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정우는 뭐든지 잘했다. 정말 뭐든지. 신예는 정우가 진짜 사람은 맞는지,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외계인은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다.
그러나 정우는 의심할 데 없는 인간이었고, 미쳐 정우의 알몸을 보거나 배를 갈라볼 수 없던 신예는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선배, 진짜 사람 맞아요?”
“그럼.”
“아니 근데… 어떻게 못 하는 게 없어요?”
“나도 못하는 거 많은데?”
“뭐가 있는데요?”
“어…… 일단 사람은 못 죽인다는 거?”
“그게 뭐예요.”
신예는 정우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는 농담조로 말한 거 같았으나, 신예가 듣기엔 농담이 아니었다.
정우라면 법률로 제한되는 일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잘할 거 같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선배, 공부도 잘했었죠.”
“말해준 적 있었나?”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알죠. 맨날 교감한테 불렸으면서.”
“아하하.”
정우를 보는 신예의 눈이, 점점 사람이 아닌 괴물을 보는 눈으로 변해간다. 사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현실에서 날아온, 스킬과 시스템이라는 치트를 지닌 외계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저렇게 살면 삶이 얼마나 재밌을까.’
신예는 정우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도 저렇게 알아서 남자고 꼬이고, 공부도 운동도, 하물며 가사일까지 잘하는 초인이었더라면 삶이 얼마나 재밌을까 하고.
“선배.”
“응.”
“선배는 꿈이 뭐에요?”
“꿈?”
“네. 꿈.”
정우는 그녀의 질문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꿈이란 자고로 미래가 있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정우에겐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하렘 엔딩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에게 꿈이란 이름 그대로 허무맹랑한 개념이었다.
“글쎄…… 딱히 없는데.”
“꿈이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다 잘하는 거에요?”
“꿈이 없으니까, 나중에 무슨 꿈을 가지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는 거지.”
“와…….”
범인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달성하기도 어려워해, 평생 노력하더라도 꿈을 이루기 어렵기 마련인데.
정우는 무슨 꿈을 가질지 모르니 뭐든 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거기엔 재능이 뒷받침해주었으리라. 꿈이라는 건 결국 재능 있는 분야에서 꽃피우기 마련이니까.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하네.’
신예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냥 운 좋게 재능을 타고난 엄친아에서, 노력하는 엄친아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진 능력이 날 때부터 타고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뿐이다.
“너는 꿈이 뭔데?”
정우가 신예에게 물었다. 사실 묻지 않아도, 정우는 그녀의 꿈을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니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
질문을 들은 신예는 정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곧장 자랑하듯 내뱉는다.
“저야 뭐, 축구 선수죠.”
“잘 해?”
“잘 하냐고요? 선배, 저 모르세요?”
그녀는 어떻게 자기를 모를 수 있냐며 되물었다. 그렇게 말해봐야, 정우가 아는 건 그녀가 축구에 재능이 있고, 엔딩 때 축구 선수가 되는 꿈을 이뤘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알지. 임신예잖아. 축구부고.”
“아니, 그거 말고요.”
신예는 설마 정말 몰랐냐는 듯,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본다. 그리고 본인의 화려한 이력을 설파한다.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 세 번, 그 외에 전국 초, 중학교 축구대회 석권. 이게 저라고요!”
그리고 그 실력과 재능은 고등학교로 올라와서도 바래지 않아, 1학년인 주제에 주력 선수로 뽑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한다.
“그럼 지금 훈련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저, 저는 천재니까. 뭐, 하루 정도야…….”
“나랑 놀겠다고 훈련을 빠졌구나. 혼나는 거 아니야?”
“……뭐, 선배들이 조금 시끄럽게 굴기는 하겠지만. 어쩌겠어요. 지들이 재능 없이 태어난 게 죄지.”
“재능 없는 사람을 깔보는 건 그리 좋지 못한데.”
“왜요? 선배도 재능충이잖아요.”
“우리가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니까, 더더욱 재능 없이 태어난 사람들을 깔보면 안 되지.”
정우는 이 세계에 오기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능은 단 하나도 갖지 못하고 그저 남들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나날들.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가는 인생.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게 아닌 그저 살아 있기에 살아가던 날들이.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 자신이 꿈꾸던 재능이라는 걸 갖게 되었다. 부족함 없는 건 물론이요, 부족하다면 여기서 더 많은 재능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우는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 범인이었기에, 재능을 꿈꾸던 일반인이었기에 기껏 손에 넣은 재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야 했다.
“그 재능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떠받들어 주는 거야. 막말로, 나 같은 사람만 넘쳐났더라면, 네가 축구를 하겠다는 꿈을 가졌을까?”
“에이, 선배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니까, 너는 그저 재능에 매달린 채 노력을 깔보고 있다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신예가 입을 꾹 다문다. 그녀는 천재기는 하지만, 60억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에 천재는 발에 채일만큼 많다.
천재 중에서도 가리고 가린 옥석만이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프로 중에서도 또다시 걸러진 소수만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까, 그녀가 재능만으로 기세등등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도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다른 재능들에게 집어 삼켜질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들처럼 피 토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맞아요.”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장소는, 어느새 어른과 아이의, 재능을 바라던 자와 재능 있는 자의 상담소로 변모했다.
“그냥 우연히 공을 차는 게 재밌었고, 운 좋게 축구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을 뿐이죠.”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비밀을 가볍게 내뱉는다. 어째서일까, 정우가 고작 하루 동안 보여준 초인적인 행보 때문일까.
그에게 라면 비밀을 말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 같은, 오히려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듯한 느낌이 들었다.
“응. 그래서?”
“선배 말대로, 선배 같은 사람이 넘쳐났다면…… 그래서 제 재능이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더라면. 저는 축구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부족한 머리를 부여잡고 공부하고, 이름 모를 대학에 가서, 이름 모를 회사에서 평생을 부품처럼 살았겠죠.”
“그게 나쁜 건가?”
“나쁘다곤 안 했어요. 부족할 뿐이죠. 원하는 걸 손에 넣지 못하고, 원하는 걸 구하지 못하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승리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오며, 모든 걸 쟁취하는 데 성공한 그녀가 보기엔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삶.
“……그러네요. 저는 한심한 인간이에요. 이 재능이 없었으면, 제가 깔보던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았겠죠.”
그리고 그녀는 인정한다. 자신이 재능 없는 이들을 깔보았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얕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더더욱, 재능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이잖아요? 현실이 아니에요. 저는 재능이 넘치는 스타 플레이어가 될 거고, 선배는 그런 제 옆에서 제 내조나 하시면 돼요.”
욕망을 드러낸다. 꼭꼭 숨기고 있던 밑바닥이 드러난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싫어하시진 않겠죠. 일단 돈 많이 버는 예쁜 부인이 생긴다는데.”
“돈 정도야, 나도 얼마든지 벌 수 있어.”
“제가 세계 최고가 된다면야, 수백억은 벌 거에요.”
“수천억이 있어도 부족한걸.”
돈이라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다. 정우는 수백억쯤은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과 자본금이 있었으며, 그 정도만 되어도 평생 먹고 사는 건 충분하다.
일정 금액을 넘는 자산을 가진 사람은, 돈을 추구하는 게 아닌 명예를, 그보다 더 올라간다면 영혼의 충족. 자아실현을 바라게 된다.
즉, 정우에게 있어서. 수십억이든 수백억이든, 하물며 수천억이든. 큰 차이가 없다.
“돈으로는 선배를 살 수 없다. 그런 말을 하려는 건가요?”
“돈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거지. 너는 잘 모르나 본데.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 중에는 돈이 넘쳐흐르는 여자도 있거든.”
“우림이 선배 말이죠?”
“아나 보네?”
“축구부 선배가 알려줬어요. 웬 돈지랄 하는 년이 있다고.”
“그럼 너도 알겠네. 지금 당장 나한테 수천만 원을 쓰고, 가진 재산도 수십 억이 넘는 사람이 있는데. 머나먼 미래에 수백억을 줄 수도 있으니 나한테 와라? 그건 너무 자기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닐까?”
“……그럼, 그럼 제가 선배를 가지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노력해.”
“네?”
“네가 정말로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내게 확신을 보여달라는 말이야.”
정우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느려터진 와이파이에 답답함을 느끼며 기어코 접속에 성공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얼마 남지 않은 대회 일정을 보여준다.
“다음 데이트는… 네가 여기서 헤드 트릭을 달성하면 하는 걸로 하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