시대 제일의 천재가 보여주는 연주에.

예슬의 매력에.

‘어서와라.’

여긴 내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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