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이 내달려 편의점에 도착했다.
"헉, 헉."
옆을 보니 10여미터 밖에서 좀비들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즉시 편의점으로 뛰어들어 창고 문을 활짝 열었다.
카운터 옆 시체들이 보인다.
내가 죽인 좀비들.
창고 안에 무거운 대형도끼를 홱 던져버리곤 뒤돌았다.
그래.
여기다!
"--아롸랴락! 크아아아악!"
우르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창고 문을 붙잡고 밖을 내다봤다.
좀비들이 우르르 뛰어간다.
난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여기다 씹새들아!"
좀비들이 나를 홱 돌아본다.
동시에 우르르 앞으로 자빠진다.
자기 속도에 못이겨 넘어져, 서로 엉기고 겹치며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를 봤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놈들이 발작적으로 일어난다.
난 즉시 창고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동시에 잠금장치를 잠갔다.
끼이이익!
음료 선반을 힘껏 밀어 문과 벽 사이에 끼워넣었다.
됐다.
"하악, 하악!"
그 순간, 괴성이 들렸다.
"크아아아악! 카아아아악!"
쿠콰쾅!
문이 진동하며 터지는 소리가 났다.
미친 씨발!
"카아아악! 캬아아아악!"
쿠쾅! 쾅! 쾅! 쾅!
문이 부들부들 떨린다.
"헉, 헉."
등줄기가 섬칫하다.
혹시 문 박살나는건 아니겠지.
그러면 모든게 끝장이다.
난 옆에 있던 다른 선반도 잡아당겨 문을 틀어막았다.
버텨라.
버텨!
바닥의 도끼를 집어들었다.
"...!"
씨발.
이 도끼, 창이랑은 다르다.
창은 찔러넣기만 하면 되는데 이건 휘둘러야 된다.
비좁은 창고에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벽에 걸리고, 선반에 걸린다.
옆을 보니 삼단봉 올려놓은 선반이 있었다.
거기에 대형 도끼도 같이 얹어놨다.
그리고, 검을 꺼냈다.
스릉-
이건, 검이다.
검도를 해본적은 없지만, 유튜브로 몇번 본적은 있다.
이걸로 찌르기도 한다.
창은 아니지만, 파이프 창에 비하면 이건 훨씬 날카로운 무기다.
찔러넣기만 하면 사각형으로 뭉툭했던 파이프 창보다야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거다.
"후우, 후우."
문만 박살나지 않으면 된다.
저 경첩이 이번 한번만 버텨주면 된다.
난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문을 노려봤다.
쾅! 쾅! 쾅! 쾅!
"카아아아악! 크롸라아아악!"
좀비들이 포효하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저 놈들 습성은 이미 겪어봤다.
저러고 삼십분, 길어야 한시간 안에 잠잠해진다.
이 근처 어디서 뻗어버리거나 멍때리게 될거다.
여기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
문만 버텨주면 된다!
"카아아악! 크아아아악!"
쾅! 쾅! 쾅! 쾅!
"후우, 후우."
마음같아선 지금이라도 저 문을 빼꼼 열고 머리를 찔러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가속을 두 번 써버렸다.
"하아, 하아."
긴장된다.
저 문...
철문이라 문 자체는 튼튼하다.
저걸 뚫고 들어오진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경첩이다.
조아놓은 나사들은 지속적인 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안그래도 며칠 전에 여기서 빠져나갈 때 이미 저 문은 삐그덕거렸다.
경첩이 얼마나 버텨줄까.
"후우, 후우."
난 쾅쾅대는 소리와 포효소리를 들으며 심호흡했다. 무모하다면 무모할 수 있는 작전이다.
하지만 내겐 확신이 있었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이 방법이라면 통한다는 확신이 내겐 있었다.
편의점 창고라는 밀실.
비교적 튼튼한 철문.
유인 후, 저격한다.
이 방법을 생각해냈던 이유는, 저 놈들의 몰려있는 습성 때문이다.
두세놈씩 멀찍이 떨어져서 배회하고 있다면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저 놈들은 배회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우르르 모여있다.
식량을, 공구를, 장비를 파밍하려면 어떻든 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고, 레벨을 올리려면 어떻게든 저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모여있는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유인 후 각개격파.
그게 내가 생각해낸 유일한 방법이다.
"크아아악! 카아아아악!"
쾅! 쾅! 쾅! 쾅!
"하아... 하아..."
십분쯤 지났나.
문은 아직 잘 버텨주고 있다.
유인. 그리고 격파.
내가 생각해낸거고, 당장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그러나 너무 무모하다.
나도 잘 안다.
나한테 총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총...?
총...
총이 있다고 해도 괜찮은건가.
총은 꽤 엄청난 소리를 낸다.
수백미터 밖에서도 총소리를 들을 수 있다.
...총...
유용하지.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총이 아니면서, 원거리에서 놈들을 처리할 수 있는 그 무언가.
...뭐가 있지?
문은 쾅쾅대고, 포효는 계속 들려오지만, 마음은 차분해진다.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문을 노려보며 심호흡했다.
...생각났다.
활이다.
활... 혹은 석궁.
그게 있으면, 원거리에서 조용히 놈들을 하나 하나 처리할 수 있다.
...어느정도 성장하고 나면, 활 혹은 석궁을 구해보는 걸로 하자.
당장은 못 간다.
지금은 먼 길 떠나기에 난 너무 약하고, 더 성장해야 된다.
"후우... 후우..."
문이 쾅쾅대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대충 삼십분여쯤 된 것같다.
좀 더 기다리면 완전히 잠잠해질거다.
...문이 버텨줘서 다행이다.
...좋아.
가속 횟수도 다시 확보해야 되니 나도 좀 쉬자.
"하아, 하아..."
검을 집어넣고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기댔다.
다 회복하려면 아마 해가 떨어질 것 같은데.
...아, 그렇지.
렙업했었지.
레벨은 현재 13.
...12명이나 죽였구나.
정신에 1점 넣어서 15점을 만들었다.
좋아. 가속 3회다.
2포인트가 남았다.
...빨리 회복시키는게 중요하니 체력에 넣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12]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8/10] [감각 - 2/2]
[힘 - 4/5] [민첩 - 4/4]
[정신 - 1/15]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0]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라?
정신이 왜 1점이지?
아, 회복된거다.
체력이 1점 소모된거야.
흠... 그렇다면...
체력은 1점밖에 안 썼다는 거네.
하긴, 집에서 나와서 한 블럭쯤 걷다가 계단 오르고 존나 뛴 것밖에 없으니.
다 해봤자 10분이 안 될거다.
1점, 뭐. 알겠다.
문제는...
...힘이다.
가속은 3회 확보해놨다.
그런데 힘이......
하아... 한 번에 5명밖에 못 죽이는건가.
아니, 잠깐.
난 아무래도 종말이 찾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머리가 좀 이상해진 모양이다.
5명을 한번에 죽이는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일반 사람들 같으면, 어지간히 단련된 인간 아니면 저거 한마리도 못 죽여.
온 힘을 다해서 달려들어서 물어뜯는걸 무슨 수로 막냐.
나니까 한 번에 5마리를 죽여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씨발, 생각하니까 웃기네.
"...큭큭..."
무릎에 얼굴을 묻고 좀 웃다가 가방에서 폰을 꺼냈다.
[수현아. 나 오늘 좀 늦을 것같다. 나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먹어.]
잠시 후.
지잉-
답장이 왔다.
[어디예요?]
[그냥 요 앞이야. 가능한 빨리 돌아갈게.]
[무슨 일 있는건 아니구요?]
[괜찮아. 그냥 요 앞이야. 좀 처리할게 생겨서 그래.]
[알았어요. 저녁은 그럼 우리끼리 먹을게요.]
[ㅇㅋ 나중에 보자.]
음......
......대화 내용, 꽤 평범하잖아.
지금 상황에서 나눌 만한 대화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뭐... 상관 없나.
주위를 둘러봤다.
온갖 캔음료에 페트병 음료에 과자 따위가 박스채로 수십박스가 여기에 있다.
배고프면 아무거나 뜯어먹지 뭐.
회복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는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느긋하게 담배를 하나 피워물었다.
"후우..."
연기가 둥글둥글 부스스 흐트러진다.
맛 좋네.
두시간이 지나 가속이 하나 충전되었다.
다른 스텟 회복시키느라 체력이 좀 깎이긴 했는데, 그래도 두시간만에 충전된건 꽤 괜찮은 편이다.
먹던 나초칩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검.
이제 써볼 차례다.
스릉-
검을 뽑아들어 날을 바라봤다.
날카롭게 갈아놓은 쇠붙이.
튼튼한 것 같기도 하고, 웬지 부러지거나 휘어질 것 같기도 하고...
...해보자.
밖은 고요하다.
찰칵.
문을 열었다.
낯선 공기가 훅 들어온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앞에 한놈 있다.
바로 문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