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Chapter2. 1학년의 끝 (88/218)



〈 88화 〉Chapter2. 1학년의 끝

“나는 너에 대한 마음이, 크게 변했는데.”

정우가 그리 말했다. 은혜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지 못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무리였다.

그저, 그저 방금 전 말을 곱씹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는  최선이었다. 호흡이 가팔라진다. 1분에 많아야 100번 뛰어야 할 심장이 200번, 300번 뛰는 듯 했다.

그래.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게 바로 이런 말인가 싶다.

“……은혜야?”

“으, 응!”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정우가 그녀를 불러일으킨다. 은혜의 얼굴은 급격한 혈액순환으로 인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괜찮아?”

“응! 나, 괜찮아! 아, 너무 오래 있었다. 잠깐 나갈까!?”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흥분했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 부들거리는 손으로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스치며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눈덩이 섞인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녀의 머리가 식었을 때쯤, 은혜는 조심스레 정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거.”

“응?”

“방금  말. 무슨 의미였어?”

뒤늦게 물어오는 은혜를 보며, 정우는 귀엽다는 듯 주머니 속에서 손을 빼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약하게 꼬집었음에도 건조해져 자극에 약해진 뺨은 강렬한 고통을 남겼다.

“악! 아파!”

은혜가 고통을 못 이겨 주머니에서 손을 빼들고 정우의 손을 떨쳐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우가 은혜의 손을 낚아 채 자신의 주머니속에  집어 넣는다.

방금 전 까지 카페에 앉아 따듯한 음료를 들고 있던 손이라 그런지, 아니면 주머니속에 계속 들어가 있어서 그랬는지. 정우의 손은 따듯했다.

따듯하다 못해 뜨거웠다. 손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열기가 그녀의 몸을 또 다시 뜨겁게 만들었다.

“이런 의미.”

정우는 조심스레 엄지를 벌려 그녀의 손바닥을 간질였다. 마치 무언가 글씨를 쓰듯 손바닥을 문지르는 정우의 손길에, 은혜는 그가 대체 무어라 적는지 맞춰보기 시작했다.

‘ㅅ…… ㅅ인가? 아니, ㄹ? L? 뭐지?’

그러나 손이 인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라고는 해도, 보지 않고 촉각만으로 무언가를 알아차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런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그저 사랑만으로 그를 극복하라고 한다면, 아무리 은혜라고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고 쓴거야?”

결국 은혜는 무어라 쓴 건지 맞추는 걸 포기하고 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정우는  거 아니었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냥, 만지고 싶어서 만진건데?”

“아…….”

 생가을 하지 못했다. 그래. 만지고 싶으면 만질수도 있지. 그렇지. 하지만 은혜는 그 말에 한 가지 가능성을 느꼈다.

‘그럼 나도 만져도 되나?’

아무리 남녀의 차이가 있다지만, 정우는 만지고 싶다고 막 만지는데, 자신이라고  될게 뭐가 있나. 21세기는 남녀평등 자유민주주의 시대다.

“그, 그럼 나도……!”

“어? 만지고 싶어?”

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  손을 쫘악 펼쳤다. 은혜는 왼손으로 정우의 깍지를 끼며 그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훑었다.

주로 약지를 많이 쓰다듬었는데, 오른손 약지의 크기를 알면 왼손 약지의 크기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은혜는 최대한 정우의 손을 음미하며 크기를 파악했고, 그 결과를 뇌내에 깊숙이 저장했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사람이 많네.”

“그러네.”

두 사람은 그렇게 길거리를 걸었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저 걸었다. 그렇게 걸었다. 걷다보니 다리가 아파오기도 했다.

그럼 그제야 주변에 보이는 건물에 들어섰다. 오늘만큼은 어딜 가도 사람이 넘쳐났기에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좋게도 그들이 갈 때마다 하나 둘 씩 자리가 났다.

두 사람은 노래방으로 향했다. 단둘이 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요즘 노래는 아는 게 없는데…….”

“괜찮아. 나도  몰라.”

 사람 모두 인싸라기엔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었기에, 마치 고인 웅덩이 마냥 나오는 노래는 매일 똑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은 뭔가가 달랐다. 뭐랄까, 노래에서 사랑이 넘쳐 흘렀다.

“아, 아아─. 노래 불렀더니 덥네.”

“그러네.”

은혜는 은근슬쩍 덥다고 티를 내며 겉옷을 벗어 던졌다. 패딩을 벗고, 그 위로 한 겹  걸친 셔츠를 벗었다. 순식간에 티  장과 치마만을 남겨 놓게 된 그녀는 힐끔힐끔 정우를 훔쳐보았다.

“정우 너는 안 더워……?”

“나도 덥네. 벗을까?”

정우는 씨익 웃으며 옷을 벗어 던졌다. 그도 마찬가지로 바지와 몸에 쫙 달라붙는 티셔츠 하나만을 남기고 모조리 벗어 던졌다.

일년 내내 성장 호르몬과 남성 호르몬 폭탄을 맞은 정우의 몸은 탄탄한 근육질로 가득했다. 약간은 부실하던 일년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 이제─♬”

노래를 부르며, 두 사람은 가까이.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맨살이 부딪히고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은 두 사람은 눈치껏 노래를 부르며 신경 쓰지 않았다.

‘뜨거워.’

온몸이 뜨겁다. 전신에서 원자로 마냥 열을 발산한다. 그러나 환기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열이 빠져 나가야 얼마나 빠져 나가겠는가.

열을 그대로 품은 채, 은혜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옆얼굴이 열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도 몸이 뜨거운 걸까.

“저, 정우야.”

“응? 왜?”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녀는 열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벌컥벌컥 마시던 물병을 놓치고 물이 옷 위로 화악 쏟아 내렸다. 티셔츠 한 장으로 가려져 있던 그녀의 속옷이 드러나고, 치마도 푹 젖어 쫙 달라붙었다.

“꺄악!”

갑작스런 물세례에, 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털어냈다. 그러나 이미 절반 이상 흡수당해 축축했다. 은혜는 뒷머리를 잡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 아하하. 미안. 실수했네.”

“……은혜야, 너.”

“으, 응?”

정우의 시선이 이상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움직여보니 속옷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은혜는 쑥스럽다는 듯 팔을 들어 올려 속옷을 감췄다.

“너, 너무 보지마.”

속옷을 드러낸다는 건 그리 창피하지 않았지만, 은혜는 정우가 자신의 알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림이나 마리처럼 쭉쭉빵빵하거나 쫙 빠진 몸매가 아니라 더더욱 그러했다. 가슴은 그리 크지 않았고, 뱃살은 살짝 통통하게 튀어 나왔으니 보여주기 민망했다.

그러나 정우는 아무렇지 않게 은혜를 잡아 당겼다. 전면부가  젖어 있던 은혜는 정우의 무릎 위로 털썩 주저앉으며 그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저, 정우야?”

“흐으응─ 향기 좋네.”

“아, 아니. 여긴 노래방인데…….”

“그래서 뭐? 어차피 아무도 안 봐.”

CCTV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우는 그럴 때를 대비하여 주변을 훑어 카메라가 있을법한 장소는 죄다 가렸다.

이 시대에 초소형 카메라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정우는 안심한  은혜의 몸에서 나오는 향기를 즐겼다.

바디워시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뒤섞여 중독성 넘치는 냄새로 변모했다. 정우는 이 냄새가 좋았다. 여자애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살냄새가 섞인 향기.

맡고 있으면 절로 흥분이 되고, 계속 끌어안고 맡고 싶은 그런 향기. 향수로 만들어 팔면 대박날 게 분명한데, 어째선지 아무도 팔지 않아 아쉽다.


“흐으음. 어디보자아…… 은혜야. 움직이면 안 돼.”

“으, 응? 뭐,  하게…… 하읏.”


정우는 은혜의 티셔츠를 들어 올리고 그대로 배꼽에 입맞췄다. 복근에 직접적으로 닿은 정우의 얼굴에 은혜는 두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옷 안에 얼굴을 묻은 채, 정우는 고개를 들었다. 티셔츠가 쭈욱 늘어나며 속옷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속옷 위로 가슴이 살짝 부풀어올라 있는 게 보였다.


“은혜야. 흥분했어?”


“아, 안 했어…….”

“거짓말.”

그야 이렇게 유두가 발기했는걸.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우는 브래지어 위로 유두가 있는 장소를 빙글빙글 문질렀다. 두꺼운 속옷 위로도 손가락은 쉽게 유두를 자극시켰다.


하아, 하는 신음이 은혜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정우는 그녀가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고 천천히 속옷을 내렸다.


속옷에 툭 걸친 유두가 한 번 튕기며, 그녀의 허리도 튕겼다. 정우는 아예 젖은 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올린 뒤 드러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까보다도 진한 암컷의 냄새가, 정우의 코를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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