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108/218)



〈 108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우림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리는 쿡, 하고 반찬 하나를 집어 먹은  입을 열었다.

“야, 하정우.”

“왜?”

“내가 진짜 여자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 그러지 마라.”

그녀의 뜨거운 눈빛은 여기서 한 명만  늘렸다가는 아무리 정우라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정우는 그에 웃으며 그럴 리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뭐 발정난 개새끼도 아니고…….”

“가끔 보면 발정난 개새끼보다 더 해.”

“말이 조금 심하네.”

하지만 정우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틱틱대는 건 그녀가 정우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러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는 고양이과이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날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정우가 새로운 히로인을 데려와도 처음에만 밀어내지, 금방 받아들일 거라는 거. 오히려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어 버린다는 토끼마냥 관심을 요구할 게 눈에 훤했다.

“하지만 걱정마.”

다행히 2학년 때부터 만나는 히로인들은, 공략에 의미가 없는 히로인들이었으니까.

* * *

정우는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치를 떨었다. 개학한 지 일주일이 흐르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맥을 쌓은 지금. 반은 폭풍전야, 야생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은연중에 남들 머리 위에 서기를 원했다.

그런 점에서 정우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반에서 아군이 없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아군이 없다는  적이 없다는 말이었지만 야생에서는 언제든지 중립도 적으로 돌아설  있었다.

“정우 넌 친구 없어? 왜 맨날 나가서 먹어?”

“……응?”

뜬금없는 짝궁의  마디.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밴드부에 다니면서 얼굴을 널리 알린  같기는 한데, 관심 없는 사람은 모르는 게 당연했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주목은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는 예슬이 가져갔기에 정우의 존재는 묻히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그도 정우를 아예 모르는. 그냥 같은 반 친구 C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게 티가 났다.

‘어쩔까.’

무시할까, 아니면 대응해줄까.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지만 1년  200일. 하루 3분지 1 이상을 붙어 있어야 하는 학교에서는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반 애랑 먹어.”

“반 애들이랑은 안 친해? 으음, 우리랑  같이 먹을까?”

짝궁은 마치 인심 쓴다는 듯, 자신이 너 따위에게 은혜를 내려준다는 것 마냥 대답했다. 대사만 들으면 정우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추악했다.

‘안 통한다. 짜식아.’

정우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니 그래도, 혼자 먹으면 좀 그렇지 않나? 야, 안 그래?”

어느새 정우가 혼밥을 한다고 단정지은 짝궁은 자신과 친하던 옆자리 아이에게 화제를 돌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도 안 해본 아이보단 친한 친구의 말을 들어주기 마련. 그는 짝궁의 말에 수긍하며 정우를 받아 들여준다는 듯한 어조를 표했다.

“응. 그치. 야, 같이 먹자. 뭐 어때?”

 사람의 맹공. 정우는 슬슬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을 밀어내는 건 상당히 힘들다. 그들은 선의라는 이름의 갑옷을 입고 있으며, 그 갑옷은 상당히 튼튼한 데다가 가시가 박혀 있어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하물며 강하게 쳐낸다면, 가시 박힌 선의는 그대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들어왔다. 그들은 끝까지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할 것이고, 정작 피해받은 정우는 가해자가 되어 더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짜증나네.’

선의를 밀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맞고 버티든가, 더 큰 갑옷을 입고 오든가. 정우는 전자를 택했다. 자신만 참고 넘어가면 편하니까. 거기에 실제로 존재하지도 못할 엑스트라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야, 됐으니까…….”

“아, 정우야!”

그때, 교실 앞문이 열리며 가슴이 들어왔다. 태어난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거대한 가슴. 소보다 거대한 게 아니냐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하는 우림이었다.

그녀는 교실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우와 달라붙어 있어 종종 까먹지만, 그녀는 일학년 때부터 수많은 아이들과 친분을 다졌던 인싸중의 인싸. 교실의 9할 이상이 그녀와 친분이 있었다.

“어, 우림아. 왜?”

“부탁할 게 있어서…… 그런데 무슨 일? 싸우고 있었어?”

“어? 그게, 그러니까…… 음. 저기, 아까 같이 먹는다는 게…….”

“응. 우림이랑.”

추가로 몇 명  있기는 하지만, 정우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다. 우림이와 단둘이 밥을 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짝궁은 입을 꾹 다물고 정우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은 어째서 너 같은 거랑…… 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정우는 그런 시선을 무시하며 우림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데?”

“체육복  빌려줘.”

“여자한테 안 빌리고?”

“알잖아. 이거.”

우림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그녀의 가슴은 한 치수, 두 치수 커다란 여자애들의 체육복마저 맞지 않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기에 정우의 체육복을 빌리러 온 것이다. 최근 체격이 커진 정우의 체육복이라면 딱 맞을 듯 싶었으니까. 물론 그거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래. 빌려줄게.”

“아, 고마워.”

우림이는 정우에게 체육복을 받자마자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정우는 기겁했지만, 우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셔츠를 벗어 던졌다.

갑자기 반에서 웃옷을 벗어 던지는 우림이의 모습에 아이들이 상당히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오히려 몸이 좋다고 감탄사를 내뱉는 아이들이  많았다.

짝궁도 그러한 아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빨리 가야해서, 미안.”

우림이는 아이들 앞에서 우람한 가슴과 탄탄한 복근을 자랑했다. 너무 커다란 가슴에 그녀를 보고 흉하다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노력과 땀으로 만들어진 유려한 곡선을 보고 보기 싫다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약간 헐렁한 체육복을 입고, 치마 속으로 체육복을 집어넣은 우림이는 끙끙대며 체육복 바지마저 입은 뒤 치마를 내렸다. 그리고 셔츠랑 치마를 곱게 접어 챙긴  정우에게 말을 걸었다.

“너네 반은 체육 언제야?”

“우린 목요일.”

“이틀 남았네. 이거 빨아서 갖다 줄게.”

“그래.”

순식간에  아이들의 주목을 끌어모은 우림이는 그대로 정우에게 손을 흔들며 반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짝궁은 정우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내일 나랑 같이 밥.”

“됐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같이 먹으면 안 돼?”

“어.”


“알았어…….”

그는 침울해진 표정으로 책상에 고개를 떨구었다. 정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렸다.


‘우림이한테 반했나?’

그러나 불쌍하게도. 이미 우림이의 몸도 마음도 정우의 것이었다. 사람을 물건으로 대할 수는 없지만, 우림이는 정우가 자신을 물건처럼 대해주면 좋아할 테지.


‘말해줄까.’

이대로 그의 정신을 부수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사랑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춘기 소년에게 현실의 잔혹함을 알려주면, 그대로 폭주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좌절하고, 알아서 기며, 알아서 포기하리라. 그게 시간의 힘이었다.

“자자, 자리에 앉아라. 예종 친 게 언젠데 아직도 떠들고 있어?”


그때, 선생님이 들어왔다. 5교시. 점심을 막 먹고 난 이후의 수업이라 상당히 졸렸지만, 하품을 쩍쩍 해대며 버텼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하교를 할 때까지.


짝궁은 정우에게 단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 * *


다음 날. 정우는 반 분위기가 무언가 들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던 걸까. 어제 유행하는 드라마가 방영했다든가?


1080P를 넘어 4K 고화질 영상으로 눈을 단련했던 정우는 이 시대 영상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뭐가 유행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더라도 볼 생각은 없었다.

“야, 진짜야?”
“진짜라니까. 개쩔어.”
“와, 이런 시기에 오냐 보통?”


그러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으면, 영화나 드라마, 예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더불어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이 더 흥분해 있었으니, 여자보단 남자에게 관련된 무언가임이 틀림 없었다.


‘뭐지?’

정우가 감도 못 잡고 쩔쩔매고 있을 때, 담임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0교시라고 불리는 홈룸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기대된다는 목소리로 담임 선생님의 말을 기다렸다.


“뭐야, 누가 소문 퍼트렸어?”


 공기를 읽은 건지, 담임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리고 그제야 정우도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전학생이 왔다.”
‘새로운 히로인……!’
“들어와.”


잠시 후, 교실 안으로 여자 한 명이 또각또각 걸어 들어왔다. 그럴 리 없음에도 마치 보석으로 만들어진 구두를 신고 들어오는 듯했다.

“전학생, 자기소개.”


“한아름이라고 해. 집안사정 때문에 이사왔어. 잘 부탁해?”


아름이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자, 남자아이들의 얼굴에 홍조가 돋았다. 한아름. 이름 그대로 외모에 몰빵한 히로인.


‘진짜 조각상 같네.’


플레이어 입장에선, 입질 하지 않아도 굴러 들어오는 보석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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