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1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161/218)



〈 161화 〉NO.8 임신예는 임신YES

정우는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인생 첫 애인을 사귀어 흥분하다 못해 열 올라 쓰러질 듯싶은 이 처녀에게 그녀가 유일한 애인이 아니라  손으로도 다  꼽는,  번째 손을 써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걸.

그리고 그는 그 책임을 유보했다. 바로 자신의 애인들에게.

“선배님들! 오늘부터 하정우 선배랑 사귀게 된 임신예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그래라.”

그녀는 먼저 동아리실로 돌아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다섯 명에게 그리 소리쳤다.

그게 선전포고를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예는 무덤덤한 반응에 정색했다.

‘왜 이러지?’

혹여나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가 전달되지 못했던 걸까. 그녀는 아예 주어를 붙여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니까 앞으론  선배를 멋대로 만지거나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푸흡.”
“푸하하하!”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뭐가 웃긴 건지 이해하지 못한 그녀는 그들이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보단 몸을 주로 사용하는 운동권답게 행동했다.

“웃겨요?”

“응. 엄청.”

“전 농담 아닌데.”

얼굴을 굳히고,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일은 해결된다. 그녀의 이름이 그걸 가능케 만들었다. 그녀의 예상대로라면 선배라 할 지어도 겁먹을 지었다.

“그래서, 뭐?”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맹수, 백수의 왕. 사자였다. 지금은 직장을 가져 차갑게 식었으나, 그 실력과 성격만은 죽지 않은, 세계관 최강자.

“……아뇨.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리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감히 올려다볼  없는, 동아리 내에서 군기를 잡는 몇몇 대선배를 떠올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애인이 되었음에도 이 사람이  애인이다, 그러니 건들지 말라 한 마디 할 수 없음에 원통함을 느낀 그녀는 흐느꼈다.

너무나 서럽게, 그러니까 여자답지 못하게 눈물을 질질 짤 정도로.

“……야, 우냐?”

그 모습을 본 마리가 당황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사과했다.

“야야, 미안하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그럼요?”

“이걸 뭐라 말해야 하나…… 정우가 정말 아무 말 안 하디?”

“……예.”

“하아…… 미친놈 진짜.”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필이면 그녀를 까불 때 제압한 것도, 그녀가 눈물 흘릴 때 위로해준 것도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은 눈을 돌리며 사실을 전하길 거부했다.

“그, 있잖아. 상처받지 마라?”

“노력할게요…….”

“여기 있는 모두가 정우 애인이야.”

“……네?”

마리가 들려준 이야기는, 과연 놀라지 않겠다 대답한 그녀도 놀라지 않을  없는 내용이었다.


한 두명은 예상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 애인이라고? 정말로?

‘하나, 둘, 셋…… 다섯?’

순수하기는커녕, 이쯤 되면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기만 하면 이유 불문하고 전부 다 벌려주는 열린 문이었다.

“서, 설마 더…… 있나요?”

“애인?”

“네에…….”


“더 있나? 야, 니들은 아는 애 있냐?”

“아름이는?”


“개는 좀 애매하지?”


“그럼 몰라.”


“없데.”

하물며 그 애인 군단마저 자세한 편제에 대해 모르는 상황이니, 정우가 숨기고 있을 애인마저 감안하면 막말로  학교의 여고생 전체가 그의 애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뭐해?”

너무 큰 충격에 그녀가 제몸 못 가누고 있을 때, 정우가 들어왔다. 그가 자신을 먼저 들여보낼 때야  그런지 몰랐으나, 이젠 알 듯 싶었다.

“……선배.”

그러나 또 놀랍고도 얄미운 점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가 가라앉고 만다는 것이었다. 천년의 사랑도 불태워 버릴 분노도 사그라든다.

“진짜, 쓰레기예요.”


“내가 그래서 말했잖아. 후회할 거라고”

“말투도 바뀐 거 봐. 잡은 물고기라고  대한다 이거죠?”

“그래서, 탈출할 수 있겠어?”

“아뇨.”

이 앞은 지옥이다. 그 끝에는 절망뿐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욕하고, 그녀가 사랑하는 그마저 욕할 것이다.

그저 추악한 질투와 시기로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짓밟으려 들 것이다.


별생각 없이 던지는 돌멩이가 수십만 개는 날아올 테지.


“선배야말로, 제 매력에 빠질 거예요.”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비로소 지옥 밑바닥에 있었다. 결국 그녀는 제 스스로 지옥에 몸을 던졌다.

* * *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인생이,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천상과도 같은 나날이라. 지옥으로 포장되어 있던 길도 정작 그 길을 걷는 신예 입장에서는 천국으로 느껴졌다.


예를 들자면, 이제는 남들 앞에서 정우와 애정행각 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따금씩 정우가 포상을 내리듯 그녀에게 먼저 손을 뻗어 준다는 것.

그 모든 게 행복했다. 행복해서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수준으로.

“저기, 정우 오빠.”

“왜?”


호칭의 변화는 그중 하나였다. 애인 관계에서 언제까지고 선배라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신예가 먼저 시도했고, 늘 그렇듯 정우가 수용했다.

단순한 변화였으나, 동시에 커다란 진척이었다. 오빠와 선배는 어감부터가 다르니까.


“나 내일부터 훈련이야.”

“그러고 보니 대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했지?”


“응.”

일주일의 유예가 끝나고, 신예는 전장으로 끌려가는 군인마냥 침울한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보았다.

행복의 끝이 있기에, 행복이 행복일 수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렇다고 행복이 끝나는 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빠아아…… 아아, 가기 싫어…… 가기 싫다…… 나 그냥 축구 그만둘까?”

“어허, 지금까지 열심히 해놓고?”


“그치마아안…… 힘든 걸…… 일주일이나 쉬었으니 아주 나를 죽이려고 할걸?”

“그만큼 노력해야지.”


신예는 계속해서 정우에게 엉기며 칭얼대었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정우는 그녀가 진심으로 축구를 그만두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구구, 신예야. 그렇게 가기가 싫어?”

“응. 가기 섫어…….”

“어쩔 수 없지. 그럼 오빠가 힘내라고 상을 줘야겠네.”


“……상?”


그 말에 신예가 눈을 번쩍였다. 그녀도 선배에게 속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힘들 때 남자친구가 종종 복근이나 가슴을 만지게 해준다고.

혹여 정우도 그런 걸까, 음습한 기대를 품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정우는 그러했다. 다만 그녀의 상상보다 더한  내놓았다.

“이번에 열심히 훈련하고, 그래서 대회에서 이기면…….”

“이기면……?”

“만지게 해줄게.”

신예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디를 만지게 해준다는 건지는 묻지 않았다. 주어가 없으니만큼, 이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백지수표로 들려왔다.

“오빠. 갑자기 힘이 샘솟는데.”


“꼭 이겨라. 이렇게 까지 해줬는데 지면 알지?”


“알지. 지면 내가 등신인 거.”

신예는 기운을 차리고 축구부로 향했다. 그녀 생각대로, 일주일의 휴식은 그녀에게 더욱 큰 고통을 선사했다.


고작 일주일 전에도 쉽게 뛰었던 아침 달리기는 폐가 아려왔고, 거뜬하게 넘어갔던 근육 훈련은 허벅지가 땅땅하게 땡길 정도로 아파 왔다.

정우에게서 받을 보상과 그가 주는 도시락, 그리고 사랑이 없었더라면 차마 해내지 못했을 일들을 기어코 해내며.


대회 날이 되었다.


일주일의 공백이 무색하게, 그녀는 전보다  날뛰었다. 헤트트릭을 가볍게 달성하고, 승리를 가져온 그녀는 그날 밤 승리 축하 파티에도 결석하고 정우의 집으로 향했다.

* * *

“시, 실례합니다…….”


혹여나 장인장모가 계실까, 신예는 조심스레 인사를 드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온종일 뛰어다녀 전신에 힘이  빠졌음에도, 그녀는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집에 나밖에 없어.”


“……네?”


정우가 그리 말했음에도, 아니. 그렇게 말했기에 더더욱 긴장되기 시작한 신예는 부티 나는 집안을 보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집 좋네.’

그녀의 집도 그리 나쁜 건 아니었으나, 정우의 집과 비교하자면 한 단계에서  단계 뒤떨어졌다.

정우의 안내에 따라 소파에 앉은 그녀는 정우가 가져오는 음료수를 홀짝이며 언제쯤이면  몸을 만질 수 있을지 고심했다.

안 그래도 승리의 열기로 인해 전신이 달아오른 지금, 며칠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던 포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지금.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할 듯싶었다.

“왜?”

“그, 오빠…… 상으로 해주신다는 거 있잖아요.”

“아, 그거.”


정우는 알겠다는 듯 그녀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하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그가 대체 뭘 하는지, 그가 사라진  짧은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질 무렵.


“기다렸지?”

정우가 나타났다. 상의는 쫙 달라붙는 민소매 니트, 하의에는 남성용 레깅스를 입은 채로.


“아, 아아…….”

신예는 참지 못했다. 나를  따먹어주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복장을 보고도 참는다면, 여자라 할 수 없었다.

* * *

‘조금 서늘한데.’


원래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 어째서인지 이 세상 여자들이 좋아라 하는 옷이었기에,  어울릴 거라며 선물 받았던 옷.

그를 꺼내 입은 정우는 신예의 반응을 보고서 꺼내 입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빠, 오빠. 하아, 미친. 뭐 이런 옷을…….”


“마음에 안 들면 벗을까?”


“벗지마!”

정우를 억지로 껴안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달콤한 향기가 얼굴에 가득 차오른다.


“오빠, 만지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응. 그랬지.”

“어디를 말한 거예요?”

그녀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음흉한 마음이 가득 담긴 질문이었다. 정우는 능숙하게 대답했다.

“어딜 만지고 싶은데?”

“저야…… 어디든 만지고 싶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몸에서 만지기 싫은 장소가 없었다. 설령 발에 그녀가 모르는 사마귀나 무좀이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만질  있을 듯했다.

정우는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내가 선택지를 줄게.”


딱딱한 가슴에 손이 닿았다. 부드러운 니트 너머로 단련한 가슴근육과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손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부터 원을 그리며 내려간 손은 王자로 갈라진 복근에 닿았다. 갈라진 틈새틈새를 손가락으로 훑고, 손은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음에도 내려갔다.


마지막에 닿은 건,  너머로도 뜨겁게 열을 발하는 커다란 기둥이었다. 물건의 열기만큼이나 그녀의 심장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맛보기였다는 듯, 정우는 금세 손을 떼내었다.


“자, 어디가 좋아?”

신예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긋이 눈과 손가락으로 가장 아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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