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출출하니 일단 뭐라도 좀 먹고가자.
편의점에 들어가니, 카운터와 그 뒤쪽 창고 땅바닥에 시체들이 쌓여있다.
내가 찔러죽인 시체들이다.
찝찝한 광경인걸.
박살난 유리를 자박자박 밟으며 진열대를 바라봤다.
삼김......
흠.
아직 먹을수는 있을거야.
유통기한 짧은 것부터 빨리 먹어치우자.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니, 끝나기는 할지 모르는데 식량은 중요하게 다뤄야돼.
좀 놔둬도 되는건 놔뒀다가 천천히 먹고.
어차피 누가 가져갈 사람도 없어보이는데.
진열대에 놓인 삼각김밥을 우르르 집어 가방에 쑤셔넣었다.
냉장고에서 500밀리 생수 한 병을 집어 아디다스 백팩의 유틸리티칸에 집어넣었다.
말이 좋아 유틸리티 칸이지 그냥 가방 겉에 달린 고무그물이다.
삼김 하나를 까서 입에 집어넣으며 편의점을 나왔다.
삼단봉이야 뭐, 저기 놔둬도 상관없겠지.
누가 갖고갈 것도 아니고.
파이프 창이면 충분할거야.
파삭.
쩝쩝.
...밥이 살짝 굳었네.
젠장.
역시 급한 것부터 빨리 먹어치워야 되겠어.
파삭.
삼김을 쩝쩝거리며 도로가로 걸어갔다.
......도로로 그냥 들어가도 괜찮은건가......
어제까진 별 생각 없었는데, 조심해야 된다.
혹시 차 밑에 있진 않겠지?
삼김을 입에 물고 엎드리다시피 밑을 살폈다.
음......
일단 여기서 보기엔 뭐 없어 보이는데.
좀비들 다 어디있는거야?
일어나서 삼김을 다시 베어물었다.
파삭.
창을 들고 조심스레 도로가로 들어갔다.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해야 된다.
가속이 있지만, 그거 하나 믿고 멋대로 나댈순 없다.
목숨은 하나뿐이다.
파삭.
쩝쩝. 삼김 하나를 다 먹었다.
약간 배가 차긴 하네.
두 손으로 파이프 창을 꼬나쥐고 도로를 건너갔다.
실바람이 불어온다.
으아아아-
비명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멀리 어딘가에서 누군가 당한거다.
비명소리가 아저씨 같은데...
어쩌다 당해버린거지?
먹을거 구하러 나온건가?
"...후우..."
있다.
여기에도.
눈에 안 보일 뿐, 좀비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로를 다 건넜다.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로등을 끼고 큰 도로가 꺾어지며 삼거리를 이루고 있는 밝은 길가.
도로보다도 더 위험해 보인다.
이런데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골목이 있어서, 직접 가보기 전엔 골목에 뭐가 있는지 안보인단 말이지.
주위를 살피며 맥도날드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맥도날드만 지나면, 미용실.
그리고 철물점이다.
"...!"
걸음을 멈췄다.
등줄기로 소름이 치솟아 오른다.
...알았다.
이 좀비들이 죄다 어디에 있길래 안 보인건지 이제 알았다.
커다란 주상복합건물.
그 안쪽의 주차장.
불도 켜지지 않는 어두운 주차장.
거기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크르르륵- 크르르륵-
한놈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몇놈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엄청나다.
약하게 코골이하는 사람 수십명이 동시에 저기서 자고있는 것같은 소리가 난다.
건물 벽에 기대어 주차장 쪽으로 힐끔 고개를 내밀었다.
심장이 두근댄다.
...개씨발...
지하로 통하는 주차장 입구에, 맛집 오픈 기다리는 인파의 행렬처럼 좀비들이 서있다.
아마도 저 주차장 안으로는 더 많은 놈들이 들어있을거다.
대체 왜 저기 있는거지?
...어두운데를 선호하는건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놈들은 대낮에 나타났다.
대낮부터 사람들을 쫓고, 깨물고 다녔다.
태양빛에 무슨 타격을 입는건 아닌거다.
그냥 어두운데를 더 좋아할 뿐이다.
그런거군.
"...후우...후우..."
조심스레 숨쉬며 몸을 돌려 벽에 기댔다.
...지나가도 괜찮은건가.
여길 안 지나가면 맥도날드까지 어떻게...
눈 앞에 지하도가 보였다.
이거다.
지하도로 해서 저쪽으로 빠져나오자.
마침 맥도날드 근처가 사거리라 지하도가 저기서 나오도록 되어있다.
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지하도 난간을 붙잡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걸음을 멈췄다.
크르르륵- 크르르륵-
"......"
지하도에도 가득하다.
이......씨발것들이, 지하도에도 가득하다!
씨발, 지하도는 밝다고!
왜!
...빛...하고는 상관 없는건가.
그냥 어딘가 처박힐만한 곳에 죄다 처박혀 있다고 봐야되나.
주위를 돌아봤다.
수많은 건물들.
건물 내 주차장들.
지하로 연결된 길들.
...죄다 던전인 셈이다.
씨발...
새삼 식은땀이 나네.
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지하도에서 멀어졌다.
그래.
건물 하나 하나, 지하도 하나 하나가 죄다 던전이라 이거지.
알겠어.
오히려 큰 도로가 더 거닐기 좋은 곳이라는거군. 씨발, 딱 좋네. 가로등에 훤히 비춰지는 데서 나 혼자 걸으면 잘도 눈에 안 띄겠어.
차들 사이사이로 숨어가며 건너편으로 오긴 했지만, 일직선으로 도로를 걷는건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 신호가 걸려서 차들이 서있는거지, 저 앞에는 그냥 빈 도로라고.
도로 전체가 차로 꽉 차있는게 아니다.
어느 구간엔 차로 막혀있고, 어느 구간은 뚫려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건물 주차장 골목을 지나가기도, 지하도로 들어가기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도로를 걷는게 낫겠어.
"후우..."
난 파이프 창을 꼬나쥐고 도로로 다시 들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이 놈들이 길거리를 배회하진 않아서.
어디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면, 거기만 피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조그만 가게 같은데야 있어봤자 몇놈이나 있겠어. 거기 있는 놈들이나 처리하고 안에서 물건 갖고오면 되는거지.
"후..."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걸었다.
이렇게 걷는 것 만으로도 꽤 체력소모가 심한 모양이다. 벌써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냄새 오진다 씨발.
어제부터 얼마나 땀을 흘려댔는지 모르겠다.
꺄아아아-
멀리서 메아리치는 여자 비명소리.
너무 가냘픈 소리라 금방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종말 첫날, 그리고 둘쨋날을 버티고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이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희생되고 있다.
저벅- 저벅-
그 사람들 죽는거야 내가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다. 난 그냥 내 할 일이나 하자.
맥도날드까지 왔다.
도로 한가운데서 맥도날드를 보니...
오, 갈비버거 행사중이네.
"......"
들어가진 못하겠네.
저 안에 최소한 열마리가 있는 것 같은데.
2층까지 합치면 수십마리는 되겠다.
서서 몸을 흔들 흔들 하는거 보면 진짜 사람같은데... 좀비 씹새끼들.
...이제 차가 없다.
숨어서 걸어가는건 이게 마지막이다.
...씨발, 가자.
차 옆구리에 숨어있는다고 철물점이 나한테 와주는건 아니라고.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몇걸음 더 걸어가니 다른 건물의 미용실이 드러났다. 씨발것, 저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용사와 머리하던 아줌마, 젊은 여자들이 피칠갑을 하고 멀뚱멀뚱 서있다.
저기도 열명쯤 있는것 같네.
...철물점은 얼마나 있는거지?
씨발, 수십명이 들어있으면 곤란한데.
"...!"
미용실에 있던 여자가 나를 본다.
보는 것같다.
아니, 진짜 나를 보는건가?
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여자의 고개가 내 쪽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눈이 내게 고정되어 있다.
화... 확실히 나를 보고있는거다.
여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나도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터질 것같다.
텅-
여자가 유리에 슬쩍 부딪혔다.
난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내, 미용실 유리가 시야에서 좁아지며 멀어졌다. 그때까지도 여자는 끝까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여자가 하는 행동이 마치 저건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보인듯 안 보인듯.
눈이 별로 좋지 않은건지, 아니면 좀비 되는 바람에 멀리 있는건 잘 못보게 된건지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그랬다면 아마 달려서 유리창을 박살내고 내게 달려들었을거다. 그러면 다른 수십마리들도 즉시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왔겠지.
가속을 써도 여기서 하숙집까지는 도착 못한다. 결국 저 좀비들을 끌고 들어가는 셈이 됐을거다.
...그랬으면 다 죽었겠지.
...집...
집을 보완해야 되겠어.
창문을 틀어막고, 돌담벽에도 뭔가 조치를 취하고, 좀 더 안전하게.
돌아가게 되면 안수현이랑 얘기해봐야겠다.
철물점이 앞에 보인다.
"후우... 후우..."
개씨발.
심장이 벌렁거린다.
파이프 창을 꼬나쥐고 도로를 가로질러 철물점을 향해 걸어갔다.
도로는 고요하다.
거리도 고요하다.
하지만 이곳엔 좀비들이 꽉 차있다.
제기랄, 벌써 땀범벅이야.
온 몸이 축축해.
좌우를 살피며 철물점으로 들어갔다.
수도꼭지와 샤워기, 콘센트와 멀티탭 따위가 선반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걸려있는게 보인다.
불이 켜져있다.
문도 열려있다.
여름이라 그런가.
여기엔 몇놈이나 있는걸까.
창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들어갔다.
철물점 안으로 한 걸음을 들어갔다.
문 위에 앙증맞은 차임이 달려있다.
이 문... 조심해야 돼.
잘못 건드리면 저 차임이 쨍그랑 소리를 낼거다.
문 옆 카운터는 비어있다.
핀셋부터 몽키스패너까지 각종 공구가 늘어선 벽면과, 온갖 테이프 종류와 건전지 따위가 진열되어 있는 선반이 좁은 철물점 안을 거의 가득 메우고 있다.
한 사람 지나가기도 비좁을 정도다.
뭐 이렇게 좁게 만들어놨냐.
잘 안보이잖아.
선반과 선반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칸과 칸 사이를 살폈다. 밖을 내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심해야 된다.
어.
카운터 옆쪽에 또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