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87)

...제발 씨발 아니기를 바란다.

만약 그런거면 가속 횟수가 얼마가 되든, 한 번에 5놈 밖에 처리 못한다는 뜻이잖아.

만약 그렇다면, 정신만 올려서 될 일이 아니다.

가속이 얼마가 되든, 힘이 0이 되면 그 다음엔?

씨발!

미친, 제발 아니어라!

"후..."

짜증이 슬슬 올라와 얼굴 찌푸리며 벽에 머리를 댔다. 예은은 그걸 보고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히...힘내세요. 네?"

피식 웃으며 예은을 봤다.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 줬다.

뭐라고 할거냐.

힘내라는데 그냥 끄덕이는거지.

"조금만 더 쉴게요."

"...네..."

두시간이 더 지나서야 5점을 확보했다.

폰을 보니 새벽 세시다.

소은이는 예은이 품에 안겨서 잠든 모양이다.

미안한데, 이제 일어나야 돼.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은이와 소은이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예은이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일어나서 내 뒤로 왔다.

응?

예은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도울게요. 문... 닫는거."

오.

좋아.

난 한걸음 옆으로 서서 선반을 가리켰다.

"여기 서세요."

예은이 선반에 바짝 붙는다.

난 창을 꼬나쥐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생각해내라.

아까 고삐리 대가리에 창 꽂을때, 얼마나 힘을 썼는지.

확실히 한방에 하나씩 대가리에 꽂는거다.

창에 날이 있으면 더 수월했겠지.

하지만 없다.

지금 가진게 전부다.

온 힘을 다해서 찌른다.

한방에 한놈씩.

내게 주어진 시간, 5초.

"...엽니다."

"네."

제법 결심을 다진 모양인데.

어투가 꽤 맘에들어.

난 잠금장치를 열었다.

찰칵.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끼리릭...

윽. 경첩이 나간 모양인데.

하도 저 놈들이 두드려댔으니.

몇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또 잠잠하다.

바닥을 보니, 역시 세 놈이 뻗어있다.

카운터에서 코앞이다.

바로 내 발밑이다.

......잠깐.

내 바로 발 밑에 있잖아.

머리가......

좀 멀리 있긴 하네.

한 1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서로 엎치락 뒤치락 겹쳐있느라 좀 애매하다.

두 놈은 다리밖에 안보이고, 한 놈만 뒤통수가 간신히 보인다.

난 창을 슬슬 내밀었다.

어쩌면 가속을 쓰지 않고도 한 놈은 해치울 수 있을지 몰라.

놈에게 조준하고 뒤로 천천히 당겼다.

가속 없이 한 놈을 죽일 수 있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숨을 들이마셨다.

계속 들이마셨다.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들이마셨다.

숨을 멈췄다.

손아귀에 힘을 준다.

내리찍는거다, 단숨에.

온 힘을 다해!

"...흡!"

금속 쇠파이프가 놈의 뒤통수에 정확히 작렬했다.

파가각!

창날이 뚫고 들어갔다!

빼! 빨리!

"푸핫!"

숨을 내쉬며 힘껏 창을 당겼다.

동시에 두 놈이 포효하며 일어났다.

"크라롸락!"

"크아아악! 크롸아악!"

두 놈이 이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창을 다 당겼다!

놈들이 달려든다!

찢어지고 헤집어진 면상이 급격히 다가온다!

씨발, 가속!

[자동시전 : 가속]

"크롸-아--아---"

개구리처럼 온 몸을 펴며 달려드는 체크무늬 남방. 그리고 기괴한 얼굴과 손밖에 안 보이는 양복.

동시에 멈췄다.

난 이를 악물고는, 체크무늬의 대가리를 향해 있는힘껏 찔러넣었다.

"흐읍!"

퍼거걱!

정수리에 정확히 쇠파이프가 꽂혀들었다.

빼려고 하는데 잘 안 빠진다!

"크윽!"

온 힘을 다해 다시 당겼다!

빠졌다!

시간이 없다!

양복쟁이의 면상에 창을 겨눴다.

"---아--아-"

씨발!

"크압!"

힘껏 놈의 대가리로 창을 찍어내렸다.

빠가각!

단단한게 박살나는 느낌과 함께 물렁한걸 헤집는 느낌이 손 끝으로 전해져 온다.

끔찍한 느낌이다.

개씨발!

"-아-롸럭!"

쿠콰쾅!

포효하던 놈들 둘이 동시에 문을 들이받으며 엎어졌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하아, 하아, 하아."

머리가 새하얗다.

아무 생각이 안 든다.

파이프 창을 두 손으로 잡고, 난 허공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숨소리가 가쁘다.

내 숨소린가, 이건.

잠시 지나자 소리가 들렸다.

"...이이잉... 아아앙..."

...누가 울어?

우는 소리 같은데?

"헉, 하아, 하아, 후우."

옆을 돌아봤다.

고개가 뻣뻣해져 잘 안돌아간다.

소은이가 애앵거리며 울고있었다.

예은이는 언제 갔는지 옆에서 소은이를 안고 있다.

"울지마. 울지마. 이제 끝났어."

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였다.

거의 좀 제정신이 아니다.

단숨에......

단숨에 세 놈을 없앴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아.

렙업했다.

"하아, 하아, 후우, 하아."

땡그랑.

창이 떨어졌다.

맥이 탁 풀려,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버렸다.

씨발, 안 되지!

난 몸을 굽혀 창을 집어들었다.

"...우웁!"

씨발, 토할 것같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쳐들었다.

"크릅!"

개씨발!

뭐 먹은것도 없는데 토는 나오고 지랄이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버텼다.

씨발, 토하지 마라.

들어가!

뱃속에 든것도 없구만, 썅!

아.

지나갔다.

구역질이 지나갔어.

손을 떼고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후우. 하."

머리가 돌아버릴 것같다.

사람을... 셋이나 죽였다.

아니, 넷을.

아니, 다섯이다.

......다섯명을 죽였다.

이 편의점에서.

...아니.

착각하지마.

자꾸 착각하고 있는데, 정신차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야.

"후우... 후우..."

난 선반을 붙잡고, 창을 들고 일어섰다.

"후우... 후우..."

옆에선 아직 소은이가 애앵거리며 울고있다.

정신차려.

이제 끝났어.

이제,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돼.

"후우... 흐읍!"

정신차리자!

창을 당겼다.

털컹!

문에 뭔가 부딪힌다.

...씨발, 양복쟁이 대가리다.

창에 아직 꽂혀있었구나.

난 예은과 소은을 보며 말했다.

"...여기 보지마."

예은이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소은을 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난 문을 밀면서, 동시에 창을 당겼다.

퍼걱!

창이 빠졌다.

"후우, 하아..."

...됐어.

된거야 이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생각을 더이상 못 하겠다.

하루만에 다섯명이나 죽였다.

상상해본 적도 없다.

...트라우마 생기겠는데...

난 이마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렸다.

정신차려라.

정신차려.

살았다. 그것만 생각해.

나는 살았다.

"스읍... 후우."

심호흡하고나서 여자들을 돌아봤다.

쟤들도 보통 충격 먹은게 아닐거다.

특히 예은이는 내가 뭘 하는지 다 봤지.

난 말했다.

"...갑시다. 집에."

선반을 천천히 치웠다.

밖에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있을지 모른다. 소리내지 않게 들어서 옆으로 옮기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문 앞에만 네명이 죽어 엎어져있다.

네명이다.

네명이 머리가 뚫려 죽었으면 엄청난 양의 피가 나와야 정상이다.

웅덩이를 이루고 있어야 된다.

하지만, 바닥은 깨끗했다.

파출소에서 목을 물린 경찰이 피를 뿜던게 떠오른다. 심장이 작동하고 피가 도는 건강한 신체라면, 그정도로 피가 나오는거다.

그런데 네명이나 머리가 뚫려 죽어있는데 바닥이 깨끗하다고?

...역시 심장하고는 상관없는 거였어.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