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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화 〉 NO.11&12 또라이 자매가 속삭이길, 정력에는 아연이 좋데요 (201/218)

〈 201화 〉 NO.11&12 또라이 자매가 속삭이길, 정력에는 아연이 좋데요

* * *

집으로 돌아온 아리는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거기서 제 어미의 화장품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치장했다.

지금껏 이런 것에 관심이 없던 그녀니만큼, 그녀가 하는 화장은 형편없었다. 아니,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라 가진 외모도 깎아 먹고 있었다.

“……뭐 하냐?”

뒤이어 들어온 아연이 얼굴이라는 도화지에 엉망진창 낙서를 해놓은 그녀를 보고 기겁했다.

이년이 또 무슨 기이한 일을 저지르려고 이러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연을 본 아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화장 좀 가르쳐줘!”

“뭐? 아니, 평소에 하래도 스킨 로션만 바르는 년이 갑자기 무슨…….”

“화장해야 할 이유가 생겼어!”

“뭔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냐?”

“꼬셔야 할 남자가 있어.”

“……뭐?”

그 말을 들은 아연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 아리가, 남자에게 관심이라곤 없어 보이던 그 또라이 도아리가, 꼬셔야 할 남자가 있다고?

흥미가 샘솟는다. 아연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누군데?”

“비밀이야.”

“안 알려주면 화장도 안 가르쳐준다?”

“……그래도 안 돼. 비밀이야. 안 가르쳐 줄 거면 나가.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지 뭐.”

“그거 알려주는 게 뭐 어렵다고…… 쯧, 그래. 가족 좋다는 게 뭐냐.”

아연은 그리 말하며 아리의 등 뒤로 돌아갔다. 거울로 본 아리의 얼굴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일단 폼클렌징으로 얼굴부터 씻고 와. 뭔지는 알지?”

“그 정도는 알지.”

“그래. 내가 아주 네 얼굴 작살 내 줄테니까. 각오해라.”

“응.”

아리는 거울을 보면서 결연했다. 어떻게든 정우를 꼬셔 보겠다고. 그리 정우를 꼬셔서 연재를 구해내겠다고.

* * *

다음 날, 아리는 얼굴에 연한 분칠을 하고서 등교했다. 고작 얼굴에 화장품 좀 발랐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거늘, 지금은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고자 죄 없는 머리카락만 빙빙 돌린다. 그리 교실에 들어가자, 평소에 말을 걸어오던 아이들이 그녀를 보고 살짝 멈칫한다.

“어…… 아리야, 안녕?”

“응. 안녕. 좋은 아침.”

“오늘은…… 뭔가 바뀌었네.”

“그래?”

당당하게 화장을 했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나머지, 조용히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평소엔 활기차고, 기운 넘치던 그녀가 화장을 하고 얌전해지니, 아이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아주 조금 다른 모습만 보여주어도 완전히 달라 보이는 게 학창 시절이다. 그녀의 변화는 변신이나 다름없었다.

“아리야, 무슨 일 있어?”

“으, 응? 왜?”

“아니, 화장도 하고.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길래.”

“아아, 그거.”

아리는 조심스레 옆자리에 앉은 연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자신을 신경 쓰고 있는가? 자신이 정우를 빼앗을 정도로 매력적이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나?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래, 이 정도로는 부족할 거다 이거지?

“그냥, 분위기 전환 삼아서.”

“그렇구나. 아, 맞다. 어제 갑자기 약속 파토냈잖아, 오늘은…….”

“미안, 오늘도 같이 못 놀거 같아.”

“그래? 아쉽네. 그럼 다음에…….”

아리는 이상할 정도로 집착해오는 남자애들의 권유를 전부 거절하고, 연재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오늘, 정우 선배 만나러 가도 돼?”

“……뭐?”

연재는 그제야 아리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던 연재는 그녀 얼굴이 평소와는 약간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가지 않아 그게 화장을 해서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랑 만나고 싶다고?”

“응.”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야 네가 선배 연인이니까…….”

“그렇다고 오빠가 내 물건은 아니지. 맘대로 해. 만나든지 말든지.”

“허락받았다?”

아리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리 하고자 결심하니, 머릿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처들기 시작한다.

‘남자를 꼬시는 거…… 어떻게 하는 거지?’

남자인 친구는 많다. 당장 방금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녀는 지금껏 남자에게 그런 마음을, 연심을 품은 적이 없다.

관심이 없었으니, 남자를 꼬시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또한 알지 못한다.

‘큰일났다.’

정말, 아주 큰일이다.

* * *

방과 후.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그녀는 마땅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무대뽀로 정우가 있을 동아리실에 찾아온 아리는, 동아리실 문을 열고 나오는 한 여성과 부딪쳤다.

“아, 미안.”

“네, 죄송합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잘 알고 있었다. 축구부의 체육복.

‘축구부 사람이 왜……?’

같은 예체능이라고는 하지만 밴드부와는 일절 연관 없어 보이는 축구부가 밴드부실에서 나오자, 아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예도 자신과 부딪친 아리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1학년? 여긴 왜 왔어?”

“아, 저. 정우 선배랑 만나러.”

“약속 잡았어?”

“아, 아뇨.”

“그럼 꺼져. 선배한테 꼬리치려고 하지 말고.”

“네?”

아리가 살짝 놀라며 반문하자, 신예의 얼굴이 악귀처럼 찌푸려진다.

“귀먹었어? 꺼지라고. 뒤지고 싶지 않으면.”

“……선배가 뭔데요?”

그 말을 들은 아리의 반골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상대는 그 무섭다는 축구부였으나 별 개의치 않았다.

“너 몇 반이냐?”

“알아서 뭐 하시게요?”

“싸가지가 존나 없네. 뒤지고 싶냐?”

“제 싸가지 걱정해주실 정도는 아니신 거 같은데.”

둘의 싸움이 격해지려고 했을 때, 그 소리를 들은 정우가 문을 열고 부실을 나왔다. 삐걱거리던 분위기는 곧장 화사하게 바뀌었다.

“앗, 오빠. 왜 나왔어?”

“밖이 시끄럽길래. 싸워?”

“아니아니, 그냥 1학년이 뭘 물어보길래…….”

“안녕하세요. 정우 선배.”

“아, 아리구나.”

정우가 아리의 인사를 받아주자, 신예의 표정이 굳는다. 그녀는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는 사람?”

“응. 1학년 후배인데, 도아리라고.”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

“건너건너? 같이 일하는 애가 있는데 개 친구야.”

“이렇게 단둘이 만날 사이는 아니라는 거네?”

신예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그동안 국지훈련이니 뭐니 정우에게 잠시 눈을 돌렸더니, 별 이상한 것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다.

괘씸하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아, 훈련할 시간이라 가볼게. 다음에 또 봐. 오빠!”

“그래, 훈련 열심히 하고.”

신예는 그리 말하며 저 멀리 떠나갔다. 아리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정우를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선배.”

“그래, 안녕. 무슨 일? 오늘은 연재 없는데.”

“선배랑……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요.”

“단둘이?”

정우는 그리 말하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에 보지 못한 옅은 화장이 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한 걸까? 아니, 개연성이 부족했다. 자신이 무얼 했다고 잘 보이려 든단 말인가?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들이는 건 안 되겠지.’

정우는 부실 내를 슬쩍 돌아보았다. 여전히 뜨거운 열기와 그로 인해 남은 야한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기는 했지만, 냄새라는 게 그리 쉽게 빠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결국 정우는 부실을 나서며 이야기했다.

“그래, 어디로 가서 이야기 할까?”

“부실에서 하면 안 되나요?”

“외부인을 들이는 건 좀…….”

“방금 그 선배도 축구부 아닌가요? 축구부는 외부인이 아니에요?”

“개는 아는 사람이거든.”

“그래도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내가 부장이라 괜찮아.”

정우는 그리 말하며 걸쇠를 잠갔다. 열쇠를 챙긴 뒤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서 그녀에게 손짓했다.

“근처에 카페가 있긴 한데. 거기로 갈래?”

“……웬만하면 단둘이 있는 곳이 좋은데요.”

“거기도 사람 많이 없어.”

학교 근처에 자리 잡긴 했으나, 정작 그곳을 이용하는 학생은 없었다. 너무 촌티가 난다나 뭐라나, 결국 근처 빌라 주민이나 선생만 종종 들를 뿐, 학생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이 시간이라면…… 퇴근 시간 전 마지막 여흥을 즐기는 아줌마들이나 이른 시각에 퇴근한 아저씨들 몇 명만 자리 잡고 있으리라.

아리는 입을 삐쭉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으나, 정우랑 그리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사이에서 언제까지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

결국, 학교 근처 카페로 향한 두 사람은 드문 손님을 맞이한 카페 주인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사람들 없이 조용한 엔틱 분위기의 카페, 과연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잠시 후 나온 다방 커피를 들이켜며, 아리는 정우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서요.”

“조용하잖아?”

“너무 조용해서 저희 하는 이야기도 다 들릴 거 같지만요.”

후우, 가슴 속 가득 쌓인 긴장을 내뱉으며 아리는 입안에서 꺼낼 말을 다듬었다.

잠시 후, 대충 생각이 정리된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 저 어때요?”

“어떠냐니?”

“그…… 예쁘지 않아요?”

“응. 예쁘네. 오늘은 화장도 했어?”

“네! 화장도 했어요!”

“왜?”

“왜냐니, 그야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니까, 왜 나한테 잘 보이려는데?”

정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아리는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나 생각했다. 그리고 곧장 깨달았다.

자신은 연재의 친구요, 연재와 정우가 연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녀가 한 말은, 지금 친구의 애인에게 잘 보이려고 꾸몄다는 말과 동일했다.

‘큰일났다……!’

정우가 연재를 제외한 다른 여자랑 사귄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 그런 소문이 퍼졌던가?

아니었다. 애인이 몇 명 있다는 소문은 수두룩했으나 그걸 입증할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자고로 정우정도 되는 사람에게 그 정도 구설수는 항상 달라붙는 소문이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왜, 너도 이상한 소문을 듣고 그러는 거야?”

“이, 이상한 소문이요?”

“그래. 내가 아무한테나 몸 대주는 남자라느니, 애인이 열 명이 넘는다느니 하는 소문들.”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왜냐면 아리는 그 소문의 진위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기에 망설였고, 정우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그는 화가 난 듯싶었다.

그녀는 남자의 화를 푸는 방법을 몰랐다. 애당초 남자들이 화를 낼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뿐더러, 그리 화를 내더라도 그녀 얼굴 몇 번 뜯어 보더니 알아서 화를 풀었기 때문이다.

정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가 어설프게 미소 짓는다고 한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미소 짓는답시고 더 크게 화를 내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하면요?”

그렇기에, 그녀는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방식으로 들이댔다. 정면 돌파. 남들이 망설일 때 그녀는 직접 들이대곤 했다.

나이 먹고 직접 들이대는 방법을 까먹은 사람들이, 그녀를 종종 특이하다고 불렀을 뿐. 그녀는 누구보다 직설적이었다.

“이거, 선배죠?”

때마침 그녀에겐 쓸만한 무기가 두어 개쯤 있었다.

그녀는 정우가 찍힌, 그러나 얼굴은 나오지 않은 영상을 들이밀었다.

영상을 본 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도, 선배랑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고 싶은데.”

이 모든 건, 친구를 위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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