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187)

무뎌지겠지.

앞으로도 점점.

생존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처럼, 저 좀비들 죽이면서 점점 무뎌지는 놈들도 어딘가에 있을까?

...있다면 제법 말이 통할지도 모르지.

"...하아...후우..."

좀 앉아있으니 안정된다.

...그래.

렙업했지.

스텟...

"...상태."

...18렙이다.

포인트 5점...

"후우... 하아..."

...어디다 넣지?

죽일 수 있는게 5명 뿐이라 힘에 좀 더 넣고싶은데.

더 많이 죽일 수 있을거야.

...아니.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다.

살아남을려면, 빨리 회복하고, 가속횟수를 빨리 충전할 수 있어야 해.

체력에 5점을 넣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18]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6/15] [감각 - 2/2]

[힘 - 0/5] [민첩 - 4/4]

[정신 - 0/15]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0]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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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15.

시간당 회복량 1.5

처음엔 회복량 0.6이었던가.

뭐, 꽤 오르긴 했네.

더...

더 많이 올려야지.

그럴려면...

더 많이 죽여야 된다.

"...후우..."

혼석도 18개 모았다.

이건 도대체 뭐하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잡을 수도 없고, 꺼낼 수도 없다.

그냥 거기에 차곡차곡 쌓이기만 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모으다 보면 뭐, 언젠간 쓸 일이 생기겠지.

"하아..."

5마리 죽였다.

그리고 남은건...?

몇놈인지 모르겠네.

마트 입구에 열마리? 아홉?

뭐 그정도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얼마 안 남았겠네.

다음번에 가속이 충전되면, 전부 처리할 수 있겠어.

폰을 들어보니 토요일 오전 10시 52분.

주말이었네?

원래라면 이 거리, 주말이라서 놀러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겠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문을 쾅쾅 두드려대며 지랄해대는 저 좀비들을 제외하면.

가속을 충전하려면...

뭐... 적어도 다섯시간?

그정돈 있어야 되겠는데.

흠...

어쩌면 저녁시간에 맞춰 돌아갈 수도 있겠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옆에 있던 비닐을 손가락으로 뜯어냈다.

500밀리 생수 20개가 들어있는 비닐포장.

생수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미지근하다.

그래도, 상쾌해진다.

"하아..."

...물 마시면서 깨달았다.

온 몸에 피가 묻어있네.

젠장.

닦기도 귀찮다.

그냥... 쉬자.

누워서 멍때리다가 꾸벅꾸벅 졸았다가 폰으로 퍼즐게임 좀 하고 났더니 시간이 제법 지났다.

내 주위엔 뜯어먹은 과자 봉지들과, 오줌싸놓은 페트병 하나가 놓여있다.

가속도 하나 회복되었다.

"후우..."

자, 해보자.

선반을 조심스레 들어 옮기고,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끼이익-

...경첩이 완전히 맛탱이가 갔네.

여는게 엄청 삐그덕거린다.

문 앞에 시체들이 쌓여있다.

서로 겹치고 엎어진 시체를 잠시 바라보다, 문틈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안 보인다.

하지만, 저기에 있을거다.

휘잇!

휘파람을 불자, 즉시 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크아아악!"

콰쾅!

두놈이 문을 들이받았다.

두놈인가? 하나 더 있는건가?

난 장검을 들어 문틈새를 조준했다.

...얼굴.

내 옆방 아줌마 얼굴이...

단정하던 단발머리가 산발이 되어 얼굴에 가닥가닥 달라붙어 있다.

온화하게 미소지어주던 얼굴이 짐승처럼 변해있다.

"카아악! 크아아아악!"

칼등을 팔뚝에 얹고, 아줌마의 머리를 조준했다.

...아줌마.

김치 잘 먹었어.

...맛있었어.

"...후, 흡!"

힘껏 찔러넣었다.

파각!

정수리가 단숨에 꿰뚫렸다.

표정이 즉시 풀어진다.

눈을 까뒤집고, 턱을 늘어뜨린다.

뭉크의 절규같은 얼굴이다.

무게가 느껴진다.

검이 내려간다.

"흡!"

검을 힘껏 뽑았다.

시체가 널브러지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카아아악! 크아아악!"

"하아, 하아."

...기분 진짜 개 좆같네...

아줌마...

어쩌다 거기 있었어.

"...씨발..."

팔뚝이 잘려나간 좀비 문틈에 대가리를 들이밀며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다.

젊은 여자다.

...왼손에 반지를 끼고 있는데.

신혼 주부인가...

"카아악! 크아아악!"

...가속, 안 써도 되겠는걸.

난 검을 들어, 팔뚝에 얹었다.

"...흡!"

힘껏 찔러넣었다.

파각!

검이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힘껏 뽑아내니 표정이 확 풀리며 앞으로 엎어진다. 문틀에 부딪혀 텅! 소리가 난다.

"헉, 헉, 헉!"

끝...

끝났나?

"카아악! 캬아아아악!"

...아니네.

뭐냐.

뭐가 더 남았냐.

문틈새를 봐도 안 보인다.

뭐지?

"카아아악! 카아악!"

뭐야. 어디 있는거야?

안 보이는데.

틈새를 열심히 들여다봐도 뭐 보이는게 없다. 그냥 앳되고 가녀린 괴성만이 들려온다.

앳된...

...가녀린...괴성?

......설마......

"캬아악! 크아아악!"

문 앞에 시체가 쌓여있다.

뭐가 파닥파닥 움직인다.

...손이다.

...어린애 손이다.

"캬아악! 캬아아악!"

......개씹......

벽에 손을 짚었다.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면 안돼.

다시 떴다.

"후우...하아..."

허리를 짚고 문에서 한걸음 떨어졌다.

"캬아아악! 캬아아아악!"

파닥파닥하며 때리고 덮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문을 그냥 쳐다보고 서 있다.

"...하아...하아..."

...알고 있었어.

종말이다.

어른만 당하라는 법은 없지.

애들도...

심지어 어린 아기도 죽거나 변해버렸을거다.

허리에 손을 짚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한숨이 나온다.

아래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하아..."

검 손잡이에 교차로 엮여있는 가죽을 손가락으로 쓸어만졌다.

이 검은 꽤 좋은 검이다.

손이 미끌리지도 않고, 벨트로 감아놨던 어설픈 창보다 훨씬 그립감이 좋다.

검도 쇳덩어리라 그런지 생각보다 묵직하고, 힘껏 찌르면 머리 정도는 강하게 찔러넣을 수 있다.

...괜찮은 검이다.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턱.

선반에 손을 얹었다.

생각을 멈추자.

지금부터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거다.

나는 검을 들고 있다.

문 너머에 있는건 좀비다.

나는 싸운다.

좀비는 죽는다.

그게 전부다.

끼이이이익-

천천히 선반을 잡아당겼다.

문을 가로막고 있던 선반이 옆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선반을 당기고 나서, 문을 틀어막은 다른 선반을 움켜쥐었다.

드드드득-

과자상자라 가벼워 땅을 긁으며 따라온다.

손을 멈췄다.

이제 조금만 더 당기면, 문을 가로막는건 없다.

저 너머엔 어린......

......아니.

저 너머엔 좀비 있다.

난 선채 문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입을 닫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문을 바라봤다.

"...흡!"

선반을 홱 당겼다.

와당탕! 하며 박스들이 넘어졌다.

"캬아아악! 크아아악!"

문이 움찔거리며 열린다.

밖에서 밀어대니 시체가 밀려 들어오는거다.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문을 바라봤다.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시체가 우르르 쏟아졌다.

동시에, 시커먼 그림자가 안으로 홱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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