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79/218)



〈 79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예슬은 어째서 자희에게만 반말을 쓰는 거냐며 정우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듣던 정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너랑 나랑 벌써 만난지 두 달이  되어 가는데 나한테는 여전히 선배선배! 재는 오늘 처음 보는거 같은데 누나라고 부르는  넘어서 말까지 놓고!”

“하아…… 알았어.”

“……응?”

“너도 말 놓으면 되잖아.”

자연스레 말을 놓는 정우의 모습에 예슬은 역으로 당황했다. 마치 말을 놓는 게 당연하다는 듯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17살의 몸이라 꼬박꼬박 존대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정우는 지금 담임선생보다 나이가 많았다.

10살 가까이 어린 학생들에게 존대를 쓰는 건 그로서도  고역이었다.

“어, 많이 놔봤나보다? 자연스럽네…….”

“뭘. 말 놓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 음. 그래도 내가  살 위인데 너무 막 쉽게 대하는 게 아닐까……?”

“네가 말 놓으라며?”

정우는 일부러 조금 강하게 나갔다. 그녀에게서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으니 아예 기를 죽여놓을 속셈이었다.

다행히 살면서 단 한번도 이런 일을 겪어본 적 없는 그녀는 정우의 행동에 당황했다. 그녀가 어버버거리는 사이 정우는 자연스레 그녀의 안쪽까지 침투했다.

“예슬아. 그게 중요해?”

“어, 어!?”

“우리 예슬이, 머리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마치 자기보다 한참 어린 유치원생을 대하듯, 정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앞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내려봐진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우에게는 어른의 여유가 넘처 흘렀다.

꿀꺽─!

예슬은 자신이 꿈꾸던 어른의 여유를 지닌 정우의 모습에 침을 꼴딱 삼켰다. 저렇게 되고 싶었다. 연하에게 느껴지는 연상의 매력에 절로 아랫도리가 적셔지기 시작했다.

“그치? 별로 안 중요하지?”

“으, 응. 그래…….”

“옳지. 착하네.”

정우는 마무리로 예슬의 볼따구를 살짝 꼬집은 뒤 놓음으로서 그녀를 애취급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슬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축제 준비나 마저 하자.”

“……응. 알았어.”

정우에게 굴복한 예슬은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축제 마지막. 공연이 사흘도 남지 않았다.

* * *

수요일. 축제 사흘째. 이틀 연속으로 판매금을 도둑맞은 아이들은 상당히 날이 서있었다. 모두가 시선을 모금함에 집중시켰고, 자물쇠까지 달아 놓았다.

심지어 반에서 가장 무서워 하던 마리가 그 앞을 지키고 있었으니  누구도 돈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리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앉아서 꿀을 빨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안 지루해?”

“앉아서 자고 있으면 다들 쫄아서 다가오지도 않는데 뭐.”

그녀의 말처럼, 다른 아이들은 그녀에게 접근하는 일 자체를 꺼려했다. 금발의 머리색이나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그녀에게 쌓인 악명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덕분에 사흘째. 그러니까 수요일은 돈을 무사히 사수할 수 있었다. 12만 3천 8백원. 그 돈은 모두 선생님의 지갑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먹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두 번이나 도둑맞은 경험이 있으니, 선생님은 그 돈을 주도하에 맡고 있겠다 말했다. 어차피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이들도 잘 알고 있고 장부로 남기기 까지 했으니  누구도 불만 없이 돈을 맡겼다.

사흘째 축제가 끝나고, 정우는 오늘도 동아리에서 열심히 베이스를 튕겼다. 즐거운 시간도 끝이 다가온다. 거진 2주 내내 준비와 축제로 놀기만 하던 학생들은 끝나는 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물론 정우는 그리 아쉬워하지 않았다. 일탈이란 잠깐 즐거운 일이지, 지속되면 금방 또 지겨워진다. 백수들이 노는 게 지겹다고 입에 붙이고 사는  농담이 아니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났다.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밴드부는 연습을 계속했고 마리도 금요일 공연을 위해 이에 참가했다.

해가 거묵거묵 저물때까지 연습을 계속하던 정우는 불이 켜져 있는 도서관 건물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공자희가 홀로 남아 대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련하고 멍청하게. 정우에겐 아무런 도움도 청하지 않은 채.

“뭐해요?”

“……너 구나.”

갑자기 말을 걸자 자희가 살짝 놀라며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별 거 아니라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대회 준비.”


“그걸 왜 혼자?”

“네가  하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우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답답했다. 공부 밖에 모르는 그녀가 마치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마냥 불쌍해보였다.


그렇기에 그런 그녀를 구원해주기로 했다.


“내일, 저 강당에서 공연하거든요. 밴드부.”

“그래?”

“꼭 봐요. 안 오면 후회할걸.”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던데.”

“에이, 아무튼 꼭 와요.”

정우는  말을 남기고 책상에 앉았다. 그녀가 하던 작업 절반을 뺏어 같이 이어 나갔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정우를 바라보았지만, 그런 걸 따질 시간에 같이 하는 게 그녀의 성미에 맞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금요일이 되었다.


* * *

강당 위. 강제로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이 지루하다는 시선으로 밴드부를 바라보고 있다. 호응을 끌어 올리고 싶어도 애초에 흥미가 없으니 호응은 당연히 불가.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떠드는 데 정신이 팔려 무대 위에 집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노래를 들으려 노력은 했던 이전 대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


그런 상황을 쥐어 잡아야만 진짜 락커가 될 수 있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를 뚫고 쑤셔 박아야 정상에 오를  있다.


“괜찮아?”


“후우, 후우…… 응. 이제 됐어.”

가볍게 심호흡을 마친 예슬은 정열적으로 기타를 튕기며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귀를 찢어 놓을 듯 광활하게 울리는 일렉기타의 소리에 아이들의 주목이 순식간에 쏠린다.


“이예이이이!”

예슬이는 곧장  그루브를 타며 이목을 끌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밴드부 부장. 성예슬입니다. 어…… 뭐, 이것저것 길게 끌 필요 없죠. 바로 갑니다.”


강당의 불이 꺼지고 우림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를 잡은 예슬이 피아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다.


“Mama─.”

 유명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신도 양심이 있는 지 바뀌지 않은  안 되는 노래 중 하나.

모두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같은, 그리고 한  들으면 두  다시 빠져나올  없는 중독성을 지닌.

가창력을 무기로 하여 고막에 폭력을 가하는 노래.

“와─.”
“야, 저거나 듣자.”
“이미 듣고 있어. 조용히 해.”


학생들이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흥미가 없었을 땐 모르겠지만 한 번 주목을 끌고  상태에서 다른 데 정신이 팔릴 틈도 없이 곧바로 시작했다.

하면서 시간을 떼울 스마트폰도 없는 이 시대 학생들은 자연스레 공연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번 의식을 빼앗기면  번 다시 멈출  없다. 예슬과 정우의 합주는 세계 최고였다. 자주 콘서트를 다니며 익숙해진 사람조차, 아니. 그렇게 익숙한 사람일 수록 더더욱 빠질  밖에 없는 연주.


화려한 밴드의 음악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드르릉!

“꺄아아아아악!”
“앵콜! 앵콜! 앵콜!”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곧바로 반응하여 환호성을 터트린다. 앵콜을 주창하고 밴드부의 실력에 감탄한다.

“감사합니다! 바로 다음곡! 가겠습니다.”

다음 곡도 유명한 밴드. 아디오스의 Don't go Back. 밴드에, 락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한때 시대를 평정한 곡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명작은 언제 보아도 명작이요.
명곡은 언제 들어도 명곡이다.


“너무나 늦게 알아차린 거야.”


와아아아아아!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환호성이 들려온다. 이전과는 참여도가 다르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예슬의 팬이 되었다.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말만 들었지 그녀의 연주를 직접 본 적이 없던 학생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젠 돌아갈 길이 없어.”


모든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목소리다. 듣기만 해도 새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다면, 칠판 긁는 소리마냥 듣기도 싫은 소리가 있다.

그에 비해서 예슬의 소리는 천사의 목소리. 천상의 하모니였다. 듣고 있으면 옥구슬이 글러가듯 귓가에  박혀 빠져 나오지 못 했으며,  번 들으면 반하지 않고선 못 배겼다.


다만 그게 노래를 부를때만 나타난 다는 게 흠이었지만. 그녀가 락커를 장래희망으로 삼은 이상 아무 문제 없는 일이었다.

“워어어어어!”

그녀가 하울링을 내뱉자 학생들이 현기증이라도 난다는 듯 하나  쓰러지기 시작했다. 후들 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서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딘가 맛탱이가 나간 듯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정우가 베이스를 잡아 그녀의 목소리를 강조 시켰고, 그녀의 기타 실력과 노래 솜씨가 대중을 압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감복되었다. 휴대폰을 들이밀고 이쪽을 찍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후회하리라.


이 시대 휴대폰 따위로는 그녀의 연주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다. 지금  순간에 집중하지 않은 대가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치르게 되리라.

“감사합니다! 밴드부였습니다!”


예슬이 노래를 마치고 곧바로 무대에서 내려간다. 무대 매너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은 행위였으나, 그 누구도 그런 그녀에게 야유를 보내지 않았다.


“아아아아! 한 번 더!”
“한 곡 더!”
“나 죽을 거 같아 죽을 거 같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예슬은 그를 무시한 채 무대에서 내려갔다. 무대에서 내려간 그들은 서로 잘했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아, 누나.”

정우는 그때 스리슬쩍 무대에서 빠져 나와 자희를 찾았다. 그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무대에서 그녀의 위치를 찾아두었다. 정우의 얼굴을 확인한 자희는 고개를 돌리며 표정을 숨겼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정우가 속마음을 물었다.

“어땠어?”

“…….”

자희는 아무 말 없이 엄지를 척 피어올렸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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