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Chapter2. 1학년의 끝
쨰깍째깍. 집안에 있는 회중시계의 시계추가 흔들리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리지만, 정작 그 자리에 앉은 정우는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지 않았다.
“내가 괜히 왔나?”
“……아니야. 못 온다고 거.짓.말까지 해놓고 기어코 찾아오신 소우림 씨.”
“그러게. 우리 가족이 워낙에 화목해야지.”
“누군 가정에 불화가 있어서 왔나봐?”
“어머,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했으면 미안해.”
갑자기 찾아온 우림이 때문에 정우와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된 은혜는 적의를 드러내며 우림이를 노려보았다.
다만 우림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가져온 케이크와 샴페인을 들어 올렸다.
“짜잔! 그런 건 됐고. 케이크랑 술을 가져 왔습니다! 와아아!”
그녀는 자기가 들어올리고 자기가 박수를 치는 식으로 환호했다. 정우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그녀를 따라 박수쳤다.
짝짝짝, 방안에 인위적인 박수소리가 울려퍼지고, 우림이가 가져온 케이크를 세상에 내놓는다.
딸기가 산더미처럼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 거기에 어울리는 도수 낮은 샴페인.
와인오프너와 와인잔을 챙겨온 정우는 샴페인의 코르크를 따내며 웬 술이냐 물었다.
“응? 아빠 카드로 긁었지.”
“잘도 허락해주셨네.”
“뭐 어때, 죽는 것도 아니고.”
탄산 가득한 샴페인이 잔에 담기고, 톡톡 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은혜도 술이라는 거에 흥미가 생겼는지 슬쩍 다가와 잔에 와인을 받았다.
우림이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잔에 가득 샴페인을 들이부었다. 와인잔 끝까지 차고 올라 표면 장력 위에 탄산 알갱이들이 튀어 나가는 와중에, 우림이가 은혜를 도발했다.
“은혜야, 첫 잔은 무조건 원샷이야. 알지?”
“다, 당연하지! 그런데 넌 왜 그것밖에 없어?”
“아, 나는 환자잖아.”
우림이는 이럴때만 불치병 딱지를 들이밀었다. 지금은 완치되었지만 불치병 환자라는 딱지는 아무리 그녀가 완치되었다고 할지어도 충분히 써먹을만 했다.
“자, 그럼. 은혜는 술 아다지?”
“아, 아다 아니거든?”
“술 마셔본 적 있어……?”
“어, 어렸을 때 엄마가 주는 거 조금…….”
“에이, 그럼 아다 맞네.”
본인은 처녀를 뗐으니 아다가 아니라 주장하려던 은혜였지만, 우림은 고작 입구에 살짝 넣어본 게 후다냐고 반박했다.
사실 그러했다. 부모님들이 주는 술이래봐야 한두 잔. 제대로 된 음주가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술이라는 건 말이야.”
우림이가 코밑에 샴페인을 두고 향을 맡는다. 사실 그녀도 술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가진 분위기가 마치 소믈리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향을 맡은 그녀가 살짝 잔을 기울여 입에 머금는다. 입안을 헹구듯 술을 버무린 다음 꿀꺽 목넘김을 느낀다.
알싸한 알코올 향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 케이크를 베어 먹어 쓴맛을 중화한다.
마무리로 딸기까지 한 입 먹으면 완벽하다.
“이렇게 마시는거야.”
“……나도 알아.”
우림이에게 질 생각이 없던 은혜는 우림이보다 더 많은 술을 들이켰다. 샴페인이 탄산의 특성이 더 강하긴 하지만 알코올이 없는 건 아니다.
맛있는 줄 알고 잔뜩 술을 집어 삼켰던 은혜는 곧이어 올라오는 소주같은 쓴맛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술트름은 미처 내뱉지 못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재빨리 케이크를 집어 먹는다.
“첫잔은 원샷이라며?”
“너, 너도 안 했잖아!”
“그러네?”
우림이는 남은 술잔을 여유롭게 기울였다. 애초에 얼마 따라놓지 않은 것도 있고, 그녀가 은혜보다 술에 익숙한 것도 있어서 술은 술술 넘어갔다.
‘술이 술술…… 푸흡.’
그리고 그 생각을 홀로 떠올린 정우는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술에 취하면 감정에 격해지는 성격이었다.
“갑자기 왜 웃어?”
“응? 아니. 그러니까…… 우림이는 술이 술술 잘 넘어가네.”
“……어?”
“아, 아하하! 정우야! 내, 내 배꼽!”
정우의 아재 개그에 우림이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 은혜는 배를 부여잡으며 뒹굴었다. 잘 웃어주는 여자가 호감을 사기 쉽다고 그랬다.
하지만 은혜는 한 가지 사실만 알고 두 가지 사실은 몰랐는데, 하나는 그녀처럼 호쾌하게 웃는 여자는 호감을 사기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우야.”
“응?”
“소가 제일 좋아하는 술은?”
소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라, 정우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가 술을 먹을수는 있나?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술을 좋아하지?
막걸리? 아니다. 이건 개그니까.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리라. 술에 취해 약간은 둔하게 돌아가던 정우의 머리가 빛처럼 회전할 때, 우림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쪽.
“입술.”
“……야! 소가 무슨 입술을 좋아해!?”
“어라, 내가 그랬나? 나는 소우림이 제일 좋아하는 술이라고 했는데.”
정우는 쪽 부딪힌 자신의 입술을 더듬으며 방금 전 키스를 떠올렸다. 취한 것도 있고, 그녀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망각한 것도 있어서 반응이 늦었다.
‘아, 꼴린다.’
술에 취하자 감정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다. 꼴린다. 다르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 저 맘마통을 주무르면서 애 낳는 구멍에 싸지르고 싶다는 뜻이다.
마침 구매한 사후피임약도 있겠다. 정우는 곧장 술을 한 잔 더 들이키면서 입을 열었다.
“재밌네.”
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우림이의 앞으로 다가가 그 커다란 가슴을 주물렀다. 손에 꽉 차고도 남아 넘처 흐르는 가슴.
비싸보이는 옷이 구겨지며 주름이 생기긴 했지만, 정우도 우림이도 신경쓰지 않았다.
우림이는 오히려 가슴을 더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왜? 꼴렸어?”
“응. 하고 싶어.”
“우쭈쭈. 우리 정우…… 맘마가 필요하겠네.”
젖도 나오지 않으면서 옷을 들어올려 속옷을 까재낀 우림이는 가슴을 정우에게 들이밀었다.
그리곤 꼭지 위에 케이크의 생크림을 덕지덕지 붙여 숨긴다.
“자아, 맘마에요. 아─.”
“아아─.”
가슴을 깨물며 생크림을 핥는다. 달달하면서도 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곧이어 건포도마냥 딱딱한 무언가가 입에 닿는다.
입에 닿은 그 무언가가 상처 입지 않도록 조심스레 깨물자, 위에선 달콤한 교성이 새어 나온다.
“아흐읏.”
“자, 잠깐! 너희 뭐 하는거야!?”
“은혜야, 방해하지 말지?”
“아니, 나는 뭐 신경도 안 써?”
“에휴…… 알았어. 은혜야. 이리와.”
우림이는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은혜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곤 쭉 잡아 당겨 자신의 다른 한쪽 가슴을 내주었다.
“옳지 옳지. 맘마 먹자. 이거 먹고 코─ 자는거에요. 알았어요?”
“읍! 으읍읍!”
힘에 밀린 은혜는 우림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둥거렸다. 벗어나려 해봤지만 육체적 피지컬에서 은혜가 그녀를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콰득.
“꺄악!”
“……퉷.”
“뭐하는 거야!”
“시끄러워. 뜯어내지 않은 걸 감사해.”
이빨 자국이 그대로 남은 가슴을 가리며, 우림이가 은혜한테 소리쳤다. 은혜는 입에 그녀의 가슴이 묻었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건지, 술을 들이부어 소독했다.
“아르르르르르.”
꿀꺽, 하고 입안을 가글한 술을 마신 은혜의 표정이 붉게 물든다. 어찌어찌 버티던 그녀였지만, 이 한잔으로 기어코 선을 넘었다.
“정우느으은…… 내꺼야아아…… 오늘 하루 종일 질펀한 섹스할 예정이었다고오오!”
“……뭐라는 거야. 갑자기. 취했니? 취했으면 가서 잠이나 자지 그래?”
두 사람이 사납게 대립한다. 정우는 얌전히 그 모습을 보다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두 사람이 취한 듯 하니, 자신도 취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 자체가 이미 취객의 생각이라는 건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푸하, 그럼 이렇게 하자.”
술을 한 잔 들이킨 뒤 입을 연 정우는 두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시선이 돌아가고 정우에게 집중된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걸 확인한 정우는 곧장 제안했다.
“오늘은, 두 사람 같이 하는 게 어때?”
“……얘랑?”
“……같이?”
서로 앙숙인 두 사람. 견원지간,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런 두 사람이기에 폭발하는 시너지가 있었다. 작고 연약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은혜와, 크고 당당해 동경심을 불러 일으키는 우림이.
“두 사람 같이 한 적은 없잖아.”
“하지만…….”
은혜가 망설였다. 정우랑 하는 건 좋다. 좋다 못해 하다가 죽을 정도지만…… 이년은 다르다.
솔직히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나는, 보기도 싫은 년이다.
그런 은혜의 반응을 확인한 우림이는 씨익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좋아.”
“……뭐?”
“뭐야, 은혜야. 싫으면 빠져 있으면 되잖아?”
“이, 이익! 나, 나도 좋아!”
“……그래.”
정우는 이 날 처음, 3P를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