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자희는 날 때부터 머리가 좋았다. 머리가 좋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쉽게쉽게 본다는 점이었다.
‘바보인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바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걸 왜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머리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만 좋고 다른 게 없는 사람들은 쉽게 몰락했다.
모두가 이성적으로 행동하리라 믿는 자신과 다르게, 현실은 모두가 혼돈스럽게 움직였으니까. 생각을 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감성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수십 억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이성적이었던 자희는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녀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었다. 천재건 뭐건 몸은 하나다. 다수를 이길 수 없다. 수의 폭력에 밀려 왕따를 당했다.
“이 년 멍청한 거 봐.”
“아예 치마도 벗겨서 돌려보낼까?”
‘멍청한 건 너네들이잖아.’
다행히 그녀는 대부분의 왕따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미련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부모와 경찰, 사회의 힘을 빌렸다.
“비겁하게 꼰지르기나 하고…….”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던가?”
자기들 잘못은 전혀 없다는 듯,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입을 벌렸다. 자희는 상대하지 않고 또 다시 경찰을 불렀다.
아무리 초등학생이라고 할지어도 두 번이나 경찰에 들리게 되면 무언가 조치를 받게 된다. 그녀는 그녀의 적이 되는 존재를 모조리 다른 학교로 전학 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 해.’
그러나 그녀에겐 사회성이 없었다.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이 없었다. 그럼 이끄는 건 포기하자.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내리보면 된다.
다행히 그녀에겐 그런 재능이 있었고,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문관중시의 나라였다. 공부만 잘하면 남들 위에 설 수 있는 나라.
그녀는 법관이 되기로 했다.
다른 모든 건 배제하고 공부에 열중했다. 남들과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취미니 뭐니 하는 것들도 가지지 못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공부, 공부. 궁부만이 살길이었다.
그렇게 18년. 그녀의 인생에 정우가 끼어들었다.
* * *
노래를 듣지 않는 건 아니었다. 현대 사회에서 거리를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게 노래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노래를 일부러 듣고 감동받는 일은 전혀 없었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다. 노래는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녀 인생에 있어 첫 경험이었다. 아무런 방벽도 만들어 있지 않은 처녀의 몸에 세계 최고의 밴드가 전력으로 음악을 때려 박았다.
그건 일종의 폭력이었고, 세뇌였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노래였다. 그녀는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전율로 인한 진동. 이게 감동이라는걸까.
“어땠어?”
“…….”
그때, 무대에서 내려온 정우가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까 전 그 감동이 떠오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엄지를 촥 펴고 좋았다는 제스처를 내보냈다. 이런 건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방금 그 무대를 보고 찬사를 보내지 않는 건 모욕이었다.
“잘 됐네.”
정우는 그런 그녀의 엄지를 보고 씨익 웃었다.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가 무얼 하더라도 좋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게 쾌락반응에 대한 뇌의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깨달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뇌는 정우가 보여준 솜씨에 놀라 더 많은 음악을 갈구했다.
갈증이 심하게 차오르고, 음악에 대한 탐구심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정우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세 깨달았다.
“노래, 더 듣고 싶어요?”
자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언도 긍정의 신호가 될 때가 있다. 노래를 듣기 위해선 노래방에 가거나, 콘서트장에 가거나 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리라.
“우리 밴드부 매니저 자리 남는데.”
달콤한 제안이 선뜻 건네진다. 달콤함만 남아 있는 그 제안을 들은 자희는 거부라는 생각을 꺼내지 조차 못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희는 그날부로 밴드부의 매니저가 되었다.
* * *
“자! 오늘부터 우리 매니저. 공자희 선배.”
“잘 부탁해.”
“……잘 지내보자.”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해요.”
모든 축제가 끝나고 밴드부는 따로 뒷풀이를 가졌다. 장소는 마리가 일하는 레스토랑. 오늘만큼은 그녀도 손님으로 그곳을 찾았다.
“아─ 이 가게 반찬이 엉망이구만? 사장 나오라고 해!”
“왔다 이 건방진년아.”
“이거이거, 사장님. 여기 요리 맛이 없는데요?”
“지랄을 해라 아주.”
손님으로 가게를 찾은 마리는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게의 사장이자 그녀의 스승인 유나는 웃는 얼굴로 마리를 갈구기 시작했다.
“우리 가게보다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곳이 어딨어?”
“얘 도시락이요.”
“……너 또 뭐 했니?”
마리가 정우를 가리키며 말하자, 유나는 정우를 바라보며 또 너냐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우는 배시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그래, 뭐. 오늘 축제인가 뭔가 했다며? 학생 때는 원래 그렇게 놀아야지. 나도 옛날엔…….”
“아, 또 노인네 나때는 얘기 나오네.”
“……한 마디만 더 하면 네 월급 깎는다.”
“헹, 해보세요. 노동청에 확 찔러버릴려니까.”
“응. 미성년자라 짜르면 돼.”
두 사람이 자강두천을 벌이고 있을 때, 정우는 예슬과 은혜의 표정을 살폈다. 두 사람은 이럴 줄 알았다면서 자희의 얼굴과 몸매를 뜯어 보고 있었다.
“머리가 기네…….”
“가슴도 나보다 커…….”
“정우가 이런 취향인가?”
“글쎄요. 딱히 안 가리는 거 같던데.”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자희의 면면을 뜯어보고 있을 때, 태평하게 음식을 맛보던 우림이 대놓고 질문했다.
“자희 선배?”
“왜?”
“정우랑 섹스 했어요?”
“아니.”
“그럼 됐어요.”
“……애네 뭐래니?”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유나가 멈칫 요리를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남자애 한 명과 여자 여럿이 같이 다니는 게 이상하긴 했으나, 설마 그렇고 그런 사이였단 말인가?
‘나도 아직 처녀인데.’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림이에게 되물었다.
“……야, 우림아.”
“왜요? 아, 혹시 그 질문이라면 생각하는 게 맞아요.”
“아니, 나는 아직 아무말도…….”
“저는 정우랑 섹스했어요.”
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유나는 저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커다란 질투심을 가졌다.
예전에는 그저 불쌍하게만 바라보았다. 미인에, 가슴도 크고, 금수저다. 그러나 시한부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그녀보다 가슴도 작고 돈도 없는 그녀였지만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불치병은 기적적인 확률로 완치됐고, 잘생기고 요리 잘하는 남자친구까지 생겼다.
심지어 고등학생인 주제에 처녀도 아니라고 한다!
“……너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말씀하세요. 저 시한부일때 했다고 말하면 뭐라 못 하실텐데.”
“윽─.”
그리고 우림이는 청소년이 해서는 안 되는 모든 행위, 범법행위를 포함한 모든 행위에 절대적인 면죄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야 쓸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날까지 들키지 않았던 모든 일에 대해선 적용할 수 있는 면죄부를.
“아니, 다른 애들도 있잖아.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돼? 그래 맞아. 은혜야. 너 정우랑 애인 아니었니?”
“아, 아닌데요…….”
“……아니었어?”
정우가 애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란 유나는 그럼 어째서 그렇게 데이트를 하고 다니고 애정행각을 했단 말인가?
“아니, 잠깐만…….”
유나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이, 하물며 정우의 표정마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 어떤 짐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너희들 설마…….”
그럴 리 없다. 요즘 십대가 아무리 문란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러나 그녀의 직감은 불안하게도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전부……다?”
혹시, 그들 모두 이미 정우와 관계를 나눈 게 아닐까, 모두 처녀딱지를 진즉에 때낸 게 아닐까.
“…….”
“…….”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녀의 앞에서 깐족거리던 마리마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치를 떨었다.
‘……시발.’
나만 처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