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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화 〉 NO.11&12 또라이 자매가 속삭이길, 정력에는 아연이 좋데요 (200/218)

〈 200화 〉 NO.11&12 또라이 자매가 속삭이길, 정력에는 아연이 좋데요

* * *

친구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을 때.

그때 느낀 충격은 감히 입을 뗄 수 없을 만치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바람피는 상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걸 알았을 때에는?

충격은 가시고, 친구를 구해야겠다는 공명심이 고개를 먼저 쳐들었다.

아람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갖고 연재를 찾아갔다. 항상 뚱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던 연재는 자신에게 다가온 아리를 보고서 그녀를 경계했다.

분명 또 무언가 공모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오늘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정의심, 양다리를 넘어서 세다리 걸치는, 그리하여 연재를 아주 잠깐 갖고 노는 장난감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그로부터 친구를 구해내기 위한 정의로운 희생이었다.

“뭐야?”

“밖으로 나와.”

“……갑자기?”

다른 애들보다 체격이 좋고 덩치 큰 아리가 그리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흥미를 느끼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성격 좋은 아리가 무언가 잘못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다들 연재가 무언가 실수를 했거니 생각했다.

‘갑자기 뭐람…….’

연재는 덤덤한 척했지만, 본능적으로 소심하기에. 자신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아리에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그나마 겁을 집어먹지는 않았으나, 질질 끌려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 아리는 대뜸 본론을 꺼냈다.

“너, 정우 선배랑 헤어져.”

“……뭐?”

“정우 선배랑 헤어지라고. 그 사람 아주 나쁜…….”

“그딴 말 하려고 나를 불러낸 거야?”

이 상황에서는, 위축이고 겁이고 전부 집어 던질 수밖에 없었다. 연재는 설령 자신이 맞아 죽더라도 들이대겠다는 듯 눈빛을 불태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보던 아리는 잠시 당황에 빠졌다가, 자신이 아주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니라…….”

“네가 정우 선배한테 관심 있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연재는 그렇게 말하곤 등 돌리고 교실로 돌아가려 했다. 아리는 깜짝 놀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는데, 연재는 그녀의 손을 재빨리 떼어내곤 말했다.

“너랑은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아니었나 보네.”

“야, 연재야─.”

“시끄러.”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너무 성급했다. 아리는 이때만큼 성급한 자신의 성격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결국, 교실로 돌아가서도 연재는 아리를 무시했다. 아주 의도적으로.

* * *

“그러니까, 걔가 저한테 그런 말을 했다니까요?”

“그래? 그때 개가?”

“네! 정말, 어처구니없지 않아요?”

점심시간, 연재에게서 아리가 했던 말을 건너 들은 정우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연재는 생각에 빠진 정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늘어놓았다.

“분명, 걔가 오빠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요. 예전에도 종종 저한테 농담 식으로 헤어지라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줄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네? 뭐가요?”

“정말 그래서 헤어지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아리가 나랑 사귀고 싶어서?”

“그게 아니면 대뜸 헤어지라는 말을 왜 꺼내겠어요?”

“하하, 그러네.”

정우가 생각하기에, 연재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으리라. 교우 관계를 넓히기보다 골방에 앉아 세계관을 넓히는 데 힘쓰던 연재는 알 수 없는 사교적인 문제가 그곳에 있었다.

‘들켰나?’

정우는 최근 교내에서 벌였던 섹스를 떠올렸다. 연재랑도 하고, 그걸 본 우림이랑도 하고. 발정 난 듯 못 버티겠다고 달려드는 주희랑도 했다.

나름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긴 했으나, 표본이 이만치 늘어나면 꼬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조심한다고 조심하긴 했는데…….’

하기야, 이젠 길 가던 초등학생의 손에도 고성능 카메라가 들려 있는 시대였다. 완전한 비밀이란 생기기 어렵고, 오늘 아침 아프간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날 점심때쯤이면 지구인 모두가 아는 그런 시대.

정우가 보지 못하는 장소에서 스마트폰으로 찍혔을 가능성이 제로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찾아가 봐야하나.’

그러나 연재가 아리를 멀리하듯, 다수의 여성과 떡을 치는 모습을 들켰다면 아리도 정우를 멀리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건 좋지 못했다. 굳이 아리가 언젠가 꼬셔야 할 히로인이어서가 아니라, 연재 그녀 본인을 위해서라도.

‘나 때문에 친구 하나가 사라지는 거니까…….’

정우는 여전히 혼자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는 연재를 불렀다.

“연재야. 오늘 방과후에…… 아리랑 같이 여기로 올래?”

“……왜요?”

“그냥, 너랑 아리가 서로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아서.”

“오해면 뭐 어때요? 전 그런 년하고는…….”

“연재야.”

정우는 연재의 모습에서 원래 세상의 자신을 떠올렸다. 친구를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다가 외톨이가 되고, 외로움을 타다 못해 기어코 외로움과 친해져 버린 사회 부적응자를…….

“친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그래도 사소한 오해로 잃어도 좋을 만큼 가벼운 게 아니란다.”

“……그게 뭐예요.”

“너보다 2년은 더 산 선배로서의 조언.”

정우가 웃으며 얘기하자, 연재는 이것마저 거부할 수는 없었는지 알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연재는 아리와 함께 동아리실로 향했다.

* * *

아리는 하루종일 우울했다. 자신의 실수로 소중한 친구 하나를 영영 잃은 듯해서.

성격 좋은 그녀 입장에서 보자면 그 누구든 쉽게 친해질 수 있었으니, 친구 하나쯤이야 만들면 된다지만…… 연재에게선 다른 아이들에게서 얻을 수 없는 영적인 영감이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과의 만남이 겉치레로 가득한 공허한 만남이라면, 연재와의 만남은 그녀의 영혼을 가득 채워주는 만남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궁합이라는 게 있는 걸지도.

그런 만큼, 연재와 불화가 생긴 건 그녀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어떻게 다시 사이가 좋아지지 않으려나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연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야.”

“어, 어! 연재야, 왜?”

“방과 후에, 시간 있어?”

“시간? 있지있지!”

선약이 있기는 했다. 이젠 없다. 그 짧은 시간에 선약을 잡았던 아이들에게 문자를 돌려 약속을 취소한 아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무슨 일이냐 되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어디 놀러 갈래? 응? 오늘은 너한테 다 맞춰줄게!”

그녀로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자존감 강한 그녀는 항상 자기주도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맞추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드물게 생일이나 기념일 정도.

그러니까 오늘은 아리에게 있어 기념일이나 다름없는 날이었다. 화해 기념일.

“어디 좀 같이 가자.”

“응! 어디든지.”

여전히 내리깔린 연재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간질였지만, 싸움을 거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리는 연재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리고 곧이어 이상함을 느꼈다. 연재가 학교 밖이 아닌 학교 안으로 향했기에…….

‘여긴…….’

동아리실. 학교에선 유명무실하고 그리 쓰이지 않는, 그나마 사용되는 몇몇 동아리가 학교를 뛰어넘어 매우 유명하다는 사실만 널리 퍼진 장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부. 경력 있는 신입만 뽑는다는 조건 때문에 그 어떤 신입생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 부실의 문을 연재는 아주 가볍게 열고 들어섰다.

부실이 악기 도난 등을 이유로 항시 잠겨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문이 열려있다는 건 안에 누군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왔어?”

그 목소리를 들은 아리는 뻣뻣하게 굳었다. 부실 안에는 정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재와 불화가 생긴 원인이자 세 다리 걸치고 있는 카사노바가.

“선배가 여긴 왜…….”

“네가 무언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아서. 정우 오빠가 데리고 오라고 했어.”

“내, 내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다고…….”

안 된다. 아무리 그녀가 강단 있는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친구와 본인 앞에서 저 사람이 바람을 피고 있다고, 그러니 헤어지라고, 증거까지 있다고 소리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아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재는 그녀를 닥달했다.

“자, 네가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뭐야?”

“그러니까, 무슨 말을…….”

“나보고 정우 오빠랑 헤어지라고 했잖아? 그 이유가 뭐냐고.”

“아, 아하하.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혹시, 내가 있어서 말 못 하나?”

아리가 웃으며 시치미를 떼자, 정우가 쓴웃음 지으며 이야기했다. 아리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내심 그런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걸 알아챈 정우는 자신이 빠져 주겠다 말하며 동아리실을 나섰다. 다만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큰 소리로 떠들 수는 없었다.

“자, 이제 말해봐.”

“……너, 정우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적어도 너보다는 여자친구인 내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오히려, 여자친구니까 숨기는 게 있지 않을까?”

아리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저장된 동영상을 재생했다.

화질 구린 동영상 속에는 한 여성과 남성이 성교를 나누고 있었다. 그걸 본 연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뭔데? 야동이야?”

“우리 학교야. 그리고 이 사람은…… 뭐, 됐어. 누군지는 말 안 해도 되겠지. 그럼 이 남자가 누굴 거 같아?”

“설마 정우 오빠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맞아.”

연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설득을 하려면 좀 그럴싸한걸로 해야지……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오는 영상을 내밀면 믿어주기도 어렵다.

“거기에 오빠 얼굴이라도 나와?”

“그건 아니지만…… 내가 봤어. 직접. 두 눈으로.”

“그래서? 저게 나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교복을 안 입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영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도.”

이번엔 가슴이 엄청 커다래서, 화질 구린 영상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치 출렁이는 여성과 즐기는 모습이 나와 있었다.

두 영상을 따로 보면 모르겠지만, 같이 보니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영상 또한 남성의 얼굴이 나오진 않았다.

“이것도 정우 오빠다?”

“응. 내가 얼굴을 봤어. 연재 넌 얼굴 하나는 귀여우니까… 그냥 갖고 놀려는 게 분명해.”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다야?”

“……이걸 보고도 헤어지겠단 생각이 안 들어?”

“아리야.”

연재는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심이라는 듯 뜨거운 눈동자로 연재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도 상관없었다.

“미안한데, 나는 정우 오빠가 좋아. 정우 오빠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어떻게 하면 믿어줄래?”

“글쎄. 네 말대로 정우 오빠가 아무하고나 찍은 영상에 얼굴이라도 나온 영상이 아닌 한…….”

똑똑, 그때 정우가 문을 두드렸다. 아리는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얘기 끝났니? 오해는 풀렸고?”

“아, 예. 오빠. 오빠 말대로 별거 아니었어요.”

“……네. 선배. 감사합니다.”

아리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래, 얼굴만 찍혀 있으면 된다 이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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