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일단 오늘 챙길건 다 챙겼거든요. 아저씨는 이제 뭐 할겁니까? 뭐 필요한거 있어요?"
아저씨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 기, 기저귀가 좀 있어야 되는데..."
기저귀?
아아.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말하려 하던 찰나였다.
누가 성큼성큼 슈퍼로 걸어왔다.
"야, 훈아! 뭐 이렇게 오래걸려!"
바짝 마른 아재다.
50대 초중반?
머리가 희끗하네.
얼굴이 좀 깐깐하게 생겼다.
바짝 마른 아재가 날 보더니 멈칫한다.
그러곤 위아래로 날 훑어보곤 말했다.
"...넌 누구냐?"
어럽쇼.
나도 아재를 위아래로 훑어봐주곤 말했다.
"넌 누군데."
바짝 마른 아재의 얼굴이 쓱 일그러지더니 입술을 비틀며 뭐라고 말하려 한다.
난 손을 슬쩍 움직여 검 손잡이로 가져갔다.
아재의 눈이 내 손으로 왔다.
아재는 입을 닫았다.
...병신새끼가 다 있네.
하기사, 이젠 경찰도 없고 뭐 좆도 없으니.
난 덩치 큰 아재를 힐끗 보곤 말했다.
"내일 아침에 한 여덟시? 쯤에 여기서 봅시다. 아마 좀 큰데로 가면 있을거 같네요. 같이 가보죠."
"아, 예. 알겠습니다."
깐깐한 얼굴의 아재가 덩치 큰 아재보고 언성을 높였다.
"이 씨발놈아. 빨리 챙겨서 돌아와야 될거 아니야. 몇명이 기다리는줄 알기나 해? 내가 여기까지 와야겠냐? 어?"
참 나.
난 코웃음을 치고는 슈퍼를 나갔다.
내 갈길이나 가자.
"빨리 나와, 이 새끼야!"
뒤에서 나직이 소리치는게 들려온다.
꽤 용한 재주인걸.
멀리까지 들리도록 버럭하진 않으면서도 있는대로 성질부린다는 티는 잘 내는 톤이다.
덩치 큰 아재가 죄송합니다 어쩌고 하면서 주눅든 소리로 대답하는게 들려온다.
어휴.
덩치는 커갖고.
몇걸음 걸어가는데, 뒤에서 탁탁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자동시전 : 가속]
가속?!
난 즉시 뒤돌아봤다.
깐깐한 얼굴의 아재가 코앞에 있다.
눈을 부릅뜨고 날 쳐다보고 있다.
코를 잔뜩 찡그리며 웃고있다.
혀를 내밀고 사납게 쳐웃고 있다.
그리고, 손에는 몽키스패너가 들려있었다.
나를 내려치기 딱 좋은 각도로, 공구를 쳐들고 있었다.
이...
씨발새끼가.
난 몸을 굽히고는, 즉시 검을 잡고 힘껏 뽑으며 아재의 목을 베었다.
촤륵!
목이 쩌억 갈라지며 피가 방울방울 튀어나온다.
꽤나 깊다.
목뼈 빼곤 거의 다 잘려나갔다.
난 베고는 즉시 몸을 옆으로 돌리며 섰다.
"-쿠웨륵!"
피가 앞으로 솟구치며 땅을 우르르 적셨다.
목으로 낼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아재가 앞으로 엎어졌다.
땡그랑!
몽키스패너가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낸다.
"커럭, 퀘륵!"
아재가 엎어져 목을 붙잡고 다리를 굽혔다 편다. 피를 울컥, 울컥 쏟아내어 금새 피웅덩이가 생겼다.
...고통스러운 모양인데.
난 고개를 갸웃하며 아재를 내려다봤다.
...꽤 아무렇지도 않네.
충격적이지도, 놀랍지도 않다.
죽이려고 베었고, 죽어가고 있다.
흠......
이 병신새끼는 도대체 뭐 하는 작자였을까?
뭐, 이젠 상관 없지.
옆을 보니 덩치 큰 아재가 핼쓱해져서 우릴 보고 있었다.
빈 손이다.
저 아재한테 몽키스패너 뺏아서 나를 덮치려고 했던 모양이지?
"퀡! 크륵!"
이 놈은 여전히 피를 울컥 울컥 쏟아내며 목을 붙잡고 있다. 거의 상반신 전체가 피에 젖었다.
...죽는데 오래걸리네.
기억해둬야 되겠어.
"크륵... 케륵..."
...그만큼 피 쏟아냈으면 죽어라 좀.
쯧.
이거, 그냥 놔두면 좀비으로 변하려나?
아니면 그대로 죽어 엎어지나?
...궁금한걸.
기다려보자.
10초?
그쯤 지나자 아재의 움직임이 천천히 멎어들었다.
산건지 죽은건지 모르겠다.
좀 더 기다려보지 뭐.
피웅덩이를 밟지 않게 한 걸음 물러서서 가만히 내려다봤다.
...아무렇지도 않네?
...좀비는 그럼 깨물려야만 되는건가?
...잠깐.
그럼 그냥 자연스럽게 죽은 시체들은?
병원 영안실 같은곳에 늙어죽거나 병들어 죽은 시체들이 있을텐데.
그 시체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이 놈은 여기에 죽어 엎어져 있는데, 만약에 좀비 이 시체를 깨물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되지?
...흠...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그냥 놔둬볼까?
어떻게 되나?
...아니야.
하숙집에서 너무 가까워.
내 베이스캠프 근처에 날뛰는 좀비 돌아다니게 두는건 위험하다.
목 잘린 아재는 더이상 목에서 피를 쏟아내진 않았다. 대신 희미하게 경련하고 있다.
죽어서 떠는건지, 근육이 경직된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눈은 완전히 풀렸다.
음...
한 3분쯤 지난 것 같은데.
이쯤되면 심장은 확실히 멎었겠지.
피도 철철 흘렸고.
이쯤되면 죽은 거 맞다.
안 움직이는 거 보니 물리지 않고 죽은 사람은 좀비으로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모르지 뭐.
놔두고 시간 지나면 변할지.
그런거야 앞으로 차차 알 수 있겠지.
난 검을 들어 시체의 머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내리찍었다.
퍼걱!
흐윽! 하며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덩치 큰 아재가 아직도 저기서 날 보고있다.
검을 팍! 뽑아들고는 덩치 큰 아재를 바라봤다.
나랑 눈이 마주치니 움찔거린다.
...검이 더러워졌는걸.
앞에 엎어져 있는 놈의 옷에 검을 쓱쓱 문질러 피를 닦아내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스릉-
맑은 소리.
좋은걸.
검이라는 거.
난 대가리를 짓밟고 건너가 몽키스패너를 주워들었다.
흠. 꽤 묵직해.
짧은 철퇴로 쓰기 딱 좋아보인다.
공구는 여러모로 유용하단 말이지.
몽키스패너를 들고 덩치 큰 아재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아재는 창백해져서 나를 보고있을 뿐이다.
...쩝.
던져서 줄까.
아니, 그냥 두자.
괜히 큰 소리 낼 필욘 없지.
난 몽키스패너를 보여주곤 땅에 내려놨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일 아침 여덟시요."
말해주고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두둑하게 챙겼으니 하숙집 들렀다 다시 나와보자.
저 50대 양아치 씨발새끼 때문에 괜히 가속만 한 번 날렸네.
좆같은거.
집으로 돌아가니 마당에 있던 수현이 깜짝 놀라며 날 맞아주었다.
"오빠, 일찍 왔네?"
"어. 좀 쉬었다 다시 나가보려고."
그러며 빵빵해진 가방을 보여줬다.
수현이 웃으며 나를 따라 계단으로 올라왔다.
"오빠. 못이랑 철사 같은거 좀 구해다 줄 수 있어?"
"알았어. 있다 가서 갖고 올게."
아랫층 창문은 거의 나무로 다 틀어막아 놨네.
수현이가 여기서 제일 열심이다.
난 수현을 보곤 미소지어 주었다.
잘했어.
수현이 날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흘겨본다.
"왜 그렇게 봐? 유혹해?"
난 피식 웃었다.
"어."
수현이 내 엉덩이를 쿡 찌르더니 말했다.
"알았어. 있다 밤에 갈게."
음...
좋지.
난 웃고는 2층 주인집으로 들어갔다.
예은이가 날 맞아주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금방 나갈거야. 할머니는?"
안방에서 할매가 걸어나왔다.
날 보더니 반갑게 웃는다.
이번엔 피칠갑이 아니라 그런가.
가방에서 디포리랑 김치, 단무지, 참치캔에 오징어 따위를 우르르 쏟아내자 여자들의 얼굴이 꽤나 밝아진다.
할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총각. 고마워서 어쩌지? 이잉?"
"제가 고맙죠. 매일 밥 얻어먹는데요."
웃으며 대답해줬다.
할매가 말했다.
"잉. 총각. 혹시 그러믄 다음번에는 야채랑 좀 고기같은 그런것도 갖고와줄수 읎을까?"
...야채랑 고기.
흠.
난 웃었다.
"좋죠. 아마 내일쯤 갖고올 수 있을겁니다."
중형 마트에 아재랑 같이 가기로 했지.
여자들이 오징어를 뜯어 먹는걸 뒤로하며 난 주인집을 나섰다.
소은이도 오징어는 좋아하나보네.
언니들 사이에 껴서 나를 힐끔거리며 먹던게 꽤나 귀여웠다.
옥탑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두세시간만 쉬었다가, 가속 회복하고 나가자.
후...
조용하네.
방금...사람 죽였다.
좀비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다.
...아무렇지도 않다.
사람 죽이고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할 수 있었다.
평소처럼.
느긋한 심정으로.
...감정이... 마비되어 간다.
점심때쯤이 되자 완전히 회복되었다.
쉬면서 깨달았는데, 아까 그 양아치 씹새끼 죽이고 나서 렙업하지 않았다.
...렙업은 좀비에만 해당되는 모양이다.
젠장.
아쉽네.
눈꼴사납게 껄렁대면서 시비걸고 다니는 벌레같은 새끼들 죽여서 렙업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죽이고 다닐텐데.
주인집에 내려가니 참치김치찌개를 냄비가득 끓여놨다.
냄새 죽이네.
다섯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느꼈다.
...다섯명이 먹는 양이라는거, 꽤 많다.
김치찌개 끓이느라 김치 반포기는 넘게 들어갔지 싶다. 그밖에도 여러 재료들도 들어갔고.
이렇게 하루 세끼라고 치면...
...상당한 양인데.
일주일만 지나도 쌀 10KG 정도는 금방 먹어치우겠다.
가족이 있는 집에서 엄마들이, 아빠들이 먹을거 구하겠다고 집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흠......
난 어차피 여기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다.
충분히 강해졌다 느끼면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