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120/218)



〈 120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마리에게 여러 서브미션을 당한 정우는 삐걱거리는 팔다리를 풀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으으…… 아직도 저리네.”

“……미안.”

“아니야, 뭐. 나도 잘못한 점은 있으니까.”

“그치. 내 잘못만 있는 건 아니라니까?”

금세 화색이 돋은 그녀는 정우를 향해 미안하다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음료를 쪽쪽 빨아댔다. 그녀의 시선은 소파 아래에 앉아 있는 아름을 향했다.

아름은 자신을 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가볍게 눈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짜증 나기 그지없는 상판대기를 들이밀자, 짜증이 솟구쳐 올라왔다.

“근데 쟨 아냐.”

남이 떡 치는 걸 훔쳐봐? 대놓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방에 숨어서 몰래?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일이었다. 쥐새끼마냥 방구석에 숨어서 비굴하고 음침하게 구는 일.

당연한 소리지만, 그녀의 행각을 알게  지금 그녀를 곱게  수 있을 리 없다.

“뭐? 정우가 다른 사람이랑 하면 흥분하는 성격이라고? 정우가 무슨 네 물건이냐? 네 애인이야?”

그녀의 말은 타당했다. 뒤늦게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정우가 자기 물건인 것 마냥 성욕을 해소하는데 써먹다니, 마리가 정우의 애인은 아니었지만, 친구 이상. 애인 미만의 사이로서 눈 뜨고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정우가 괜찮다는데 네가 왜 뭐라 그래?”

“뭐?”

“듣자 하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정우 애인도 없잖아?”

그렇지만 아름은 마리에게 현실을 들이박았다. 그녀가 며칠 동안 정우네 집에 들락날락하면서 자위만 해댄  아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분위기와 정보를 파악했다.

정우에게는 여자가 많다. 이건 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같은 양품은 쉬이 보기 힘드니까. 잘생겼고 키 크고 자지 크고, 잘 대주는 옆집 오빠 같은 분위기의 미남.

거기에 집안을 보아하니 돈까지 많다. 그에 비해 부모는 항상 자리를 비운다. 그녀는 정우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있다.

부모가 자주 자리를 비우니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고, 그러니 애정 결핍에 빠져 누구에게나 손을 뻗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몸을 쉽게 대주는 것도 그래서이다.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정우의 행동은 일관성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쉽게 도출되었다.

“정우를 정말 사랑하긴 해? 그냥 정우가 쉽게 몸을 대주니까. 너도 나랑 마찬가지로 성욕을 풀기 위해서 접근한 거 아니야?”

바로 이간질. 그녀들이 정우에게 주는 사랑이 타산 섞인 가짜라는 의심만 심어주면, 불안정한 정우는 알아서 그녀들을 밀어내고 자폭하리라.

“이 미친년이 지금 뭐라고 했냐?”

그녀가 노렸던 대로, 마리는 곧장 격하게 반응해왔다. 주먹을 쥐고, 그녀를 잡아먹을 듯 매섭게 노려보았다. 주먹이 날아오는  두렵지 않다.

어차피 그녀의 본성은 겁 많은 고양이가 다가오는 인간에게 손톱을 휘둘러 쫓아내는 것과 같다. 겨우 그 정도 수준이다. 그녀가 선사할 수 있는 전율도, 고통도. 작고 보잘것없다.

“왜? 때리게?”

그렇기에 더욱 도발했다. 도발이 통했는지, 마리는 곧장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뺨에 주먹이 박히는 순간, 그녀는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느꼈다.

입안이 찢어졌는지 쇠 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집안에서 침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 침에 희석해 피를 삼킨다. 그런 다음 마리를 올려다보았다. 머리가 흔들려 초점조차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마리가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비틀거리는 뇌와 다리를 붙잡고, 그녀는 어찌저찌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왜, 할 말이 없으니까 폭력밖에 쓸 게 없지?”

어지럽다. 구역질이 나온다. 그러나 티 내지 않고. 멋지고 당당하게. 그녀는 가슴을 피며 말했다.

마리는 마리 나름대로,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주먹질을 날리지는 못했다. 만일 이게 길거리나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고, 이 자리에 정우가 없었더라면. 주저 없이 주먹  대 쯤  날리고, 싸커킥으로 마무리했다.

‘젠장.’

폭력에는 원초적인 감정이 가득 담겨있다. 무식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정우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정우에게 서브 미션을 걸기는 했지만, 오랜 수련에 의해 터득하는 서브 미션은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반면, 주먹질은 그런 게 없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폭력을 쓰기 전에는 그녀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을텐데, 폭력을 쓰고 나니 그녀와 대등한 위치가 되었다.

설마하니,  모든 걸 그녀가 설계하고 이뤄낸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에 소름이 차오른다.

“그만해.”

다행히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정우가  사람을 말렸다. 정우는 소파에서 일어나 아름이의 얼굴을 살폈다. 부러지거나 금이 간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됐고, 아름이를 천천히 소파에 앉힌 뒤 마리에게 경고했다.

“진심으로 사람 패지 마. 그러다 죽어.”

“……알았어. 미안해.”

“사과는 쟤한테 해야지.”

마리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정우가 선생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사과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그녀를 밀어내려는 분위기가 약간은 바뀌었다는 것.

“뭐, 아름이랑 하겠다는 건 아니야. 실제로 아직 하진 않았어.”

“……뭐?”

“얘는 아직 처녀라고.”

“미친.”

아름이가 처녀라는 사실에, 그리고 정우가 아직 그녀에게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림이를 제외한  사람은 경악과 기쁨에 빠졌다.

“……그래, 뭐. 날 보고  친다는 게 개좆같기는 하지만.”

“널 보고 하는 거 아닌데? 정우보고 치는 건데?”

“미친년. 니가 딸칠때 내 엉덩이는 화면에  나오디? 내  나왔을 때 가기만 해봐라.”

“나도. 딱히 신경 안 써. 일단 정우 네가  안댄건 사실이지?”

마리가 아름과 티격태격 싸우고 있을 때, 은혜는 그녀가 아직 정우에게 안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이전에 그녀의 몸에서 정우의 냄새를 맡았을 때, 솔직히 좌절했다. 정우가 또 다른 여자를 사귀었구나. 또 그의 사랑과 관심이 다른 곳으로 흘러 가겠구나.

그러나 아직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거다. 그녀는 아직 섹스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엊그제도 섹스를 했으니까!

“응. 사실이야.”

“그럼 됐어.”

“야, 은혜 너…….”

은혜도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는 정말 이 집단에서 정상인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우림이는 처음부터 아무  없이 음료수만 홀짝였으니 말할 것도 없다.

“미치겠네 정말…….”

모든 사람이 외눈박이인 세상에선, 눈이 두  달린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한다. 정우에게 여러 여자가 생기는 걸 개의치 않는 이 집단에서, 그녀만이 비정상이었다.

“됐고, 나랑  때는 이 년 부르지 마. 알았어? 걸리면 팔다리 다 아작낼테니까.”

“뭐, 그정도면 됐어. 은혜 너는?”

“나? 나는 뭐…… 내 시야에 있다면 상관 없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짝, 하고. 박수를 친 정우는 마리를 향해 미소 지으며 책가방을 뒤적거렸다.

“자, 빨리 공부하고 가야지.”

“……가다니?”


“마리 너는 얘랑 있으면 싫다며?”


“아니, 야. 잠만…….”


마리는 정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곤,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녀가 보고 있다면 싫다고 하긴 했지만, 그게 그녀를 빼고서 즐기라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오, 오늘 할 거야?”

은혜는 콩닥거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오늘 자신이 입고  속옷을 상기했다. 오늘은 수십 명이 모이는 날이고,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평범한 흰 팬티에 흰 브라자를 입고 왔는데…….


“응. 그럴 생각이야.”

정우의 말에, 은혜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자, 공부 시작하자.”


* * *

“제정신 아냐, 정말로…….”


공부가 끝나고, 마리는 정말로 자신을 내보내려는 정우를 보고 질렸다는 듯 아름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녀는 고양이과이긴 했지만, 때때론 토끼 마냥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다.

“너, 꼭꼭 숨어 있어라. 내 눈에 들어오면 죽여버릴거야…….”


“알아서  거야.”

아름과 마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우는 자신의 몸에서 살짝 땀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애들은 좋아하겠지만, 사실 정우는 자신의 땀냄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일단 목욕부터 할까?”

“아, 물 틀어놓고 올게!”

은혜가 재빨리 욕실로 달려가 뜨거운 물을 콸콸 틀어놓고, 우림은 천천히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마리는 정우를 보며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냥 같이 씻기만 하자고.”


“아니, 그러니까…… 하아.”

섹스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가 화를 낼 명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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