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4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154/218)



〈 154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몸에 쫙 달라붙는 티셔츠에, 자칫하면 도끼 자국이 보일  같은 레깅스까지.

그녀는 온몸으로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만큼 몸매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그녀의 자신감만큼이나 드러난 몸매는 훌륭했다.

다만, 그게 데이트할  입을법한 옷이냐고 묻는다면 정우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으음, 복장이…….”

“멋지죠? 선배. 이거 저희 축구부 선배들이 빌려준 건데. 이러고 나가면 남자들이  간다고.”

“아, 그래. 그렇구나.”

친한 선배들이 추천해줬다는 말에, 감히 탈룰라를 할  없었던 정우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오늘, 정말 멋지네요. 엄청 잘 어울려요.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면서 입은 거예요?”

“딱히 고민까진 안 했는데.  정도는 기본 아닌가?”

“여기선 저를 위해서라도 그냥 그렇다고 해주면  돼요?”

정우는 시시덕거리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터트렸다. 그의 복장은 간단했다. 청바지에 티셔츠, 얇은 가디건.

그녀는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으나, 사실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라서, 정말 다 헤진 거적때기를 입고 오는 게 아니라면 정우에게는 무슨 옷이든  잘 어울렸다.

“자, 그럼. 가자.”

“히히, 네!”

신예는 곧장 정우의 팔에 매달려 큼지막한 둔부를 비비적거렸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정우는 그녀의 몸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딱딱한데…….’

사랑스런 연인과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무슨 경찰관에게 연행당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건 팔뚝과 복근의 감촉이니, 가슴이나 엉덩이는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길거리에서 엉덩이를 주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엉덩이를 주무를 수 있는 장소로 가자니, 그녀한테 따먹힐까 걱정이다.

즉, 그녀는 스스로의 음탕함으로 본인의 장점을 좀 먹는 타입이었다.

“선배?”

“……저녁부터 먹을까?”

“음, 그래요!”

일단 밥을 먹이고 최대한 많이 움직여서 에너지를 빼놓을 계획을 세운 정우는 그녀를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데려갔다.

맛있지만 양이 적고 감질맛이 나는 그런 식당으로.

* * *

여성에게 있어 식욕이란 성욕이다. 밥을 많이 먹으면 성욕이 가라앉는다는 뜻은 아니다. 점잖은 숙녀가 인기를 끄는 현대에서 음식을 탐하는 건 성욕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성욕덩어리로 이루어진 신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의 성욕이 넘쳐 흐르는 호르몬 작용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유전적으로 뛰어난 증거라고 자신 있어 했으나.

상식이 제대로 박힌 여성이라면, 이성 앞에서 자신의 성욕을 자랑하지 않듯이, 그녀도 그러했다. 이제  자신의 성욕을 숨기겠다는 듯, 조신하게 음식을 섭취했다.

“마, 맛있네요.”

“응. 그치?”

정우가 맛은 있지만 양이 적은 가게를 고른 이유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2인분을 시키자니 가격도 부담되고, 정우에게 많이 먹는 돼지라는 인식을 주기 싫었다.

안 그래도 스포츠걸, 기초 대사량이 일반인의 배는 되는 그녀가 이 정도 양으로 만족할 수 있을  없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티를 낼 수 없다. 그저 굶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속으로 끙끙 앓을 수밖에.

 모습을  정우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배를 채우며 에너지는 보충해주지 않을 방법을 떠올렸다.

“카페나 갈까? 내가 사줄게.”

“정말요?”

“그래.”

바로 물배로 그녀의 배를 채우는 것. 카페에서 허니 브레드 같은  종류를 주문하더라도, 빵으로 채운 배는 그리 큰 에너지가 되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정우는 일부러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로 향했다. 스타럭스. 이 시대엔 바가지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던 카페에.

국밥 한 그릇보다 비싼 커피와 빵 가격들을 본 신예는 조금 주눅 들고는 정우의 옷 소매를 잡아당겼다.

“선배? 여기 너무 비싼 거 같은데…….”

“괜찮아. 사준대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서오세요! 스타럭스입니다!”

망설이는 신예를 붙잡아 당기듯, 알바생이 큰 목소리로  사람을 환영했다. 일하던 다른 알바생도  같이 호명하며 두 사람을 환영하니, 인싸 임신예는 이를 회피할  없었다.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요…….”

“에이, 저거 맛 없어. 라떼나 다른 거 먹어.”

“그렇지만….”

“그냥 내가 시킬 게. 모카 칩 프라푸치노로  개요. 허니 블레드도 하나.”

“18,900원입니다. 프라푸치노엔 크림 올려드릴까요?”

“네.”

“서, 선배?”

치킨 2마리를 시켜도 잔돈이 남는 금액을 흔쾌히 투척하는 정우를 보며, 신예는 일순 기겁했으나. 계산은 순식간이었고, 이미 직원들이 움직여 얼음을 갈기 시작했다.

이미 제조에 들어간 이상, 환불은 불가능. 신예는 떨떠름한 감정을 숨기며 음료가 나오는 걸 기다렸다.

과연, 손님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직원들의 실력이 프로페셔널한 덕인지, 음료가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음료와 빵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면서, 신예는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이 치킨 2마리와 같은 가격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물며 동네 치킨집이나 전기 통닭구이 같은 거라면, 3마리, 4마리까지도 가능한 가격이었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그녀도 이틀은 먹을 수 있는 양. 그게 한 끼도 아니고 간식에 들어간다니.

‘……맛은 있네.’

쪼로록 음료를 들이킨 신예는 뇌를 가득 채우는 당분과 폐를 가득 채우는 시원함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

“흐아아… 마, 맛있네요.”

그리고 부끄러워 쪼르륵 소리를 내며 프라푸치노를 들이켰다. 너무 달아 입안이 텁텁해질 정도가 되면, 허니 브레드를   베어 먹는다.


달다. 이것도 설탕과 꿀을 잔뜩 뿌려 달다 못해 혀가 저려온다. 그러나 밀가루가 단맛을 중화시켜준다.

결국, 단짠단짠이 아닌 단단단단 조합으로 배를 가득 채운다. 먹은 건 없는데 배가 가득 찬 느낌이다. 그녀는 그제야  음식들의 칼로리를 깨달았다.


‘열량만 더럽게 높구나……!’

얼음 당분 덩어리에 빵에 당질 뿌린 거. 열량이 낮을 수 없다. 지금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화력발전소였다. 분당 천 칼로리를 섭취해버렸으니.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좋네.”

“…네헤에.”


그러나 그런 사소한 걱정 따위, 정우의  마디에  녹듯이 사라진다. 속이 텅 빈 겉치레일 뿐이더라도, 그녀에겐 천금보다 귀하고 나랏말씀보다 중했다.

“밥도 먹었으니, 놀러 갈까요?”


그녀는 정우에게 손을 건넸다. 여기까지 안내받았는데,  뒤로는 그녀가 안내하지 않으면  되겠지.

* * *


 시대엔 즐길 거리가 없다. 21세기에 진입했음에도, 대부분의 문화가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발전한 21세기 오락 문화를 즐기고 온 정우의 의견이고,  시대 사람들에겐 오히려 향락의 최전성기겠지만.

그 정우를 만족시킬만한 놀이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배! 이건 어때요!?”


“응. 좋은  같은데?”

“그럼 이건요!?”

그렇기에 정우는 ‘무언가’를 하느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하느냐를 중요시했다.

이미 대부분 한 번씩 해본 것. 그러나 이미  번 즐겨본 놀이도 새로운 사람과 즐길 때마다 각자 다른 느낌을 준다.

앞으로 최소 십 년.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할  없는 정우에게 있어서 가장 신선한 건, 다른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정우의 생각. 그를 대하는 히로인들은 항상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선배가 별로 마음에  드나?’


무얼 추천해도 정우는 심드렁하게 받아들인다.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는 거 같아도 그 순간뿐, 끝나기 무섭게 무감정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마치 기계 같았다. 그게 하도 많은 향락을 즐기느라 닳고 닳은 고인물의 반응이라는 걸,  정신머리 달린 사람이라면 절대로 예상하지 못한다.

그렇게 쌓인 오해로 마음은 점점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열심히 준비한 계획이 그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사실이 너무나 심하게 가슴을 후벼판다.

은혜라면 마음에 가득 쌓아둘 테고, 우림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그 일을. 신예는 기어이 손 대기 시작했다.


“선배.”

“응?”

“저랑 노는 거, 마음에 안 드세요?”


“뭐?”


스포츠걸 답게, 당당하게 들이받았다. 그녀의 돌직구는 5t 트럭이 전속력으로 부딪친 것과 같았다.

“마음에 안 들지는 않는데.”


“그건, 마음에 든다는 것도 아니네요? 그쵸?”


“굳이 따지자면…… 아, 너랑 있는 게 재미없다는 뜻은 아닌─.”

“아니요! 저랑 있는 게 재미없으신 거예요!”

데이트를 주도하겠다고 한 주제에, 그건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남자를 재미없게 하다니.

‘그럴 순 없지.’


인싸에, 미녀에, 운동까지 잘하는 만능 미녀인 그녀가 실은 재미없는 여자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책임지고! 선배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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