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76/218)



〈 76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규칙이 바뀌었다. 정우는  정보를 자희에게 전달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정우가 이미 충분하다고 하여 시간을 그 이상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길래 내가 그만하자 했죠?”

“이번엔 네가 맞았어. 하지만 항상 맞지는 않을 거야.”

“아,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는 데 끝까지 무시하네.”

정우는 솔직히 그녀가 어느정도 열을 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다는 듯 성을 내지 않았다.

여전히 무표정하게, 여전히 냉철하게. 그동안 해온  아무렇지도 않다는  규칙에 맞는 주제를 찾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화도 안 나?”

“뭐가?”

“규칙을 잘못 알려줘서 우리가 지금까지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됐는데, 화나지도 않냐고.”

“화나지.”

“……그런데  그리 침착해?”

그녀도 사람이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화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이니까.”

“비효율……?”

“그래. 비효율.”

그녀가 냉철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효율적이니까. 그녀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비효율적이니까.

“우리가 화를 낸다면, 누구한테 내지?”

“그야, 선생님들?”

“그래. 대회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치는 선생님들이지.”

그리고 선생들이 잘못을 했든 아니든 그들에게 화를 내봐야 변하는 건 없다. 규칙을 제대로 고지해주지 않은 건 그들의 실수지만 그걸 언제까지 물고 늘어놓아도 성과는 없다.

“그런 사람들한테 에너지를 쏟을 시간에 빨리 시작하는 게 나아. 시간도 절약하고 에너지도 절약하고, 일석이조지.”

그녀에게 있어서 규칙에 어긋난 자료는 매몰비용이다. 회수할 수 없는 비용. 이미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지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이외에는 쓸모가 없는 자료.

그런 것에 열과 성을 다할 필요가 있나?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건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자고로 사람이라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이랑 다를 게 뭔가.

“누나.”

“왜?”

“진짜 기계같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

그건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감정만으로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혼돈스럽고 잔혹스러워서, 조금이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피를 보니까.

동시에 그녀가 도망치는 방법이었다. 모든 걸 이치와 합리로 생각하고 주위를 밀어낸다. 타인과 그녀 사이에 벽을 치고 비효율이라는 합리적이지 못 한 단어를 붙여 놓는다.

 결과는 한 가지다. 그녀는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혹은 강제로 깨부숴지고 파괴될 것이다. 고이거나 박살나거나.

정우는 그녀를 박살내기로 마음 먹었다.

“멍청하게.”

“……뭐?”

“왜 화를  줄 몰라? 화가 난다며. 그렇게 혼자 참고 넘어가는 게 합리적인 일이야?”

“그야, 이런 식으로 빚을 남겨두면 나중에…….”

“그거야 다들 이성적으로 행동했을 때 얘기고.”

그녀의 말은 굳이 따지자면 틀리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를 위해 움직이고, 다들 이성적으로 움직인다면 그녀의 생각이 딱 들어맞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며, 이성보단 감성이 먼저 반응하는 숲 속 친구들이었으며 그녀 같은 호구를 보면 벗겨먹을 생각부터 하는 사기꾼들이었다.

“자꾸 그런 식으로 용서해주고 다니면, 아예 누나를 무시하고 다닐걸?”

“그건…….”

“그런 적 없다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정우는 이전에 그녀에게 들었던 논리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지금까지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자희는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뭐든 이성적으로 분석하려는 게 그녀의 나쁜 버릇이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보다, 남들에게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고.”

“……확실히. 그게 더 효율적일 거 같은데.”

“다만, 알지?  길은 언뜻 보기엔 비효율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그렇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듯이 멀리 가기 위해선 항상 직진만이 답인  아니다. 가끔은  돌아가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 알았어.”

그녀는 정우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생각만큼 효율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으면 움직이는 건 순식간. 그녀는 곧장 교무실로 달려갔다.

* * *

“다녀왔어.”

교무실에서 큰 함성이 오고간 뒤, 그녀는 다시 교실로 복귀했다. 어깨와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뭐래?”

“미안하다는데.”

그녀의 어법은 가끔 상대방을 미치게 만들었다. 상대방이 적이라고 생각된다면 더더욱. 아예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깎아 내렸다.

이번 일도, 그녀는 자신의 담임선생을 찾아가 그를 조져 놓았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들이 원해서 하겠다고 한 게 아닌 추천이었기에, 그 보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음에 분노했다.

“괜찮겠어?”

“뭐가?”

“아니, 선생이랑 싸워도 되겠냐고.”

“뭐 어때.”

그녀는 담임과 척을 졌다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긴, 성적은 출중하고 내신도 완벽하니 굳이 담임과 친해질 필요가 없었다. 그것도 2학년 담임은.

그리고 학교는 얼마나 많은 학생을 얼마나 좋은 대학에 보내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그녀가 담임과 싸운 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으리라.

“아, 맞다. 누나.”

“응.”

“이번에 나, 축제에서 연주하는데. 보러 와.”

“알았어.”

“비효율적이니 뭐니 하진 않네?”

“네 부탁이니까.”

정우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의 부탁이라고 들어준다니 언제 그런 사이가 됐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미소를 가득 피운  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꼭 오겠다고 말한  다시 자료 정리에 집중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게 되긴 했지만 한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완성할  있었다.

경시 대회에 쓸 자료도 준비를 마쳤고, 그 사이사이 틈틈이 축제 준비도 마쳤으니 이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흘렀다. 학교 축제가 시작되었다.


* * *

대회 준비니 축제 준비니 이것저것 바쁘던 정우는 정작 자기 반이 무얼 하는지 듣지 조차 못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축제당일 이상하게 들떠 있어도 그저 축제라서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우리 반은 뭐 하기로 했는데?”


“메이드 카페.”

“……뭐?”


은혜의 말을 들은 정우는 그런 이벤트가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원래 세계 기준으로 보면 남자들이 집사복을 입고 접객을 하는 일이니 불편러들에게 걸릴 일도 없고.

남자들도 참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요리나  쓰는 잡무로 빠졌다.


정우는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요리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요리라고 해봐야 거창한 게 아닌 커피를 끓이거나 핫케이크 분말로 핫케이크를 만드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어레인지 하고 싶네.’

여기다가 과일 조금 생크림 조금만 얹어도 어지간한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만들 수 있는데, 아무래도 시제품을 사서 쓰다 보니 만들 수 있는 품질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하더라도 고등학생들이 하는 학교 축제에선 훌륭한 수준이었다.


“정우야.  어때?”


정우가 간이로 만든 부엌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메이드복을 입은 우림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가슴이 쓸데없이  기성품으로는 차마  담지  해 윗가슴 대부분이 노출된 그녀의 메이드복은 보고 있기만 해도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야하기 짝이 없는 복장이었다.

“너는 접객하면 안 되겠다.”

“왜에?”


“그 모습으로 접객하면 오늘 남자애들 잠 못 잔다.”


이 세계 남자들이 성욕이 적다고 하더라도, 그녀만큼 훌륭한 여성을 보고 서지 않을 리 없다. 아마 밤을 지새워가며 그녀로 딸딸이를 치겠지.


“그럼 나는 뭐, 홍보나 할까?”


“으음,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싫은데.”

“질투하는 거야?”


“응. 맞아. 질투.”

정우의 갑작스런 발언에 우림이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정우가 달라졌다. 예전엔 뭔가 까칠하고 남들을 멀리하는 느낌이었는데, 최근엔 그런 벽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우야. 이거, 밑에 이런 구멍 있다?”


그래서 우림이는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흥분된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메이드복의 가슴부분을 들어 올린 우림이는 가슴 아래에 통풍용으로 뚫린 구멍을 보여주었다. 당연 그곳 또한 맨가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슴께에 위아래로 구멍 뚫린 옷이 있다. 어지간한 수박만큼 거대한 가슴도 있다. 이 두개가 합쳐지면 무얼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쉽게 떠오른다.


“……여기서 하자고?”

“금방 뽑아내줄게.”

우림이가 입을 벌린다. 찐득한 침이 애액처럼 늘어져 입보지를 만들었다. 정우의 정자를 순식간에 빨아먹을 입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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