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NO.2H 수학여행
“……그러니까, 나를 재워두고 즐길 거 다 즐겼다 이거지?”
목욕탕에서의 일과도 즐기고, 3P를 만족스럽게 마친 정우는 씻고 나와 그대로 잠에 들었다.
당연히 해가 떨어지자마자 곯아떨어진 은혜보다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노릇.
정우가 일어났을 땐, 정리되지 않은 방안의 풍경과 냄새를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은혜가 모두 파악하고 난 이후였다.
“또, 또! 나만 왕따시켜! 왜 그래 대체!?”
“은혜야, 너 왕따 맞잖아.”
“아, 아니거든. 멍청하게 가슴만 큰 년아!”
우림이의 팩트폭력에 은혜는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싸움이라도 일어날 거 같아, 정우는 은혜를 끌어안으며 쓰다듬었다.
“그래그래. 은혜한테는 내가 있는 걸. 왕따는 누가 왕따야. 그치?”
“……맞아맞아. 정우만 있으면 돼.”
은혜는 정우의 품 안에 파고들며 우림이를 노려보았다. 아침부터 따듯한 품속에 자리 잡자,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음에도 졸음이 몰려왔다.
몽롱한 정신에, 화도 곧바로 삭아 들었다. 은혜가 진정한 걸 확인한 정우는 오늘 일정을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거야?”
“……무슨 소리야, 정우야.”
“응?”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잖아.”
“아─.”
그랬다. 길고 길었던 수학여행. 시간으로 치면 3주쯤 걸린 거 같은 수학여행이 드디어 끝이 난다.
“……돌아가자.”
“응.”
정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 * *
금요일.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내륙으로 들어온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온다.
일주일 만에 밟은 내륙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와, 서울이 이렇게 공기가 나빴나.’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사방에 바다요, 자연 친화적인 제주와는 달리 서울엔 미세먼지가 잔뜩 낀 하늘이 보였다.
숨을 쉬면 케케묵은 먼지가 폐 속에 가득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 콜록거리며 먼지를 흡입해주고 나서야 적응한 폐가 공기를 받아들였다.
“정우야우정야!”
학교에 내린 은혜가 정우에게 달라붙어 아양 떨기 시작했다. 수학여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건 그녀 혼자뿐이랴.
이렇게라도 정우의 사랑을 보충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듯 싶었다.
“왜왜왜왜?”
“이제 어디 갈 거야? 응? 내일 주말인데, 아예 밤 새면서 놀지 않을래?”
“으음, 하루종일 놀고와서 또 놀자고?”
그리 끌리는 제안은 아니었다. 여행이라는 건 자고로 피로를 풀러 가는 거지만, 역설적으로 여행 도중에도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피로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풀리게 되는바. 그렇기에 사람들은 집까지 가는 길이 여행의 끝이라 말하곤 했다.
“별로 안 땡기는데…….”
“왜에에, 놀자. 응? 내가 팔다리도 주물러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줄 테니까. 놀러 가자.”
“야, 하정우.”
정우가 은혜에게 붙잡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무슨 일로 마리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오늘 우리 가게에 와라.”
“어? 왜?”
“스승님이 한 번 보잰다. 너무 얼굴 안 비추는 거 아니냐고.”
“으음…… 그럼 가게에 가야겠네.”
“……같이 안 놀아줄거야?”
마치 버림받았다는 듯, 은혜가 눈물을 글썽이며 정우를 올려다본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도저히 그녀를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너도 같이 가자.”
“정말? 그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 먹고, 집에서 놀자!”
“아, 근데 저녁은 네가 사.”
“……어, 음. 잠시만. 지갑에 돈이.”
“농담이야.”
은혜가 덜덜거리는 손으로 지갑을 꺼내 남은 용돈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는, 정우는 설마 내가 너한테 얻어먹겠냐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은혜도 같이 가게로 가게 되었으니. 정우는 우림이와 아름이에게도 말을 걸었다.
“미안, 오늘은 안 될거 같은데.”
“나도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그러나 우림이와 아름이 두 사람은 선약이 있다고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은혜는 이게 웬 떡이냐고 생각했다.
우림이도 아름이도 없이, 정우와 단둘이 레스토랑 데이트. 물론 마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레스토랑 직원으로서 일을 해야 하니 그리 오래 있지는 못하리라.
결국, 정우를 독점하는 건 은혜 한 명이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였다.
“오랜만이네. 꼬마야. 이젠 얼굴도 잊어먹겠다.”
마리를 따라 레스토랑으로 향하자, 레스토랑의 주인이자 총 주방장인 배유나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정우를 맞이했다.
그 옆에 서 있는 은혜를 보고서, 너도 반갑다는 듯 눈웃음 지은 그녀는 곧장 정우를 방으로 안내했다.
“세월이라는 게, 정말 빨라. 너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잖아?”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곧장 요리를 시작했다. 정우가 잘 하는, 그리고 그녀의 주특기인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아니었다.
새로운 요리. 현직 정점에 서 있는 그녀가 일 년 내내 머리를 쥐어 싸매며 연구한 끝에 얻어낸 레시피.
“넌 학생이니까, 공부만 하면 되겠지만…… 난 아니거든.”
학생에게 요리로 졌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현업으로서, 전업 프로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성장했다. 머리가 굳어 새로운 창작이라곤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나이는 아니었기에 새로운 레시피를 창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먹어 봐.”
정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바라보았다. 고기는 고기다. 어디까지나, 고기다.
고기에 캐비어를 갈아 넣든, 트러플을 들이 붓든. 맛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미 그녀의 주특기는 발전할 곳 없이 완성되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정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고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만렙 요리 스킬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정우의 뇌를 때렸다.
“와, 엄청 맛있네요?”
별다른 조예가 없는 은혜는 그저 넘쳐 흐르는 맛만을 느낄 뿐이지만, 기술과 지식을 가진 정우는 달랐다.
그는 초월을 느꼈다. 이 음식에서 세속을 초월한 맛을 느꼈다.
‘아아, 그렇구나.’
있을 수 없는 맛이다. 과연 세상에서 이것보다 맛있는 음식이 존재하기는 할까, 정우도 이런 음식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정도로, 완벽 그 자체.
시스템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마스터피스.
‘내가 변화시키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건, 모두 정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세상에, 정우라는 변수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때?”
“맛있네요. 이제…… 세계 제일의 요리사는 누나겠는걸요.”
“원래 그랬지만…… 이젠 확고부동한 거지.”
이 변화는 정우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 세상이 단순히 게임 설정으로 이루어진 고정된 세상이 아니라, 정우의 판단, 행동으로 바뀌는 현실이라는 걸 그녀가 직접 증명한 거였으니까.
* * *
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정우는 계속해서 생각에 빠졌다.
‘히로인들이 변하고 있다.’
게임 속에서 은혜는, 정우 외의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애였다.
우림이는 광적으로 정우를 사랑하는, 병든 맹목적 사랑의 주체자였고.
마리는 망가진 인생을 보충받으려 정우에게 모든 걸 의존하는 의존병 환자.
이런 식으로, 각 히로인들은 한 군데씩 문제가 있는 히로인이었다.
그리고 그게, 하렘 엔딩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다.
어딘가 한 군데 병들고 맛이 간 히로인들은,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모나고 각진 도형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변하기 시작한다.’
히로인들은 이제 쇳덩어리 부품이 아니다. 정우의 손길이 닿아 말랑말랑한 액체 괴물로 변했다.
서로를 밀어내고, 부딪치고,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 톱니바퀴에서, 서로 흡수되고 변형되는 슬라임으로.
‘가능할 거 같아.’
일전에 반쯤 포기했던, 하렘 루트로 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흐으윽─! 저, 정우야! 아흑, 오, 오늘은 왜 이리 격렬하게─ 흐흐흥!”
은혜가 허리를 격렬하게 비틀며 고개를 쳐들었다. 간다. 간다. 가버린다. 보지가 조여오고, 질은 자지를 강하게 물기 시작한다.
“은혜야, 나 부탁이 있는데.”
“뭐, 뭔데- 으흣, 마, 말만 해. 내가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정말이지?”
“응!”
정우는 은혜에게 약조도 받았겠다. 사정도 했겠다. 물건을 빼내면서 가볍게 미소지었다.
“나는 은혜가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
“……어? 아니, 정우야. 나 친구 있어…….”
“우리들 말고, 아예 다른 애들 중에?”
그 말에 은혜가 입을 꾹 다문다. 그도 그럴 것이, 은혜에게 그런 친구는 없기 때문이다.
‘조금씩 바꾸는거야, 조금씩.’
하렘엔딩을 이루기 위한 달리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