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들어올리다 정수리를 관통당했다.
아줌마랑 같이 온 여잔가?
검을 빼내며 몸을 비틀었다.
정면에 검은 옷 여자!
직원인가?!
"--아-르롹!"
여자들의 팔이 순간적으로 홱 올라온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달려들던 그대로 느릿해졌다.
힘껏 검을 찔러넣었다.
파각!
직원의 머리를 뚫었다.
눈알부터 찔러넣어 뒤통수까지 관통!
힘껏 빼내자 핏방울이 허공으로 일렁일렁 날아오른다.
다음, 계산대 앞 아줌마!
한 발 크게 뛰어들며 땅을 힘껏 딛었다.
쿠우-아--아---
딛는 소리도 느리네.
온 몸을 비틀며 검을 찔러넣었다!
"-캬르, 퀘렑!"
-쾅!
파각!
가속이 풀렸다.
딛는 소리가 그제야 울린다.
눈썹부터 검이 뚫고 들어갔다.
"흡!"
검을 빼내자 마자 주위에서 동시에 와르르 우당탕 엎어진다.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옷과 속옷들에 흩뿌려졌다.
...아.
이러면 옷 가지러 온 의미가 없는데.
[레벨이 4 올랐습니다.]
"...하아..."
좋아. 4렙업!
작은 가게들이 렙업하기엔 최적의 장소인걸.
혹시 모르니 더 있나 둘러보고.
검을 겨누며 가게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없다.
있었으면 아까 문 벌컥 열고 들어왔을때 뛰쳐나왔겠지.
"...후."
옷 챙기자.
난 여자 팬티 몇장을 들어 팔과 얼굴에 묻은 피, 그리고 더러워진 검을 쓱쓱 닦아내고는, 피가 묻지 않은 티셔츠와 반바지, 남자 팬티 따위를 우르르 집어 백팩이 불룩해지도록 쑤셔넣었다.
...팬티라.
난 브라와 팬티 섹션에 서서 잠시 감상해봤다.
"...흐음..."
보기좋은걸.
...수현이한테 뭘 입혀볼까...
...다 맘에 들어서 딱히 고를수가 없네.
여자 가슴 사이즈 같은것도 잘 모르고.
수현이 좀 크긴 큰데. C려나 D려나.
...몰라 씨발.
난 남자라고. 브라 사이즈를 어떻게 아냐.
카운터 밑에 무슨 종이가방 같은게 있길래 몇개 꺼내다 브라 더미랑 여자 팬티 무더기를 우르르 부어넣었다.
그리고 여자 옷들, 원피스와 반바지, 치마 따위들을 홱 걷어 큰 종이백 몇개에 가득 채워넣었다.
뭐 이정도면 됐겠지.
수현이보고 알아서 고르라고...
...그냥 여자들 앞에다 부어버려야 겠다.
귀찮다 그냥.
사이즈 안맞다 그러면 또 털러 오지 뭐.
안맞는 옷은 걸레로 쓰던가 알아서 하겠지.
난 가방을 둘러메고 옷 든 종이가방 대여섯개를 주렁주렁 들고는 가게를 나섰다.
조용하다.
고요하다.
난 두 손에 종이가방들을 들고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가속도 없으니 여차하면 옷가방 집어던지고 튀어야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리는 늘 정적이다.
난 하숙집으로 돌아와, 수현이네 집에 노크했다.
네에-
대답이 들려온다.
난 문에 대고 말했다.
"수현아. 주인집에 잠깐 와."
그러고 계단을 탁탁 빠르게 올라가버렸다.
옷과 속옷이 가득 든 가방 여섯개를 놓으니 여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뒤늦게 들어온 수현이도 놀라며 옷들을 바라봤다.
"옷이 하도 더러워져서 나 입을거 좀 가지러 갔다가 겸사겸사 갖고 왔어. 사이즈 같은거 몰라서 그냥 우르르 집어 왔는데, 알아서 골라."
예은이 눈이 동그래져서 날 바라본다.
"...고...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소은이도 얼떨떨한 얼굴로 그렇게 말해왔다.
둘 다 놀라긴 했는데, 은연중에 웃음기가 얼굴에 묻어있다. 기쁜가본데.
할매도 나오더니 아이고 어쩌고 하면서 기분 좋은 얼굴이다.
됐어.
난 여자들이 종이가방에서 옷무더기를 쏟으며 재잘대는걸 뒤로하고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씨발, 피칠갑 된 이놈의 넙데데한 티셔츠랑 반바지, 버려.
훌러덩 벗어다 방구석 쓰레기통에 처넣고는, 가방을 열어 뒤집었다.
티셔츠와 남자 팬티와 반바지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이정도면 뭐.
한 열흘은 입겠네.
피묻은 몸을 다시 한번 샤워해 씻어내고는, 이부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흠...
꽤나 금방 다녀왔다.
아직 12시가 안됐단 말이지.
밤에 한 번 더 다녀올 수 있겠는걸.
얻어놓은 4포인트...
흠...
밤에 어디로 가지?
...잠깐.
약국에 아마 세마리 쯤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옆에 치킨집이었지.
치킨집... 몇명이었지?
일단 보이는건 두명.
...밤에는 그리로 가보자.
잠시 생각해보곤, 힘에 2점을 넣고, 정신에 2점을 넣었다.
힘은 언젠간 올려야 했고, 가속도 확보해야 되는데 선택장애가 올거같아서 그냥 2점씩 넣었다.
이로써, 레벨 30.
힘 7, 정신 17.
* * *
아홉시쯤이 되자 상당히 충전되었다.
완전히 회복되려면 두어시간 더 쉬는게 좋지만, 가속 3회를 확보했으니 충분하다면 충분해.
집을 나서서 편의점쪽 길로 걸어들어갔다.
편의점을 지나 점포매매 두곳.
그리고 약국이 나타났다.
슈릉-
장검을 꺼내들었다.
"...스으읍!"
숨을 들이킨 후, 문을 힘껏 밀고 들어갔다.
"캬라락?!"
계산대 너머 흰 가운.
병음료 진열대 앞 아저씨.
영양제 코너 앞 아줌마.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크롸아-아---아-----"
올라오는 손이,
쩍 벌리는 입이,
뛰어드는 다리가 느릿해진다.
"흡!"
파각!
아저씨 대가리를 즉시 관통했다.
뽑아내고는, 핏방울을 뒤로하며 카운터로 뛰어들었다.
"흡!"
땅을 짓밟으며 힘껏 찔렀다.
파각!
두--우---우----
팍! 하며 뽑아내곤 영양제 선반으로 달렸다.
한 걸음을 내딛자,
"--아-캬라락!"
-투웅!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이미 있지도 않은, 내가 있었던 방향으로, 할퀴려는 듯 손을 내밀며 달려드는 아줌마.
옆에서 뛰어들어 힘껏 찔렀다.
파각!
관자놀이를 단숨에 관통했다.
검을 뽑아내니, 핏방울이 느릿하게 허공으로 일렁일렁 날아오른다.
"...후우."
느릿하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이다.
좀비들이 쓰러지려는 모습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수많은 핏방울도, 진득한 젤리 속에 든 채 움직이는 것마냥 여유부리며 춤을 춘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기다렸다.
"---아-롸륽!"
가속이 끝났다.
와르르, 우당탕!
난 눈을 흠칫 감았다.
눈가로 피가 튀었다.
젠장.
[레벨이 3 올랐습니다.]
손등으로 얼굴을 쓱 닦아내곤, 약사에게 걸어가 가운을 집어 검을 쓱쓱 닦았다.
옷은 뭐, 잔뜩 쌓아놨으니 갖다 버리면 되지만 검은 아니다. 피를 잘 닦고 다녀야 된다.
"...흠..."
금방이네.
점점 익숙해 지는걸.
난 약국을 쓱 둘러봤다.
뭐 가져갈만한거 있나?
박카스나 좀 가져갈까.
아, 할매가 걷는게 좀 불편해 보이긴 했어.
검을 검집에 슈르릉- 착. 꽂고 나서, 붙이는 파스 섹션으로 다가갔다.
약국 뒤쪽으로 가보니 약 담아놓는 통이 있길래 간단하게 구급상자를 만들어놨다.
붕대, 반창고, 의료테이프와 연고, 항생제.
손바닥만한 통을 탁 덮고 아디다스 백팩 유틸리티 칸에 쑤셔넣었다.
구급상자를 만들면서 알게 됐는데, 요즘은 약국에서 별걸 다 판다.
헬스용품까지 있다.
리프팅벨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웬지 쓸만할 것 같아서 하나 챙겼다.
사이즈 조절해놓고 옆에 끈이나 고리 같은거 달아놓으면 무기 걸어놓고 다니기 좋을 것같다.
유틸리티 벨트로 사용하기 딱 좋겠어.
헬스 장갑... 손목을 보호해준다고? 흠.
줄넘기도 있네. 필요는 없다만.
뭐냐 이 약국.
꽤나 쓸만한게 많잖아?
그밖에 박카스 한 통과 각종 의약품에, 예은이가 부탁했던 생리대까지 우르르 쓸어담고 나니 또 가방이 빵빵해졌다.
묵직하네 그냥.
쇼핑하느라 꽤나 시간을 소비했다.
흠... 한시간쯤 더 기다리면 가속 한 번 더 회복할 수 있을거 같은데...
그냥 가지 뭐.
어차피 치킨집에 두마리밖에 없었던 것 같고.
약국을 나와서 치킨집 문 앞에 가방을 내려놨다.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니...
...세마리였네.
...위치도 바뀌었어.
주방 안에 있던 아저씨는 주방 입구에 서있고, 배달알바인가 싶은 배나온 놈 하나는 메뉴판을 쳐다보고 서있다.
그리고, 주방 옆, 아마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인가 싶은 곳에 아줌마 하나.
...아줌마는 어디서 나온거야...
주인 내외인가?
엎어져 있었던건가?
제길.
...세마리.
...가속은 한번.
...안돼.
모험은 하지 말자.
꽤나 강해졌지만, 아직 약하다.
나는 더 성장해야 돼.
조심스레 몸을 돌려 약국으로 돌아왔다.
병음료섹션에서 박카스를 하나 꺼내 까먹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좀 더 강해지고 싶다.
은신 후 습격도 좋은데, 들어가서 죄다 날려버리고 싶어.
"하아."
약하다.
나는 약해.
그걸 잊으면 안 된다.
저 놈들에게 물리면 어떻게 될지 몰라.
박카스 한 병을 또 꺼내 까득! 까면서 카운터 뒤쪽으로 들어갔다.
가방은 저기 그냥 놓고왔다.
어차피 누가 갖고 갈 사람도 없고.
기다리자.
한시간이 지나자 가속이 충전되었다.
2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