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5화 〉NO.7 신주희는 신중하다. (135/218)



〈 135화 〉NO.7 신주희는 신중하다.

정우는 목덜미를 손으로 가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수업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 예비종이 울렸지만, 어차피 수업 한두 번 빠진다고 인생에 큰 오점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거 어떻게 하지?’

목덜미에 크게 남은 키스 마크. 하필 입고 있던 옷도 하복이라 옷깃을 올려도 전부 가려지지 않았다. 옷깃을 세우고 다니는 것도 멍청해보였고.

‘지울까.’

지우는  간단했다. 시스템 상점을 이용하면 키스 마크는 물론이요, 상처나 흉터를 가리는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화장품을 구매하려던 정우는 그냥 세수 한  하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우림이가 말했듯이 이건 낙인이다. 죄지은 자신에게 찍힌 낙인.

원래 세상이었더라면 바람으로 사형당해도  말이 없을 정도니까. 이 정도 자국이야 참을 만했다. 남들 시선을 그리 의식하는 편도 아니고.

화장실에서 나온 정우는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누군가와 탁, 부딪혔다. 살짝 저려오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상대방은 1학년 여자애였다. 정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복도에서 뛰지 마.”

“어, 어어. 네…….”

그녀는 어딘가 잘못 부딪혔는지, 정우를 보고 입을 떡 벌린 채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넘어질 때 머리를 부딪치지도 않았고, 어딘가 부러지거나 삐끗한 거 같지도 않아서. 정우는 그냥 몸을 돌려 교실로 향했다.

“저, 저기요! 선배님!”

“뭔데?”

정우는 자신을 부른 1학년을 뒤돌아보았다. 피부가 쌀짝 타기는 했으나, 숨길 수 없는 미모가 반짝였다. 평소라면 관심 있게 보았을 지어나, 지금의 정우는 일종의 현자 타임 상태였다.

“그, 저기, 그러니까…….”

“─?”

“여, 여자친구! 있으세요…….”

결국 헌팅이었다. 최근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정확히는 저번 체육대회 이후로.

‘10분도 안 지났는데.’

우림이에게 키스 마크를 받고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헌팅을 당했다. 원래 세상의 여자들도 이랬을까. 정우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툭툭.

“……?”

“여기.”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림이가 찍어준 낙인은 그것만으로 여자를 물리는 효과가 있는 부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실제로 키스 마크를  1학년은 덜덜 떨면서 입을 뻐끔거렸다.

“어, 음. 그러니까…… 그거…….”

“대답 필요 없지?”

“……흐윽!”

후배는 아무  없이 뒤돌아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면서 정우는 괜한 짓을 했나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나 같은 거랑 이어지면 불행해지고 끝이지 뭐.’

행복과 불행은 표리일체라, 행복하다는 건 그만큼 불행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우가 신도 아니고, 24시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와 만나서 잠깐은 행복하겠지, 즐겁겠지. 그렇게 행복하다 행복하다, 어느 순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그건 곧 불행이다.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해지고, 불행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진다.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돌아가자.’

정우는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반 아이들은 점심시간 동안 목덜미에 키스 마크를 달고 온 그를 보고 소란을 일구었다.

* * *

‘난가?’

신주희는 다리를 떨면서 정우의 목덜미에 박힌 키스 마크를 자신이 저지른 일인지 생각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정우와 함께한 점심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진짜 나면…… 자수하자.’

그러나 점심시간 내내 정우와 접합했다는 사실만은 기억난다. 교사라는 년이 미쳐가지고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학생이랑 정사를 나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학생 목덜미에 키스 마크를 남겼다?

자수하더라도 정상참작 될 사유가 없는 극악무도한 행위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공무원 하지 말걸…….’

자신한테 이런 변태 성욕이 숨어있다는  알고 있었더라면, 선생이 아니라 동사무소나 행정처 공무원이 됐어야했다. 대체  지금까지 몰랐던 거지? 며칠 전까지 처녀라서?

“하아…….”

“주희쌤.  고민 있으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옆자리 선생이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주희는 입을 열지 못했다. 자기 학생을 따먹은 걸 고민이랍시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너 이 새끼! 미쳤구나 아주!”

그때, 학생부장이 학생 한 명을 질질 끌고 교무실로 들어온다. 주희는 고개를 들어 무슨 일인가 확인했다. 정우가 학생부장에게 끌려오고 있었다.


“저, 정우야?”


자신의 학생이 교무실로 끌려 들어오자, 깜짝 놀란 그녀는 학생부장에게 달려갔다. 학생부장은 벗겨진 머리카락을 빛내며 주희를 확 돌아보았다.


“신주희 선생님. 이 학생, 선생님 반인가요?”


“예? 예, 그런데 정우가 무슨 사고라도……?”


“사고라면 사고지!  꼬라지좀 보쇼!”

턱, 학생부장이 정우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어 재꼈다. 힘없이 덜렁거리는 정우의 목덜미에서 찐한 키스 마크가 눈에 띄었다.

“단정해야  학생이! 이게 뭡니까! 주희 선생님. 알고 계셨어요!?”

“그, 그러니까. 그게…….”

“이게 뭔데요.”

주희가 당황하며 어찌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이게 뭔데 이러시냐고요.”

“너  자식, 누가 말대꾸를─.”


“말대꾸고 뭐고, 이것부터 놔주실래요?”


“아악!”

정우는 간단하게 자신의 멱살을 잡던 학생부장의 손목을 비틀어 떼 내었다. 학생부장은 학생이 선생의 몸에 손을 댄다는, 유교 사상에 입각하면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에 분개했다.

“이놈이 진짜!”


40년 묵은 학생부장의 회초리가 빛을 발했다. 공기를 가르며 내리친 회초리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정우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학생부장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곤 헉, 하고 숨을 내뱉었다.


“……치셨네요?”

“네, 네가 먼저 내 몸에 손을 대니까…….”

“네네. 그러시겠죠. 아야. 조금 찢어진 거 같은데. 쌤. 저 조퇴해도 되죠?”


정우는 얻어맞은 부위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주륵. 피가 살짝 묻어 나왔다. 살짝 찢어진 모양이었다.


“자, 잠시만! 정우야!”


그냥 걸어나가려는 정우를 주희가 붙잡고 양호실로 향했다. 그녀는 정우를 끌고 양호실로 가는 도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목에  자국은 누구 거냐, 왜 가리지 않았냐, 왜 일부러 맞을 짓을 했냐. 물어볼 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말의 무게도 산더미처럼 무거워 목구멍에서 턱 막혀 튀어 나오지 못했다.

“……여기서 대충 치료하고 가. 흉져.”


“엥. 병원 갈 생각 없는데요.”

“뭐? 머리가 찢어졌는데 무슨…….”

“에이, 이 정도야 뭐. 침 바르면 낫는데요 뭘.”


“헛소리하지 말고 병원 가. 아니, 선생님이 데려다줄게.”

양호실에서 반창고를 붙이고, 정우는 주희의 차에 탑승했다. 적막한 분위기. 쾨쾨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단둘만의 공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두 사람만의 장소.


그 장소에서야 기어코, 주희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거, 누가 그랬어?”


“왜요? 선생님이 했을까봐 걱정돼요?”

“응.”

“선생님이 했다고 하면 어쩔 건데요?”


정우는 주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애써 정우의 시선을 무시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출발했다. 그제야 입을 연다.

“……자수해야지.”


“네?”


“자수할 거라고. 내가 내 학생을 따먹었다! 그 증거까지 남겼다! 잡아가라! 뭐, 이런 식으로.”


“그게 선생님이 책임지는 방식이에요?”

“그렇게라도 책임지겠다. 이거지.”

“푸흡.”

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주희는  모습을 보고 남고생은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을 터트린다는 속언을 떠올렸다. 그만큼 뜬금없는 웃음이었다.

“이거, 쌤이 한  아니에요.”


“……그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적어도 감옥 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서.

“근데, 쌤 때문에 생긴 건 맞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제 애인이  보고 질투해서 새겨준 거거든요.”


“애, 애인? 잠깐만. 그, 그거 누가 봤어!?”

주희는 확, 하고 정우를 돌아보았다. 순간 핸들이 흔들려 차체가 이리저리 미끄러진다. 그녀는 급하게 운전대를 잡으며 중심을 잡았다.

“네. 봤죠. 적나라하게.”


“누, 누가?”

“알려주면 재미 없으니까. 비밀.”


병원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곧이어 차가 병원에 멈춰선다. 정우는 고맙다는 듯 인사를 건네고 문을 열었다.

“아, 맞다.”

잊을 뻔했네. 정우는 몸을 기울여 그녀에게 입을 가져갔다.


“선생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선생님도 책임 지세요.”

“……병원비라면 선생님이.”

“그런 책임 말고.”

좀 더 찐한 책임.


정우는 우림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리고 쪽쪽 빨아들였다. 정우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 눈치챈 주희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내뺐지만, 이미 그녀의 목덜미는 벌겋게 멍든 이후였다.

“선생님도 한 번 고생해 보세요.”

“야, 잠만.  일하러 가야…….”

“그럼 내일 봬요. 선생님.”


탁, 정우가 문을 닫고 병원 안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 축축한 감촉이 남아 있는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그녀는 차를 돌려 학교로 돌아갔다.

* *

다음 날. 교장은 교육부장관으로 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허리가 부서지랴 정도로 허리를 숙인 이후에, 학생부장을 경질시켰다.

우림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정우에게 달라붙었다.

“머리 괜찮아?”

“응. 별거 아니야. 벌써 다 아물었어.”


“땜빵 생기는 거 아니야?”


“……아닐걸?”

아무리 정우라고 하더라도 대머리에 대한 공포는 있었다. 땜빵이 생기면 어쩌지 고민하던 정우는 시스템 상점에서 치료제를 구매해 들이부었다.

이걸로 머리가 빌 걱정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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