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6화 〉NO.7 신주희는 신중하다. (126/218)



〈 126화 〉NO.7 신주희는 신중하다.

정우가 한  본색을 드러내자, 다음 시합도 마찬가지로 시시하게 끝이 났다.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라올 정도면 학교 내에서도 나름 공좀 차본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겠지만.

압도적인 피지컬과 스킬로 찍어누르는데, 프로도 아닌 그들이 막아낼 수 있을  없다.

물론 프로에 준하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축구부 애들이 있었으나.  학년, 반에 흩어져  반에 있는 축구부는 많아봐야 두세 명. 나머지는 그냥 운동신경 좀 있는 일반인.

고작  정도 숫자로는 정우를 막아설  없었다. 차라리 전원이 축구부였다면, 그랬더라면 제아무리 정우라고 할 지어도 혼자서 무쌍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겠지만.

이건 운동회였다. 운동을 잘하고 못하는 아이들이 한데 모여 단체로 진행하는 체육대회. 못하는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파헤치면 무쌍은 간단했다.

뻥!


“악!”

결승 상대팀의 골키퍼는 축구부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골키퍼가 공격수의 공을 막을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수비수가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격수를 막는 방법도 모르고, 그냥 멀뚱멀뚱 서 있는 허수아비 수비수 상대라면, 골키퍼와의 일대일 승부차기나 다름없다. 움직이면서 원하는 타이밍에 공을   있는 승부차기.


결국 축구 경기에서 우승을 취하고,  뒤에도 농구, 육상. 한 사람의 활약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 대부분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승리했다.

‘아슬아슬한데.’


그러나 그럼에도, 정우는 우승을 확정시하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육대회라는  자체가 단합을 위해 점수표를 조작하기 때문이었다.


[아아, 이번 경기는 무려! 1000점!]

정우가 오전 내내 열심히 달리며 얻어낸 점수가 팔백 점이었다. 근데 한 경기에  점을 태워?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었다. 만일 이게 정식 대회였으면 극대노하면서 따지고 들었겠지.


‘어쩔 수 없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나머지는 운이지 뭐.

“아아, 힘들어.”


“……수고했다.”

“……? 네, 뭐. 감사합니다.”


정우는 기껏 이기고 돌아왔는데 울상을 짓고 있는 담임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이상함을 감지했다.

“선생님. 표정이 안 좋은데요. 어디 아프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하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해놓고, 한숨을 퍽퍽 쉬는 그녀의 모습을 본 정우는 그녀가 이리 우울해할 이유를 찾았다. 사실, 자기 반이 이기고 있는데 이렇게 우울해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자기 반이 이기는 게 이득이 아니라 손해가 될 경우.

‘이 인간 설마…….’


체육대회나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커다란 행사에선. 가끔 교사들끼리 내기를 하곤 했다. 어느 팀이 이기느냐에 돈을 거는 사설 토토방.

만일  내기에서 담임이 상대편 팀에 돈을 걸었다면?

“선생님.”

“어, 왜……?”


“……혹시, 홍팀에  거셨어요?”

“무, 뭐? 그게 무슨……소리니?”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주위를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엽게 느껴졌다.


“와─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아, 아니. 그러니까. 만약에 너희가 져도 그 돈으로 먹을 걸 사줄 수 있으니까…….”


“얼마 거셨는데요?”

“……10만원.”


당시 초임 교사의 월급이 백만원 언저리. 그녀는 상대팀이 승리한다는 데 월급의 일할을 태운 것이다.

“……져드릴까요?”


“뭐?”


통 아이스크림도 2000원을 넘지 않고, 치킨  마리가 만원인 이 시대에서. 십만원이라는 거금을 태운 그녀는 순간 돈의 유혹에 넘어가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보고, 그것도 자신의 반 학생을 보고. 일부러 지라는 말은 꺼낼  없었다. 그건 그녀의 자존심과 직업윤리가 허락하지 않았다.

“넌 선생님을 뭘로 보고…… 무조건 이겨라!”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이겨 볼게요.”


“그래! 그런 정신으로 싸우란 말이야.”

기호지세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우가 사라지고 난 이후. 그녀는 통장 잔고와 갚아야  학자금 대출이 떠올랐다. 십만 원. 배율은 두 배였으므로, 이십만 원.

‘조금만 아끼면   생활비인데.’

한 달 생활비가 눈앞에서 날아간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 정우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녀는 십만 원 돈을 잃고, 이기면 단체로 고기를 사준다는 약속을 해버리는 바람에, 추가로 이십만 원을 더 잃었다.

“선생님. 뒷풀이 가시죠?”


“예?”

체육대회가 모두 끝나고, 신주희는 다른 교사의 말에 지갑 속을 확인했다. 솔직히 말해서   알고 십만 원을 투자한 거라, 통장은 텅장이 되었고, 지갑 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

“딴 사람이 쏘는 거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번 토토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한턱 쏘는 거라면 가겠다 말했다. 그녀의 말에 토토에서 승리했던 사람들이 흔쾌히 수락하며 그녀를 초대했다.


술까지 사겠다는데,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술을 마시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여자라면 싫어도 마시는 상황이 많을  밖에 없다.

“자자, 오늘은 빨리 끝내고. 제가 아는 술집에서…….”

오랜만에 회식 각을 잡은 교감이 드물게 칼퇴 선언을 했다. 회식은 별로였지만, 칼퇴는 좋았다.

“오늘 체육대회, 고생 많으셨고. 이대로 수련회와 수학여행까지 무사히 마칩시다!”

“예!”

일을 대강대강 끝내놓고, 교사들은 단체로 술집에 가 거하게 취했다. 매일매일 학생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만큼 술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먹을 일이 생길 때마다 내일이 없는 사람인 마냥 술을 들이켰다.


사실 정말로 내일이 없기는 했다. 내일은 주말이었으니까!

“끄으으윽! 공무원이 되면 애인이 생긴다고, 다들 그랬는데에에!”


“아하하하하! 신 선생은 젊으니까 앞으로 기회가 많잖아요. 저를 보세요. 이제 내일 모래면 마흔인데, 아직도 미혼이에요.”


“아아, 선생님…….”


서로 상처를 핥고, 보살펴주며.


“그럼 신주희 선생님은 딱히 체육관은  다니시나요?”

“네에에…… 그럴 돈이 있어야죠. 아, 그런데 홈트레이닝도 자세가 중요하거든요? 이게 그러니까…….”

“그럼 나중에 저희 집에 오셔서 알려주세요.”

“……예?”

그러다 성욕에 휩쓸리는 무리가 생기기도 하기 마련이다.

주희는 옆반 담임이자, 울끈불끈한 몸매를 지닌 김성주와 눈이 맞았다. 이 나이를 먹고도 경험 없는 처녀였기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나. 다행히 성주는 경험이 많아 보였다.


‘이거 실환가? 꿈인 거 아니야?’


볼을 꼬집어보자,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술에 취해서 그랬지만 그녀에게 그런  구분할 인지능력은 없었다. 그래, 이건 꿈이다. 이런 사람이 자신에게 먼저 들이댈 리 없지.

훌쩍, 술을 한잔 더 들이킨 뒤,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꿈이라면 뭘 해도 자유가 아닌가? 꿈이라고 범죄를 저지르는  망설여졌지만, 연애질 정도는 얼마든지.


‘제발 깨지 마라.’

종종 꿈에서 야한 내용이 나오면, 데이터가 부족한 뇌는 꿈을 이어가지 못하고 꿈을 파괴했다. 그렇게 일어나면 중간에 끊긴  때문에 상당히 더러운 기분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이번엔 부디 그렇게 되지 말고, 제발 본선까지 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빌었다.

“자자, 여기까지 마시고. 돌아갑시다.”

그 뒤로 2차를 마치고, 다행히 3차는 가지 않았다. 드문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랍시고 3차, 4차를 달렸다간 오랜만에 들이키는 알콜을 받아들이지 못한 몸이 내일 깨어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숙취를 선사할 테니까.

“ 심히 들어가세요!”


교감이나 학생부장, 아무튼 자기보다 높은 교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걸 모두 보고난 이후에야.


주희는 그제야 집으로 갈 택시를 잡으러 떠났다. 그러나 이미 십수 명이나 되는 사람을 태우고, 중간중간 술에 찌든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되니. 그녀가 타고 갈 택시는 없었다.


‘그냥 걸어갈까.’


집까지 걸어서 삼십 분. 술도  겸, 운동도  겸. 그녀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술기운에 뚝뚝 끊기고 휘청거렸다.

그러다 결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꺄흑!?”

툭.

그녀는 순간 세상이 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무언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니, 매달려 있는 게 맞나?

‘아, 둥둥 뜬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술에 너무 취해 평형감각이 맛이 갔다. 덕분에 그녀는 한참을 자신을 잡아준 누군가의 품에 있었다.

“……언제 일어나실래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후에야,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술에 취해서…….”

“아뇨, 그건 상관없는데. 괜찮으세요? 집까지 걸어가실 수 있으세요?”

목소리를 들으니 남자였다. 남자한테 안긴 것도 모자라 걱정받고 있다.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 그녀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고개를 들어 그렇게 전하려 했다.

‘와─.’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 순간, 그녀는 입을 떡 벌렸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너무나도 그녀의 취향에  맞는 이상형이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까버린 이마. 백미 저리 가라 할  피부.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에,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남자. 눈앞에 있는 남자가 딱 그러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한참을 술에 횡설수설하던 그녀는 대체 어디서 용기가  걸까, 아니면 아직도 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눈앞의 그에게 말했다.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네?”

“아아아, 당연히 있으시겠지…… 아뇨,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없는데요.”

푸훗, 눈앞의 사내는 그렇게 웃으며 그녀에게 미소지었다. 미소를 본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가 지나쳐갔다.


‘이거, 그린라이트인가?’

미인은 용기 있는 자만이 손에 넣을  있다고, 지금 그녀는 용기 +100 버프를 주는 만취 상태였다.


“저, 저기 그럼!”

근처에서 술 한잔하지 않겠냐고, 가게에 들어가기 싫으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까는 거라도 좋으니까.

“좋아요.”


“앗싸.”

“재밌는 분이셨네요.”


“네? 아하하,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편의점 말고. 그쪽 집이면 좋겠는데.”

“네네! 저도 좋아요!”


원래라면 여기서 꽃뱀이나 다단계, 장기밀매를 의심해볼 만하지만, 그녀는 만취 상태로. 판단력이 흐려졌다. 덕분에 그녀는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들고 집으로 외간 남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집으로 들어온 남자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분위기는 좋았다. 너무 좋아서 문제였지. 남녀가 술에 취하고 분위기까지 좋으면?


종족 번식의 본능을 이길 수 없다. 그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쾌락에 가득  신음을 마구잡이로 내뱉으며 열락에 휘둘렸다는 사실은 기억했다.


격렬한 정사를 나누고…… 그리고 잠들고…… 그리고…….

“……미친년.”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쓰레기가 전부 치워져 있어서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닐까 생각됐지만, 가랑이 사이에 묻은 타액은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라고 강렬하게 주장했다.


“미친년미친년미친년. 진짜 또라이인가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 만일 에이즈 환자라면? 성병이 있다면? 그녀에게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협박해 돈을 뜯는 꽃뱀이라면?

많은 가정이 스쳐 지나가고, 욕실에서 그 남자가 머리를 닦으며 나타났다.


“아, 일어났네요.”


어젠 그렇게 정중한 존대였으면서, 말투가 가볍게 바뀌었다. 그러나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저기…… 그러니까, 어제 일은…….”


“어제 일은 뭐요? 없던 일로 하자고요?”


“아니, 그쪽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처음 보는 사이고, 애당초 요즘 시대에 하룻밤 잤다고 사귀고 뭐고 하는 건 조금…….”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네.”


“……!!!”

그녀는 남자의 말을 듣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내가 선생인 건 어떻게 알았지? 그러나 남자, 정우는 올백으로 올리고 있던 머리를 대충 풀어헤치며 내렸다.

“아직도 술이  깨셨나 보네요. 선생님.”


“어─. 어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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