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NO.2H 수학여행
“예, 예예. 교장선생님. 네. 찾았습니다. 네, 아, 그게.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호텔에서 잠을…… 네. 네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정우와 우림이는 학생주임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물론 반성하는 척 서로 눈을 마주치며 꿀 떨어지는 눈빛을 나누었지만.
“하아…… 너희들, 다음부터는 어디 갈 때 꼭 선생님한테 이야기하고 가라. 다른 얘들한테도 사과하고.”
사라진 두 사람을 찾기 위해, 아침부터 2학년 전체가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호텔에 있을 거라 생각 한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그들이 깨어나 전화를 받을 때까지 2시간 가까이 시간을 소모했다. 예정되었던 오전 일정은 모조리 어긋났다.
그로 인해 정우와 우림이에게 증오를 보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일과를 망쳤으니까. 일정을 망쳤으니까. 계획에 없는 일로 그들을 귀찮게 만들었으니까.
원래라면 학교 전체에서 왕따를 당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으나, 우림이는 간단하게 이를 해결했다.
“얘들아. 내가 미안해. 으음, 사과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우림이는 2학년 전부, 선생님들의 것까지 포함하여. 340명의 호텔 중식을 전부 계산했다.
흔히 3성급 호텔이라고 부르는 호텔에서, 한 끼에 십수만 원은 할 거 같은 음식들. 그걸 혼자서 전부.
아이들은 만족했다. 2시간 움직이고 십만 원짜리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교환이었다.
“정우야아아…… 왜 전화를 안 받아아…….”
“미안, 자고 있었어.”
“그래도, 그래도오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은혜가 다가와 정우에게 칭얼대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짜증 날 수도 있었으나, 은혜의 조그마한 몸체에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뱉으니 그저 귀여웠다.
정우는 은혜가 칭얼대는 걸 막기 위해, 음식을 떠다 그녀의 입안에 집어넣었다. 계속해서 웅얼거리던 그녀도, 정우가 음식을 먹여줄 때만큼은 조용했다.
“……이번만 봐줄게.”
“은혜야. 네가 뭔데 정우를 봐주고 말고 하는 거야?”
“시끄러워. 내 맘이다.”
“으음, 그럼 네 점심만 안 사주는 것도 내 맘인데.”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평소 우림이와 티격태격 싸우는 은혜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항상 가난한 고등학생의 용돈 지갑으로는, 이런 곳에서 식사는 커녕 커피 한 잔 사먹기도 망설여진다.
“그래그래, 알아서 기라고. 알아서.”
우림이는 은혜의 그런 태도에 만족하며 음식을 즐겼다. 호텔이라고 다 음식이 맛있고, 유명한 쉐프가 만드는 건 아니었으나.
제주도에서 이름 좀 날리는 호텔이라 그런지, 값어치는 하는 맛이었다.
“으음. 별로 맛없는데.”
“그러게.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주문이 많아서 대충 만들었나?”
그러나 마리와 정우의 입맛으로는 별로, 그다지. 십만 원이 넘는 값어치를 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그건 두 사람이 세계제일이라고 불려도 될 수준의 미각과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얘들아, 그냥 사주면 맛있게 먹으면 안 돼?”
물주가 듣고 있는 와중에 그런 말을 하니, 우림이는 마음이 조금 상했다.
“아, 미안.”
“우림아. 이 맛 잘 기억해둬. 다음에 더 맛있게 해줄테니까.”
“……뭐, 정우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우림이는 정우에게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고, 식사를 마쳤다. 아이들이 모두 점심식사를 끝내면 이제부턴 오후. 아이들의 시간.
자유 시간이었다.
“어디 가니?”
“네? 이제 자유시간이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자유시간이긴 한데.”
정우는 아이들과 조를 꾸려 밖으로 나가려다 담임인 주희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엔 별문제 없어 보였지만.
“얘들은 다 다른 반이잖아. 우리 반 애들이랑 조를 짜야지. 정우 너, 같은 조 애들 어딨어?”
“아…….”
이틀 동안 이 세 명과 같이 다니는 바람에 깜빡하고 있었다. 원래 조는 같은 반 아이들 3명 이상이 짜는 거였다.
정우는 주희에게 달라붙으며 아양을 떨었다.
“에이,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 네?”
“안 돼. 안 봐줘. 돌아가.”
“선생님. ……정말 안 돼요?”
주변 시선을 확인하고, 마리와 우림, 은혜가 벽을 만든다. 시선이 차단된 걸 확인한 정우는 주희를 주변 벽으로 밀어붙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만일 안 된다고 하시면…… 선생님이 저한테 했던 몹쓸 짓을 말해버릴지도 모르는데요.”
“아니, 내가 뭘…….”
“기억 안 나세요?”
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주희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
“그놈의 규칙. 어차피 우림이가 전화 한 통 하면 바뀔텐데요?”
“하, 하지만. 룰이라는 게…….”
우림이가 뒤에서 휴대폰을 들어올리며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전화를 하겠다는 뜻.
그리고 그녀가 전화를 한다면, 교육감이든 뭐든 움직일 거라는 사실을. 주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라. 전화 꼬박꼬박 받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우는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댔다.
“……이건 나중에 보충해드릴게요.”
“윽─!”
주희의 성욕을 일깨워준 다음. 정우는 아이들과 자유시간을 보냈다.
* * *
“후우, 후우.”
“하아, 하아.”
정우와 아이들이 단체로 가쁜 호흡을 내뱉는다. 전신이 덜덜 떨린다. 특히나 다리가.
“저, 정우야. 더 가야 해……?”
“거의 다 왔어.”
정우는 가슴을 피며 저 멀리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확인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한라산 정상도 슬슬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등산, 같은 게 뭐가, 좋다고…….”
운동부족인 은혜는 헉헉거리며 산을 올랐다. 그나마 덩치가 작아서 힘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림이처럼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출렁거리는 거유를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림이는 가슴을 잡아주는 스포츠 브라를 착용했음에도, 커다란 가슴을 다 잡지는 못했다.
현대 과학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구제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은혜야, 내가 니 머리통 두 개는 더 달고 다니는 거 같은데. 조용히 좀 하지.”
“……시끄러워. 돼지야.”
“푸흡. 꿀꿀. 돼지라 미안하네.”
그녀는 자꾸 출렁거려 저려오는 가슴을 주무르며, 은혜의 머리위에 툭 울려놓았다. 물이 가득 든 가죽공으로 머리를 얻어맞자, 은혜의 목이 툭 꺾였다.
“아이 씨!”
머리를 털어내며 가슴을 떨쳐내고, 은혜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정우 곁으로 달려갔다.
“정우야! 빨리 올라가자!”
“힘들다며?”
“괜찮아졌으니까 빨리!”
은혜는 그 말을 남기고 얼마 되지 않는 체력으로 정상까지 질주하기 시작했다. 성수기도 아닌 평일, 그것도 점심 즈음에 산에 오르는 미친놈은 거의 없었기에 정상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데도 있다는 게 신기하네.’
이제 지구 안에서, 남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의 시선이 닿아 있다.
정우는 사람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유를 알 거 같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어딜가도 누군가가 있는데.
진정으로 고독한 시간이 주어지질 않는데, 어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겠는가.
“은혜야. 저것 좀 봐.”
“하아…… 뭐가.”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방법을 찾는 생물이다. 홀로 느낄 수 없는 개방감을 다른 걸 통해 깨닫는다.
등산은, 자연의 넓음과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시원 하지 않냐?”
“……바람이 시원하긴 하네.”
“그런 거 말고, 마음속이 뻥 뚫리지 않냐고.”
“……모르겠는데. 힘들어. 두 번 다시 오기 싫다.”
“으음, 우리 은혜가 아직 산바람 맛을 모르네.”
마침 은혜는 통이 넓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름이니까, 산에 올라갈 거니까 시원하게 입고 오라고 알려두었기 때문이다.
은혜를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땀에 푹 젖은 그녀의 티셔츠가 가슴팍에 달라붙는다. 은혜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살짝 등을 뗀다.
“덥지?”
“당연하지……. 아아, 시원하다.”
“그럼, 벗자.”
“어?”
은혜가 반응하기 전에, 정우는 그녀의 상의를 들쳐 올렸다. 그녀가 입고 있던 귀여운 브래지어가 드러나고, 은혜는 산 정상에서 속옷만 입은 변태녀가 되었다.
“뭐, 뭐 해!”
“쉿. 소리 지르면 들킨다?”
“아, 아니…….”
은혜는 창피함에 옷을 어떻게든 내려보려 했으나, 정우가 등 뒤에 딱 달라붙어 옷을 내리는 게 불가능했다.
여자가 맨살을 드러내는 부담감이 원래 세상보다 적다고는 해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수영장이나 목욕탕처럼, 벗는 게 당연한 공간이 아니라. 야외. 남들이 볼지도 모르는 산 정상에서 옷을 벗어 던지는 건 상당히 배덕감 넘치는 일이다.
하물며, 그녀는 몸매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슴이 크지도 않고, 복근이 탄탄하지도 않은 몸매를 강제로 내보이게 되니,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그만 해…….”
“그만할까? 정말? 시원하지 않아?”
“추워. 응. 땀 때문에 추우니까…….”
“추워? 열을 좀 내야겠네.”
“히얏!?”
정우가 지퍼를 내리고 틈 사이로 물건을 꺼냈다. 옷을 올리고 있던 은혜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양물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돌아본다. 그리곤 인상을 찌푸린 뒤 다시 고개를 돌린다. 커플이 꼴사납게 애정행각을 벌이는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바보, 다 들키겠다.”
“진짜 발정났냐? 밖에서 무슨…….”
물론 두 사람이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은 데에는 마리와 우림이의 덕이 컸다.
두 여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그렇고 그런 짓을 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흐아, 핫, 잠. 저, 정우야…….”
뒤에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끄집어낸다.
“여기서 할, 생각이야?”
“응.”
한 번 불이 붙은 그를, 그녀들은 말리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