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78/218)



〈 78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은혜는 자기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럼 나, 반지.”

“반지?”

“응, 반지.”

정우는 은혜의 말을 듣고 그녀의 손가락을 내려 봤다, 작다. 작고 가녀려서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처럼 가냘프다.

그러나 그 손가락은 희고 부드럽게 반짝였다. 반지를 끼면 딱  어울릴 듯 싶었다. 정우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러 갈까?”

“……지금?”

“이것도 여기서 산 건데?”

정우는 은혜를 이끌고 팔찌를 구매했던 중고장터로 향했다. 오후라 그런지 오전에 있던 물건 중 몇몇 개가 팔려 있었다.

교실로 들어온 정우의 얼굴을 확인한 학생 중 한 명이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저희 환불  되는데.”

“환불하러 온  아니에요.”

“아, 어서 오세요! 전교에서 제일  중고 장터에요!”

학생은 자신들이 전교에서 가장 싸다는 말을 지껄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 중고 장터를 하는 교실은 그들밖에 없었으니까.

전국이라고 거짓말을 치지 않은 게 어딘가, 정우는 오늘 두 번째로 들린 교실에서 악세서리를 찾았다. 그럴싸한 반지는 값이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싸구려거나 반쯤 망가진 물건이었다.

“은혜야, 뭐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으음…… 나는 아무거나 괜찮은데.”

은혜는 아무 반지나 괜찮다 말했지만 정우는 마음에 드는 반지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장터에 있던 머리핀 하나를 구매한 정우는 그 머리핀을 은혜의 머리에 끼워주면서 말했다.

“나중에 사줄게.”

“나중에 언제?”

“으음, 글쎄. 일단 축제가 끝난 뒤에?”

“응…… 그럼 기다릴게.”

반지는 받지 못 했지만 은혜는 머리핀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듯, 머리에 끼어진 머리핀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머리핀을 소중히 다뤘다.

그녀와 함께 중고 장터를 나와 다른 교실의 축제를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하교 시간이 되었다.

종례를 위해 교실로 돌아간 정우와 은혜는 조금 시끌벅적한 교실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소란스러운 반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조심스레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뒤에서  모습을 관망하던 마리에게 물었다.

“무슨 일?”

“아, 오늘 판매금을 도둑맞았네.”

“큰일이네.”

“그러네.”

하루종일 밖에서 축제를 즐기던 정우나 은혜, 그리고 아예 관심이 없는 마리에게는 별 일 아니었지만 상당히 큰일이었다.

물론 축제에서 번 돈은  기금으로 돌려져 연말에 치킨이나 피자를 사먹는  쓰이지, 개인적으로 쓸 일은 없지만.

다르게 말하면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는 말과 동일하니까. 학생들은 격분에 빠졌다.

“대체 누가 훔쳐간거야?”

“애초에 보관하던 사람 누구야?”

“본 사람 없어?”

하지만 범인이 제발로 나올 리 없다. 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유야무야 흘러간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이리라. 끽 해봐야 담임선생님의 지갑에서 나온 돈이 모금함으로 들어갈 뿐이겠지.

실제로 담임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그렇게 말했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건 범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받을  없는 일이다. 그건 너희 양심을 깎아 먹는 일이니까.”

그러나 훈계를 들은 학생들 중에서 범인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만일 담임선생이 교사 경력 20년차쯤 되는 꼰대 중의 꼰대 교사였다면 여기서 단체 기합을 주면서 연대책임으로 범인을 만들어냈겠지만.

다행히 선생님은 임용된  얼마 되지 않은 신임교사였으며 신세대였다. 학생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돈은 선생님이 보충해주마. 하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거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지갑에서 돈을 빼 오늘 벌었던 수익을 채워 넣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번뿐이다.”

그러나 축제 이틀날, 범인은 또 다시 돈을 훔쳐갔다.

* * *

“후우…… 애들아. 절도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모르나 본데. 6년 이하의 징역! 혹은 천만 원 이하의 벌금! 너희 인생을 조지기에 충분한 범죄란다.”

한 번은 용서할 수 있다. 초범은 용서받을 수 있다. 우발적인 범죄든, 아니면 실수였든. 사람들은 초범에게 상당히 관대함을 보인다.

하지만 재범은 아니었다. 똑같은 짓을  번이나 저지르고 아무런 일 없이 넘어가려 한다면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

“자꾸 이렇게 나오면 선생님도 너희 물건을 뒤져볼 수밖에 없단다.”

선생님은 결국 강경수단을 꺼냈다. 소지품을 뒤지는 것. 물론 뒤진다고 해서 범인이 나올 리 없다. 범인은 이미 돈을 어디론가 숨겼을 테고, 만일 돈이 나오더라도 평소 그만큼 들고 다녔다고 말하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강력한 수단이었다. 언제든지 너희들의 범죄사실을 밝혀낼  있다는 경찰이나 검찰처럼, 선생님은 그렇게 반 모든 아이들의 가방과 서랍, 사물함을 뒤졌다.


하물며 지갑까지 손을 댔지만, 학생치곤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매출 전액을 훔쳐갔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반장. 오늘 매출액은?”


“오늘은 10만 8천원이요. 어젠 8만 9천원. 총 19만 7천원입니다.”


“들었지? 20만원에 가까운 거금이 도둑 맞았다. 이쯤되면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말 못하겠지?”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경찰이라는 사회의, 민중의 지팡이가 작고 완결된 사회에 개입한다는  그만큼 큰일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아침에 선생님 자리에 몰래 돈을 올려놓고 가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주겠다.”

상투적인 말. 정우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경찰에 신고할 마음은 없다. 그저 범인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범인은 그 사실을 알  없다. 선생이 경찰에 신고를 할지 하지 않을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할 수밖에 없다.


판돈이 다르다보니, 리스크도 다르다. 리스크가 다르니 느껴지는 긴장 또한 다르다. 범인은 아마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걱정하고 있으리라.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다른 반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괜히 소문나면 돈은 못 찾는다.”

그렇게 선생님은 종례를 끝냈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을 나가고, 정우도 은혜, 우림이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그리곤 곧바로 부실로 들어가 예슬 선배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한다. 다른 반에 말하지 말라 했지만 선생님도 딱히 비밀이 지켜지리라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오히려 더 크게 소문을 내려는 속셈이 있을지도 모른다.

“와, 그럼 너희 돈  도둑맞은거야?”


“네. 그렇죠 뭐.”

“진짜 못 됐다. 언년이 훔쳐간거래?”


예슬이는 돈을 훔쳐간 년을 욕하며 기타를 들어 올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밴드부 연습에 열중할  있었다.


대회 출전용 자료는 대부분 완성했고, 어차피 정우가 하는 게 아니라 자희가 대부분 작성했기에 애초에 정우가 필요 없기도 했다.

정우는 그저 인원수 채우기에 가까웠다. 다만 조금씩 기여하는 게 있기에 자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던 것 뿐.

“음, 오랜만이라 그런가. 많이 안 맞네.”

“이번주는 내내 밴드부에 집중할  있게 됐으니까, 연습하면 되겠죠?”

“그래? 그거 다행이네.”

정우는 이번 주 방과  내내 대회 준비대신 축제 준비를 할  있게 됐다고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예슬은 다행이라는 듯 또 다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정우와 은혜, 우림이도 키보드와 드럼을 난타했다. 곡이 한 번 끝나고, 두 번 끝나고. 손가락이 저릴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한  휴식을 취했다.

예슬이는 손가락이 저린지 스스로 손을 주무르면서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나 음료수 좀…….”

“그러길래 쉬면서 하자니까요.”

“에이, 이런 건  왔을  한번에 팍! 해야지.”

예슬이 그렇게 말하며 휴식도 채 마치지 않고 곧바로 다음 연주를 시작하려  때, 누군가 부실 문을 두드렸다.


고문 선생은 아니었다. 그럴 경우 노크 없이 그냥 들어왔을 테니까. 정우는 곧장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정우에게 익숙한 얼굴이 그를 살짝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녕.”

“어, 누나. 무슨 일?”

“너 찾으러 왔어.”

“나를? 왜?”


“이번 대회 준비 때문에.”

“밴드부 축제 준비 때문에  간다고 했잖아.”

정우는 미리 얘기했기에 갑자기 찾아온 자희에 대해 상당히 난처해했다. 새로 공략할 히로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잠깐이면 돼. 들어간다.”


“어, 어어.”


자희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부실로 들어왔다. 그러지 않아도 좁은 부실에 사람이 한  더 늘어나니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안에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인사   하지 않고 곧장 의자에 앉은 뒤 가방에서 자료를 꺼냈다.

“이거랑 이거, 또 이거 바뀌었으니까 빨리 기존 자료 주고 이거 외워둬.”

“그  하려고 온 거야?”


“너 금요일까지 안 온다며? 그럼 오늘 전해둬야지.”


“알았어.  봐.”

“그래.”

정우의 말을 들은 그녀는 곧장 일어나 부실을 나섰다. 정말 본론이 그게 끝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여자들을 보고 변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슬은 교실을 나서는 자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우를 바라봤다.


“왜요?”

“아, 아니. 쟤 2학년이지?”

“네. 그런데요?”

“……근데 왜 반말 써?”


예슬은 뼈 아픈 부분을 지적했다. 윗 학년인데 반말. 상당히 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왜 나한테도  써주는 반말을 써!! 대체 누구야!”

그녀의 말에 부실 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정우에게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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