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87)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건데요."

물론 대답을 바라고 말한건 아니다.

난 창고를 한 번 둘러봤다.

뭐 쓸만한 거 없나?

조심스레 박스를 하나 하나 열어본다.

콜라, 사이다, 각종 과자와 컵라면들, 별의 별게 다 있다.

티슈랑 생리대도 있네.

흐음......

슈퍼 같은데를 털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아니.

잠깐.

...다이소?!

다이소 괜찮다!

다이소에 별의별거 다 있잖아!

어쩌면 무기로 쓸 만한 것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씨발.

생각해보니 다이소에 돌격소총이나 장검, 철퇴 따위가 있을리가 없잖아.

제기랄, 내가 언제 무기 같은걸 생각하고 살아본 적이 있어야 이럴때 머리가 핑핑 돌아가지.

생각나는게 고작 다이소라니.

박스를 하나 하나 열어봐도 쓸만한건 딱히 없었다.

"하아..."

잠깐.

박스들 쌓아놓은 선반...

이거, 딱 쇠파이프처럼 생겼는데?

나사조임 방식 선반이네.

나사만 풀면 분해할 수 있겠어.

여자들은 내가 뭘 하는지 그냥 보고만 있다.

보든지 말든지 난 나사를 손으로 낑낑대며 풀기 시작했다. 씨발, 맨손으로 하려니 영 빡세네.

내가 뭘 하는지 보고있던 평복 여자가 주머니에서 뭘 꺼내 내게 건넸다.

열쇠다.

"이, 이걸로 한번..."

끄덕여주곤 열쇠를 받아들어 십자나사에 끼워넣어 봤다. 젠장, 안 돼.

"하아..."

뭐 없나?

그때 꼼짝도 않고있던 교복여자가 내 발치로 뭘 툭, 던졌다.

커터칼이었다.

던질 때 손을 보니...

손목에 칼자국이 제법 나있는데.

자해를 무지하게 했구만.

평복 여자가 교복 여자를 째려봤다.

"소은아. 너 아직도 이런거 갖고다녀?"

소은이라는 교복 사이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무릎에 고개만 파묻고 있을 뿐이다.

답답한 년이네 씨발.

편의점 입구에선 재잘대면서 잘도 떠들더니만.

커터칼을 집어들고 나사에 끼워넣었다.

이건 되겠는데?

"잘 쓸게."

난 천천히 나사를 풀기 시작했다.

나사를 풀면서 생각해봤다.

이 커터칼, 무기로 쓸 수 있을까?

...10초만에 생각이 사라졌다.

날이 뚝, 부러진거다.

제길.

이걸론 피부에 흠집밖에 못 내겠는데.

머리를 아작내야 되는데 날 부러지는 커터칼 갖고 깔짝거릴순 없어.

선반 위 박스를 내려놓고 나사를 하나 둘 풀어가면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

생각해라.

이 쇠파이프, 아마도 스테인리스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금속이겠지.

즉, 가벼운거다.

진짜 안이 꽉 찬 묵직한 쇠파이프가 아냐.

그러면 이걸로 어떻게 공격해야되나.

머리를 내리쳐?

이거 가벼운데?

혹시나 삼단봉보다도 못한 위력 아닐까?

과연 이걸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까?

나사를 풀어가면 풀어갈수록 이 금속 파이프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간다.

......아니지.

방법이 없진 않지.

휘두르는게 아니라, 찌르는거다.

창처럼 쓰는거야.

이 파이프, 길이는 약 1.5미터 가량.

길이도 적당하고, 찌르기만 잘 찌르면 휘거나 부러지는 일은 아마 없을거다.

삼단봉은 잘못 찌르면 그냥 손잡이로 쑥 들어가버리니까 창으로 쓸순 없어.

휘두르는 둔기로밖에 못쓴다.

그래.

창을 만들어보자.

이걸로.

나사를 다 풀었다.

"후우..."

선반은 반쯤 분해됐다.

내게 필요한건 파이프 하나.

죄다 분해할 필욘 없다.

난 파이프를 손에 쥐고 쓱 둘러봤다.

......아......

좀 힘든데.

이거, 손에 땀이 젖어있으면 잘못하면 미끌리겠어.

분체도장이 되어있긴 한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지. 뭘로 좀 감아놓으면 좋겠는데......

"...음."

난 허리의 벨트를 즉시 풀었다.

커터칼로 고리 넣는 구멍을 찢었다.

제길, 존나 질기네.

앞뒤로 조금 잘라내니 풀어놓은 나사가 들어갈만큼 벌어졌다.

그걸 파이프에 대고 나사구멍에 박아넣고는 암놈을 꽉 조였다.

힘 꽉 주면서 파이프에 칭칭 감아, 끄트머리 구멍에도 나사를 박고 조였다.

...벨트 손잡이다.

소가죽이라 손에 착착 달라붙는데.

파이프에 구멍 사이가 넓어서 1.5미터 길이중에 0.5미터는 손잡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뭐.

이게 어디냐.

벨트는 나름 단단하게 고정된 것 같다.

이제......

이 파이프 창의 창날 부분을 손봐야 되는데...

가능하다면 창날 부분의 쇠를 깎아내서 죽창처럼 만들면 좋겠는데, 이걸 깎아낼 도구도 시간도 없다.

...밟아볼까.

아니.

신발 밑창이 무슨 쇳덩어리로 되어있지 않는 이상, 물렁한 운동화 따위로 이걸 밟는다고 우그러들 것 같진 않아.

아, 제길.

그냥 편의점 창고다.

무슨 대단한 도구가 있겠어.

이게 전부지 씨발.

박스를 도로 선반에 올려놓고 주저앉아 벽에 기댔다.

"...하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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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2]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3/6] [감각 - 2/2]

[힘 - 4/5] [민첩 - 4/4]

[정신 - 3/8]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0]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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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될려면 좀 기다려야겠는데.

이걸 창으로 쓰는것도 좋은데, 아무래도 정신이 3이어선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가속을 확보해놓는게 좋아.

난 창을 들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난 한성훈입니다. 두 사람은 이름이?"

평복 여자가 쉰 목소리로 날 바라봤다.

"김예은... 얘는 김소은. 제 동생이예요."

예은, 소은.

그렇구만.

난 고개를 끄덕이곤 상태창을 힐끗 바라봤다.

얼마나 기다려야 정신력 5점까지 회복되지?

아깐 자고 일어나느라 경황이 없었어. 몇시간이나 잤는지도 모르겠고.

여자들을 힐끗 봤다.

예은이는 긴 생머리 포니테일이다.

소은이는 단발머리.

소은이 얼굴을 제대로 못봐서 닮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예은이는 꽤 괜찮게 생겼다.

몸매도 뭐, 자세히는 안 봤는데 눈이 불편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으니 나쁘진 않은 것같다.

못생긴거 보다야 낫다만 그보다 중요한건 예쁘고 못생기고가 아니라 어그로질을 하느냐 마느냐지.

부탁인데 지금부터 할 말 잘 좀 새겨들어라. 어그로질 할 생각 말고.

"있죠, 여기서 나가는거 말인데."

예은이가 날 본다.

소은이는 움찔했다.

"난 이걸로 저 놈들을 찔러 죽일겁니다."

그러며 내 이마를 가리켰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진 않을거다.

예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난 나직이 말했다.

"지금은 끔찍하니 어쩌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여기서 살아나가는게 중요해요. 저 놈들이 다른 사람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두 사람도 모르지 않을겁니다."

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얼굴이 보이는건 예은이 뿐이다.

"좀 쉬었다가 시작할거요. 그땐 비명 지르지 말고 나를 도와주면 좋겠네요."

예은이 희미하게 떨면서 말했다.

"저...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려요..."

난 문을 힐끗 바라봤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몇 놈일까.

우르르 쏟아져 들어온게 모두 몇놈이었지?

당장 기억나는건, 최소 4마리.

그 이상일 수도 있고, 4마리일 수도 있다.

"후우..."

난 고개를 끄덕이곤 예은을 보며 말했다.

"...저 문을 열면, 아마 밖에있는 놈들이 들이닥치려 할거요. 내가 이걸로 찌르고 나면, 다시 문을 닫아야 돼요."

이 여자들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지.

"가능하면 내가 알아서 할거지만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땐 문 닫는걸 도와줬으면 좋겠다. 라는 겁니다. 할 수 있겠어요?"

예은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점점 숙였다.

대답은 없었다.

소은이도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아......씨발거 진짜.

주먹질 좀 해본 놈팽이 딱 한명만 여기 있으면 좋겠는데.

둘이서 팀웍 맞춰서 움직이면 가속빨 받아서 저거 네마리 정도는 어떻게 해볼 것 같은데 씨발.

하필 여자가 들어와갖고 하아...

일단, 기대는 하지 말자.

말해둔걸로 됐어.

도와주면 운이 좋았다 여기고, 그냥 혼자 알아서 해보자.

씨발.

"나 쉽니다."

가방 놔두고 베고 누웠다.

한두시간 있으면 그래도 좀 회복되겠지.

5점까지 회복되는데는 그러나 4시간이 걸렸다.

자고 일어난지 얼마 안되어 상태창을 보고있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회복되는지도 알아냈다.

1시간에 10퍼센트다.

체력이 10퍼센트만큼 회복되고, 나머지 스텟들이 체력에 맞춰 회복된다.

즉 체력이 6이므로, 한시간에 0.6이 회복되고, 체력이 4점을 초과하면 체력 1점이 소모되며 다른 스텟들이 1점씩 회복되는거다.

체력을 0부터 완전히 회복시키는데 10시간.

다른 스텟들도 함께 회복시키는데 적어도 15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젠장.

엄청나게 쉬어야 되잖아.

빨리 스텟을 올려서 회복량을 늘려야돼.

가속 횟수를 늘려야 되므로 정신력이 1순위.

그리고 체력이다.

힘이랑 감각은 뭔지 모르겠네.

활동하면 체력이랑 같이 소모되는거 같긴 한데, 정확한 용도는 아직 불명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내가 앉자 여자들도 부스럭거리며 고개를 든다.

쟤들도 졸고있었구나.

이 상황에 잘도 조네.

"후우..."

내가 일어나자 예은이 날 보며 물었다.

"...하실거예요?"

"해야죠."

바로 옆 선반에 삼단봉을 올려놨다.

저건 휘어서 안으로 다시 안 들어간다.

저대로 두는 수밖에 없다.

오른손으로 창을 쥐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 앞에 대놓은 선반은 일단 놔둔다.

창 찌를 정도로만 딱 열릴거다.

아......씨발, 긴장되네.

"...연다."

여자가 침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손잡이 잡은 손을 슬슬 내려 잠금장치를 잡았다.

그리고, 돌렸다.

...찰칵.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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