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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179/218)

〈 179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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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말이지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여름방학이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10월이 지났다.

그러니까, 모든 수험생들이 울고 웃는 수능이 왔다.

예슬과 자희도 수험생이었다.

“나…… 어차피 대학 안 갈 생각인데, 수능 봐야 하나?”

“보세요. 수능 한 번 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치마아안…… 우리 수능 볼 때 다른 애들은 쉬잖아…… 우리만 빼놓고…….”

“당일 날 초콜렛 드리러 갈 테니까.”

“정말?”

공부 하나 하지 않고서 징징대는 예슬을 뒤로 하고, 정우는 자희에게 어느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보냐 물었다.

“나? 근처에 금수고.”

“나도∼.”

다행히 두 사람 모두 같은 고등학교에서 수험을 보게 되어, 둘 중 한 사람을 바람 놓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정우는 자신이 수험 도시락까지 싸주겠다고 약속하며 두 사람을 격려했다.

물론 둘 다 수능을 걱정할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성공할 대로 성공해 온갖 공연에 불려 다니는 밴드계의 천재나 수능 만점이 예약되어있는 진짜 천재 앞에서야…….

수능 당일.

수능이란 사실 본인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격하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두 사람의 부모님은 그렇지 않은 듯 교문에 얼굴 하나 비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도시락 잘 먹을게.”

“고마워.”

“맛있게 드세요.”

정우는 두 사람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서 남은 시간 무얼 하며 보낼지 생각했다.

그렇다.

수능 날은 수험생들이 가장 바쁜 날이지만, 수험생 아닌 다른 학생들은 학교조차 가지 않는 휴일이었다.

‘고등학생이면 원래 오늘 같은 날에도 공부해야겠지만…….’

정우는 그리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리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게 나올 게 뻔했고.

‘뭐 하고 놀까.’

은혜를 부를까 싶었으나 그녀는 요즘 공부하느라 바쁘다. 뒤늦게 정우와 같은 대학에 가겠다며 부족한 성적을 채우기 위해 휴일에도 공부하는 거였지만.

‘우림이는 약속이 있다고 했고…… 마리도 일하는 시간일 테고. 1학년을 불러 놀기에도 좀…….’

정서적으로 맞는 2학년들은 모두 선약이 있었고, 그나마 친해진 1학년을 부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나란 놈은, 같이 놀 친구도 없구나.’

그 사실에 상당한 우울감을 느끼며 집으로 발을 옮겼다. 이 시대 사람들은 쉬이 발 들이지 않을 골목길을 요리조리 지나다니며.

“……으라고.”

“말귀를 못 알아…….”

그리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정우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포착했다.

대로변에 CCTV 하나 없는 이 시대에 골목길이란 양아치들의 사냥터요, 온갖 범죄자 군상이 모이는 장소였으니.

정우가 싸움을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싸움에 끼는 일 자체가 손해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모른 척 지나가려 했다.

“도, 돈 이거밖에 없어…… 나머지는 심부름할 돈이라…….”

어디선가 자주 듣던 목소리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주로 들었던 목소리.

그러니까 정우 앞에서 꼼지락거리던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일면식 있는 사람이 곤경에 빠져 있는데 모른 척하고 지나갈 정도로 매정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정우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여자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도서관에서 봤던 소녀를 핍박하고 있었다.

두 명이 그리 삥을 뜯는 동안 남자 둘이 주변을 보며 망을 보고 있었고, 망을 보던 그들은 정우를 보고 인상 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뭘 꼬라봐.”

“안 꺼져?”

쭈구려 앉아 침을 찍찍 생산해내던 인간 히드라리스크들이 고개만 처들어 정우를 노려본다.

빈틈투성이다. 자신이 얻어 맞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않는 자세. 정우는 하하 웃으며 얘기한다.

“쟤랑 아는 사이라서.”

“아, 뭐야. 오빠였어? 진즉에 말씀 하시지.”

양아치 중 한 사람이 일어나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걸친다. 정우는 그의 손목을 잡으며 이야기한다.

“여기 CCTV도 있는데. 그냥 보내주지?”

“뭐래, 여기 카메라 없거든? 우리가 이 짓을 몇 번이나 했는데…….”

“진작 얘기해주지.”

그 말을 들은 정우는 순식간에 양아치 둘을 제압했다. 그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져 뭐라 묘사할 수도 없었다.

“어?”

“뭐야. 니들 망이나 보라니까…….”

두 사람을 순식간에 쓰러트릴 수는 있어도 소음마저 막을 수는 없었기에, 안쪽에서 삥을 뜯던 양아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손을 흔들며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오랜만이네?”

“네? 아, 안녕하세요…….”

“지금 위급한 상황이니? 도와줘야 해?”

“어, 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아니, 넌 뭔데 우리를 무시해 씨발. 남자라고 안 맞을 거 같냐?”

양아치가 다가왔다. 그리고 쓰러졌다. 일련의 행위를 한 번 더 반복한 정우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냐?”

“아, 네…… 감사합니다.”

소녀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정우를 바라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을 두 눈으로 목도한 그녀의 눈빛은 크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정우가 생각하는, 비일상을 향한 일반인의 동경은 아니었다. 자신의 창작관을 넓힐 호기심의 편린이었다.

“이런 길로 다니면 안 되지.”

“이 근처가 집이라…….”

“그리고 그렇게 도발해도 안 되고.”

“제힘으론 돈 벌어본 적도 없는 양아치들이 쉽게 돈 벌려는 게 아니꼬와서…….”

“너 생각보다 쎈 성격이구나……?”

눈앞의 소녀도 스스로 돈 벌어본 일은 없을지언데, 그녀는 마치 사회인이라도 되는 양 그리 말했다.

그 사실에 정우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일단 나가자. 다른 놈들 또 오겠다.”

“네.”

골목길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곧장 제 갈 길로 발을 옮겼다. 그 사실에 정우는 아쉬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구해줬는데, 뭐 보상도 안 해주나?”

“아…… 그러네요. 돈 필요하세요?”

“구해주고 돈 뜯으면 아까 게네들이랑 다른 게 뭐야?”

“그것도 그러네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신이 없어 막 걸음을 옮기긴 했으나 그녀도 내심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였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머리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을 끄집어냈다.

“그럼…… 저 심부름 하고 나면 저희 집에서 라면이라도 드시고 가실래요?”

“……지금 꼬시는거야?”

“네.”

당돌한 그 모습에 정우는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심심할 틈은 없어 보였다.

* * *

“다녀왔습니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어요….”

소녀의 집은 생각보다 넓고 깔끔한 빌라였다. 물론 구석진 곳에 있기에 아까 전처럼 양아치들의 소굴이 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아, 무슨 라면 드실래요?”

“라면 잘 끓이나 봐.”

“네, 뭐… 어느정도는 해요.”

“그럼 자신 있는 걸로, 아무거나.”

“네….”

소녀는 그리 말하며 곧장 냄비에 물을 올렸다. 정우는 집안을 훑어보았다.

화목한 가정에 있을 법한 가족사진은 단 하나도 없고, 넓은 집에 방문이 전부 닫혀 있었다.

책상이나 컴퓨터, 자식이 쓸법한 물건들은 한 개씩밖에 없었으니 그녀가 외동이란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방 3개가 동시에 쓰이고 있는 걸 보니 그녀의 부모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다 끓였어요. 와서 드세요.”

“아, 그래.”

정우는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라면 하나는 자신 있다는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라면은 완벽한 황금비율로 끓여져 있었다.

라면이라는 게 맛없게 만드는 게 어렵긴 하지만, 그만큼 맛있게 만드는 것도 어렵다는 걸 생각하자면 그녀가 얼마나 많이 라면을 끓여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김치도 드세요….”

“그래.”

그녀가 건네는 아삭한 김치를 씹어 먹으며, 정우는 아직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국물 한 숟가락 떠 마시며,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근데, 너 이름이 뭐였지?”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네요. 주연재라고 합니다. 오빠는요?”

“하정우.”

“정우 오빠…. 제가 초대해놓고 이런 거 물어보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혹시 걸레세요?”

“……뭐?”

“아, 아니. 기분 나쁘게 들리셨다면 죄송하지만…… 그렇잖아요. 처음 보는 여자애 집에 오시질 않나…… 양아치들을 때려 눕히질 않나…….”

우물쭈물하며 그리 말하는 연재를 보고서 정우는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여겼다.

하기야, 싸움 잘하고 발랑 까진 여자가 일진 양아치라는 인식이 있는 건 원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정조가 역전된 이 세상에서야 자신이 그 입장이 된 것뿐이었다.

그리 생각한 정우는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마치 옆 섬나라 요망한 중학생처럼.

“그래에? 그럼 넌 그 양아치한테 뭘 바라고 집에 데리고 온 건데?”

발랑 까진, 그러니 처녀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왜색 짙은 경서에서나 나올법한 무언가를 바랐다.

그러나 그걸 수줍은 사춘기 소녀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묻는다면 누구나 고개를 내저으리라.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닫은 연재를 보면서, 정우는 배시시 웃었다.

“맞아. 그거 하러 왔어.”

“네!?”

“네가 생각하는 그거, 하러 왔다고.”

정우는 그리 말하며 겉옷을 한 장 벗어 던졌다. 그 노골적인 행동에 연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가, 갑자기요……?”

“뭐가?”

“아무리 제가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이렇게 갑자기…….”

“나는 그냥 더워서 벗은 건데?”

“……아.”

그 말에 연재의 얼굴이 급속도로 식었다. 정우는 쿡쿡 웃으며 그릇을 정리했다.

그런 다음 거실에 앉아서 가장 가까운 방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의 감이었으나, 보통 이런 구조의 집에선 저런 방이 자식의 방이었다.

“저기 방에 들어가 봐도 돼?”

“네? 아…… 자, 잠시만요.”

연재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달려와 자신의 방문을 살짝 열어 안을 훑어보았다.

그러고서야 보여줘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너무 어지럽히지는 마세요….”

그 말을 남긴 그녀는 정우에게 스스로의 방을 허락했다. 안으로 들어간 정우는 그녀의 방안을 훑어보았다.

책장에는 도서관에서 그녀가 보던 신화책 비스무리한 책들이 잔뜩 있었다.

책상 위엔 무언가 끄적인 노트가 잔뜩 있었고, 정우가 조심스레 그 내용을 확인하려 하자 연재는 그 앞을 막아섰다.

“내, 내용은 보지 마세요.”

“……그래. 알았어.”

연재를 지나쳐 책장으로 다가간 정우는 책들을 훑다가 판타지 소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우가 이전 도서관에서 보던 [북부대공 연대기]였다. 중학생이 갖고 있어서 이상할 건 없었으나, 수십 권이 넘는 걸 전권 소장하고 있다는 건 조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엔 대여방이라는 싼 가격에 소설을 빌릴 수 있는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 한 권 살 돈으로 수십 권을 빌려볼 수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라도 중학생 용돈으로 수십 권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무언가가 이상했다.

“이 책, 좋아하나 보네.”

“네? 네…… 조, 좋아해요.”

“얼마나?”

“어, 음…… 그냥 보통이요.”

정우는 그리 물으며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아직 읽지 못한 가장 최신 권이 그곳에 있었다.

책을 펼쳐 보자, 무언가 이상함을 발견하고서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 발 저린 듯 안절부절못하며 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책…… 발매일이 내일인데?’

아직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책이 그곳에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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