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187)

숨소리도 조심스레 내뱉으며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4층이라고 했었지.

2층은 뭐지?

...2층도 마트다.

철문이 닫혀있는데, 마트 할인 포스터에 행사일정 같은게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여기까지 마트구역인게 티가 난다.

올라가자.

3층까지 올라가니 무슨 사무실이다.

...마트 사무실인가?

철문에 귀를 슬쩍 대봤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씨발, 이 안에도 있구만.

건물 전체가 그냥 좀비들로 꽉찼네.

건물들은 그냥 던전이라고 보는게 맞겠다.

진짜로.

4층까지 올라가니 숨이 살짝 가빠진다.

하도 조심하느라 다리에 힘주어 걸었더니 그냥 오르는 것보다 두배는 힘들다.

젠장.

"후우... 후우..."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며 철문 앞에 섰다.

이 철문을 열면, 아마도 검도장이다.

건물이 꽤 크니 검도장과 뭐 다른게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아... 후우..."

숨을 다 가다듬고, 철문을 살짝 열었다.

고요하다.

조용하다.

귀를 기울여 봤다.

...별 소리 안 들리는데?

철문을 천천히 열어보니, 필라테스 센터랑 검도장이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해 있다.

...필라테스라...

안에는 여자 좀비들이 있을려나.

...그냥 생각을 말자.

여자든 남자든 덤비면 다 죽여야 된다.

"후우..."

검도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안에 사람들 얼마나 있었을까.

그 일이 터진건 며칠 전 대낮이었다.

대낮인데 검도장에 사람이 있었을까?

검도장의 문을 잡고 천천히 열어보니, 낯선 냄새가 훅 난다. 파스냄새 같기도 하고, 고무냄새 같기도 하다.

운동하는데선 대걔 이런 냄새가 나긴 해.

주위를 살펴봐도 별 다른건 없다.

검도장에 슬며시 들어가봤다.

넓다.

벽에 태극기와 호구, 죽도 같은게 걸려있고, 무슨 상장 같은게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호구 입혀놓은 마네킹 말고는 그냥 텅 비어있다.

음...

아무도 없나본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무실 같은게 보인다.

크르르륵- 크르르륵-

"......"

사무실에 뭐가 있다.

난 도끼를 꼬나쥐고 사무실을 힐끔 들여다봤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보니...

누가 바닥에 엎어져 있다.

검도 도복을 입고있는데?

아무도 없이 이 아재 혼자다.

......아.

종말을 일으킨 좀비들......

누군가는 좀비으로 변하기 시작했겠지.

...이 아재도 그중 하나였겠구나.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저렇게 있는거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혼자서 변해버린거다.

...그래.

처리하자.

난 도끼를 움켜잡고 천천히 사무실 문을 열었다.

"크르르륵- 크르르륵-"

아재는 아직 나를 눈치 못챘다.

문소리만 안 나면 된다.

난 가능한 천천히, 아재를 힘주어 쳐다보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다.

후우...

소리도 내지 않고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올렸다.

머리다.

한 방에 내리찍는다.

스으으읍-

숨을 들이키고, 멈췄다.

"흡!"

콰직!

도끼날이 단숨에 아재의 머리통에 들이박혔다.

도복입은 아저씨는 움찔 하더니 쭉 뻗어버렸다.

더이상 으르렁대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피가 줄줄 흘러나와 웅덩이를 이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우..."

렙업했다.

현재, 11렙.

...마음이 놓인다.

...안돼!

더 있을지도 몰라.

긴장해!

도끼를 뽑다가 무슨 큰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난 대형도끼를 놓고는, 허리에서 토마호크를 꺼내들었다.

책상 뒤에 뭐가 있나?

사무실을 쭉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진짜 이 아재 혼자였던거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아. 씨발."

나직이 중얼거리곤, 토마호크를 허리에 꽂아놓고 대형 도끼를 머리에서 뽑았다.

퍼걱!

젠장.

뽑을 때마다 끔찍한 소리가 나.

그러면...

진검이 어디있을려나...

사무실을 한번 쭉 돌아봤다.

장롱같은 큰 서랍장이 보인다.

서랍을 하나 하나 열어봤다.

드르륵.

서류 같은게 있는데.

아, 회원증이구나.

다음 서랍엔 도복들이 무더기로 들어있었다.

다음 서랍도, 그 다음도.

도복 개많네 씨발.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

"...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목검, 죽도가 쌓여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검집에 꽂힌 검들이 있었다.

두개다.

검집을 들어 검을 빼봤다.

묵직한걸.

스릉-

......진검이다.

"...후..."

진검이다. 진검!

이거, 머리통도 쪼갤수 있나?

그만큼 날카로워야 되는 물건인가?

...써보면 알겠지.

검집을 들어 허리 벨트에 꽂았다.

...윽.

불편해 씨발...!

등에 메는게 있으면 좋겠는데.

토마호크 두개에 진검 두개에 대형 도끼까지 들고 있으니 그냥 움직이는게 너무 불편하다.

씨발, 게임이었으면 인벤토리에 주렁주렁 넣어놓고 다닐건데.

으.

있기야 하지.

인벤토리랍시고 혼석 들어있는 저장고를 열어 빈칸에 도끼를 대 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용도가 따로 있는거다. 뭔진 아직 모르지만.

어쨋든, 검도 얻었고 이제 내려가자.

1층까지 내려오니 다시 긴장된다.

오른쪽을 돌아보면 바로 마트다.

저기엔 열마리 가까운 좀비들이 모여있다.

마트 안쪽엔 셀수도 없을만큼 많이 있겠지.

"......"

마트...

여기, 언젠간 와서 털어야 돼.

그렇다면...

난 조심스레 옆문을 열고 나갔다.

들키지 않았다. 다행이다.

골목을 돌아봤다.

왼쪽도, 오른쪽도 조용하다.

...좋아.

난 옆문을 붙잡은 채, 마트를 향해 입술을 모았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잇!

"크르르롹!"

좀비들이 일제히 내 쪽을 돌아봤다.

"크롸롸라락!"

온다!

좀비들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손을 내미는 것을 본 즉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뛰었다.

골목에서 튀어나와 옷가게를 스쳐지나갔다.

쿠콰쾅!

뒤에서 굉음이 터졌다.

마트 옆문이었던 유리문이 완전히 개박살나며 파편이 우수수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카아아악! 크롸라아악!"

쫓아온다! 쫓아온다!

씨발!

한의원을 스쳐지나갔다.

"크롸롸락! 카아아아악!"

가까이 들린다!

이 씨발 좀비들 진짜 존나 빠르네!

떡방앗간을 스쳐지나갈려는 찰나였다.

[자동시전 : 가속]

"캬아-아--아---아----"

어?!

미친! 난 안 썼는데!

그만큼 가깝다는거다!

...씨발!

들고있던 대형도끼를 앞으로 홱 집어던지곤, 허릿춤에서 토마호크 두 개를 꺼냈다.

동시에 뒤돌아보니 바로 코앞에서 좀비들 여러놈들이 뒤엉켜 공중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난 토마호크를 힘껏 휘둘렀다.

"으랏!"

퍼걱!

장바구니 들고있던 아줌마 좀비.

대가리에 정통으로 꽂혔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다시 힘껏 휘둘렀다!

푸걱!

앞치마 메고있던 마트 직원.

단발머리 정수리에 제대로 꽂혔다!

작아도 확실히 도끼는 도끼다.

하지만 꽂혔을 뿐 제대로 파고들진 못했다.

대형 도끼와는 다르다.

이걸로 죽을건지는 모르겠는데, 중요한건 두 번 휘두르느라 시간이 없다.

난 도끼를 뺄 생각도 못하고 즉시 뒤돌아 뛰었다.

그러며 깨달았다.

내 손을 떠난 물건은 가속의 영향을 받는다는걸.

내가 집어던졌던 대형 도끼가 저 앞 공중에 떠서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힘껏 뛰어 도끼를 붙잡았다.

"--아-아롸락!"

가속이 풀렸다!

난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쿠당탕!

뒤에서 자빠지는 소리와 함께 뭐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대가리 찍어놓은 좀비들이 넘어졌나본데.

죽은건가?!

[레벨이 2 올랐습니다.]

오!

머리가 확실히 약점이다!

뇌에 어떤 방식으로든 데미지를 주면 손쉽게 죽는거다!

죽이면 죽일수록 많은걸 알게되는군!

"카아아악! 캬아아아악!"

씨발, 미치겠네.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검 두개에 도끼까지 들고 있으니 제법 무겁긴 해!

[자동시전 : 가속]

으익, 씨발!

또!

아, 안돼.

지체할 시간이 없어!

5초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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