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심장을 공격하면 멈추려나?
.....심장이라......
...아니야.
방금 전에 생각했던 거잖아.
목을 뜯기고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는데도, 죽어도 백 번은 죽어야 되는 상처를 입었는데도 멀쩡하게 뛰어다닌다.
심장하곤 상관 없는거다.
...머리다.
머리를 박살내놔야 돼.
삼단봉을 움켜쥐고 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방금은 반쯤 정신 나간 채, 본능적으로 대가리를 이걸로 후렸다. 죽이겠다 어쩌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그냥 때렸다.
대가리 두방에 죽어주다니...
운이 좋았어.
하지만 앞으로는 좀 다르다.
아예 머리를 노리고 공격해야 된다.
죽일 작정으로.
...새삼 긴장되는데.
삼단봉 손잡이의 감촉이 꺼끌꺼끌하다.
미끄럼방지 같은데.
손가락으로 손잡이의 우둘투둘을 쓸어만지며 심호흡했다.
할 수 있어.
저 놈들은 사람들을 물어뜯었고, 죽일 작정으로 달려든다.
그러면 나도 놈들을 죽일 작정으로 공격한다.
목숨 걸고 너 한방 나 한방이다.
공평한 게임이다.
......잠깐.
그런데, 피해자들은......
길거리에 시체가 하나도 없었지.
......목을 물어뜯기고 피가 분수처럼 치솟고......
경찰관이나 편의점 알바도......
그런 상처를 입고, 피를 그렇게 쏟아내고도 움직일 수 있다는게 비상식적 아닌가?
......설마.
설마 저 놈들......
이미 죽어있는건 아니겠지.
설마 씨발...
무슨 좀비도 아니고...
좀비는 걷는거라고!
느릿하게 우웨웨 거리면서!
죽었는데도 저렇게 펄쩍펄쩍 뛰어다니다니, 비상식적이라고!
그러니까, 아니야.
죽은게 아닐거야.
...그런데 상처는 아무리 봐도 죽는 상처였는데.
"하아..."
뭐가 뭔지 모르겠네.
가만히 앉아있으니 괜히 머리만 복잡해져.
밖에서 쾅쾅대는게 어느새 멎었다.
크르르 하는 소리는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다.
"...저어..."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맛탱이가 갔는데.
비명질러서 목이 쉬었구만.
난 여자들을 힐끗 쳐다봤다.
청바지 티셔츠 입은 여자가 말했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를 왜 살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신만이 아시겠지. 어차피 신 같은거 믿지도 않는다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깐 소리질러서 미안해요. 다친덴 없어요?"
평복차림의 여자가 어색하게 목례해왔다.
"네...괜찮아요. ...소은아 괜찮아?"
교복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딱 봐도 상처는 없어보인다. 있었다면 저 년들 성격에 온갖 개지랄염병은 다 했겠지.
어쨋든 깨물리지만 않았으면 된거다.
만약 물렸으면...
삼단봉 손잡이가 꽤나 거칠다.
힘껏 휘둘러도 손에서 빠질 일은 없다.
...씨발.
그냥 생각을 하지말자.
안 물린건 그냥 다행인거다.
꼬르륵.
아... 배고파.
창고 문에 살짝 귀를 대봤다.
흐르르륵, 크르르륵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더이상 문을 때려부술려고 들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직 저기에 있다.
몇놈이나 있는지 모르겠네.
난 문을 가리키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직 있어. 조용히 해야돼."
평복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조심스레 문에서 떨어져 벽에 기댔다.
꼬르륵.
으, 씨. 배고파서 안되겠다.
하루종일 게토레이랑 물밖에 안 먹었더니 기운도 없고.
뭐 좀 먹을까.
가방을 들어봤더니, 씨발 서리 맺힐 정도로 가방이 차갑다. 냉동만두가 전혀 해동이 안 된거다.
그냥 씹어먹어도 되는건가 이거?
"하..."
가방 지퍼를 조심스레 열고 한숨을 푹 쉬고 있으니, 평복 여자가 내게 크림팥빵을 내밀었다.
"저...이거...괜찮으시면..."
난 빵과 여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거, 그 쪽이 먹을려고 챙긴거 아닙니까?"
꼬르륵.
으윽 씨발.
여자가 말했다.
"괜, 괜찮아요. 저희는... 집에서 라면 끓여먹고 왔거든요. 혹시나 싶어서 간식 좀 사러 온건데..."
여자의 손이 발발 떨린다.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왜..."
음...
가능한 친절하게, 상냥한 목소리로 종말이라고 설명해주면 이 여자가 진정할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에 한 표 던지겠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림팥빵을 받아들었다.
"잘 먹을게요."
바스락.
팥빵을 뜯는데도 소리가 클까봐 신경쓰인다.
제길.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폭신한 빵에 달콤한 크림이랑 단팥이 같이 들어온다. 엄청 맛있네 이거.
굶다가 먹어서 그런가.
와나 개꿀맛.
빵을 으적으적 먹으며 창고를 둘러봤다.
불이 켜져 있고, 각종 박스들이 쌓여있고, 창문은 없다.
...창문이 없다.
"...음."
다행이네.
난 즉시 폰을 꺼내들었다.
당장 할 건 부모님한테 전화해보는거다.
...안 받는다.
씨발!
"하아."
여동생 웬수년도 전화가 안된다.
제기랄, 연락은 주기적으로 해 봐야지.
그나저나...
배터리가 지금 65퍼 남았는데.
배터리 충전을 어디서 하지? 충전기는 고시원에 놔두고 왔는데.
아 씨발 난감하네...
편의점에 보조배터리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뉴스를 켜봤다.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글로벌 펜데믹이 발생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각 지역소식에 세계각국의 소식이 범람하는 가운데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극도로 높은 전염성을 보이는 신종 전염병은, 감염자로 하여금 상당한 폭력성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어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고 WHO 사무총장은 밝혀왔다. 현재 WHO 측은 전 세계의 제약회사들과 협조하여 신종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한편...]
...제약회사 같은 소리하네.
죽어서 뛰어다니면서 사람 덮치는걸 뭘로 치료할건데. 페니실린? 씨발.
딴거 없나.
[철원 군부대에서 신종 전염병 감염자 출몰?!]
[신종 전염병에 의한 해양 선박사고 잇따라.]
[도로정체로 화물 운송에 타격.]
[한국철도공사는 지하철의 운행 중단을 발표.]
......씨발......
국가기능이 마비됐단 소리잖아.
겨우 하루만에!
군부대에까지 저 좀비 나타난거면 군대도 섣불리 못 움직이는거 아니야?
아.
대통령 기자회견은 어떻게 됐지?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가적 위기임을 경고.]
기사를 눌러봤다.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상황에 처해있음을 인정하고 또 경고함과 동시에,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혀왔다. 하지만 계엄을 선포하지는 않을 것이라 선언하여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모 유명 군사전문가에 의하면 군부대에서 감염자가 출몰했다는 루머가 진실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나온거 맞나보네.
군대까지... 당한거야.
아마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군부대가 당해버리겠지.
스타로 치자면...
여기저기 멀티기지를 세워놨는데, 적군이 모든 멀티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서 지킬 수 있는 멀티가 몇개 안 되는, 그런 상황인거다.
도로가 막혀 군대를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고, 기지를 비웠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며, 다른 부대를 돕겠다고 들어간 군인들까지 덩달아 희생될수도 있다.
...공중폭격 같은건 안되나?
...생각해보니 그것도 좀 난감하네.
어디를 폭격할건데?
제일 희생이 큰 곳은 아마도 민간 거주지일거다. 거기다 폭탄을 떨군다고?
누가 감염자고 누가 생존자인지도 모르는데?
당장 이 편의점만 해도, 밖에는 저 씨발것들이 으르렁대고 있지만, 창고 안엔 나 포함 세 사람이 갇혀있다고.
여기다 누가 폭탄을 떨군다고 하면, 씨발, 그 새끼 멱살 잡아다 콘크리트 땅바닥에 메다꽂아도 시원찮지.
이 여자들이 살았고, 나도 살았다.
아마도 꽤 생존자들이 있을거다.
...그렇다면 폭격은 논외다.
결국 시가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군대는 발이 묶였다.
...그런 상황인거군.
골치아프다 씨발.
......엄마, 아빠.
전화는 왜 안 받아.
당한거야?
씨발년아, 너 뒤졌냐?
...돌겠네.
"하아..."
나도 모르게 무릎에 얼굴 파묻고 한숨을 쉬었다.
와중에 빵은 참 눈치없게도 맛있었다.
"...저어..."
쉰 여자 목소리.
눈을 슬쩍 들어봤다.
여자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날 보고있었다.
"...우, 우리집 저기 골목 바로 옆인데... 죄, 죄송한데 저희 좀 데려다주시면 안될까요...?"
...데려다달라고...?
지금 내 코가 석잔데 내가 누굴 도와줘.
장난하나.
난 눈을 느릿하게 한 번 껌뻑이곤 말했다.
"...저도 지금 오갈데가 없어서요."
난 학교 복학할려고 여기에 온 거지 눌러살던 놈이 아니라고.
집에 갈려면 씨발 기차를 타야된다.
살던 고시원은 여기서 한참 멀리 있을거다.
심지어 난 이 동네를 처음 와본다.
씨발것.
여자가 말했다.
"...저... 저희집 오, 옥탑방이 비어있는데 거기라도 괜찮으시면..."
...옥탑방?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여자가 말했다.
"원래 살던 분이 다른데 취직이 됐다고 지난달에 방을 빼셨거든요. 저희집... 요 앞에서 하숙집 하고있어요."
"...하숙집이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학교 근처 동네지.
하숙집 같은거 좀 있을법도 하네 그럼.
"저희집에 지금... 우리 식구랑 여대생 한 분 이렇게 계시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부모님도 같이 계세요?"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계세요. 엄마 아빠가 지난주에 일본에 여행을 가서... 여자들 뿐이라..."
...여자들 뿐이라고?
그래서 지들끼리 먹을거 구하러 나왔다가 이 사단이 난거구만.
남자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거같은데.
...으음...
일단 제안은 나쁘지 않아.
나도 렙업할려면 주기적으로 정신력을 회복시켜야 되고, 지금 알고있는 유일한 회복수단은 휴식 뿐이다.
쉴 곳이 필요해.
"...옥탑방 청소는 해 뒀어요?"
여자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네. 제 동생이랑 둘이서 열심히 청소했어요. 살림살이는 없는데... 저희가 좀 드릴게요."
살림같은거 하게 생겼냐.
난 피식 웃었다.
"잘 데만 있으면 됩니다."
난 창고 문을 바라봤다.
골때린다.
저 밖에 몇놈이나 있는지만 알아도 뭔가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