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NO.3H 여름방학
자위는 가장 간단하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갓난아기도 엄마 뱃속에서 자위를 한다고 할 정도로 보편적인 수단.
그러나 자위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섹스보다 더욱 크다면야 섹스를 할 필요가 없으리라. 섹스를 하기 위해선 남녀의 사랑과 합의가 필요한 법이고 그 과정은 상당히 귀찮기 짝이 없으니.
섹스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자위보다 훨씬 좋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하게.
즉, 섹스로 얻을 수 있는 영감이 자위로 얻을 수 있는 영감보다 거대했다.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노래를 만드는 영감이 되었다.
“흐앗, 흐윽! ─♪!”
그녀의 신음소리는 마치 신화 속 세이렌이 노래 부름과 비슷했다.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듣고 매료되어 다가올 듯했다.
그녀 아래 깔려 자지를 상납중인 정우에게도 그건 매한가지였다.
“아, 아아! 아흐응─♬”
휘파람과 신음을 섞어가며, 그녀는 율조가 떠오를 때마다 눈앞에 노인 백지에 그를 그려갔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할 지어도 만든 노래의 음계를 기억할 수 없는 노릇이니.
그리 적힌 음계가 백지를 가득 채우자 그녀는 종이를 저 멀리 집어 던졌다. 혹여 그녀가 흘린 애액이 종이를 더럽힐까 걱정 되어서.
“으흐읏─!?”
한 장의 백지를 완성하자 정우가 강하게 허리를 올려친다. 하반신을 꿰뚫는 듯한 강렬한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순식간에 절정에 오른다. 절정에 오른 몸은 그녀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비워 놓는다. 복잡한 음계와 다양한 음률로 가득 차 있던 머리가 텅 빈다.
그렇게 텅 빈 머리에 또다시 새로운 음악이 차오른다. 정우와의 섹스는 이렇듯 영감의 무한동력이나 다름없었다.
영감이 끝없이 차오르고 그렇게 가득 찬 영감이 다른 영감을 방해하지 않도록 곧장 비워낸다.
섹스에 이은 섹스, 그리고 또 섹스. 이게 바로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발할라다.
“흣, 흐에에…….”
결국 뇌를 가득 채우고 몸 아래 까지 내려온 뇌내 마약 물질에 헤롱헤롱 중독된 그녀는 정우의 몸 위로 털썩 쓰러졌다.
자기 위에 쓰러진 예슬을 꽉 껴앉으며, 정우는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는 몇 번 가버린 모양이었으나 그는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으니까.
기절하다시피 쓰러진 상태에서 자지를 움직이자 정점을 찍고 바닥에 내려와야 하는 뇌내 마약의 분비가 끊이질 않는다.
뇌가 망가질 정도로 도파민이니 엔돌핀이니 하는 화학 물질에 절여지고 나서야 정우는 정액을 싸질렀다.
북북, 예슬의 안에 정액을 듬뿍 싸지르고 난 이후에 물건을 빼낸 정우는 자지에 묻은 그녀의 애액을 닦아내고 바닥에 떨어진 악보를 주워들었다.
그녀가 적고 집어 던졌던 순서대로 하나둘 모은 뒤 악보를 흥얼거린다. 천재답게 그 짧은 사이에 어지간한 대중음악 저리 가라 할 수준의 노래가 완성되었다.
수많은 작곡가가 그녀의 악보를 본다면 자신의 미천함을 느끼고 혀 깨물고 자살할지도 모른다.
만일 이게 섹스하는 도중에 적어낸 수십 분짜리 완성도라는 걸 안다면 자살하는 것마저 수치스러워질지도 모르지.
‘천재는 천재라니까.’
그런 천재의 행보를 옆에서 지켜보는 범인의 마음이란 갈기갈기 찢어지기 마련이다. 만일 자신이 시스템 같은 걸 갖지 못한 평범한 남자였더라면. 그랬더라면…….
질투심에 그녀를 망가트리려 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예 그녀에게 기생하려 하는 흔한 남자A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정우는 기절한 그녀를 내버려두고 악보를 모아 연주를 시작했다. 그녀의 방에는 기타니 전자피아노니 하는 악기들이 즐비했으니까.
피아노에 걸터앉은 정우는 악보를 거치대에 올려두고 연주를 시작했다.
칸타타 칸타빌레cantata cantabile.
처음엔 지저분한 리듬으로 시작한다. 정우도 순간 자신이 치고 있는 게 잘못된 건가 의심할 정도로 지저분한 소리.
그러나 소리는 곧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처음에 준 불쾌감이 계산된 물건이라는 듯 점점 아름답게.
점점 빠르게.
귀가 찢어지도록.
조타수의 정신을 빼앗고.
항해사를 바다 깊숙한 곳으로.
노래가 된다. 유혹의 노래다. 누군들 이 리듬을 듣고 발걸음 멈추지 않는 자 없게. 세상을 홀려라.
노래가 점점 빨라진다. 포르티시모. 강하게. 세상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그리하여 이 노래가 만인의 귀에 닿을 수 있게.
그리되어라.
* * *
짝짝짝짝.
어느새 깨어난 예슬이 정우의 연주를 듣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괜스레 쑥스러움만 생긴 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제목은 뭘로 할 거야?”
“에이프릴(April).”
“왜?”
“4월은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은 느낌이 드니까.”
모두가 새로운 일이 생기길 고대하는 3월.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새학기가 되어도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도 별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번에야말로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4월. 전조부터 불안정한 화음을 선택하여 불쾌감을 주는 이 노래와 매우 닮아 있었다.
“부를 거야?”
“왜? 가지고 싶어?”
“갖고 싶다기보단…… 흥미가 있긴 하지.”
아쉽게도 이런 곡을 작곡한다 한들 그녀는 대중적으로 무명에 가깝다. 대뜸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러봐야 아무런 화제를 끌 수 없다는 뜻.
‘아쉽네.’
그녀가 만일 5년, 3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재능이 가장 꽃피우는 시기에 대 스트리밍 시대가 열렸을 텐데.
수백, 수천만 명이 인터넷으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열광했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의 비운이란 참으로 암담한 것이다.
“역시, 데뷔하는 게 어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까우니까. 한시라도 빠르게 데뷔해서 세상을 경험하는 게…….”
“정우 너도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리꽂힌다. 그녀의 눈빛은 눈앞의 사내를굳게 만들었다. 너무나 냉담한 눈빛이라 스스로도 무언가 잘못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저기……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넌 아무것도.”
“그런데 왜 화내?”
“화내냐고? 내가 언제?”
그리 말하는 예슬의 눈빛은 여전히 냉담했다. 꽁꽁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무언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문제는 그게 뭔지 도저히 감 잡을 수 없다는 점.
넘쳐흐르는 재능만큼이나 넘쳐나는 자존감이 그녀를 정우와 대등한 존재로 만들었기에 그녀는 정우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그녀에게 있어 정우는 갑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세상을 보는 동반자요 유일한 이해자였지.
그리고 유일했던 친구에게 상처 입는 일만큼 충격적인 일은 없다. 여기서 말실수라도 했다간 그녀는 세상과 인연을 단절하고오만한 뮤지션이 되어 살아가리라.
뉴스에 흔히 등장하는 골방에 틀어박혀 마약이나 하는 유명 스타로.
그리 사는 게 그녀의 인생에 별 도움 될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바, 정우는 그녀가 그리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왜 그래, 누나. 갑자기?”
평소엔 그리 하지 않는 애교를 떨어대면서 그녀의 기분을 살살 달래기 시작한다. 과연 그 효과는 굉장해서 굳어 있던 분위기와 그녀의 기분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누나 말투는 그게 아닌데?”
“됐어. 괜찮아.”
“정말? 그럼 내가 뭘 더 안 해줘도…… 만족한다는 뜻이네?”
“……정말 뭐든지 해줄거야?”
예슬은 정우가 괜스레 약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부탁하면 무얼 말해도 쉽게 들어주지 않을까?
평범한 여자라면 자신의 음습한 성욕을 배출하겠으나, 예슬은 아니었다. 그녀의 명예욕은 성욕이나 물욕 따위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너. 데뷔해.”
“……응?”
“연예계에 데뷔하라고.”
그녀가 부탁한 내용은 정우로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 * *
연예계 데뷔. 누군가는 평생 꿈 꿔도 이룰 수 없는 일이요 누군가에겐길을 걷다가 명함을 받고 그대로 이루워지는 손 쉬운 일이다.
정우에게는 후자에 속했다. 괜찮은 마스크와 그보다 더 훌륭한 가창력. 그리고 싱어송라이터가 가능한 재능. 만일 정우가 그럴 마음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이미 그를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겠지.
정우가 그러지 않은 건그깟 TV 따위에 얼굴을 비추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서였고, 그리 중요한 분이 직접 연예계 데뷔를 하라 명하셔도 연예계 데뷔가 쉽냐는 말로 넘어갈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예슬에게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밴드 대회 등으로 얻어낸 온갖 연예계 종사자의 명함이 있었고, 스타를 발굴하는 데 도가 튼 그들은 정우를 발견하고 결코 놓아주지 않으려 했으니.
“마스크는 평범한데.”
“엑, 이 정도면 잘 생겼죠.”
“아이돌 계엔 이 정도 얼굴은 널렸어. 좋게 봐줘도 얼굴 담당은 못 해.”
“아이돌 안 할건데요?”
“그럼 왜 데려왔는데?”
“싱어송라이터에요.”
“뭐?”
예슬에게 명함을 준 연예기획사 실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데려올 수 있다면 남자 한두 명은 아이돌로 꽂아줄 수 있었다.
예슬이 그런 생각으로 정우를 데려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녀과 같은 싱어송라이터로 키우라고 데려온 거라고?
“아니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얘 나보다 노래 잘 해요.”
“……그래?”
실장은 거절하려 했으나 예슬의 주장으로 노래 한 곡만 들어보자 생각했다. 정우는 별 내키지않았으나 딱 한 곡만 불러보라는 예슬의 부탁에 한숨을 내쉬며 마이크를 잡았다.
MR도 필요 없었다. 정우는 연주실에 놓인 기타를 들고 대강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Love song∼.”
한 소절 들었을 뿐인데 기획사 실장은 이 남자가 대박을 터트릴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에게 연예인이 되려는 열망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요즘 왜 이러지, 진짜?’
당장 그녀 주변에 연예인 한 번만 시켜달라고, 그리하면 몸이고 돈이고 다 대주겠다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 직업이다. 연예인이란. 사람들의 열망과 시기를 동시에 받는 직업. 아니, 지위.
그런 직업을 제 발로 걷어차는 천재가 둘이나 있다. 너무나 눈부셔서, 줍지 않는 게 너무나 아까워서 손해를 보더라도 주울 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연예인, 하자.”
실장은 정우의 양손을 붙잡으며 이야기했다. 대기업 기획사 실장으로서 자존심 강한 그녀가 먼저 이런 제안을 하다니, 드물다 못해 한 번도 없던 일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바닥을 기어서라도 주워야 하는 가치가.
“싫은데…….”
“뭐!? 왜! 왜 싫어!”
“그냥 오디션만 보러 온 건데요. 합격해도 할 마음은 없었어요.”
“아니 그게 무슨…….”
정우의 말에 실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킬로 노래를 부르는 정우는 일부러 못 부른다 같은 일은 꿈도 꿀 수 없었으니까.
예슬도 정우가 오디션에 합격하면 무언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연예계를 밀어내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년놈들이 장난치나?’
실장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런 생각이었다. 대뜸 오디션 봐 달라고 해서 기껏 나왔더니, 뭐? 안 할 거였다고? 이런 인재를 놓칠 수는 없다. 그러나, 본인이 정 거부한다면야…….
‘내가 못 먹으면 남들이 못 먹게라도 해야 해.’
이런 보석을 두 개나 놓치는 걸로도 모자라 그걸 남이 꿀꺽 주워 먹는다고 생각하면 배알이 꼴려서 죽고 말리라.
그러니까, 매력적인 제안으로 두 사람이 연예인이 되게 하든가, 아니면 추악한 모습을 내보여 아예 꿈도 못 꾸게 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만 했다.
“그, 그럼 이렇게 하자. 최근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하나 할 예정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