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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118/218)



〈 118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아름이가 스스로 개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복종의 예는 표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아이돌. 인싸 한아름으로 남아 있었다.

그게 좋았다. 오히려 개가 되었다며 평소에도 달라붙고 그런다면, 그건 민폐였다. 노예제가 폐지된 21세기 현대에선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자, 얘들아. 다음 주가 중간고사인  알지? 축하한다.”

담임선생, 신주희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표하며 아이들에게 중간고사 일정을 선고했다. 사실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공적 확인은 확연히 다른 기분이다.

마치 자신의 사형집행일을 알고 있는 사형수가, 간수에게 끌려갈 때와 같다고나 할까.

아이들은 벌써 2학년이 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에, 또 벌써 시험에 대비해야한다는 사실에 덜덜 떨었다.

‘시험 공부 모임을 해야겠네.’

물론 이과측 재능부터 문과측 재능까지, 모든  갖춘 정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문이과 구별이 없는 1학년 때에도 전교 1, 2등을 다투던 그였다.

그와 함께 수석을 다투던 우림이가 이과로 간 이상, 문과쪽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문과 1등. 전교 1등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출난 재능이라고 말할 게 없는 은혜나 이미 반쯤 취직해서 직장을 찾은 마리, 그리고 갑자기 노예가 되겠다고 선언한 머리가 약간 이상해 보이는 아름이까지.

게임에서야 당연히 플레이어가 별다른 이벤트를 벌이지 않는 이상 히로인들이 모두 플레이어를 따라  학년으로 진급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있을까.

‘수능은 못 보더라도, 유급은 하지 말아야지.’

게임에서야 이벤트성,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히로인을 떼어 놓으라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었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충분히 유급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정우나 우림이, 자희나 예슬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 모두 자기 앞가림 정도는 잘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머지 셋이 불안불안해서 그렇지.’

자신이 케어해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아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우웅, 약간의 진동을 깨달은 그녀는 곧장 엎드리는 척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슬쩍 미소지었다. 다시금 고개를 든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중간고사 잘 보고. 만약 우리반이 1등하면 쌤이 피자랑 치킨 쏜다.”

“와, 정말요!?”

“그럼. 어차피 니들은 1등 못할테니까.”

“에이, 왜 못해요. 전교 1등이 우리 반인데!”

아이들은 정우가 있으니 전체 1등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치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모으는 양아치 같은 학교가 아닌, 모든 학생들의 성적 평균을 비슷하게 맞추는 학교였다는 것.

전교 1등이 있다면, 전교 꼴등도 있다.  사람을 같은 반에 집어넣으면 딱 평균이었다. 즉, 그들은 정우를 손에 넣었다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정우조차 커버하지 못하는 내부의 적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했으니까!

“누군지는  안 하겠지만, 전교 꼴등도  반에 있다.”

물론 선생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게 누구인지. 반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한 달이나 된다면 싫어도 여러가지 정보를 알게 되는 법이니까.

선생이 0교시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은 정우에게 달라붙었다.

“정우야! 우리 같이 스터티 할래?”

“나랑 하자. 내가 매일 떡볶이 사줄게.”

“아니, 나랑 하자. 나는 스타벅스까지 사줄 수 있어.”

평소엔 눈이 마주치면 고개만 끄덕여 인사하는 관계면서, 아이들은 마치 원래부터 이런 관계였다는 듯 그에게 달라붙었다.

정우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자신에게 달라붙는 테이커(Taker)들을 떼어놓았다. 그리곤 경고했다.

“우리 반이 1등 하려면 나랑 공부하는 것보다 꼴등을 공부 시키는 게 빠를 걸.”

그러나 정우가 제아무리 정론을 말해도 전교 꼴등을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전교 꼴등과 연관되기 싫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결국 전교 꼴등을 공부시킨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소모한다는 뜻이니까.

스스로의 시간을 녹이고 전교 꼴등의 성적을 올려도 별다른 이득이 되지 못한다. 타고난 이타주의자가 아니라면 굳이 전교 꼴등에게 손을 뻗지는 않는다.

혹은 정우처럼 플레이어거나.

‘전교 꼴등이…… 저깄네.’

정우는 주변을 둘러보다 멍하니 앉아있는 전교 꼴등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 마냥 입가에 침을 묻힌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그를 뜻하는 대화를 햇음에도, 그녀는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그가 정말로 정신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ADHD나, 자폐증에 가까운 정신병자.

‘특수학교로 가야 할 수준이지만…….’

한국이 원체 사교육열이 강한 나라이며,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심한 나라였기에 생긴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신지체라는 개성을 가졌어도 그가 미남이었더라면 인생을 사는 데 그리 큰 불편함은 없었으리라.

평범하게 생겼기에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겪었겠지만. 그것까지 신경 써줄 여유는 정우에게도 없었다.

“야.”

“……응.”

“나랑 같이 공부할래?”

“내가?”

그는 어째서 자신이 그래야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정우를 올려다보았다. 깊게 생각할 능력이 부족한 그에게 있어, 잘생기고 많은 여자를 꼬시는 정우는 적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득이 있으면 따라온다는 말이었다.

“아! 정우야, 나도 좀 가르쳐주지 않을래?”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던 아름이가 다가왔다. 그녀를 보자 전교꼴등의 눈이 휘동그레해지면서 그녀를 깊게 훔쳐보았다. 이렇듯 본능으로 사는 아이들은, 본능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미에 휘둘리며 살았다.

‘물론 지금은 그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아름이의 얼굴은 남녀가 역전된 이 세상에도, 아니. 이런 세상이기에 더욱 잘 먹혔다.

전교꼴등은 한참을 그녀를 훔쳐보다가 정우에게 대뜸 말했다.

“하, 할래! 공부 할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반이 전체 1등을 하는 건 게임에도 존재하는 업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분명 이것도 나쁘지 않게 포인트를 줬었지.’


백 포인트였나. 하나의 스킬을 달인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되는 포인트를 주었다. 포인트에 한참 목마른 하렘 루트를 플레이 할때, 필수적으로 클리어했었던 업적이기도 했다.

“아, 그럼 나도!”
“나도나도!”

반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아름이 정우와 함께 스터디를 한다고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함께 스터디를 하고 싶다며 몰려 들었다.

아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정우에게 말했다.

“아, 아하하. 미안. 이렇게 되버렸네?”

“아니, 잘했어.”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린 뒤, 정우는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나 혼자 모든 아이들을 커버한다는 거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이렇게 반의 과반수가 모여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면, 다른 아이들은 눈치껏 따라오게 돼있다. 그렇게 되면  1등을 차지하는  정말 순식간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배부하고, 모르는 과목을 과외하는 둥. 여러가지 피곤한 일들이 있겠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고작  정도 일.

그 정도  가지고 백 포인트를 벌 수 있다면 이득이었다.

“자, 그럼 다 같이 공부하자.”


아름이가 그렇게 결론을 내고난 뒤, 정우는 곧장 아이들이 공부할 기출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 * *


“야, 멍멍아.”

“머, 멍…….”

“내가 말했지. 정우한테 꼬리치지 말라고.”


방과 후. 우림이는 아름이와 단둘이 화장실에서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하는  미친짓에 가까웠지만, 야자를 하지 않는 학교의 특성상 방과 후 화장실은  어떤 비밀기지보다 보안이 훌륭한 장소가 되었다.

사람 자체가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우림이는 담배가 썩 어울리는 자세로 아름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젠 정우에게서 시간마저 뺏어가?”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네가 죄송할  뭐가 있어. 그치?”

턱, 우림이 순식간에 아름의 볼따구를 붙잡았다. 입을 봉쇄당한 그녀는 생각외로 강력한 악력과 이빨에 찢어져 나가는 입벽을 느끼며 신음했다.


“다 이 혀가 문제지.  그래?”


“으, 으읏…….”

“어떻게 할까. 자를까? 그것도 아니면 네가 가서 아이들한테  하겠다고 말할래?”


“그, 그치만…… 애당초 주인님이 먼저  행동이고…….”


“말렸어야지. 개 답게 주인이 잘못된 길로 가려면 막으란 말이야.”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며, 우림은 아름이의 머리를 다시   변기통 안쪽으로 쑤셔 넣었다. 숨이 막혀온다. 그녀는 고통에 발버둥쳤다. 체감  십분이 흘렀을까, 우림이는 아름이의 머리를 끌어 올렸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그냥 죽여버린다.”


“네, 네혜에…….”


“네가 흘린 구정물은 네가 치우고.”

“아, 알게씀미다…….”


“나 이만 간다? 가도 되지?”


우림이는 대답도 듣지 않고 화장실을 나섰다. 아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인지, 아니면 방금  고개를 박았던 변기의 물인지 구분 가지 않았다.

‘최고야─!’

아, 물론.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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