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NO.6 아름다운 그녀가 다가온다
콸콸콸콸─
뜨거운 물이 금세 욕조를 채운다. 정우네 집에는 화장실이 여러 개 있는데, 거실과 연결된 큰 화장실엔 사람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꽉꽉 채워서 들어가게 되면, 불쾌감을 느끼겠지만, 다행히 이 장소에 있는 사람은 다섯이었다.
“흐아아…… 좋다.”
은혜가 여자 입에서 나오기에 부적합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론 그건 정우 입장에서이고, 우림과 아름만이 살짝 조심했을 뿐. 이 세상에서 여자가 목욕탕에 들어가 탄사를 내뱉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헐벗고 마주 보니까 어때?”
“……뭐,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거야?”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지?”
“……시끄러.”
첨벙, 마리는 대답 대신 물총을 쏘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목욕물을 맞은 정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그대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어어…….”
“읏…….”
“……정우야, 빨리 머리 내려.”
“……왜 그래?”
뚝뚝,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볼을 타고 쇄골에 떨어진다. 움푹 파인 그 자리엔 이미 욕탕에 몸을 담구며 생긴 물 웅덩이가 있었기에, 흘러 넘친 웅덩이는 가슴골을 향해 흘러내린다.
평소에 보았더라도 성욕을 참지 못했을 정도로 섹시한 모습인데 더해, 지금 그는 평소 보여주지 않는 이마를 까보이고 있었다. 올백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정우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뇌쇄적인 외모에 꼴릿한 상황. 꽉 찬 욕탕 안에서 올백 머리를 한 그를 보고 있으니, 유두가 빠딱 서고 음핵이 찌릿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들 눈치만 보며 성욕을 참고 있었다. 욕탕이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 앞이었다. 성욕에 미쳤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꿀꺽─
그렇게 침 삼키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욕실 안에서, 이상함을 느낀 정우가 다리를 움직였다. 커다란 욕조라고는 하지만, 다섯이나 되는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다리가 얽히게 되어 있다.
툭툭. 옆에 앉은 우림이와 아름이의 다리와 정우의 다리가 얽혀간다. 정우는 여자 특유의 부드러운 살덩이를 느끼며 다리를 쭈욱 뻗기 시작했다. 그렇게 뻗은 다리는 은혜와 마리의 허벅지에 닿는다.
“뭐, 뭔데?”
“아니, 왜 그렇게 굳어 있어?”
정우는 굳은 두 사람에게 물을 뿌렸다. 정우의 맨얼굴에 긴장했던 마리지만, 얼굴에 물을 맞은 이후엔 짜증과 분노가 긴장을 앞서버렸다.
어디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마리는 양손으로 물을 퍼다 날랐다. 수백 밀리의 물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동시에 마리는 네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다.
“너…… 에잇!”
낯을 많이 가리는 은혜도,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우림이도, 그냥 얌전히 정우를 힐끔힐끔 훔쳐보던 아름이도. 아무리 마리가 강해도, 한 손으로 열 손 당할 수는 없다.
하물며 싸움도 아니고, 물장난에서야. 사람이 많은 쪽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다. 어린애 같은 물장난을 실컷 즐기고 나서야, 그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욕실을 나왔다.
“어때, 생각보다 괜찮지?”
“……시끄러.”
밖으로 나와서, 어째서인지 사이즈별로 준비되어 있던 속옷을 챙겨 입으며. 마리는 아름이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더러운 성벽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었다.
마리에게는 가정사가 그러했고, 그녀에게는 성벽이 그러했을 뿐. 만일 정우나 다른 애들이 그녀의 부모가 한 사람 없다는 사실을 트집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녀는 분노했으리라. 열불을 내며 박살을 내놓았겠지.
그런 주제에, 성벽이 좀 괴상하다고 밀어내고 싫어하는 건, 조금 아닌 거 같았다.
“그래, 뭐. 나쁘지 않다. 됐냐?”
“아, 애들아. 간식 먹을래? 뭐 하나 만들어줄게.”
“……말 걸어 놓고 다른 데로 새냐?”
“왜? 마리 넌 안 먹게?”
“……달달한 걸로.”
“그래.”
정우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의 요리실력은 어지간한 레스토랑의 총 주방장보다 나았으므로, 뭐가 나오든 기대할 만했다.
* * *
푹신푹신한 수플레를 먹으며, 마리는 기분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목욕하고 나와서 달달한 걸 먹으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간식을 먹으며 티비를 보던 마리는, 헉! 하고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지 상기했다.
‘뭐야, 섹스 각인가?’
목욕을 하기도 했고, 목욕하면서 색욕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달달한 간식을 먹은 지금은 성욕이 조금 내려가긴 했다만…… 몸에 남은 잔불은 순식간에 그럴 마음이 생기자 불타올랐다.
그러나 정우는 간식을 먹으며 조용히 티비를 보고 있었다. 자기가 먼저 하자고 말을 꺼냈던 주제에. 역시 남자라는 걸까, 아니면 그도 5P는 두려운 걸까.
하자고 마음먹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참을 수 없어졌다. 마리는 입에 문 수플레를 꿀떡 삼킨 뒤, 입가를 닦아냈다. 입안에서 여전히 단맛이 느껴졌으나, 갑자기 양치를 하고 올 수도 없는 노릇.
부디 입냄새가 나지 않기를 빌며, 딸기잼을 입안에 물어 향기를 머금는다. 그다음 물로 딸기잼을 닦아낸다. 그리고 정우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 갑자기 뭔데?”
“……네가 방금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 안 나?”
“……내가 뭐라고 했었는데?”
정우는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수플레를 꿀꺽 삼키고 되물었다. 입가에 묻은 딸기잼이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다. 마리는 그대로 정우 위에 올라탄 다음, 그의 입에 입을 맞췄다.
할짝, 입가에 묻은 딸기잼을 핥은 뒤 입과 입 사이에서 휘저어진다. 달달한 딸기잼이 녹아 혀와 혀 사이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쪼옥. 입을 뗐을 땐, 핑크빛 실이 주욱 이어졌다.
“이런 거. 하자고 했지.”
“아, 아아! 아아아아!”
은혜가 멋대로 키스를 날리는 마리를 보며 급하게 달려온다. 그리고 그녀에게 밀친 뒤 따지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상의도 없이 먼저 시작하면 어떻게 해!”
“뭐가.”
“오늘은 내가 먼저 하려고 했었는데! 아아, 망했어! 다 망했어!”
은혜가 발광을 시작하자, 마리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고는 정우의 위에서 비켜섰다. 그리고 정우를 가리켰다.
“하세요. 예. 실컷 하세요.”
“이미 처음은 뺏겼잖아!”
“나참, 그러길래 누가 밍기적거리랬나. 언제 하나 기다리다가 거미줄 치게 생겨서 먼저 들이대준 거 가지고.”
“나, 나도! 나도 금방 할 거였거든!?”
“둘 다, 싸우지 마.”
탁, 하고. 정우가 젖은 머리칼을 정리하며 머리를 올렸다. 아까 전 그녀들의 반응으로, 이마 깐 자신의 외모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 지 깨달은 정우는 이를 무기로 써먹었다.
‘이것도 오래 가진 않을테지만.’
몇 번 써먹고 난 뒤에야, 익숙해진 그녀들은 평소처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머리를 까고서 뻣뻣하게 굳은 은혜를 끌고 온다.
“오늘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다고?”
“어, 어?”
“그래그래. 우리 은혜가 그러고 싶었으면 그래야지.”
쪽쪽. 입가에 입을 맞춘다. 질척했던 마리와는 다른, 학생다운 귀여운 버드 키스. 그러나 키스는 점점 더 진득해진다. 입술만 부딪히던 키스는 어느새 찐한 롱키스가 되었고, 결국 혀를 넣고 빼는 딥키스가 되었다.
쪽쪽쪽쪽,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혀를 잡아당겨 잇몸을 핥게 만들기도 했다. 이쯤되니, 정우도 자신의 하물이 바짝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얘네는 벌써 어디 간 거야?’
정우는 우림이와 아름이가 사라진 걸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시간은 없었다. 그의 앞에는 이미 애정결핍에, 흥분한 아기고양이가 두 명이나 있었으니까.
* * *
쪽쪽쪽쪽.
입술이 떨어지자 은혜는 먹이를 갈구하는 아기새 마냥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정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정우는 그녀의 입술을 턱, 막으며 그녀를 밀어냈다.
“으우…….”
“안 돼. 키스는 많이 했잖아.”
“그치마아안…….”
“어허.”
“히이잉…….”
은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정우의 위에서 내려왔다. 사랑을 나눌 때 정우는 종종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때면 어째서인지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명령에 따름으로서 두근거리게 된다.
‘나, 마조인건가.’
인터넷에서 읽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마조히스트라고 한다고. 맞거나, 명령받는 걸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여자 마조는 상당히 많고, 추하다는 사실또한.
‘맞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는 정우가 자신을 때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두꺼운 채찍을 들고, 날카롭게 휘둘러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히는 정우의 모습을.
화아악─
‘어, 어라?’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