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0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180/218)

〈 180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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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발매일뿐만 아니라 이상한 점은 곳곳에 있었다. 그녀의 방안에는 공부에 그리 도움 되지 않을 잡학서적이 여럿 존재했다.

그 수가 상당해서 중학생 용돈으로 모은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의 부모님이 자식이 원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사주는 상냥한 부모님일 수도 있고, 그냥 금수저라 제 용돈으로 샀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녀에게선 보살핌 받고 자란 아이들 특유의 생기가 없다. 악과 깡, 약간의 독기만이 보였다.

금수저에 화목한 가정이라면 나타날래야 나타날 수가 없는 성격.

홀로 방구석에서 책이나 읽으며 망상의 나래를 펼쳐나간 아이들이나 가질법한 성질.

‘그리고 다른 판타지는 하나도 없이, 저 책만 있는 것도 이상하고…….’

북부대공 연대기가 재밌는 책이기는 하지만, 소장가치가 높은 건 아니다. 명작이라 하기엔 부족한 평작.

하물며 권수도 많아서 중학생 용돈으로 소장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설마…….’

그리고 이만한 정보가 모이면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북부대공 연대기의 작가다.

그렇다면 모든 퍼즐이 들어맞는다. 같은 나잇대 양아치들에게 돈 한 푼 벌어본 적 없는 애송이라 말했던 점.

도서관에서나 집에서 공부에 별 도움 안 되는 잡학서적만 잔뜩 읽고, 구비하고 있는 점.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신권이 그녀 집에 있는 것까지.

‘으음…… 작가는 또 처음 보네.’

현직 소설가. 판타지 소설가를 소설가라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웹소설이 대중화되지 않은 이 시대.

중학생이 제힘으로 출판했다는 일 자체가 업적이라 봐도 되는 일이었다.

문장력으로는 순문학에 견줄 수 없어도 시장성이라면 어떨까. 수많은 작가중 그녀 나이대에 글로 돈 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작가(?家)였다.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풍부한.

“이거, 읽어봐도 돼?”

“네? 아…… 네.”

정우는 아직 발매되지 않은 최신권을 읽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무언가 짐작을 했는지 안절부절못하며 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촤르륵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대강대강 훑는다. 그래도 될 정도로 내용에 깊이가 없다.

물론 내용에 흠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중학생다운 넓은 상상력이 엿보이며 부족한 문장력을 숨기기 위해 문장을 단결하게 쳐내는 필력은 그녀의 재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 예상이 가는 게 문제지…….’

탁, 책을 접은 뒤 책장에 다시 꽂아 넣는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책을 덮자 연재의 얼굴이 굳는다.

“……재미, 없나요?”

“재미 없냐고?”

“네, 저는…… 재밌던 거 같아서.”

“재미없는 건 아닌데 내용이 예상이 가서, 안 읽어도 되겠다 싶네.”

“……그럼 이 소설이 어떻게 완결날 거 같으세요?”

“글쎄? 초반에 나왔던 것처럼 주인공이 세계 정복하고 끝나지 않을까?”

“─네? 그런 내용이 있었어요!?”

‘작가인 네가 모르면 어떡해.’

정우는 혹여나 자신이 잘못 짐작한 걸까 생각하며 5권의 내용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중에 주인공이 지나가듯 이야기했던 말도.

“여기서 주인공이 언젠가 세계를 정복하겠느니 뭐니 말하잖아.”

“아, 아니 이게 왜…… 권수가 많아서 까먹었었네요. 다른 사람들도 까먹지 않을까요?”

“보는 사람들은 다 알걸?”

부들부들 떨며 책을 읽는 그녀를 보며 정우는 대강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쓴 책을 읽지 않는 타입이겠지. 오타 수정 같은 일은 편집부에서 전부 해줄 테니까.

오타 같은 거에 일일이 신경 쓰면서 책을 쓴다면 일주일에 한 권을 내는 스피드는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런 중대한 오류가 생겨도 알지 못하고 지나간 거다. 내용상 이건 주인공의 부하가 주인공에게 간언하는 내용이지만…….

‘편집 실수인지 일부러인지,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돼버렸네?’

웹소설도 아니고, 이제 와 수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고작 판타지 소설 하나에 낸 오타 때문에 책을 전량 회수하는 일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고.

그녀가 원래 어떤 엔딩을 준비해놨건, 전면수정해야 하리라.

“어, 어떻게 하지…….”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기, 언제쯤 돌아가실 생각이세요……?”

“네가 초대해놓고 내보내는 거야?”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뭔데?”

“……그런 게 있어요.”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어서 빨리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그녀를 내몰았다.

그러나 정우는 쿡쿡 웃으며 그대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나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해. 아니면 나한테 보이면 안 될 일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심심하실까 봐.”

“뭔데? 숙제? 나 이래 봬도 1등급 나오는데. 공부 봐줄까?”

“진짜 괜찮아요… 그냥, 그냥 나가주세요.”

“왜? 네가 작가인 게 들키면 안 돼서?”

“네…… 뭐라고요?”

순간 적막이 내려앉는다. 정우는 아까 전 읽었던 최신 권을 들고 와 펼치며 이야기했다.

“이거, 출간일이 내일로 되어 있는데. 너는 어떻게 벌써 얻었어?”

“……동네 서점 아주머니가 구해다 주셔서.”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소설책은 하나도 없고 이것밖에 없을 정도로 이 책을 좋아하면서… 이 책으로는 대화를 한 번도 안 하네?”

“아─.”

그 말에 그녀가 입을 꾹 닫는다. 그야 당연하다. 그녀는 애독자가 아니라 작가.

그녀의 말은 오피셜이요, 세계관을 이루는 근본이 된다. 그렇기에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으리라.

만일 그녀가 이 책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자신처럼 책에 흥미를 보인 사람에게 어떻게든 책의 장점을 어필할진대, 그녀는 그런 적이 없다.

‘말을 오래 하면 자기가 작가인 티가 날 테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이유로 들킬 줄 몰랐는데.”

“나도 작가님을 볼 줄은 몰랐네. 사인받아도 돼?”

“저, 사인 같은 거 없는데요.”

“그래? 아쉽네.”

“……하나 만들죠, 뭐.”

그녀는 태연하게 침대 밑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쓴 책의 최신 권이 들어 있었다.

작가라고 여러 권 받은 모양이었다. 제 돈으로 구매했다기엔 너무나 많은 양이었고.

“자…… 여기요.”

책 앞장에 그녀의 필명인 W.W가 그려져 있었다. 정우는 그 필명을 보고서 의미를 물었다.

“왜 이런 필명으로 지었어?”

“제 이름이 주 연재니까요… 주(Week) 연재(Write). 줄여서 더블더블유…….”

더블더블유D.W

DW는 뭔가 유치하다고 느껴 WW로 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필명에 자신의 이름이 담겨 있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듯해서.

“대단하네…… 그 나이에 글써서 성공하고.”

“별로요… 돈 벌어서 양아치한테 뜯기는데요 뭘.”

그녀는 돈을 벌게 되면 어른처럼 될 줄 알았다고,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는 사회인이 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부모의 보호를 받는 미성년이었다.

돈을 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양아치에게서 벗어날 힘을 주지도 않았다.

“그거야 뭐, 주먹은 가깝고 법은 머니까?”

“인생 말아먹은 쓰레기들한테 제 돈 한 푼 뺏기는 것도 아까운데, 감옥에 보내는 것도 아까우니 그냥 사형시켰으면 좋겠어요.”

“엄청 센서티브하네.”

정우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아까 전 그녀가 꺼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소설이 어떻게 끝날 거 같냐는 이야기였다.

“글이 잘 안 써져?”

“……네. 예전처럼은요.”

“옛날엔 어땠는데?”

“옛날엔…… 쓰는 게 좋았어요. 재밌고, 쓰려고 생각하면 글이 제멋대로 튀어 나와서, 하루에 노트 몇 권이고 쓰고 그랬는데 요즘은…….”

“요즘은?”

“요즘엔 겨우 끌어내야 하루에 노트 반 채울까말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노트를 가리켰다. 얇은 노트기는 했다. 100장쯤 안 되어 보이는 노트.

그러니까 그녀는 예전에 노트 수백 장 어치 소설을 썼단 말이요, 지금도 하루에 50장 가까이 써내려가고 있다는 뜻이랬다.

‘사람인가?’

손목이 걱정될 정도의 집필 능력이다. 공부도 그렇게 하면 수능 만점 맞고 대학 프리 패스를 얻을 수 있을 정도라 느껴진다.

“소설은 어떻게 쓰는데?”

“집에서 써요…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주로 써요. 쉬는 시간에 쓰면 애들한테 걸리니까 쉬는 시간에는 교과서 같은 걸 읽고…….”

“그리고?”

“집에 와서 숙제 같은 걸 한 뒤에 자기 전까지 써요. 보통 새벽 1시나 2시, 늦으면 네 시까지도 쓴 적 있어요.”

그녀의 인생은 글쓰기 그 자체였다. 이제 그녀에게서 글쓰기를 떼어놓기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젊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네 말은 즉, 예전보다 느려졌으니 기량이 떨어진 거 같다. 이거네?”

“네…….”

“아니야. 넌 지금도 잘 하고 있는 거야.”

“……네? 제가요?”

“그래.”

정우가 판타지 소설을 써본 적은 없다.

그러나 글이라면 써봤다.

스킬의 힘이지만 대가(大家)의 영역에 오르기도 했다. 글쓰기라면 세계 최정상의 작가가 오더라도 꿀리지 않는다.

“글쓰기란, 하물며 장편의 글쓰기란 마라톤이야. 연재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사흘 내내 진행되는 초 장거리 마라톤이 있다고 해보자.

어제 100km를 뛴 선수가 오늘 101km를 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인체는 굉장히 불합리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전력을 내면 며칠 내내 쉬어야 한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글쓰는 시간을 줄이고 인풋을 늘려야만 했다.

“어디 보자…… 판타지 작가면…….”

그리고 작가끼리의 토론은 어지간한 휴식보다 더 도움이 되곤 한다. 같은 업계의 사람과,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정우가 아는 판타지 작가는 없다. 그러나 그가 그 누구보다 뛰어난 판타지 작가가 되어줄 수는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해볼까.”

소설을 대필해줄 수도 있다.

그녀에게 플롯을 만들어줄 수도 있고.

그러나 정우는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정답만 있는 세상이 정답이지는 않기에.

“……이건?”

“잠깐 써봤어. 아예 다른 판타지인데…….”

빌딩이 가득한 콘크리트 숲.

흡혈귀.

그리고 사냥꾼.

동서양 가릴 거 없이 흔히 등장하는 어반 판타지, 사춘기와 중2병을 자극하는 소재.

그 플롯을 본 연재의 눈빛이 반짝인다. 소재는 누구나 떠올릴 법 하다.

그러나 그 소재를 이용해 만든 플롯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면?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연성된다면?

“이거, 써볼래?”

“네!? 아니, 그게 무슨…….”

“너랑 나랑 이걸로 글을 쓰면서 서로 비교하는거야… 재밌겠지?”

“그, 그게 그러니까…….”

재밌을 거 같다. 그저 그 이유였다. 그녀가 이를 수락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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