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NO.2H 수학여행 (138/218)



〈 138화 〉NO.2H 수학여행

우우웅─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아름이가 보낸 문자였다.

[얘들이 네 핸드폰 가지고 놀더라.]

그럴 줄 알았다. 정우는 휴대폰을 닫고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러면 마음대로 갖고 놀지는 못하겠지.

‘아, 은혜한테 연락해야지.’

배터리가 없어 연락을 못  거 같다 문자  뒤, 정우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버스가 출발한다. 수많은 차량이 높여진 휴게소를 뒤로하고, 여행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이제 시작인데.’

여행은 아직 시작도  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우는 이번 여행, 일주일이 생각보다 고된 일주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 * *

쏴아아─

“바다다!”

아이들은 파도치는 항만을 보고서 기뻐하기 시작했다. 어린 동심엔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것만 봐도 즐겁다.

만약 그 바다를 건너 외딴 섬으로 향한다고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즐거울까. 아이들의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정우야정우야정우야!”
“왜불러왜불러왜불러.”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시간만큼 보충하겠다는 듯 엉겨붙는 은혜를 질질 끌고 다니며, 정우는 항만을 구경했다. 배가 출발하려면 2시간 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점심식사를  계획이라고 한다. 주변에 널린 게 식당이니, 반별로 알아서.

‘이럴 거면 조끼리 알아서 먹으라고 하지?’

이해는 간다. 아이들을 서너 명씩 나눠 보내면 무슨 사고가 터졌을 때 대응하기도 힘들고, 통제하기도 힘드니 한꺼번에 움직이겠다는 것.

그러나 공리주의적 사상은 언제나 개인의 입장에서 보기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걸 힘으로, 규칙으로 얽어매는 게 어른이 할 일. 선생님은 아이들을 이끌고 국밥집으로 향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이 국밥집, 아니면 횟집이었기 때문이다.

코리안 패스트 푸드, 국밥은 갑자기 들이닥친 수십 명의 손님을 아무렇지 않게 맞이했다.

주인 아저씨가 자리를 안내하고, 밑반찬을 깔고, 모든 테이블에 밑반찬이 깔렸을 때쯤 국밥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펄펄 끓이던 육수에 고기와 순대를 그대로 부은 국밥에, 아이들은 고개를 파묻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으리라. 학생이 여섯 시간이나 버스에 올라타 꼼짝 못 하고 있었으니.

모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한 시간이나 되는 여유 시간을 낭비하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 저희 바다 구경좀…….”
“저희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도─.”
“쌤썜! 바다에 들어갔다 와도 돼요?”

난장판이었다. 주희는 지금  순간, 자신이 고등학생 선생인지 유치원 선생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

그나마 말이라도 하고 사라지면 다행이지, 말도 없이 사라지는 애들까지 더 하면. 통제가 전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주희는 한숨과 인상을 퍽퍽 써가며, 아이들을 어찌저찌 선착장까지 끌고 오는  성공했다.

“얘들아, 여기서 벗어나지 말고 대기해.”

주희가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던 정우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애들을 찾으러 떠났다. 정확히는 은혜나 우림이, 마리를 찾아서.

우림이는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기에 패스. 은혜는 조그만해서 눈에 띄질 않았다. 마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염색이 금지된  시대에, 유일하게 금발을 치렁치렁 기르고 있는 소녀를 찾으면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편의점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끼익, 의자를 끌고 그녀 옆으로 가 앉자, 마리가 살짝 실눈을 뜬다.

“흐아아암…… 뭐야, 무슨 일이야…….”

“졸리 구나? 더 자.”

“야…… 어깨 내놔.”

“그래그래.”

정우는 자리를 옮겨 마리에게 어깨를 빌려주었다. 정우의 어깨에 기댄 그녀는 몇 번 자세를 바꾸고는, 최적의 자세를 찾았는지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마리가 그의 품에서 잠들고 몇  지나지 않아, 은혜가 찾아왔다. 마리는 그녀가 보기에도 찾기 좋은 표식이었으니까.

“앗, 정우야. 여기 있었네. 찾아 다녔는데.”

“전화를 하지.”

“휴대폰 꺼져 있던데?”

그 말에 정우는 배터리가  된  확인했다. 자신이 버스에 전화기를 놓고 내린 사이, 같은 조 남학생들이 무언가 조작을 했기 때문이다.

‘뭐, 잠긴 휴대폰으로 할 만한 거라곤 그거밖에 없지만.’

분명 한  뚫어보겠다고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눌러보는 짓을 하거나 했겠지. 정우의 비밀번호가  자리였다면 뚫렸겠지만, 다행히 정우의 비밀번호는 여섯 자리였다.

“숙소 가서 충전하지 뭐.”

“정우야, 가서 뭐 할거야?”

“응? 조끼리 다녀야지.”

“에이, 누가 그래. 우리 반 애들도 대충 이름만 올려놓고 다 알아서 논다고 그랬어.”

심지어 사촌의 명의를 빌려 렌트를 한다는 아이도 있다며, 은혜는 아이들의 범죄행각을 적나라하게 밝혀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정우는 이번 여행이 정말 파란만장하게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거 범죄 아니야?”

“범죄 맞을걸?”

“그럼 신고해야지.”

“근데 아직 저지르진 않았잖아.”

“……그건 또 그러네.”


이 나라는 아쉽게도 범행예고에 대한 처벌이 없다. 대통령을 죽이겠다. 수준의 강범죄가 아니라면, 명의도용으로 인한 렌트를 막을 방법은 없다.

‘하긴, 그건 뭐 업체가 알아서 걸러야지.’

그것까지 걱정해줄 여유는 없다고, 정우는 생각했다.

“너네 방, 누구랑 누구야?”

“나랑, 마리랑, 그리고 같은  애  명.”

“부럽네.”

“왜?”

“나는 모르는 애들이랑 같은 조가 되서…….”

“아…… 괘, 괜찮아! 뭣하면 우리 방에 와서 잘래? 우린 상관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애랑 같은 방에서 자기엔 좀.”

“그렇네. 응. 미안. 해줄 수 있는  없네.”

은혜는 무력한 자신의 능력에 침울해하며 고개를 떨궜다. 정우는 괜찮다는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무슨 이야기 중이야?”


그때, 우림이가 나타났다. 친구들과 이야기가 끝난 건지, 그녀는 지겹다는 듯 어깨를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우림이 어서오고.”


“그래서, 뭐가 문젠데? 누가 또 우리 정우 괴롭혔어?”

“으음…… 아직?”


“아직은 또 뭐야? 진짜 누가 괴롭혀?”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미약하게 그런 티가 나기는 하지만, 아직까진 미수였다. 슬슬 간을 보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알아서 할 게.”


“너무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 정우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나, 나도. 뭐든지 해줄  있어!”

“네가 뭘   있다고.”

우림이는 대놓고 은혜에게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사실 은혜가 할  있는 건 없었다. 그녀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정우는  말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아이들이 모두 모르는 아이들이라 힘들다고.


그러자 우림이는 고등학생은 물론이요, 성인이었던 정우의 머리로도 떠올리지 못했던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럼 그냥 방을 하나 더 빌려.”

“응?”

“마침 우리 숙소 근처에 호텔이 있던데. 거기로 빌릴까?”

“어…… 그런 방법이 있었네.”

그건 바로, 금수저만이 할 수 있는 돈지랄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은혜는 상상은 해도, 실행은 할 수 없는 돈지랄.

* * *

우우우웅─

배가 기적을 울린다. 수백 명이 넘는 승객이 배 위로 올라타고, 각자 자리를 잡는다. 배에 올라탄 이상 사고를 칠래야 칠수 없고, 어딘가로 새려 해도 샐 수 없어서. 선생님들은 드디어  같은 휴식을 얻었다.


아이들은 조그마한 배 안에서 생겨난 자유를 누리느라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하물며  자유는 앞으로 점점 더 커져 나가 거대한 자유를 이룰 것이니.


“하아암…….”


객실 바닥에 누워, 정우는 자신의 허벅지를 밴  잠든 마리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가려운지 자꾸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긴 했으나, 만지는 걸 거부하진 않았다.


‘머리가 다 상했네.’

매일 같이 고된 노동을 하고, 땀을 흘리고, 기름이 튀기고. 요리사가 되고 난 이후 깨끗했던 머리카락과 피부가 많이 상했다.


나중에 영양제라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한 정우는 그대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툭 하고 누군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은혜야?”

새근새근. 은혜도 아무 말 없이 정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자고있는 척이라는 게 훤히 보였으나,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시선이 따갑네.’

은혜와 마리를 동시에 몸에 얹고 있으니, 사방에서 날아오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질투나 부러움의 시선은 아니었다. 멸시의 시선이었지.


‘창녀나 걸레, 그런 걸 보는 시선이구만.’


정우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긴 했으나, 그게 전혀 타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슬금슬금, 도트 데미지로 정우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사람의 시선엔 그런 힘이 있었다. 바꾸지 않으면 언젠가  화를 입게 되겠지.


‘어떻게 하면 바꿀  있을까.’


간단했다. 정우가 여러 여자에게 다리를 벌리는 걸레, 남창같은 놈이라는 이미지를 벗으면 됐다.


그들에게 손을  게 정우가 아니라, 역으로 정우에게 그들이 손을 댔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면 된다.

‘무얼 해볼까.’

아무래도 이번 수학여행, 많은 게 바뀔 듯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