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9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149/218)



〈 149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은혜의 문제점은, 내성적이고 소심하다는 거다. 사실 은혜 정도면 다른 히로인들에 비해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사회생활 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니까.’

정확히는 용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누군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데도 무시할 정도의 문제가 있는  아니었으니.

그저 남들이 보기에 은혜는 먼저 다가가 말을  만큼 매력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뿐이다.

운 나쁘게 특출난 구석 없이 태어났기에 그런 성격이 되었을 뿐. 만일 은혜에게 우림이 같은 외모나, 마리 같은 재능이 있었다면 달라졌겠지.

“친구…… 나, 나도 없지는 않아.”

“하지만 별로  친하지?”

“……아니, 그거야.”

“우리가 없어도   있는 친구. 남들보다 너를 먼저 생각해줄 친구를 만들어봐.”

“……왜,  그러는 거야? 혹시 나 버리려고? 응? 그런 거야?”

“뭐?”

정우의 말에 은혜가 호들갑을 떨며 기겁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마치 은혜와 연을 떼려는  같지 않은가.

그냥 갖다 버리면 불쌍하니까, 그전에 미리 친구 하나 붙여주고서.

“내가, 내가 잘 할게. 버리지 마. 응? 나, 나 정우  없으면  돼. ……부, 부족하지만 돈이든 뭐든 준비할 테니까. 응?”

“……은혜야.”

은혜에게 있어 정우는 세상의 전부다. 사실,  경위가 다를 뿐이지 모든 히로인들이 그러하다.

주인공이 있기에 히로인.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그들이라도, 존재 근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널 왜 버리냐.”

정우는 은혜를 달래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그리 좋지 않은 버릇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레 겁먹고 울먹이기 시작한 은혜는, 더할 나위 없이 가엽고 귀여우니까.

 매력을 쉽게 알기 어려울 뿐, 한 번 알게 되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단지, 지금 이대로라면 안 돼.”

“뭐가 문젠데…? 나는 정우만 있으면 돼. 좋은 대학에 못 가도 돼… 좋은 직장에 취직 못 해도 돼… 돈은 어떻게든 벌어올 테니까… 정우 널 꼭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정우는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두 눈이 마주했다. 울먹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정우는 입을 열었다.

“내가 없어지면, 갑자기 식물인간이 되거나 강도에 당해서 죽는다든가, 그런 식으로 사라지게 됐을 때.”

당연히, 그렇게 되면 히로인들은 미쳐 날뛰게 되리라.

“그렇게 돼서도 은혜 네가 홀로 서서 살아갈  있게. 그렇게 변해야 해.”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 전에 미리 대비하자는 거야.”

그건 히로인들이 모두 주인공이자 플레이어, 정우에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우는 그를 이용해왔다. 어딘가 망가져 있는 부품이 품기 편하니까.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그건 정우를 위한 행동이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바랐으면서 정작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럼,  버리는  아니지?”

“내가 널 왜 버려?”

“……믿고 있을 게.”

은혜는 정우에게서 떨어졌다. 친구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정우가 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 * *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겠는데, 너는 진짜 모르겠다…….”

“응? 뭐라고?”

정우는 우림이의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우림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팔다리, 장기는 들어 있을까 의심 되는 허리, 그런 주제에 머리보다 커다란  가슴.

이렇듯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지니고 있는걸로도 모자라 타고는 두뇌와 물고 태어난 금수저까지.

만일 현대 사회가 귀족 사회였더라면, 그녀는 충분히 귀족이라 불릴만한 존재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약간의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과 그 부모, 정우가 아닌 다른 모두를 무의식적으로 한 등급 아래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고쳐야 해?’

우림이보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분명 있다. 당장 아름이만 하더라도 그녀보다 아름다우니까.

우림이보다 돈이 많은 사람도 많다. 우림이가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금수저를 타고난 건 맞으나, 세계 100대 부자는커녕 국내 100대 부자도 안  테니까.

우림이보다 똑똑한 사람도 어딘가에 있다. 우림이가 수재이기는 하나, 천재는 아니니까.

그러나 우림이보다 아름다우면서, 집안이 좋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엄친딸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래도 우림이 자체가 야겜 미연시의 히로인으로서, 이상적인 엄친딸을 구현한 남자들의 욕망 덩어리 이거늘.

이 이상의 존재가 과연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얘는 불가능할 거 같은데.’

우림이를 바꾸는 건 터무니없이 불가능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방법이 떠오르기라도 했지, 그녀는 당최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나한테 뭐 궁금한  있어?”

“……우림아, 만일 네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뭐 언제 다른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한 적 있어?”

“넌 진짜구나.”

혹여나 본인이라면 그 이질성을 알고 있을까 싶어, 정우는 혹시나 싶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았으나, 그녀는 본인이 다른 사람들을 내리깔아 본다는 자각 자체가 없었다.

아니면 정우에게는 내숭을 부리는 걸 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건 그녀가 내심을 숨기고 있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림아. 만일 내가 다른 애랑 결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

“누구랑?”

“응?”

“결혼한다면, 누구랑 할 건데?”

“으음, 글쎄…… 은혜랑 한다고 하면?”

“아하, 그런 게 취향이야?”

우림이는 자연스럽게 은혜를 깎아내렸다. 이래놓고 자신이 언제 남들을 내리깔아 봤냐 느니,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느니.

그리 말할  있는 정신력이 부러웠다.

“만일 정우 네가 내가 아니라 은혜랑 결혼한다고 하면…… 축하해줘야겠지.”

“……정말?”

“그럼, 내가  너를 저주하기라도 할 줄 알았어?”

“아니, 의외라서.”

“아하하, 내가 무슨 정신병자도 아니고. 버림받았다고 질질 짜면서 매달릴 거라고 생각한 거야?”

물론,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게 가정이라고 할 지어도.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어라, 이거…… 사실  착각이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게 자신의 착각이고, 우림이는 이미 다른 아이들을 깔아보지 않는 성격으로 변화한 게 아닐까 하고.

물론 방금 은혜를 깔아 뭉개는 발언을 하기는 했으나, 친한 사이라면 그 정도 발언은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림이는 이대로 둬도 되겠지?’

* * *

‘은혜랑 결혼을 하겠다라…… 나야 좋지.’

쏴아아아아─

우림이는 정우가 썼던 컵을 씻으며, 은혜를 떠올렸다. 작고, 여리고, 멍청하고, 둔하고, 여자다운 구석이라곤 하나 없으면서 정우에게 사랑받을 노력조차 안 하는 쓰레기가.

‘망가트리면 되니까.’

무력으로, 지력으로, 금력으로, 권력으로.

그녀에겐 멍청한 소녀 한 명을 망가뜨릴 방법이 수두룩하게 존재했다. 굳이 방법을 골라야  정도로.

‘다행이네.’

만일 다른 히로인들을 골랐다면, 그녀도 조금은 망설였을 것이다. 은헤니까. 만만하고, 소꿉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정우의 사랑을 받는 거머리였으니까.

그러니까 우림이는 거리낌 없이 은혜를 쳐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까지 다른 여자 생각이 나나? 내가 얼마나 많은 걸 해줬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우림이는 정우가 자신을 시험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건, 평가하겠다는 뜻이요. 평가하겠다는 건 그녀의 사랑을 의심하겠다는 뜻이니까.

그녀가 대체 무얼 해주었나. 호텔 방도 잡아주었고, 여행 가이드까지 수배했고, 수천만 원 돈을 쾌척했고, 똥꼬까지 빨아주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라서.’

자신이 뭐가 부족한 걸까.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연애라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너무 밀기만 하나?’

우림이는 연애잡지에서 본 연애 꿀팁을 떠올렸다. 연애란 밀고 당기기. 밀기만 하다간 상대방에게 휘둘리기 마련.

진정한 연애 고수란, 밀고 당기기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웃기는 소리. 이거  사람 모솔아다야.’

그러나 우림이는 곧바로 책을 집어 던졌다. 밀고 당기라고? 지금 정우한테 꼬리 치는 계집애가 얼마나 많은데.

그가 정우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순간, 잘 됐다며 정우를 채갈 여자가 몇인가.

그럴 일은 없겠으나,  일로 정우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우림이는 그 길로 이 잡지를 쓴 작가와 편집자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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