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NO.5 미주알고주알공자왈
두 사람은 주말 내내 성적 유희와 과학적 탐구를 주제로 신체와 두뇌의 개발을 척척 진행해 나갔다. 하루 종일 허리를 흔들어 체력이 다한 정우는 축 늘어져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걸로 대충 끝인가.’
당장 공략할 수 있는 히로인들은 모조리 공략했다. 3학년엔 공식적으로 히로인이 없고, 1학년에 3명, 2학년에 2명이 전부였다.
이제 학년이 올라가면 전학생 한 명과 1학년 히로인 2명이 추가된다. 3학년 때도 마찬가지. 남들이 수능 준비로 바쁠 때, 정우는 여자나 꼬시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과도 동일했다.
‘노력해야지.’
고작 1학년이 끝났을 뿐이다. 긴장을 풀기엔 너무 일렀다. 전체를 따져도 33%. 거기에 하렘 루트는 가면 갈수록 힘들어진다.
당장 은혜부터 이상행동을 보이곤 했고, 우림이나 마리나 말로 하지 않을뿐 가슴속에 대못을 차곡차곡 박아 넣고 있을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존나 힘드네. 진짜.’
이럴 줄 알았더라면 까불지 않는 거였는데. 괜히 까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리 생각해봐야 뭐 어쩌겠는가?
자신은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왔고, 히로인을 공략해 탈출해야하는 운명이다.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뺨을 후려친 뒤 정신집중을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군생활도 문제없이 마쳤는데, 고작 이정도도 못하겠냐!
“하자.”
열심히.
더 열심히.
* * *
월요일.
교실은 한복판 난리가 나있었다. 은혜와 돈을 훔쳤던 아이가 서로 싸우면서 책걸상을 모조리 뒤집어 놓은 것이다.
“너 같은 게…… 너 같은게!”
“이익! 안 놔!?”
은혜는 탱탱 부운 눈으로 자신의 위에 올라탄 그녀를 노려보며 헛손질 했다. 이렇다 할 격투기를 배운 적 없는 그녀는 단순히 힘으로 밀어 붙이는 상대에게 특히나 취약했다.
그렇게 돈을 훔쳐간 아이에게 맞을 위기에 쳐한 상황에서, 정우가 나섰다. 가볍게 발로 툭 미는 것만으로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날리려던 그녀는 저 멀리 넘어졌다.
털썩, 하고 주저앉은 그녀를 보곤 은혜가 기회랍시고 냅다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려 했기에, 정우는 재빨리 은혜의 뒷덜미를 잡았다.
“뭐해?”
“아, 아니. 쟤가 먼저…….”
“됐고. 아픈데는?”
“……전신이 다 아픈데.”
“보건실 가자.”
“너, 넌 또 뭔데…… 왜 끼어들어어어!”
바닥에 쓰러졌던 그녀가 의자를 잡아 던진다. 정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의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가볍게 낚아채곤 그대로 바닥에 내려놨다.
“야. 좆밥.”
“……뭐?”
“좆밥이라고. 좆밥. 아, 여긴 좆밥이 없나? 그럼 시발 뭐 보지밥이야?”
“무슨 개소리를…….”
“닥쳐!”
정우는 보기 드물게 화를 내며 그녀의 명치를 다시 한 번 걷어찼다. 에너지의 흐름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 정확히 그녀를 맞춰 쓰러트렸다.
“아니, 니가 돈 훔친 것도 내가 그냥 넘어갔는데. 이젠 내 소꿉친구 줘패고 있는 것까지 보고 있어야 하냐?”
“켁! 콜록! 콜록!”
“하─ 열심히 해보자고 한 당일에 이러네.”
심각하게 담배가 땡겼다. 그러나 고등학생인 그가 고등학교에서 담배를 필 수는 없었다. 정우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그녀 앞에 주저앉아 눈을 마주했다.
“야.”
“……뭐, 뭐야.”
“왜 그랬냐?”
“……저 년이 먼저.”
“그게 아니라. 돈 왜 훔쳤냐고.”
“……!!”
싸움이 나 소란스러웠던 아이들도 점점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으나, 모든 걸 알고 있는 정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내, 내가 안 했…….”
“뭘 안 해? 선생님이 너 감싸준 거 다 알고 있는데. 왜. 같이 가서 물어볼까? 네가 훔친 게 맞나 아닌가?”
“아니야!”
“하아…… 이 친구 왜 이럴까.”
정우는 그녀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증거가 다 있다니까?”
그 말에 그녀의 입이 뚝 닫혔다.
* * *
처음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게 그녀와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가슴이 큰 친구였다. 여자인 자신도 저도 모르게 그 가슴에 눈길이 힐끔 갈 정도로.
그런 성벽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하루 이틀 시선을 빼앗기던 게 어느 순간 당연시되고. 그렇게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은 레즈비언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친우는 이성애자였고,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으며, 불치병이었으니까.
어차피 헤어질 사랑. 만나지도 말자. 어차피 끊어질 인연. 잇지도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기적같이 그녀가 회복하기 전까지는.
‘뭐야?’
왜 돌아온 거야? 나는 너를 포기했는데? 어째서 건강해진거야? 나는 이미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녀는 돌아온 이후로 듣도 보도 못한 친구와 같이 어울려 지내기 시작했다. 티격태격 대기는 했지만 그녀가 보기엔 그건 우정이었다.
부러웠다. 그래서, 없애고 싶었다.
“네가 싫었어!”
꼴보기 싫었다. 우림이랑 같이 있는 모습이. 아무것도 안 하던 주제에 우림이랑 친하게 지내는 그 모습이.
“그냥! 그냥 싫다고!”
“그게 뭐야.”
아까 전 신나게 얻어맞았던 은혜가 기세등등해져선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을 팼던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역으로 소리쳤다.
“나도 그 년 싫어! 근데, 너 같은 년은 더 싫어!”
그렇게 말하며 지금까지 얻어맞았던 분만큼. 힘을 담아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선생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앗.”
“앗.”
“너희들, 전부 교무실로.”
세 사람은 그렇게 교무실로 끌려갔다.
* * *
“푸하하하! 그래서, 신나게 얻어맞으셨다?”
“……나도 때리긴 때렸어.”
“아이고, 우리 은혜. 여자가 그리 약해서 어디에 쓰냐? 싸움 좀 가르쳐주리?”
마리는 얻어맞아 부어오른 은혜를 내려다보며 주먹을 쉭쉭, 내질렀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은혜는 진저리를 치면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년은 강전. 나는 교내 봉사 10시간.”
“은혜 너는 왜?”
“막타쳐서.”
“푸하하! 진짜 웃긴 년이네.”
마리는 은혜의 등짝을 짝짝 후려치면서 그녀를 칭찬했다. 한 대 후려쳐준 건 잘한 일이라고. 아마 때리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기억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을거라고.
이걸로 도난 사건도 해결됐다. 모든 게 해피엔딩이다. 아마 그렇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3학년들은 수능을 보고, 다른 학년들은 기말고사를 봤다. 학생이 24시간 365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이때가 되면 학생들에게서 학생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
“겨울방학때 뭐 할거야?”
“나? 나는 해외로 여행이나 가려고.”
“좋겠다─.”
각자 웃고 떠들며 한 달 남짓 남은 겨울 방학을 대비하고 있을 때. 정우는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벌써 눈이 오는구나 하는 감상에 빠져 있었다.
툭툭.
“……?”
“정우야. 쌤이 너 오래.”
“알았어. 고마워.”
정우는 교무실로 향하면서 자신을 부를만한 일이 무어가 있는지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부른다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상이 나왔구나.’
과학 경시대회 상장이 드디어 나왔다. 분명 한 달이 넘은 거 같은데, 정말 느려터졌다.
“정우야! 일단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뭔지 안 물어보니?”
“네. 뭔지 알 거 같아서요.”
“……그래. 너 잘났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상장을 건네주었다. 사실 상장 자체는 필요 없다. 진정으로 필요한 건……
[경시 대회에서 우승!]
[공자희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50SP를 획득했습니다!]
‘좋았어.’
1만 포인트를 벌기 위해선 처녀 백 명을 따먹어야 한다. 솔직히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히로인 한 명에게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대략 이천 오백 정도.
천 포인트짜리 이벤트가 임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임신을 제외한 모든 이벤트를 6명이나 봐야 가능한 포인트가 1만 포인트 모으기다.
쉽지 않은 일이고, 불가능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1349 포인트]
‘불가능은…… 아닌가?’
남은 히로인들의 처녀를 모조리 따고, 볼 수 있는 이벤트를 모조리 회수한다면.
그렇다면 가능하다.
그래.
‘이제 조금 더 잘해줘야 겠네.’
정우는 히로인들에게서 포인트를 뽕 뽑아 먹을 생각을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