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8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178/218)

〈 178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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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할 게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다 보지도 못할 동영상 수백만 개가 업로드되던 스트리밍 시대에서 제대로 된 UCC 사이트도 없는 문화 빈곤 시대. 게임이나 영화 모두 그의 심미안에는 5년 정도 뒤처져 있다.

그렇기에 정우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시대와 상관없이 큰 쾌락을 주는 섹스나, 섹스만큼은 아니지만 오래된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에는 책에 그리 흥미가 없었으나, 뛰어난 두뇌를 지닌 지금은 모르는 걸 알고 싶어하는 지적 호기심이 성욕만큼이나 발달 되어 있었다.

도서관에 도착한 정우는 곧장 안쪽 책장으로 향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것.

그리하여 가장 안쪽에서 재밌어 보이는 제목을 가진 책 3권을 챙긴 뒤 그대로 책상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흔히 말하는 공시생들이었다.

정우는 그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본 뒤 책을 펼쳤다. 책 내용은 중세시대 봉건제 귀족의 행동 양식과 그로 인한 전쟁사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였다.

역사, 정치, 전쟁과 심리학까지 포함된 지루한 내용이었고, 책을 쓰는 사람은 문학적 재미보다 사실적 가치를 추구했는지 그 문장마저 지나치게 담백했다.

책이 아니라 논문을 읽는 기분이었으나, 정우는 시간을 들여 그 책을 모조리 읽고 암기하는데 성공했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의 뉴런에 남은 책의 내용은 필요할 때마다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그에게 뛰어난 영감을 선사하리라.

살짝 열이 오른 머리에 정우는 곧장 다음 책을 펼쳤다. 독서에 불이 붙었다. 이렇게 된 이후론 책 읽는 일 자체에 흐름이 생겨 읽기 좋아졌다.

제 자리에 앉아 책 3권을 내리읽은 정우는 약간의 허기짐을 느끼며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 시, 점심시간이었다.

도서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학생들과 공시생들은 어느새 식사를 하러 사라진 뒤였다.

정우도 식사를 하기 위해 일어서려다가 옆자리 앉은 소녀를 보았다.

언제 앉은 건지, 책 열댓 권을 한 번에 쌓아놓고 이리저리 노트에 책 내용을 노트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열성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줄 알겠으나,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났다.

[마계언어집]

[중2병대사전]

[북유럽신화]

대부분이 공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러니까 판타지적 느낌이 강한 시간 때우기 용 책이었다.

공부할 여지가 전혀 없을 그런 책들.

그런 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공부하는 그녀에게 흥미를 느낀 정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약간 어려 보이는 티가 나는 게 고등학생은 아니었다. 잘 쳐줘야 중학생. 그래. 이런 책들에 흥미를 가질 중학생이었다.

‘나중에 이불 찬다.’

정우는 씨익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건지 그녀도 고개를 돌려 정우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곧장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방금전까지 재빠르게 책장을 넘기던 손은 멈춰 있었다.

이 나이대 소녀라면 당연, 성에 큰 관심을 갖기 마련이요. 이성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상황을 망상하기 마련이다.

그녀도 그리 했으리라. 미소년, 미남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러다 사랑까지 나누는 그런 망상을.

아쉽게도 정우는 그런 의도로 접근한 게 아니었기에, 책을 덮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근처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소녀는 아직도 책을 읽고 있었다. 읽은 책에서 곧장 무언가를 얻어내곤 노트에 끄적이고 있었다.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어리기에 할 수 있는 헛된 노력이었다. 그 싱그러움이 마음에 남았다.

* * *

다음 주.

정우는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전주의 소녀가 이번에도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섞어서.

과연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앞자리에 누군가 자리잡았다.

이전에 보았던 소녀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정우는 살짝 눈웃음 지은 뒤 그녀가 갖고 온 책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각 나라의 신화나 터무니없는 공상 과학책이었다.

정우가 소녀의 책 표지를 겉핥고 있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소녀가 슬며시 책을 들어 입가를 가린다.

“……안녕하세요.”

조곤조곤한 목소리. 도서관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성에게 말을 거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 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대로 무시할 수도 있었으나 그랬다간 이 소녀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가 되리라 생각한 정우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안녕.”

“……!”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책으로 얼굴 전체를 가렸다. 그리곤 정우에게서 관심을 떼고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새싹 같은 반응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도 어렸을 땐 저리 싱그러웠을 텐데.

나이 먹고선 저렇게 반응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너무나 부러웠다. 저 젊음이.

몸이 젊어지기는 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썩어버린 어른의 것이었으니까.

정우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집어든 책은 [북부대공 연대기]라는 제목의 판타지였다.

분명 저번 달에 1권이 나왔던 걸 봤는데 어느새 10권이 나온, 미칠듯한 집필 속도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그 집필속도의 비결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책을 펼쳤다. 과연 책의 내용은 정해진 클리세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흔하디흔한 내용.

이런 식으로 한 권 한 권 판매하는 요즘 시대가 아니라, 편당 결제에 어울리는 책이었다.

‘재미는 있는데, 내용이 너무 뻔해서…….’

편당 연재는 독자를 속일 수 있다. 아무리 빠르게 읽으려 해도 작가가 하루에 한 편씩 연재한다면 한 달에 한 권을 읽는 꼴이니까.

그러나 권당 연재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편당 나누어 읽었을 땐 눈치채지 못할 떡밥이나 내용의 허술함이 한눈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그런 단점을 무려 1주일에 책 한 권을 내는 집필 속도로 속이고 있다.

깜짝 놀랄 집필 속도였다. 그 속도만으로도 평생 먹고 살기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

힐끔­

“……?”

정우는 책을 읽다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을 느끼고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는 정우가 읽는 책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책을 내려놓으며, 정우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니?”

“네? 아무것도 아닌데요…….”

“그래?”

그렇게 대화는 단절되었다. 소녀는 아마 지금쯤 속으로 한숨을 퍽퍽 내쉬며 후회하고 있으리라.

그리 대답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정우도 저 나이때는 자주 그러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어른으로서의 배려를 보여줄까, 아니면 그녀가 며칠 이 기회를 날려버린 걸 이불 뻥뻥 차면서 후회하게 내버려둘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까.’

정우는 그러했다. 실실 웃으며 책을 들여다보았다. 책을 읽는 건 아니었다.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인 척 다시금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리라.

정우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갈대와 다름없으니.

꿀꺽, 목울대가 움직인다. 정우는 다시금 책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본다.

“왜?”

“그, 그 책…… 재미 있어요?”

“이 책?”

소녀가 물어온 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정우는 책 내용을 훑어본 뒤 생각했다.

전생에서 자주 접했던, 전형적인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양산형 판타지로는 닳고 닳은 정우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었다.

“으음…… 그냥 볼만하네.”

“저, 정말요?”

“그래. 물론 3권밖에 안 됐는데 똑같은 내용인 거 같아서 그 부분은 조금 그래.”

“아…… 그, 그치만 일주일에 한 권 쓰는 걸요…….”

“너도 이거 보니?”

“……네.”

소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책을 봤냐니? 아예 직접 썼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한눈에 반한 남자에게 그리 좋지 못한 평을 받았기에, 자랑할만한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기에.

그 책을 쓴 게 자신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었다.

“으음…… 그나마 봐 줄 만한 건 이 책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거?”

“처녀작인 게 왜요……?”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성장이라, 글쎄.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책을 쓰는 건 즐겁긴 했으나, 돈을 벌고 일이 되자 즐거운 감정보다 지루하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더 끓어 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필력을 갈고 닦을 계기를 손에 넣었다.

“……마, 만약에요.”

“응.”

“그 작가 신작이 나오면 보실 건가요?”

“글쎄다. 도서관에 들어올 정도로 유명하면 또 보지 않을까?”

“정말이죠?”

소녀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우는 그러할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 책의 저자가 눈앞의 소녀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하고.

“저기, 오빠. 몇 살 이세요……?”

“고등학생인데.”

“어느 고등학교에요?”

“저쪽에 있는 고등학교.”

“네…… 감사합니다. 책 재밌게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소녀는 자기가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의 저자를 살폈다.

W.W(Week.Write)

정우는 알지 못했으나, 그건 눈앞에 있는 소녀의 이름. 주연재의 이름과 주간 연재에 가까운 집필 속도를 합쳐 만들어낸 이름의 이니셜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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