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NO.10 이 소설 주간 연재인가요?
* * *
잠에서 깨어난 연재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이루어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수치심이었다.
원래 몸이 약했건, 그런 상황에서 버틸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건. 그 모든 건 딱히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쪽팔려…….’
무방비한 모습은 추하다. 자는 동안 인간은 가장 무방비한 상태다. 고로 잠자는 모습이란 추하다.
이 삼단논법에 의거하여 대체 얼마나 추한 모습을 정우에게 보였을지, 그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이상한 잠꼬대 같은 건 안 했겠지?’
볼을 살짝 두들겨 잠을 깨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양호실은 이리 만들자고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호들갑 떨면서 병원에 안 보내서 다행이네…….’
쓸데없이 구급차를 부른다던가, 병원에 보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커튼을 치우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 깼니?”
다가온 사람의 얼굴을 본 연재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까 전 정문에서 보고 기절했던 은혜가 그곳에 서있었다.
“얘도 참, 언니가 아무리 귀엽게 생겼어도 보고 기절하면 어떻게 하니?”
“…….”
“그렇게 막 쓰러지고 그러면 안 돼. ……아하하, 재미 없었니?”
“아뇨,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농담을 던지고 반응이 없자 쑥스러워하는 은혜를 보며, 연재는 그녀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아, 내가 최초 발견자라고 뭐라뭐라 하길래…… 마침 춥기도 하고.”
은혜는 그리 말하며 빨개진 귀를 만지작거렸다. 하기야, 귀마개나 목도리 없이 교복에 코트 하나 걸치고 오랜 시간 밖에 서 있다 보면 추울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
연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제대로 된 소통이 되었다 느낀 은혜가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가 이런 면에서는 좋다니까? 밥은 맛없는데 시설은 좋아. 집이랑도 가깝고. 또, 그러니까…….”
“괜찮아요.”
“어, 뭐가?”
“학교 좋다는 거 알았으니, 그리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아, 그래…….”
순간 대화가 단절되었다. 은혜는 선배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 용기 내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궁금한 건 없니? 뭐, 수업은 어떻다든지…….”
“없어요.”
“그래…….”
그러나 연재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낯을 가리고,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비대한 자신감으로 남의 말을 툭툭 끊는다.
이 사회부적응자에 가까운 아싸 두 명이 대화가 잘 통할 리가 없다. 중간에 서로 친한 소통창구가 있는 게 아니라면야.
“저기요, 선배.”
“응. 왜? 궁금한 거 있니?”
“네. 하나 있어요.”
“뭐든지 물어보렴.”
은혜는 그리 크지 않은 가슴을 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연재는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정우 오빠랑 무슨 관계세요?”
“……정우 오빠?”
눈치 빠른 은혜는 그녀의 입에서 정우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최악의 가능성을 먼저 떠올렸다.
“너, 혹시…… 정우랑 무슨 관계니?”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그냥…… 그냥 아는 동생?”
“아, 그렇구나.”
연재의 말에 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재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일에 절대라는 일은 없는 법. 은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추가로 질문했다.
“혹시 그 아는 동생이라는 게, 점막 접촉도 하고 그러니?”
“……네?”
“그러니까 막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거나…… 하니?”
“아는 동생이라니까요? 대체 어느 세상 동생이 그래요?”
“그치!?”
은혜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그 사실에 연재가 심고 있던 의심은 더더욱 심화되어 가기만 했다.
바로 그녀가 정우의 애인이라는 의심이.
“그래서, 선배는 무슨 관계에요?”
“나? 아, 이거 말하고 다녀도 되나 몰라∼”
그리 말하며 은혜는 흥얼대기 시작했는데, 그 행위만으로 그녀가 정우라는 남자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과 TV로 배운 그녀의 연애 지식에 의하면 구억천만 퍼센트 정도 확실했다.
“사귀는 사이세요?”
“응. 아, 남들한테는 비밀이다?”
“왜요?”
“그야…… 정우가 여자를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면 개한테 피해가 가잖아.”
“……정우 오빠한테 애인이 있는 게 왜 피해가 되는데요?”
“어라, 몰랐어? 정우 재 반쯤 공인이잖니.”
“……공인이라고요?”
평소 TV를 잘 보지 않았던 연재는 은혜의 입으로 정우가 TV 프로그램에 나갔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크나큰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하여 정우가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숨기려 했는지 깨달았다.
‘노래도 잘 부르고 글까지 잘 쓴다고 하면 소문이 나겠지…… 나 같은 삼류 작가랑 같이 집필한다고 하면 또 난리가 날 테고.’
결과적으로 정우가 이름을 숨기는 건 그녀 때문이었다. 만일 그녀가 누구에게나 자랑할 법한 유명 작가라면.
그러니까 톨킨이나 루이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작을 써내린 작가였다면.
‘숨길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녀의 눈이 빛난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은혜가 조용히 따라 일어났다.
“입학식 갈 거지? 강당에서…….”
“아뇨, 집에 갈래요.”
“어? 어, 음…….”
집으로 간다는 말에 당황한 은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책임지고 그녀를 입학식에 보내라는 말을 남겼으니, 어떻게든 그녀를 데리고 강당으로 가야 했지만…….
‘눈빛이…….’
연재의 눈빛은 감히 그녀가 말릴 정도로 유순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연하라 할지라도, 처음 보는 사이인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갈 정도로 은혜는 강인하지 못했다.
‘그래, 기절까지 했는데 입학식 참가하라는 것도 이상하지.’
“그, 그래. 잘 가…….”
“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연재는 학교를 빠져나갔다. 은혜는 학교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어라 변명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 * *
입학식.
이제 3학년이 다 되어가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행사다. 원래라면 그렇겠지만…….
[내신 점수를 챙길 수 있으니까]
[저 정시로 가도 100% 합격할 자신 있는데요]
[선생님 얼굴을 봐서 한 번만 해줘]
귀찮은 일이었으나 정우는 미처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 입학식에 참가하고 나서야 정우는 주희가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와…… 하정우다…….”
“진짜야?”
“싸인 해달라면 해주나?”
정우를 알아보지 못했던 연재와는 달리, 다른 신입생들은 정우를 쉽게 알아보았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4강까지 진출한 유명인. 하물며 나중에 나온 우승자의 실력이 정우보다 명백히 떨어지는 바람에 주작 논란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있어 정우는 선망과 동정의 대상. 실력이 있음에도 더러운 어른의 수작에 안타깝게 떨어진 슈퍼스타였다.
‘귀찮게…….’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관심은 모두 그리 달갑지 않은 것들이었다. 유명해진다는 건 그만큼 주목받는다는 뜻이요.
여러 여자에게 발을 걸치고 있는 정우는 주목받아 좋을 일 없다.
조선의 유교 사상이 다 사라지지 않은 이 나라에서 여러 다리를 걸치고 있는 정우는 악의 축이요, 먹기 좋은 먹잇감이다.
악의와 무지성으로 무장한 기자들이 그를 물어뜯는 기사를 내기라도 한다면, TV 뉴스가 절대적인 신뢰를 자랑하는 이 시대에선 정우는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가 되고 말리라.
정우와 관계를 지닌 여자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테고.
‘이제 와서 기록을 지울 수도 없고…….’
물론 사람들의 기억이 영원한 건 아니니 언젠가 정우도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겠지만…….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 적어도 일이 년 내외로는 계속해서 시달려야 하리라.
“아하하, 얘들아. 조용히 해줄래. 교장 선생님이 말씀 중이시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정우는 최대한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지도했다. 아이들도 연예인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정우의 지도를 따랐다.
“돌아왔어…….”
“아, 은혜야.”
혼자서 수십의 아이들을 관리하던 정우는 돌아온 은혜를 보며 속으로 한숨 덜었다 생각했다.
소심한 은혜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은 알지만, 그녀도 실행위원이라는 완장을 낀 이상 어느 정도 제 할 일은 해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우는 은혜를 한 번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은혜야, 연재는?”
“아…… 돌아갔어.”
“……돌아갔다고?”
“응. 아프다는데 어떻게 말려.”
“혼자서 돌아가다가 쓰러지는 거 아니야?”
“……그건 생각 못 해봤는데.”
선생들이 괜히 그녀를 입학식에 참가시키라 말했던 게 아니다. 이곳엔 수십이 넘는 사람이 있고, 여차할 때 연재를 구해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홀로 집으로 보냈다가 길바닥에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이 추운 겨울날 그녀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하물며 어떠한 이유로 쓰러졌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정우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가게?”
“전화 좀 하고 올게.”
“그래…… 같이 가줄까?”
“하하, 걱정하지 마. 어디 병 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은혜는 자신의 실수를 자각하고 정우를 따라가겠다 말했으나 정우는 그런 그녀를 말리고 강당을 빠져 나왔다.
강당 밖으로 나온 정우는 곧장 전화를 들어 연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오고간 이후 그녀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연재야.”
[……정우 오빠]
“괜찮아? 어디 아프니? 혼자 돌아갈 수 있겠어?”
[……괜찮아요. 혼자서도.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너 쓰러지면 학교 난리날 텐데.”
[그것도 그러네요]
잠시 대화가 단절되었다. 정우는 어째선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싸늘하게만 느껴졌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네…… 아, 오빠. 이제 전화 안 해주셔도 돼요]
“……뭐? 갑자기?”
[예. 소설은……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되니까…… 굳이 얼굴도 볼 필요 없고……]
“……그래.”
정우는 그녀가 자신을 피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은혜가 그녀를 간호했다는 사실도…….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본데.’
아쉽게도 오해를 풀 시간은 없었다. 결국 정우는 나중에 그녀와 직접 만나 오해를 풀기로 결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입학식은 그대로 끝이 났다. 정우는 선생에게 자신이 속할 반을 미리 들을 수 있었다.
정우가 아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정우와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