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동네가 꽤 낡았어.
저 바로 위에는 고층건물이 가득한데 도로 하나만 건너가니까 그냥 달동네였네.
파출소엔 경찰차가 없었다.
경찰차 주차장은 있는데?
어디 출동 나갔나보다.
난 파출소로 곧장 들어갔다.
"하아, 하아. 저기요. 계세요?"
책상엔 경찰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둘 다 중년이다.
"예,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난 저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도로에서, 하아. 사고가 났거든요. 사곤지 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엄청 다쳤어요."
경찰은 아, 하더니 말했다.
"그거, 아까 신고 들어와서 출동했어요. 취객이 난동부린거라든데. 선생님, 거서 왔어요?"
취객?
난 고개를 저었다.
"술취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저씨, 취객이 아니라 무슨 전염병 같은 그런거예요. 뉴스에도 났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깨문다니까요?"
중년 경찰들이 해괘한걸 봤다는 눈으로 날 본다.
"...예? 깨물어요? 그런 신고는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보신겁니까?"
아, 씨발.
미치겠네.
"예! 제가 봤다고요. 저 위에서, 사람이 사람을 깨물고. 차들 밟고 도로로 뛰어다니고. 아, 그렇지! 씨발, 어떤 사람은 차에 치였는데 목이 이렇게 홱 돌아갔다고요. 그 사람도 벌떡 일어나서 뛰어 가더라니까요!"
말을 하면 할수록 흥분된다.
동시에, 말을 하면 할수록 이걸 들은 사람이 과연 곧이 곧대로 믿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찰들은 서로 쳐다보며 갸웃거렸다.
"목이 홱 돌아갔다고?"
"목이 돌아갔다... 저, 일단 신고 접수는 하겠습니다. 출동나간 경찰들한테 바로 전달될겁니다. 일단 신고자님 성함하고..."
그때 밖에서 차소리가 들렸다.
경찰차였다.
"어, 지금 왔네. 잠깐만요."
책상에서 경찰들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나도 같이 나가보니, 경찰차 한쪽에 커다란 붓으로 쫙 그어놓은 듯한 핏자국이 나 있었다.
창문은 깨져있고, 여기저기 찌그러졌다.
그 차 안에서, 젊은 경찰이 핸들을 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 박순경! 뭐야! 무슨 일이야!"
경찰들이 놀라며 차 문을 열었다.
박순경이라는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핸들을 잡고있을 뿐, 숨을 몰아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이! 영미는! 왜 너 혼자왔어? 어?"
"차 왜이래! 박순경!"
박순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다.
저런 표정을 살면서 본 적이 없다.
박순경이 말했다.
"서... 선배님. 우리 권총 있습니까? 안에."
"권총?"
되물은 중년 경찰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권총은 무슨 권총! 영미 어딨냐고! 박순경! 정신 안차리나!"
"죽었어요! 영미 죽었다고요!"
중년 경찰이 충격받은 얼굴로 박순경을 쳐다봤다. 박순경이 말했다.
"목이 뜯겨서 피를 쏟으면서 죽었어요. 차에 묻은게 영미 핍니다."
두 중년 경찰이 동시에 말을 쏟아냈다.
"범인은! 누구야! 영미 씨발, 사체는 있을거 아니야! 어디야!"
"죽은지 안 죽은지 네가 어떻게 알아! 니가 의사냐 새꺄! 일단 영미 데리러 가자!"
박순경이 벌떡 일어나며 차에서 나왔다.
그리고 소리쳤다.
"권총 있냐고! 권총! 씨발, 저 위에 폭동 일어났다고!"
박순경이 경찰서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중년 경찰 하나가 뭐라고 외치며 그를 따라간다.
"폭동...?"
남은 중년 경찰이 심상찮은 얼굴로 경찰서를 보고있다. 폰을 들어올리는걸 보니 어디로 연락하려는 것 같은데.
폭동이라니.
폭동같은거 아니야.
이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라고.
이건......
"...종말이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요? 종말?"
폰을 누르려다 말고 중년 경찰이 날 쳐다봤다. 의혹이 얼굴에 들어있다.
"선생님, 뭐 아는거 있습니까?"
묻는게 아니다.
뭔가 직감한 얼굴이다.
이 놈이 뭔가 안다.
난 중년 경찰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뭐라고 말해야 좋냐.
메세지창에서 봤다고?
나와 중년 경찰이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고 있던 그 때, 경찰서 안에서 와장창! 하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중년 경찰이 경찰서로 홱 고개를 돌리더니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도 경찰서로 들어갔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 씨발 내 정신이 어떤지를 누가 나한테 묻는다면 죽빵을 갈길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뭘 하고있는지, 또 뭘 해야되는지 모르겠거든!
메세지창은 왜 또 안 보이는건데!
평생을 내 눈앞에 나타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를 알려줘놓고!
이제와서 왜 안 보이는건데!
씨발!
"하아, 하아."
경찰서에 들어가보니 경찰 두 명이 서로 멱살을 잡고 엎치락 뒷치락 하고있었다.
"영미를 씨발새끼야, 그냥 놔두고 오는게 말이 돼! 어! 무전은 왜 안했어! 무전은!"
"씨발, 그럴 정신이 없었다고요! 무전은 씨발, 그 폭동이 일어나는데, 차들이 다 박살나는데 씨발 한가롭게 무전이나 쳐 하게 생겼냐고!"
중년 경찰이 뛰어들어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던졌다.
"그만해! 둘 다! 징계먹고싶어?! 어?!"
나는 봤다.
두 사람이 엎치락 뒷치락 하면서 멱살 잡고 있을 때. 팔이 걷혀 올라가고 내려가고 할 때.
봐버렸다.
난 한 걸음을 물러섰다.
"다...당신."
무섭다.
섬칫하다.
"...물렸잖아."
뜯어말리던 경찰도, 잡고있던 경찰도, 박순경도 그 순간에 몸을 멈췄다.
중년경찰들이 박순경의 팔을 들어올렸다.
팔뚝에서 피가 주륵주륵 흐르고 있었다.
상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빨 자국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타원형으로 티스푼을 찍어놓은 거던가.
멱살 잡고있던 경찰이 말했다
"너... 뭐냐 이거. 진짜 물린거냐? 영미도 진짜 사람이 문거야?"
아까 들었을땐 못 믿었나보지.
박순경이 자기 팔을 감싸쥐곤 몸을 홱 틀었다. 멱살 잡고있던 손이 팍, 풀렸다.
"팔 하나 물린게 대수요?"
박순경이 선배들과 나를 힐끗 노려보더니 몸을 돌려 락커를 붙잡고 열어보려 애쓰기 시작했다.
괘......
괜찮은건가......?
팔 물린 정도론 그 짐승같은게 되지 않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약간 안정되었다.
락커라.
저 안에 무슨 무기같은게 있나보지.
"진짜 권총이 있습니까?"
총이 있으면.
확실히 총이 있으면 훨씬...
싸움 말리던 중년 경찰이 날 힐끗 돌아봤다.
"테이저하고 삼단봉 뿐이요. 이런 동네 파출소에 권총같은게 지급될리 없잖아요. 생각 좀 해요."
아니 씨발 말하는 뽄새 보소.
내가 경찰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
확마 민원 넣어버릴까보다.
잠깐.
그러면 저 박순경은 있지도 않은 권총을 찾아댄거냐. 어지간히 패닉했나본데.
락커가 열렸다.
박순경이 테이저와 삼단봉을 챙기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씨발, 이런걸로 어떻게... 본부에 연락은 했습니까?"
싸움 말리던 경찰이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미 아까부터 신고접수 존나 들어와있다. 이쯤되면 대통령도 알거다. 오늘 저녁때는 뉴스에 나올거고."
"지금 뉴스에 나고 있을지도 모르지."
중년 경찰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각자 삼단봉과 테이저를 챙겨 무장하기 시작했다.
씨발, 그래도 그나마 뭐라도 손에 든 사람들이 있으니 약간 안심되네.
그때였다.
"큭!"
박순경이 락커를 콱! 붙잡고 등을 번쩍 휘었다.
두 중년 경찰들이 동시에 외쳤다.
"박순경! 왜그래!"
"뭐하냐 너 또! 지금 아플때냐! 가자! 영미한테!"
박순경이 온 몸을 뒤집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목에서 핏줄이 힘껏 돋아있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는거다.
"크윽, 크으으윽! 아으으아아악!"
"바, 박순경!"
박순경이 쓰러졌다.
동시에 두 중년경찰이 박순경에게 몸을 굽혔다.
그 때였다.
중년경찰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푸직, 푸지직!
날고기 씹는 소리와 함께 뭐가 퍽! 하고 튀었다.
피다.
"박순경! 야! 이 새끼야!"
중년경찰이 놀라며 두 사람을 떼어내려 했다. 다음 순간, 그 경찰도 비명을 질렀다.
"으으억! 컥!"
파직! 으드득!
고기 씹는 소리와 뼈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끄으으윽!"
모......
목을 물었다.
영화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피가 공중으로 분수처럼 솟구치는 그런거는.
연출 아니다.
진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천장에까지 치솟는다.
움직여.
움직...여.
도...도망쳐야 돼.
움직여...!
눈 앞에서 두 경찰들이 사방으로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있고, 몸부림치며 비명지르고 있다.
미칠듯한 광경이 내 바로 코 앞에서 펼쳐졌다.
다리가...
다리가 안 움직인다.
왜 안 움직이지?
무...
무서워서 그런건가...
우...움직여.
...움직여!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뜨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같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뛰었다.
겨우 한 걸음을 뒷걸음질 쳤다.
저벅.
박순경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이...
짐승도 아니고, 저 눈은...
온 얼굴에 피칠갑을 해서 저런 눈으로...
나를...
"크아아악!"
박순경이 책상을 번쩍 뛰어오른다.
오...온다!
온다!
"카아아아악!"
박순경이 나를 향해 뛰었다.
두 팔을 내밀고 덮쳐왔다.
박순경의 시뻘건 얼굴이 확대된다.
씨발...!
죽는다...!
빨리 빠져나가야 돼...!
빨리...! 빨리!
더 빨리!
머리로는 이미 늦었다는걸 안다.
그러면서도 몸은 반대로 돌리고 있다.
살려는 몸부림이다.
이대로면 저 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부딪힌다.
저 놈의 손에 내 목이 잡힌다!
난 온 힘을 다해 웅크리며 앉았다.
머리칼을 뭐가 파라락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와장창! 하며 경찰서의 문이 박살났다.
눈을 들어 문을 바라봤다.
박순경이 유리문을 들이받아 손잡이에 허리가 끼어있었다.
"헉, 헉, 헉!"
미친.
미친 씨발!
놀라서 손이 벌벌 떨린다.
[튜토리얼 : 선택받은 자의 성장방향. 완료되었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