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5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155/218)



〈 155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신예가 정우를 재미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은 했으나, 실제로 그녀가 정우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우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이미 이 시대에 있는 모든 오락이 하찮아질 정도로 즐기고, 또 즐긴 고인물, 석유였기 때문이지 그녀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신예는 노력했다. 자칫 우스꽝스러운 광대로 보일 정도로 노력했다. 정우의 웃음을 사기 위해 움직였다.

“선배, 이것  봐요. 달걀귀신!”
“경찰의 혈액형은? 삐형삐형.”
“……흐읍!”

신예는 얼굴로 장난을 치고, 되도 않는 개그를 치고, 기어코는 정우를 직접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어떤 노력에도 정우는 웃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냥 한 번 웃어주면  되요?”

“그래.”

그 말에 정우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정우도 필사적으로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느라 한계였다.

자기보다  살은 어린 학생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일이니까.

허나 엎드려 절 받는 식으로 받아낸 웃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신예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정우를 노려보았다.

“진짜 재미없나 보네.”

“아니야. 그냥, 귀여워서.”

“……귀여워요? 저, 귀여워요?”

귀엽다는 말을 들은 신예는 마치 고양이처럼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귀엽다라는 이미지는 고양이인 걸까, 실제로 들어 올린 손동작이 그녀의 단발과 잘 어울려 진짜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응. 귀엽네.”

“에헤헤. 그래요?”

정우를 웃게 해주겠다던 포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녀는 그저 귀엽다는 말을 듣고 아양을 떨기 바빴다.

애교를 떨던 그녀도 얼마 안 가  사실을 깨달았는지, 멈칫하고선 얌전히 고개를 떨군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죽은 그 모습조차 사뭇 귀여워서, 정우는 그녀의 안에 숨겨진 음탕함조차 잊어버린 채, 길거리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머리띠를 하나 구매했다.

바로 고양이 귀가 달려 있는 머리띠를.

“자.”

“서, 선배? 이건……?”

“그렇게 고양이 흉내를 내고 싶다면야.”

“아니, 제가 물론 그렇게 행동하긴 했지만…….”

“야옹아. 짖어 봐.”

“……냐, 냐옹.”

필드 위에선 그 누구에게도 몸싸움에서 지지 않는 스트라이커도, 사랑 앞에선 한낱 아기고양이로 변신해버린다.

“옳지. 잘한다.”

“갸, 갸르릉…….”

정우는 귀엽다는 듯 신예의 턱밑을 살살 긁어주었다. 정말로 고양이가  거 같은, 그렇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라? 왠지 가까워진 거 같은데.’

신예는 정우가 그녀를 정말 애완동물처럼 다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애완동물이 엉겨 붙는다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기회 아닌가?’

그녀는 조심스레 정우에게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정말로 고양이가 된 것마냥 몸을 천천히 쓸어올렸다.

머릿결이 정우의 옷을 문지르고 지나간다. 스륵, 스륵. 비단결처럼 관리한 그녀의 머리칼이 정전기로 인해 정우의 옷에 달라붙는다.

머리가 헝클어지는  싫은지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정우의 가슴에 뺨을 맞췄다. 따듯하다. 평탄한 심장 고동소리가 느껴진다.

두근 두근.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심장 소리 같아서,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래서 애교를 부리기도 잠시, 그녀는 얌전히 정우의 가슴팍에 안겨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신예야?”

“……네엣! 임신예! 복귀했습니다!”

“웬 복귀?”

“아, 아뇨. 품이 너무 편안해서…….”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고는, 입이 열 개라도 말할 수 없었다.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학교 동아리에서 선배들에게 자주 쓰던 복명복창이 나왔다는 것도 밝힐 수 없었고.

‘아아, 쪽팔려.’

남자 품이 너무 좋아 거기 안겨 멍을 때리다니. 나쁜 건 아니었다. 만일 남녀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더라면.

신예는 정우와 연인 관계가 아니다. 연인 관계라기보다, 정말 오빠 동생.  나아가선 애완동물과 주인이라 해도 무방할 관계였다.

‘아예 여자로  보는 게 아닐까.’

남자는 여자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한다. 이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아무런 문제 없이 기를  있을지.

그래서 여자는 허세를 부려야 한다. 너 같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씨를 뿌릴 남자는 많다. 그런 허세를. 남자에게 개의치 않아 하는 태도를 보여야 인기를 끌 수 있다.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신예는 여러 정보통으로 인해 그 사실을 매우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긴, 내가 너무 들이대긴 했지.’

첫 만남부터 애새끼마냥 얼굴을 붉히고,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즉,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

그녀는 기왕 밀기 시작한 거, 정우가 밀릴 때까지 밀어 보자고 생각했다.

‘열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선배. 다리 아픈데. 쉬었다 가요.”

“뭐?”

갑작스런 신예의 발언에, 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축구 시합 90분 내내 뛰어댕기는 그녀가 잠깐 걸었다고 다리에 피로를 느낄 리는 없다.

설령 며칠 전에 경기를 치르고 왔더라도 마찬가지라, 그녀가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괜찮겠지, 뭐.’

하지만 이제와 그녀가 무언가 수작을 부려봐야 어떤 수작을 부리겠는가. 정우는 그냥 그녀가 말하는 대로 따라주기로 했다.

근처 벤치를 찾아 걸터앉는다. 뉘엿뉘엿 저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선배.”

그때, 신예가 정우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숨겨왔던 욕망을 드러낸다. 은유적으로.

“저, 조금 누워도 돼요?”

“어디에?”

“선배 무릎에.”

 된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신예의 눈빛이 너무나 똘망똘망하고 순수해서, 도저히 그렇고 그런 의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정우는 약간의 한숨을 내뱉은 뒤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만이다?”

“네에!”


정우가 살짝 몸을 움직여 허벅지를 베고 눕기 쉽게 만들었다. 그러자 신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그 위로 드러누웠다.

운동으로 인해 딱딱한 허벅지를 베고, 살살 손을 움직여 다리를 쓰다듬는다. 상상으로만 떠올렸던 감촉이 지금 손안에 있다.

‘주무르고 싶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그녀의 평판에 얼마나 큰 해가 되는지 잘 알고 있던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머리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만족했다.

“……추워?”

“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위에서 보고 있던 정우는 달랐다. 갑자기 누워 손을 덜덜 떨고 있으니, 이 날씨에도 그녀가 추위를 느낀다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해도 별 이상할 거 없는 복장이긴 했다. 쫙 달라붙는 티셔츠에 레깅스 차림이니, 해가 지고 나면 추위를 느낄 수밖에.


정우는 덜덜 떨리는 양손을 붙잡고 자신의 손으로 뎁히기 시작했다. 직접 만지니 땀으로 살짝 습기가 느껴지기는 했으나, 차갑지는 않았다.


그냥 추위를 많이 타는 성격인가 싶어, 그러려니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배.”


손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에. 신예는 조심스레 얼굴을 가져다대며 고개를 돌렸다.


혹여 누워 있는 모습이 못 생겨 보일까 목이 부러지라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자꾸 이러면, 저 오해한다니까요.”


“무슨 오해?”

“아, 선배도 나를 좋아하는구나. 이제 내가 좀 들이대도 괜찮겠구나. 하는 오해죠.”

“해도 좋아. 후회하겠지만.”

“또또, 거절은 안 하시네.”

벌떡, 몸을 일으킨 신예는 그대로 몸을 돌려 정우의 다리 위로 자신의 다리를 올려놓았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정우의 목 뒤로 팔을 넘긴다. 퇴로를 막는다.


“이렇게, 확 덮쳐도 모르는데. 저항도 안 하시고.”

천천히 접근한다. 개미가 기어가듯 천천히. 그러나  움직임은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것이다.

잔혹한 사냥꾼. 사마귀는 다른 곤충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역으로 느려터진 그 움직임이 먹잇감을 손에 넣는다.

지금도 그러하다.


쪽.


“에헤헤. 받아가요.”

첫 키스. 그녀의  키스.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아껴두었던 물건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키스를 당했다는 걸 깨달은 정우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떼어놓는다.


머릿속에 성욕이 가득  이 색욕마인에게 빈틈을 내보였다간 어찌 될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런 정우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신예는 피식피식 웃으며 다가오지 않았다.


‘……뭐지?’

신예는 이미 그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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