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81/218)



〈 81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유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리에 있는 유일한 어른으로서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어른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질 수 없는 문제였다.

“……너희들, 설마.  처녀 뗐니……?”

그녀의 말을 들은 그 누구도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눈을 돌렸다. 그 사실에 좌절한 그녀가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앉으려 할 때, 자희가 손을 들었다.

“저는 처녀인데요.”

“그래…… 그렇겠지…….”

“저, 저 사실은 저도…….”

자희가 먼저 손을 들고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눈치껏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이미 처녀가 아니라고 밝혔던 우림이를 제외하곤 대부분 손을 들었다.

하지만 유나는 어른의 경험과 직감으로 그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보다 뒤늦게 만난 마리나 예슬이도 처녀딱지를 똈다고? 그렇게 처녀티를 풀풀 풍기던 녀석이?

‘정우 너 이녀석…….’

처음엔 그가 대체  마리를 자신에게 맡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이해할 수 있었다. 떡정이라는 거겠지. 한 번 몸을 나눴으니 어쩔 수 없이 정이 생긴 것이리라.

‘그 정 나한테도  줘!’

그렇게 속으로 불만을 표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어른이었다. 조금의 상처론 크게 피해입지 않게 되어버린 어른.

이정도 상처는 지금도 매일같이 받고 있다. 언제쯤 결혼할거냐며 매일같이 전화를 해대는 부모님 덕에.

“밥이나 맛있게 먹고 가라.”

“네!”

활기차게 말하는 예슬의 모습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서걱서걱 고기나 자르기 시작했다.

* * *

“얼마에요?”

“네가 너한테 돈 받겠니? 그냥 가라.”

뒷풀이가 끝나고 계산을 하려는 정우에게 괜찮다며 손사래친 뒤, 유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남자가 몸 헤프게 쓰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아껴주는 사람 없던데.”

정우의 가시 박힌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만일 정우가 그녀에게 들이댄다고 한다면 밀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유나의 말을 들은 정우는 웃으며 가게에서 나왔다. 밖에선 같은 밴드부 아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 처음 와본 예슬은 안절부절하면서 자신이 내야할 가격을 계산하고 있었다. 더치페이를 하더라도 얼핏 본 가격은 그녀의 한 달 용돈을 아득히 뛰어 넘었으니.

그러나 그런 불안도 잠시, 정우가 계산이 이미 끝났다고 말해주었다.

“어, 얼마 나왔는데?”

“안 주셔도 돼요.”

“아니, 그럴 순 없지.”

선배된 입장으로서 후배에게 얻어먹을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잠시 후 정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격을 듣고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자, 잘 먹었습니다…….”

대회 상금마저 밴드 관련 용품을 사느라 탈탈 털어버린 그녀에게 있어서, 당장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설거지나 하겠다고 빌어야 할 가격.

결국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압도적 감사……! 용돈 절약……!

“괜찮아요. 어차피 아는 사람 가게라 돈도  받았고.”

“……그, 그래?”

그나마 무료로 먹었다는 말에 예슬은 그제야 목을  수 있었다. 물론 정우의 인맥이 있으니 무료로 먹은거겠지만, 돈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정 그러면 커피는 선배가 쏘세요.”

“그래! 커피는 내가 쏠게! 선배니까!”

“오, 고마워. 선배.”

자희가 은근슬쩍 거기에 끼어들며 무의식적으로 얻어 먹으려 하자, 이상함을 느낀 예슬은 자희에겐 스스로 사먹으라 입을 열었다.

그녀는 상당히 아쉬워하면서도 별  없이 자기 돈으로 커피를 사먹었다. 다셧 명분의 커피를 구매한 예슬은 가격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 * *

월요일.

축제가 끝나고 뒷정리가 아주 조금 남아 있었지만, 학교는 그런 일보다 수업에 집중했다. 한 주 풀어주긴 했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고3들은 수능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하루하루가 중요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수능 30일 완성 같은 되먹지도 못 한 책을 가져다가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이미 늦었다.

다행히 정우와 밴드부는 대부분 1학년, 소수가 2학년이었음으로 수능에 대한 걱정은 머나먼 일이었다.

물론 1학년 2학기도 절반이상 흘러간 지금, 남은 2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겠지만.

“은혜야, 좋은 아침.”

“으, 응. 좋은 아침…….”

교실에서 은혜와 만난 정우는 그녀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살짝 이상했다. 그녀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정우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확신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니, 기껏해봐야 잠을 못 잤다든가, 딸치다 부모님에게 걸렸다든가, 겨우 그정도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누가?”

“누가  책상에 돈을 넣어놨어…….”

“뭐야, 좋은 거 아니야?”

누군가 자신의 책상에 돈을 넣어놓았다는 고민. 생각대로 그렇게 큰 고민도 아니었다. 돈이 있으면 좋은거지 뭐,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스리슬쩍 돈봉투를 꺼내며 얘기했다.

“조, 조금 많아. 20만원정도 돼…….”

“20만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금액. 정우는 그녀에게서 돈 봉투를 받아 확실하게 세어보았다. 만원권 열여덟 장에 오천원권 세 장, 그리고 천원짜리 두 장.

 19만 7천원.

‘이거…….’

그리고 축제기간동안 도둑맞았던 금액과 동일한 금액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정우는 금세 봉투를 책상 안 서랍으로 숨겼다. 재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을 보는 사람이…….’

없다. 다행이라고 할까, 불행이라고 할까. 범인이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반응을 했을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정우는 가방 안에 손을 넣는  시스템 상점에서 지퍼백과 장갑을 꺼냈다. 장갑을 끼고서 지퍼백 안에 봉투를 넣었다.

“정우야? 뭐하는…….”

“쉿.”


은혜의 입을 틀어막은 정우는 지퍼백을 마이 안쪽 주머니에 넣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학생보다 빠르게 등교해야 하는 선생님들 특징상, 교무실에는 담임선생님인 신주희가 이미 등교해있었다.


두 사람은 재빠르게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어, 정우야. 아침 일찍 왔네.”

“말씀드릴  있어서요.”


“그래, 뭔데?”

“여기선 조금 그런데.”


“선생님 조금 바쁜데…… 급한거니?”


“저희 반 축제   돈 때문에 그런데요.”

“……따라 오렴.”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사람을 교무원 전용 휴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종종 학생들과 상담을 할때 사용하는 방.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문을 걸어잠근 선생님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누가 은혜 책상에다 이런 걸 넣어 놨어요.”

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  지퍼백에 담가두었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선생님이 그 안을 확인하려 했지만 정우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장갑을 끼고 직접 봉투를 열어 주었다.


“그래. 돈을 찾았으니 다행이지.”

“아니요.”

“……뭐가?”


“이건 누가 은혜를 담그려고 일부러 숨긴거에요.”


“은혜가 훔친  아니고?”

그녀는 드물게 자기 학생을 의심했다. 그리곤 곧장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곤 한숨을 내쉬고 얼굴을 붙잡았다.

“……미안하다. 요즘 피곤해서.”


“원래 월요일이  짜증나기는 해요.”


정우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다시 지퍼백을 품안에 넣은 뒤 말했다.

“선생님이 조금 도와주실 게 있는데.”

“뭐니? 내가  수 있는거라면 최선을 다해보마.”


“별 거 아니에요. 쉬운 일이죠.”


정우는 자신에게 국과수에서 일하는 삼촌이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 지문 감식 의뢰를 한다면 하루도 걸리지 않고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고.

그러니 반 아이들의 지문을 따달라는 부탁을 했다.


“삼촌이 그런 곳에서 일을 하신다고……?”


“네.”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지문 감식을 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시스템 상점에는 그런 아이템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범인을 알아내면 의심할 가능성이 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범인을 알아낸거냐고, 혹시 네가 범인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알아서 오해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그렇게하면 간단하다.

“알았다. 선생님이 지문을 따는 건 도와주마.”

“감사해요.”

“아니 뭘. 삼촌에게 감사한다고 전해 드려라.”

그 날, 담임선생님은 실습을 핑계로 학생들의 지문을 따는 데 성공했고 유진은 상점에서 지문 감식 도구를 구매해 범인을 알아내었다.


범인은 지금껏 단 한번도 이야기 해본 적 없는, 있는지도 몰랐던 엑스트라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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