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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183/218)

〈 183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 * *

“으아아아! 개꼰대 새끼들…… 나가 뒤져!”

쪼로로록, 예슬이 술병을 기울였다. 작달막한 술잔에 술이 담긴다.

그녀는 거침없이 그 술을 들이켰다. 쓰다. 그러나 인생은 그보다 더 썼다.

“좀 봐주지! 젊잖아! 천재잖아! 음악계를 이끌어갈 슈퍼스타인데!”

“시끄러. 조용히 먹어.”

“자희야! 너까지 이러기야? 어! 친구끼리 이래도 돼!?”

“쪽팔려서 너랑 친구 해주기 싫으니까, 닥치고 마시라고.”

“친구라고 있는 게 이딴 년 하나라니! 성예슬 고등학교 질같이 다녔구나!”

자희는 한숨을 퍽퍽 내쉬며 안주를 찍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팍팍 박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예슬이 TV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뮤지션이요, 두 사람이 시선을 확 끄는 미녀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변엔 이제 막 민증 잉크가 말라서 술잔을 기울이는 만 19세 청년들이 수두룩했다.

성인이 되었다는 흥분감과 처음 마셔보는 술기운에 두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 같이 노실래요?”

“아뇨. 가세요.”

“아, 네…….”

다가왔던 남자는 거절 당한 게 자존심 상했는지 혀를 차며 금세 사라졌다.

이런 장소에선 눈코입만 달려 있어도 여자가 말을 걸어주기에, 남자들이 먼저 여자에게 말을 거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으나…… 두 사람에겐 관계없는 일이었다.

“아, 정우한테 전화할래…….”

“술 처먹고 그런 짓 했다간 정떨어진다.”

“뭐 어때∼ 아아, 정우랑도 술 먹고 싶었는데…….”

“미성년자잖아.”

“그러니까 안 데려왔지!”

예슬은 그리 성질을 부리며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임에도 깨어나 있었는지 정우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정우야! 나야!”

[술 먹었어? 전화기 너머에서도 술 냄새가 나네]

“뭐? 거짓말. 술 냄새나?”

[응]

“아하하하!”

예슬은 웃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정우에게 설움을 터트렸다. 정우는 성자나 다름없이 그 모든 걸 받아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이런, 우리 예슬이 슬퍼서 어째? 우쭈쭈. 오빠가 안아주리?]

“네가 나보다 연하잖아!”

[지금 하는 꼴을 봐. 누가 연상인지 원]

그 말에 예슬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한 마디 물었다.

“……정말 안아줄거야?”

[오빠라고 부르면]

“오빠.”

[집으로 올래? 술은 있는데]

“갈래!”

예슬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곤 자희를 바라보았다. 전화통화 소리가 컸기에 그녀도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만 마시고.”

“빨리 마셔!”

자희는 한숨을 퍽퍽 내쉬며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곧장 정우네 집에서 2차를 진행했다.

술 먹고 하는 섹스는 몽롱했다. 하다가 어지러워 토할 뻔했다.

* * *

방통위의 경고를 받고 근신 처분된 예슬이 징징대는 걸 받아주며 정우는 겨울방학 내내 집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연재가 인터넷에 연재하던 작품이 정식으로 출판하게 되어, 시간이 남는 겨울방학에 몰아서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 이 조건을 받아주는 데가 있을 줄이야…….’

정우는 연재와 같이 연재하는 게 아니라면 출판하지 않겠다 말했고, 한 출판사에서 맨 뒤 외전 짜투리로 연재의 글을 첨부하는 식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책 저자는 정우와 연재 두 사람이 되었으나 정우가 귀찮다는 이유로 필명을 제출하지 않아 결국 연재만이 저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퇴고를 하지 않았다던가, 생각 없이 대충 썻다고 치고 넘어가기에는 지나치게 큰 필력 차이.

금세 연재와 정우가 쓴 부분을 파악하고, 연재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연재가 쓰는 부분은 재미가 없다고, 아예 읽지 않고 덮어두는 사람도 있었다.

출판사나 메일을 통해 그녀에게 악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인터넷에 책 뒷부분은 쓰레기라고 리뷰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심지어는 연재가 연재중이던 북부대공 연대기까지 싸잡아 쓰레기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니…….

그녀가 받을 정신적 충격은 이루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괜찮아?]

“……네, 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까요.”

사실이기도 하고, 그 말을 감추며. 그녀는 애써 괜찮은 척 안부를 전했다.

‘절필할까…….’

그러나 속은 그렇지 않았다. 겉으론 보이지 않는 부분.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점차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다. 때려치우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글 하나 못 썼다고 대역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가?

그런 암울한 생각이 그녀를 지배했다. 우울함이란 눈덩이와 같아서, 굴리면 굴릴수록 커져만 간다.

그녀 마음속 대부분이 눈 덮인 모양이었다. 삶이 너무나도 냉랭했다. 이불을 꽁꽁 싸매고 보일러를 켜도 쌀쌀했다.

그녀의 그런 온도를 정우도 느낀 모양이다. 정우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라멘 먹고 싶은데]

“……네? 네, 오세요. 해드릴게요.”

[라면 말고 라멘. 나와. 내가 잘하는 데 데려다줄 테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지금부터 너네 집 갈 거니까 씻고 준비해라? 10분이면 도착해.]

“저기, 오빠? 그러니까 저는─.”

정우는 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연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금세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10분. 샤워를 마치고 머리까지 말리기에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정우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으니, 그녀는 샤워를 시작했다. 그녀가 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을 때, 정우가 도착했다.

그가 말했던 대로 10분이 딱 지났을 시간이었다.

* * *

연재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정우는 갑자기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라멘 안 끌리는데, 다른 거 먹을까?”

“……아무거나 먹어요.”

“그래? 뭐 먹지?”

“어, 음…… 국밥 어때요?”

“국물 있는 건 별로.”

“그럼 고기?”

“굽기 귀찮아.”

“제가 구워 드릴게요.”

“너 고기 잘 구워?”

“구워본 적은 없지만…….”

“구워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정우는 그리 말하며 계속해서 말을 바꿨다. 라멘에서 냉면, 냉면에서 고기, 고기에서 햄버거, 햄버거에서 다시 처음에 거절했던 국밥으로.

대체 뭐가 먹고 싶은 건지, 메뉴를 관통하는 주제도 없었다. 일식, 양식, 한식, 국물 있는 것, 국물 없는 것.

끝에 가서는 장난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정우의 행동에 슬슬 짜증이 나려는 그때,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뭐가요?”

“너 말이야, 오늘 뭘 할 계획이었어?”

“그야 뭐, 집에서 글이나 썼겠죠.”

“그렇지만 내 한 마디에 계획이 틀어졌지. 네 생각은 내 한 마디보다 가볍다는 뜻이야.”

어쩌라는 건지, 그녀는 생뚱맞은 말을 하는 정우를 살짝 째려보았다.

정우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 말이 그리 무겁디?”

“네?”

“네 행동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무겁더냐고.”

“……아뇨.”

무겁지 않다. 라멘 먹자고 부른 주제에 라멘은 커녕 뭘 먹을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정말로 가볍다. 생각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어찌보면 멍청해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래. 다 똑같아.”

“……다른 사람들이요?”

“그래. 너한테 악플을 남긴 사람들. 네 소설이 재미없다고 리뷰를 쓴 사람들. 모두가 그리 깊게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야.”

아주 가볍게 휘두른 말에 상처 입은 사람이 듣기엔 살짝 빈정 상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듣다 보니 정우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지금 걱정해주는 거예요?”

“아, 들켰나?”

“……허접해.”

“심한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접한 사람들의 행동을 똑똑하고 복잡한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선천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연재도 그러했으리라.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데도 퍽퍽 가슴에 틀어박히는 대못에 고통스러워했으리라.

“멍청해요. 그런 거……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인데.”

“아는 거랑 이해하는 건 다르지.”

“똑같아요. 제가 바보도 아니고.”

“그 바보한테 상처 입었으니까 하는 말이지.”

“……티 나요?”

“너도 내 나이 먹어봐라. 한눈에 보이지.”

두 사람이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다는 걸, 연재는 입에 담지 않았다. 고작 2살 차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우의 특별함을 깎아내릴 순 없었으니까.

정우는 특별했다. 뭐가 특별하냐면, 제 나이에 맞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있었다.

항상 곁에서 관찰하고 싶어진다. 그와 같이 있으면 영감이 솟아난다. 아니,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밑바닥 없는 그릇에 무한한 영감이 떨어진다. 다듬으면 좋은 글이 될 영감도, 바로 갖다 버릴 쓰레기 같은 영감도.

모두 그녀의 양분이 되어 그녀를 자라게 한다. 그러나 부족했다. 이 정도로 정우를 따라가기엔…….

“오빠.”

“왜?”

“저, 글 좀 가르쳐주세요.”

“글을?”

“네.”

연재는 결심했다. 바보 같은 독자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말자고.

아무 생각 없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고.

그들은 자기 주관이 없다. 멍청하다. 그래서 그녀가 새로이 발전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를 칭송하고, 그녀의 소설을 탐독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빠른 길은 글을 배우는 것이다. 누구에게?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여기에 있지 않은가. 천재가 한 명.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

그녀의 양분이 되어줄 대종사가 여기에 있었다.

“감사합니다.”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그게 무얼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돈일까? 아니다. 정우는 그녀에게 그런 걸 바란 적 없었다.

혹여나, 진짜 저급한 라노벨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그녀 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네가 쓰고 있는 글, 완결해.”

아니었다.

* * *

그녀는 거의 일주일에 한 권 분량의 글을 쓰고 있었다. 다른 작가들의 출판 주기가 두 달에서 세 달, 느리면 반년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빠르다.

다른 작가들이 1권 쓸 때 그녀는 8권. 8권짜리 이야기를 구상했다면 남들이 1권 쓸 시간에 완결을 낼 수 있다.

이건 상업적으로 엄청난 재능이다. 그녀의 책이 다른 책에 비해 절반밖에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여덟 배나 되는 속도로 출판해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한 편을 쓰는 미래의 웹소설 작가도 시간에 쫓겨 무너져 내리곤 했다.

그녀도 지금부터 대비해야 했다. 하루에 한 편.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게.

‘상상력은 총알과도 같다…….’

그녀가 하는 행위는 총알을 연사로 발사하는 행위였다. 아무리 많은 총알을 쌓아놔도 그리 쏘아대면 금세 바닥을 보이게 되어 있다.

하물며 그리 효과적이지도 못했다. 정우는 총알 갯수를 줄이고 화약을 하나로 집중하라는, 선택과 집중을 종용했다.

‘다듬는 거야.’

정우의 제안을 들은 연재는 사흘 밤낮을 새워가며 쓰고 있던 북부대공 연대기를 완결냈다.

이제 이걸로 그 소설은 끝이었다.

지금은 쓰고 있는 소설을 다듬는 게 중요했다.

‘그래, 내 까짓 게 뭐라고…… 오빠가 한 줄 쓸 때 다섯 줄씩 쓰려고 해?’

그동안 그녀는 항상 하던 대로 글을 썼다. 그러니까 하루에 A4 용지 50장쯤 써 내려갔다는 뜻이다.

그리 만들어진 문장이 단정할 리 없다. 속도를 위해 쓸데없는 문장은 쳐내고, 똑같은 수식어를 반복한다.

뒷 내용도 정해놓은 클리세로 플롯을 짜고, 기계가 찍어내듯 만들었다.

그야말로 공장장이었다.

지금은? 그리 해서는 안 됐다. 그녀가 쓰는 소설은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공업품이 아니라, 장인이 한땀한땀 수놓은 수제품이 되어야 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사나 조이던 기계를 반도체 만드는 정밀 기계처럼 움직이게 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녀가 글을 쓰다보니 일주일에 한 권씩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하다보면 된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이거, 재밌나?”

아쉽게도 그리 쓴 소설은 그녀 눈으로 보기에도 엉망진창이었다. 기계처럼 찍어내던 저번보다 더.

“다시 쓰자.”

하지만 시간은 넘쳐 흘렀다. 일주일에 한 권 찍어낼 필요가 없어졌으니.

하루에 한 편, 하루에 5천자. 그 정도 글을 쓰는 건 그녀에게 있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아, 여기가 좀 이상한데…… 지우지 뭐.”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해, 열 번 넘게 새로이 고쳐 쓰고나서야 그녀는 한 편을 완성했다.

그녀는 그제야 하루 한 편 쓰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이지.”

그건 성장통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괄목상대한, 그러니까 눈부시게 발전한.

진짜 글쓰기란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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