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5화 〉 NO.11&12 또라이 자매가 속삭이길, 정력에는 아연이 좋데요 (205/218)

〈 205화 〉 NO.11&12 또라이 자매가 속삭이길, 정력에는 아연이 좋데요

* * *

연재는 제 짝궁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걸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리의 성격이 특이하긴 했지만 규칙을 어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교실로 들어온 담임은 아리가 몸살에 걸려 결석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연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담임을 바라보았다.

‘아니, 얘가 몸살을……?’

철을 씹어먹어도 괜찮을 거 같았던 제 짝궁이 몸살이란다. 그것도 저에게 정우가 바람을 피우니 뭐니 한소리하고 난 다음 날…….

참으로 이게 우연이라 생각한다면, 연재는 소설가가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으리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녀는 곧장 물리적으로 가능한 열세 가지 사건을 떠올렸고, 그중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 가지 일을 골라냈다.

첫째, 아리가 강에 빠져 감기에 걸렸다. 둘째,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가 몸살에 걸렸다. 셋째.

‘정우 오빠랑…… 한 건가?’

그녀는 정우가 얼마나 절륜한지, 그리하여 그가 여성을 얼마나 쉽게 망가트릴 수 있는지 몸소 겪어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아리가 제 연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며, 어디선가 정우 오빠의 섹스 영상까지 찍고 난 다음이 아닌가?

아리라면 충분히 제 몸으로 정우를 꼬신 뒤 그 영상을 그녀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 실행력이면 곧장 그리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썩을 년.’

그리고 그건 연재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행동이었다. 관심 갖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그리 말했거늘.

그걸 깡그리 무시한 것도 모자라서, 정우와 관계를 맺는 걸 성공한 걸로 보이는 마당이다. 연재의 마음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그녀는 쿵쿵거리는 심장을 다잡고, 그녀는 수업에 몰두했다. 그리곤 그 누구보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 *

“정우 오빠!”

커다란 목소리, 정우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문을 바라보았다. 헉헉 땀을 흘리는 연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심한 그녀에게서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큰 목소리, 그녀는 저보다 2살이나 많은 학년의 반에 아무런 걱정 없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그리곤 정우 앞에 도달해 그와 조심스레 눈을 마주했다. 일단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오긴 했으나, 정작 앞에 서니 뭐라 말해야 될 지를 모르겠다.

“그…… 얘기 좀 해요.”

“그래.”

정우는 그리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연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 일어나세요?”

“여기서 못 하는 이야기야?”

“그, 저기… 네.”

“그럼 나중에 해.”

“……네?”

연재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정우는 뭘 그러냐는 듯 연재에게 다시금 말해주었다.

“어차피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점심때까지 기다려.”

“저는 지금 당장……!”

“쉬는 시간 7분 남았는데, 그 안에 끝낼 수 있어?”

“윽─.”

그 말을 들은 연재는 멈칫거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확실히, 어느새 쉬는 시간의 1/4 가까이가 날아가 있었다.

그녀는 학생이었고, 자고로 학생에게 수입 시간은 절대적인 규칙과도 같았다. 결국 연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정우에게 물었다.

“……그럼 하나만, 하나만 물어볼게요.”

“물어봐.”

“어제…… 아리 만났어요?”

“응.”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연재는 이미 제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정우가 아리와 만났다. 그리고 섹스했다.

그 말을 들은 연재는 반쯤 얼이 나간 채로 교실을 나섰다. 정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그리던 그림에 집중했다.

‘어떻게 벌써 알았을까.’

아리와 섹스를 나눈 일은 비밀이었다. 아리가 그런 걸 떠벌릴 성격도 아니었고, 그랬다간 가족인 아연에게 먼저 말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연재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일까? 오늘 아리의 상태만을 보고? 그건 아닐 터였다. 고작 그 정도 연기력이었다면 아연에게도 들켰을 테니까.

‘뭐…… 힘내라. 연재야.’

철이란 때리면 때릴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정우는 히로인들을 의도적으로 마찰시켰다. 그럴수록 그들이 받아들이는 한계는 점점 더 넓어질 테니까.

이제 곧 여름방학이 온다. 방학이 오기 전까지 아리를 공략하고, 방학 중에는 아연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열둘의 히로인 공략이 모두 끝나고, 정우는 그들을 케어하며 졸업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 끝이었다. 모든 것의 끝.

여행의 종착지.

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힘낼 테니까.’

* * *

점심시간. 정우는 늘 그렇듯 교실을 나와 부실로 향했다. 이 학교 급식을 안 먹은 지 꽤 되어서, 이젠 종종 급식 맛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급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정우는 아이들이 오기 전 도시락을 세팅해놓고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혜가 가장 먼저 부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뒤늦게 늦바람이 든 그녀는 공부에 열중하는 고3 패션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마를 롤로 둘둘 말고, 눈을 보호하는 안경을 끼고, 어깨엔 담요를 둘둘 두른, 그런 패션을.

“어서와.”

“와…… 정우다…….”

은혜는 정우를 보고서 천천히 다가와 그의 품에 안겼다. 평균보다 살짝 더 작은 그녀는 평균보다 휠씬 큰 정우의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쿰쿰한 담요의 냄새와, 은혜만이 가진 페로몬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중독성 넘치는, 마치 강아지 같은 냄새였다.

“어떡해… 분명 어제도 봤는데… 몇 달 만에 보는 거 같아….”

“아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공부는 잘 돼가?”

“아니… 죽을 거 같아… 나 왜 이렇게 멍청하지? 그리고 과거의 난 왜 공부를 하나도 안 했지??”

그리 말하며 정우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은혜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조심스레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몸을 돌려 머리에 말린 롤을 풀고 안경을 벗었다. 부실 안에 놓인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정돈한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얼 기대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삐쭉 내민 상태로 다가오는 은혜를 바라보던 정우는, 씨익 웃으며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혀와 혀가 얽히는 딥키스는 아니었다. 가벼운 버드 키스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은혜는 충분히 만족했는지, 히히,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우림이가 도착했다. 그녀는 정우와 은혜에게 손을 흔들어 가볍게 인사를 하고선, 텅 빈 부실을 둘러보았다.

“이게 다야? 마리는?”

“피곤하대. 나중에 도시락만 챙겨달라나.”

“그래? 그럼 이게 전부야?”

“한 명 더 올 거야.”

정우가 연재를 떠올리며 말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 시간에 부실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우가 들어오라고 소리치자, 연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안녕?”

“…뭐야 잰?”

은혜가 연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몇 달이 지났다고, 사람 얼굴을 까먹는지…… 정우는 입학식 때를 떠올리며 말해주었다.

“연재라고, 은혜 너도 옛날에 봤을걸?”

“몰라, 기억 안 나.”

“…주연재라고 합니다. 1학년이고, 정우 오빠의 여자친구에요.”

“흥, 여기 여자친구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은혜야…….”

정우는 은혜의 말을 듣고 손으로 눈두덩이를 덮었다. 남의 입으로 듣기엔 썩 쑥스러운 일이었다. 과연 연재도 그러했는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할 말이 뭐야?”

“……다른 분들이 들어도 돼요?”

“그럼.”

연재는 제 입으로 여자친구라고 시인한 은혜와 우림이 앞에서 말을 꺼내기 뭐했는지, 입을 달싹거리며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잠시 후, 각오를 마친 뒤 반쯤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중얼거렸다.

“저, 그… 오빠, 어제 아리랑 섹스했죠?”

“응. 했어.”

“뭐!? 그건 또 누구야!”

연재의 입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말을 정우가 수긍하자,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은혜가 기겁하면서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정우는 우림이를 바라보며 은혜를 막아달라는 눈빛을 보냈고, 그의 마음을 읽은 우림이 재빨리 은혜의 사지를 결박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자아, 우리 아가. 엄마가 맘마 줄게요. 저리 가자.”

“으읍! 읍읍읍! 으으응!”

은혜가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가는 걸 바라보던 연재는 고개를 흔들어 제정신을 되찾고 다시 정우를 바라보았다.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돼요?”

“왜 그랬냐고?”

“네. …아리는 오빠가 바람 핀다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으음…….”

정우는 여기서 꺼낼 말을 생각했다. 단순히 아리가 동영상을 갖고 협박했다고 말해도 되었다. 그렇다면 연재는 마음이 썩 불편해도 이해는 하리라.

그러나 그건 두 사람의 관계를 앙숙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하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우와 여자애의 관계가 아니라, 여자아이들의 관계였다.

“그럴 운명이었거든.”

“……운명이요?”

“그래, 운명.”

연재는 정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대뜸 운명이라니? 그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정우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게 농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심이라고 믿기엔, 그것도 퍽 그랬다.

“무슨 농담을…… 운명 같은 게 어디에 있어요?”

“왜 없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적으로도, 운명은 존재 하지가­.”

“그렇다면 내가 너와 만난 거, 사귄 건 뭔데?”

그 말에 연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랬다. 사랑을 들먹인다면 할 말이 없었다. 판타지 작가답게, 연재는 정우와의 관계를 항상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명이라, 이 얼마나 달콤한 이름인가.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운명을 찾는다. 그리고 그에 열광한다.

그건 연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제가 운명이라는 성배를 찾은 선택 받은 자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아라, 운명 같은 게 어디에 있나. 연재는 나고 자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막 행복해지려는 참이었다.

행복을 운명이라함은, 고통 또한 운명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제가 오빠를 만난 것도, 만나기 전까지 고통받던 것들도… 전부다.”

“운명이지.”

정우는 연재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성격에 딱 맞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건 게임 속의 설정일 뿐이다. 다른 아이들의 성격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혹은 변하더라도 그 티를 내지 않았기에.

그는 제가 일으킨 나비 효과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런 사단이 일어났다.

“그럼, 제가 지금부터 뭐라고 말할지도 아시겠네요?”

“…연재야?”

불안감을 느끼고 그녀를 불러본다. 그러나 그녀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저는 오빠가, 정말로 싫어요.”

헤어지자는,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정우가 그녀를 잡기도 전에 연재는 부실을 빠져나갔다.

“어, 어…….”

정우가 차이는 걸 바라본 은혜와 우림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큰일이 날 거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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