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1화 〉NO.3H 여름방학 (171/218)



〈 171화 〉NO.3H 여름방학

실장의 끈질긴 권유 끝에 정우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그녀의 제안만이 그의 마음을 뒤집은  아니었다.

[스★타의 길]
오디션에 출전하라.
당신의 스타성을 뽐내라.
보상
참가 시 100 SP
우승  300 SP

“……퀘스트?”

이 세상은 게임을 모티브 삼아 만들어진 만큼 당연하게도 퀘스트니 뭐니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물론 퀘스트를하지 않아도 엔딩을 볼 수 있는바, 정우는 게임에서도 퀘스트를 본 적이 몇  없다.

하물며 현실에서는  한 번. 딱 한 번 등장했었다. 그마저도 게임에 있던 퀘스트를 현실에서 보여주었던 것이었고.

이번엔 아니었다. 게임에서도 본 적 없는 퀘스트. 그저 정우를 오디션에 끌어들이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듯한 퀘스트였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그러나 참가만 해도 100포인트, 우승하면 300포인트가 어디 개 이름인가?  년 내내 하루 세끼 12첩 수라상을 차려줘도 얻기 힘든 게 300포인트다.

‘또 힘들어지겠네.’

만일 정우가 오디션에 나간다면, 그리하여 우승이라도 차지한다면. 오락과 가십에 굶주린 사람들은 정우를 뜯고해체하여 맛볼 것이다.

그리되면 정우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며 다닌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 나가겠지. 애들과 사귀는 걸 비밀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만 보는 눈이 수백 개니까.

즉, 정우가 포인트를 얻으면 얻을수록 포인트를 얻기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래도 해야지.’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해야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 * *

녹화 당일.

아이돌이니 가수니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끼와 재능을 갖고 모인 아이들 수십이 녹화장에 모여 있었다.

서로 비슷한 재능을 지녔다면 분명 미래에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동업자가 될지언데 아이들은 벌써부터 서로를 경쟁자라 여기고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거기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딱 두 가지였다. 압도적인 재능이나 인맥을 지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나.

그냥 연예인 자체에 관심이 없는  끌려온 사람. 후자는 정우 혼자였다.

“다들 열심이네.”

“그렇지? 이걸 보니 너도 마음이 조금 변했어?”

“아니. 여전히 똑같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타인을 끌어내릴 생각을 가지게 하는 복마전(伏魔殿). 그게 바로 연예계였다.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고도 연예인을 꿈꾸려 한다면 그건 정신병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예슬과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벌써부터 인맥을 만든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했는지. 아니면 정우의 외모에 흥미가 동했는지 한 여자애가 다가왔다.

“저기, 너희들 사귀는 사이야?”

“그런데?”

“어… 와우. 화끈하네. 그런데 괜찮겠어? 연예인이 누구 사귄다는  돌면 돌 맞을텐데.”

“아이돌 할 것도 아니고 뭐…….”

“그럼 둘 다 가수 지망?”

이름 모를 그녀는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정우에게 다가오며 자신의 미모를 뽐내었다. 이해는 간다. 그동안 수많은 남자를 꼬셨으리라 짐작될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까.

정우 정도는 가볍게 꼬실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만 가지?”

“……뭐?”

그러나 정우와 예슬 두 사람 모두 그녀 정도의 재능이나 외모에는 간에 기별도  가는 존재였다.

가슴 크기로는 우림이에게, 외모로는 아름이에게 뒤쳐지는 그녀를 보며 정우는 손을 내저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을 줄 몰랐는지,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다른 아이들 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우와 예슬의 뒷담화를 시작한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번호순대로 입장하세요!”

그때, 촬영진이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긴장 담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어느덧 예슬의 차례가 되었다.

“갔다 올게.”

“잘해.”

“뭘, 내 바로 다음이 더 걱정해야 할걸?”

그녀의 말대로, 예슬은 대기실에서도 들리는 열창으로 심사위원 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아냈다.

그다음에 들어간 아이는 중압감에 의해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중도 탈락했다.

그 다음의 다음이 정우의 차례였다.

* *

‘시시하네.’

심사위원 역을 맡은 한채영은 출연진의 수준을 보고 한숨을 퍽퍽 내쉬었다. 마음에 드는 얘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신예슬인지, 성예슬인지 하는 얘는 노래 좀 부르는 듯했다. 몇 년 지나면 이 나라를 휘어잡는 대가수가 될 정도로.

 외엔 뭐…… 가다듬고 깎아내야 겨우 1인분 하는 흔해빠진 아이돌이 나올 법 싶었다.

‘이번에 나올 애는… 이건 또 뭐야.’

채영은 서류에 적힌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라는 문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빽이라도 있는 걸까. 그녀는 이런 식으로 실력 아닌 다른 수단에 기대는놈을 가장 싫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탈락시키겠다 다짐한 그녀는 들어오는 정우를 보고 곧장 평가를 내렸다.

‘마스크는 평범하고.’

그러나 그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얼굴이 아무리 잘생겨도 호감을 사긴 어려웠다. 채영은 마이크를 들어 정우에게 말했다.

“노래, 불러보세요.”

잠시 후 준비된 MR이 틀어졌다. 채영의 귀에 아주 익숙한 곡이었다. 바로 그녀가 만들고 부른 노래였으니까.

‘내 노래를 불러? 그것도 내 앞에서?’

자기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호감을 사려는 걸까, 그렇다면 잘못 판단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를 자기보다더 잘 소화해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편이니까.

설령 미국 빌보드 탑 가수가 와서 부른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좋은 점수를 주지 않으리라.

“네 소식이 들려오면─.”

‘오.’

첫 소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럭저럭 가수를 지망할 정도는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다음에 튀어나온 고음부에서.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그녀의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 사랑.”

‘목소리 뭐야…….’

목소리에 담긴 기교가 장난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당장 그녀와 비교해도 모자람 없을 정도. 아니, 그녀가 진다.

‘이게…… 이게 고작 고등학생이라고?’

거짓말. 말도  된다. 고등학생이 아니라 그녀를 가르친 스승이 젊어져 돌아왔다 해도 믿을만한 실력인데.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이런 천재가 뜬금없이 나타나는  말이나 되는가.

도의적으로 있어선 아니 될 일이다.

“……잘 들었구요. 저는.”

채영은 한참을 고민했다. 마음 같아선 떨어트리고 싶었다. 그녀의 추악한 질투는 정우를 절대로 올려보내선 안 된다 경종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심사위원은 셋. 그녀가 탈락시켜도 나머지 두 사람이 합격시키면 올라간다. 하물며 심사위원이 한  쓸 수 있는 골ㅡ든 합격권도 있지 않은가.

“합격…… 드리겠습니다.”
“저도.”
“저도 합격드리겠습니다.”

꾸벅.

정우는 감사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꾸벅이고 심사장을 나갔다. 그 뒤를 채영의 눈빛이 뒤쫓았다.

* * *

촬영은 계속됐다. 짧은 여름방학동안 무려 3화가 넘게 촬영됐고 방학이 끝나갈 무렵즈음에 1화가 방영됐다.

“정우야! 저기! 저기 너 나온다!”

“나도 보여.”

정우가 TV에 나온다는 소식은 예슬의 손을 통해 다른 아이들 모두에게 퍼졌다. 각자 집에서 시청하겠다고 말했으나, 은혜와 우림이는 굳이 정우네 집에 와서 시청하겠다 말했다.

“그럼 뭐야, 우리 정우 이제 연예인 되는 거야?”

“안 할 거야.”

“그럼 저긴 왜 나갔어?”

“예슬 누나가 나가 달래서.”

 말을 들은 우림이는 흐응∼ 하는 비음을 흘리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고개를 돌려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티비 속 정우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방송국 특유의 편집 실력이 가미된  노래는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리곤 했다.

본인이 옆에 있으면서도, 우림과 은혜 두 사람은 TV속 정우에게 반한 듯 얼굴을 붉혔다.

“와, 진짜 노래 잘한다.”

“예전에 노래방 갔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 연습했지. 연습.”

우림이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정우가재빠르게 반응해 변명했다. 정우의 말을 들은 우림이는 그냥 그의 미친 재능이 또 하나 발견되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티비에 집중했다.

티비 속 화면에는 보고 있기 낯부끄러운 문장들이 그를 수식했다. 한국의 프레슬리, 천의무봉, 역대급천재. 그런 단어들이.

 수식어의 주인공으로서, 솔직히 보고 있기 쪽팔렸다. 창피했다. 그러나 어쩔  없다. 방송국은 캐릭터를 치장하고 팔아먹는 곳이니까.

“학교 가면 난리 나겠네.”

“왜?”

“왜긴 왜야. 양다리도 모잘라서 여덟 다리 걸치는 놈이 연예인 한다고….”

“연예인 할 거 아니라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은혜가 답했다. 그녀 말이 맞았다. 정우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방송은 파격적인 반항을 불러들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 프로그램. 첫 방송부터 등장한 역대급 천재의 존재로 인해.

* * *

방학이 끝나고 개학 첫날. 정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원래 같으면 착각이라고 여겼겠으나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찰칵.

‘아예 대놓고 찍으시지.’

그가 들은 것만 벌써 열 번째 셔터 소리. 몰래 사진까지 찍는 와중에 시선이 착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박아는 아니었다.

다만  많은 시선이 호의적으로 다가온다는 게 놀랄 뿐이었다.

방학동안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던 신예도 같은 축구 동아리 애들에게 무언가를 들었는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오빠, 뭐 TV……에 나갔다면서요?”

“그렇지.”

“와. 그럼 이제 연예인? 뭐, 스타. 그런 거 되는 거?”

“그런  아니고.”

그러나  나이대 아이들에겐 길가다 우연히 찍혀 한 장면 나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는 법.

아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우는 이 잠깐 사이에 한정해서 아이돌 데뷔한 연예인 대우를 받았다.

그에게 흥미 없던 아이들도 급격히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선배. 안녕하세요.”

“어, 안녕.”

“다름이 아니라 선배랑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괜찮죠?”

당돌한 1학년. 주지연도 그러했다. 그녀는 대뜸정우와의 독대를 원했다. 모두의 마스코트 취급을 받는 지금 용감하기도 하게.

정우는 그녀의 그런 용감함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워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녀는 정우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일방적으로나마.

‘하긴, 얘는 그런 성격이지.’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은 성격. 그러기 위해 혈연 학연 지연 가리지 않고 모조리 사용하는 당돌한 히로인.

연예계에 진출한 애인은 그런 그녀에게 있어 아주 탐스러운 먹잇감이었으리라.

“저, 선배한테 관심이 있는데.”

커다란 자존감만큼이나 큰 자존심을 가진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와 사귀어도 모자라지 않다는 그런 자신감을.

“사귀지 않을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