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87)

저기는 불이 꺼져있다.

왜지?

천장을 올려다보니, 전등이 깨져있다.

......안좋은데......

살며시 걸음을 옮겨봤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

있다.

저 안쪽에, 전등 깨진 곳에 있다!

선반 왼쪽으로 걸어가서, 왼쪽 벽면을 타고 저기까지 갈건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서 카운터를 타고 저기까지 갈건지.

선택해야 된다.

좀비을 저기에 두고 물건을 챙길순 없어.

물건 집다 뒤에서 날 덮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당할지도 모른다.

저걸 처리하고 챙겨야 돼.

어느쪽으로 가지?

...내가 카운터로 들어왔을 때 날 공격하지 않았지.

그렇다는 말은, 카운터 쪽에선 날 못본다는거다.

심장이 뛴다.

난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벽에 걸어놓은 공구들 건드리지 말고.

조심 조심.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게 한세월이다.

온 신경이 저 어두운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쪽에 켜져있는 전등 덕분에 저쪽이라도 완전히 어둡진 않지만, 컴컴하게 그림자져 있어 분위기가 음산하다.

심장이 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것같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보인다.

바닥에 전깃줄과 나사 따위가 흐트러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크르르륵- 크르르륵-

언듯 보면 죽은 것같다.

죽은게 아니다.

저건 그냥 뻗어있는거다.

어떤 놈들은 서있고, 어떤 놈들은 뻗어있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뻗을 공간이 있으면 뻗어있고 뭐 그런건가.

...설마.

누워있는놈도 있고 서있는 놈도 있고 무작위인 거겠지. 저놈들 속을 어떻게 알겠어?

그렇다면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놈들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놈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겠네 씨발.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손으로 창을 꼬나쥐고 들어올렸다.

툭. 땡그랑-

씨발!

창이 문을 건드렸다!

차임이 울렸다!

"크롸롸롹?!"

두마리가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가깝다!

피할 수 없다!

도망칠 수도 없다!

개씨발, 모르겠다!

난 놈들에게 뛰어들었다.

날 발견한 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씨발, 가속!

[자동시전 : 가속]

"카아-아--아---"

느려졌다! 어둡다! 얼굴이 안 보인다!

그러나, 저기 있는 형상은 분명히 머리!

두 손으로 창을 움켜쥐고 머리로 힘껏 찔러넣었다.

파가각!

단단한게 뚫리며 물렁한걸 헤집는 느낌이 끔찍하게 전해졌다.

난 힘껏 창을 당겨 뽑아내곤, 그 너머의 머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찔러넣었다.

퍼걱!

"-아--아-뤍!"

쿠당탕! 털썩!

좀비 두마리가 즉시 앞으로 엎어졌다. 한 놈은 카운터에 부딪히며 굉장한 소리를 냈다.

"헉, 헉, 헉!"

소리가 시끄러웠어.

난 즉시 뒤돌아봤다.

뭔가 온다면 즉시 여기서 탈출해야 된다.

"하아, 하아, 하아."

숨소리가 시끄럽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고요하다.

...다행이다.

"하아, 후우..."

[레벨이 2 올랐습니다.]

한놈당 1레벨씩이냐.

하...씨발.

그래도 레벨은 잘 오르는 편이네.

난 우두커니 서서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만약 안에 뭐가 더 있다면 들리는게 있을거다.

잠시 기다려봤지만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좋아.

시선을 내려보니 내 파이프 창에 머리가 꽂혀있는 시체가 보였다.

창에 꿰여있어 목이 거의 꺾어지다시피 들려있다.

...아줌마다.

저기 있는건 아저씨네.

철물점 주인 내외?

...아니야.

부부일리 없어.

둘 중 누군가가 감염되어 여기로 뛰어든거다.

가게를 지키고 있던 한 사람이 물린거고.

누가 가게 주인인지 모르겠네.

난 창에 뚫려있는 아줌마의 머리를 밟았다.

그리고, 창을 뽑았다.

퍼걱!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창이 뽑혔다.

제길.

피와 머리칼이 완전히 엉겨붙어 찐득하다.

안 씻기겠는데 이거?

난 조심스레 철물점 안을 둘러봤다.

옛날에 봤던 좀비 드라마가 생각난다.

대충 처리하고 가게에 들어가서 신나게 물건 챙기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좀비한테 물려 뒤지는 놈, 꼭 나온다.

난 절대 그런 놈이 되지 않을거다.

창을 두 손으로 쥐고, 신경을 집중하며 가게를 한바퀴 돌아다녔다.

없다.

확실히 없다.

어디 숨어있을 구석도 없다.

그냥 벽과 선반에 가득 진열된 공구와 바닥에 엎어진 시체 둘. 그걸로 끝이다.

"하아..."

안심했다.

씨발.

이제 좀 챙겨볼까.

일단 마체테......

...없다.

씨발, 마체테가 이런 동네 철물점에 있을리가 없지.

아마 나무나 풀 같은걸 퍽퍽 잘라내는 용도로 주로 쓰는 물건일건데, 여긴 도심 한복판이다.

잘라낼 나무도 풀도 없다.

무기로 쓸만한거 뭐 없나...

렌치, 몽키스패너, 펜치같은 공구는 엄청 많은데, 날붙이는 생각보다 없네.

...!

씨발!

찾...찾았다!

밝은 쪽에선 니퍼, 샤워헤드, 전깃줄같은 별 쓰잘데 없는것 밖에 없더니, 어두운데로 들어오니 벽에 바로 걸려있다!

도끼다!

큰 도끼, 작은 도끼 다 있다!

큰놈은 1미터도 족히 넘을 것 같은데!

"후우, 후와!"

너무 기뻐서 숨쉬기도 힘들다.

혼자서 주먹 꽉 쥐고 기뻐하다 주위를 둘러봤다. 고요하다.

좋아.

챙기자.

작은 도끼는 꼭 토마호크처럼 생겼다.

이런게 철물점에 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체테 없으면 씨발 이런거라도 있어야지.

그래야 철물점이지!

아, 너무 기쁘다.

도끼들 걷어다 가방에 쑤셔넣고, 큰 도끼를 내려 두 손으로 쥐었다.

묵직하다.

"후우..."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이 묵직함.

어느정도로 각도 맞춰 휘두르기만 해도 원심력을 받아 날이 그대로 박혀 들어갈거다.

아주 좋아.

어두워서 뒤늦게 발견했는데 구석에 보니 전동제초기도 보인다. 진공청소기처럼 생겼는데 끝에 회전날이 달린 놈.

...저건 무기로 쓰긴 좀 그렇지?

벌초할때 써본적 있는데 저거 은근히 무거운데다 시끄럽긴 진짜 겁나 시끄러워서 주변에 있는 놈들 죄다 끌어모을거다.

안돼.

나는 아직 약하다.

저런 어그로 만땅 기계를 드르르릉 거리면서 다닐순 없어.

조심해야 돼.

챙긴건 1미터 길이의 대형도끼 하나.

그리고 토마호크 네개.

이 조그만 도끼...

허리에 걸어놓고 싶은데.

안되나?

으음... 벨트가 없어...

난 파이프 창을 내려다봤다.

내 벨트...

도끼 득템했으니 뭐, 이 불편한 파이프 창은 굳이 필요 없겠지?

나사를 풀어 벨트를 벗겨냈다.

허리에 벨트를 다시 채우는 동안 밖을 내다봤다. 여기 온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네.

하숙집 떠날때 막 밤이 됐으니, 아직 자정까진 한참 남았을거다.

벨트를 잠그고, 토마호크를 양쪽 옆구리에 하나씩 꽂았다.

날이 위로 가도록 꽂아놓으니 제법 잘 매달려있다. 문제는, 씨발, 불편하다.

골반 양쪽에 뭐가 누르는 느낌이 든다.

씨발, 폼은 나는데 존나 불편해!

후.

불편한거 정도는 감수해야지.

안전빵이 우선이야.

바닥에 내려놓은 대형도끼를 들고, 벨트에 토마호크 두개를 차고, 나는 철물점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안수현이 나한테 뭐 갖고 와달라고 했었지?

폰을 들었다.

[철물점에 왔어요. 필요한거 없습니까?]

잠시 기다리자 띵또리롱~ 하며 메세지 도착알림음이 울렸다.

개씨발!

난 폰을 움켜쥐고 밖을 내다봤다.

잠시 기다렸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하아..."

미친 씹...

진동으로 바꾸자.

설정을 만지고 나서 메세지를 봤다.

[용접기나 아니면 강력접착제? 그리고 공구 종류는 일단 있으면 좋겠죠. 아, 그리고 혹시 대형 배터리 있으면 좀 부탁드릴게요.]

...대형 배터리?

[배터리는 왜요?]

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이제 뉴스도 안 나와요. 업데이트 되는데가 거의 없어요. 발전소가 아직 가동하는 것 같긴 해도 확신할 순 없잖아요. 사태가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전기도 언젠간 끊길 수 있어요.]

......그......

그렇구나......

전기가......

잠깐.

[그럼 물은요?]

[수도는 아직 괜찮은 것 같지만, 전기가 끊기면 아마 수도도 같이 끊길거예요. 상수도도 전기가 있어야 수질정화 하고 수돗물을 만들어낼 테니까요.]

...그래...

안수현의 말이 맞아.

전기와 물...

중요하다.

[알겠어요. 일단 가방이 작아서 많이는 못 챙길것 같아요.]

[네 조심해서 오세요.]

...후우...

폰 배터리는 이제 14퍼 남았다.

14퍼라...

전기가 없으면 이거 충전도 못한다는 소리겠지.

그럼 엄마 아빠한테 연락도 못해.

여동생 웬수년도.

...아무쪼록 무사해라.

어두운곳 구석에서 배터리를 찾아냈다.

제일 큰 배터리가 내 주먹 두개 붙여놓은 것보다 크다. 그걸 들려고 하는데, 씨발! 욕할 뻔했다.

미친, 개좆나 무겁잖아 이거.

배터리가 그래 무겁긴 하지.

아, 씨발!

끙끙대며 겨우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방 뜯어지는거 아니야?

공구 몇개랑 테이프, 혹시 모르니 철사랑 전깃줄 따위를 좀 챙기고 나자 가방이 묵직해졌다.

"하아..."

무겁다 씨발...

20킬로는 넘는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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