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87)

좋아.

검을 뽑아들고 약국을 나섰다.

슈릉-

거리는 고요하다.

가로등이 환하게 비춰주는 조용한 밤거리.

난 숨을 들이키곤, 치킨집의 문을 밀어젖혔다.

"캬르륵?!"

배달 뚱보.

아줌마.

주방 아저씨.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크롸-라--아----"

힘껏 내딛으며 뚱보의 머리로 찔러넣었다.

두----우----

파각!

힘주어 뽑아내곤, 두 걸음을 뛰어들어 아줌마의 머리를 꿰뚫었다.

파각!

-투웅!

"--아-롸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허물어지려다 멈춰버린 아줌마 너머.

아저씨.

옆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힘껏 찔러넣었다.

"흡!"

파각!

주방 입구에서 대가리를 내밀다 관자놀이에서 뒤통수까지 관통당했다.

힘껏 뽑았다.

퍽!

"...후우!"

두 걸음 물러섰다.

느릿하다.

핏방울은 공중에서 슬라임처럼 움직인다.

물렁물렁, 일렁일렁.

"--아-르륽!"

세마리가 동시에 고꾸라졌다.

우르르, 쿠당탕!

사방으로 핏방울이 팍! 날린다.

"풋."

얼굴에 튀었다, 젠장.

[레벨이 3 올랐습니다.]

됐어.

아줌마 바지춤에 검을 쓱쓱 닦아내곤 주위를 둘러봤다.

치킨집이라... 뭐 갖고갈거 있나?

...냉동치킨 같은거라도 좀 갖고 가볼까.

할매가 고기 갖다달랬는데.

"...흐음..."

주방으로 들어가 큼직한 냉동고를 열어보니 봉지에 포장된 닭들이 우르르 쌓여있었다.

날개만 있는 봉지, 다리만 있는 봉지, 뭐 다양하네.

한마리 든 봉지 네개를 집어드니 꽤 묵직하다.

7? 8킬로 정도 되겠는데.

내일 아침은 닭요리려나.

돌아가자.

하숙집으로 돌아와 주인집에 노크해 들어가곤 갖고온걸 마루에 우르르 쏟아냈다.

냉동닭에 생리대에 붙이는 파스, 뿌리는 파스, 소화제, 감기약, 피임약, 밴드에 반창고에 온갖 것들이 가방에서 와르르 쏟아졌다.

낮에는 옷 갖고왔고 밤에는 닭이랑 약 갖고왔네.

레벨도 제법 올렸어.

여자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예은이는 내 눈치를 쓱 보더니 붉어지며 생리대를 몇개 챙겼다. 언니가 그러는걸 본 소은이도 몇개 챙겨갔다.

수현이는 잘했다며 내 어깨를 주물러준다.

와중에 특히 할매가 기뻐했다.

"아이고, 무릎이 영 안좋았는데 고맙소, 총각."

관절용 파스를 바로 뜯어다 무릎에 붙이면서 즐거워한다.

"서...성훈씨."

예은이 수현의 눈치를 살피더니 날 부른다.

"어? 왜?"

"밖은... 좀 어때요?"

밖이라...

몸에 핏방울이 잔뜩 묻어있어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진 않을거다.

난 턱을 긁으며 말했다.

"음, 일단 요 근처 조그만 가게들 몇군데는 다 처리해놨어. 옷가게랑 저 골목에 슈퍼랑 약국은 안전해. 거리도 생각보다 한산하고. 도로 건너편은 아직 좀 위험해."

"...아..."

예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미소지었다.

"왜, 나가보게?"

예은이 고개를 저었다.

소은이도 눈이 동그래져서 고개를 젓는다.

얘들 둘은 편의점에서 그 난리를 겪어놔서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생긴 것같다.

수현이 말했다.

"난 나가보고 싶어. 철물점에 갔다오고 싶은데, 그 쪽은 어때?"

난 고개를 저었다.

"그 쪽은 위험해. 놈들이 생각보다 많아. 아직은 그냥 있어. 안전해지면 말해줄게."

수현은 혀를 쏙 내밀곤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얜 종말이 터진 이후에 아직 밖에 안 나가봤지.

겁이 없다.

다른 여자들은 몰라도 수현이는 함부로 내보냈다가 죽어버리면 곤란하다.

난 리프팅 벨트 포장을 뜯어 꺼내며 수현에게 내밀었다.

"이거 좀 봐줄 수 있겠어?"

수현이 리프팅 벨트를 받아들곤 갸웃거렸다.

난 말했다.

"거기에 검이랑 뭐 이것저것 좀 걸어놓고 다니고 싶어서. 가능할까?"

수현이 흐음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리만 달면 되겠는데? 굵은 철사 남은게 있으니까 가능할거야. 칼집만 매달아놓으면 되잖아. 이리 줘."

"고맙다."

귀찮은 일들 다 맡아서 해주잖냐.

고리 다는거 정도야 내가 해도 상관 없는데, 대신 해주겠다니 나야 땡큐지.

집을 요새화 하는것도 수현이가 거의 혼자서 다 하는 모양이고, 잃기 아까운 인재다.

난 옥탑방으로 올라와 핏물을 씻어내고 드러누웠다.

몸에서 계속 피냄새가 나는 것같다.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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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36]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23/23] [감각 - 2/2]

[힘 - 7/7] [민첩 - 4/4]

[정신 - 17/17]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6]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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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포인트 여섯개.

어디다 넣지?

일단 정신에 3 넣어서 가속 4회 확보하고.

흠...

가속 4회라...

생각 좀 해보자.

지금 내 전술은 치고 빠지기다.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작은 규모는 가속 박고 싹 쓸어버릴 수 있지만, 우르르 몰려 있는 놈들에겐 치고 빠질 수밖에 없다.

빠질 때 최소 1회의 가속이 필요해.

그러면, 치고 들어갈 때 가속 횟수는 총 3회.

넉넉잡고 한놈당 2~3초.

...15초간 죽일 수 있는건 5,6마리.

그렇다면 힘은 7 정도면 일단은 충분해.

체력에 3을 넣어 26을 만들었다.

체력 30이 되면 스텟 회복량과 시간당 회복량이 같아진다. 훨씬 여유로워져.

스텟 회복량이 좀 빨라지거나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지금 상황에선 이게 최선이다.

체력 30 넣고,  힘에 적당히.

나머지 정신에 쏟아부어 가속을 최대한 확보.

됐어.

이제 자자.

* * *

아침식사는 꽤 괜찮았다.

할매와 예은이가 닭 두마리로 닭찜을 만들어 다섯이 앉아 배불리 먹었다. 예은이가 할매한테 요리솜씨를 제대로 전수받았는데.

배부르고 기분 좋아져서 하숙집을 나섰다.

수현이가 리프팅벨트랑 진검 한자루를 갖고 갔으니 아마 오늘중에 준비해줄거다.

오늘은 꽤나 괜찮은 날이 될 것 같은걸.

그런 생각을 하며 슈퍼 앞으로 갔는데...

...없네.

덩치 큰 아재, 아직 안 왔나?

뭐야 씨발.

지가 가자고 해놓고 씨발놈이.

아침부터 햇살이 뜨겁다.

후, 한여름 젠장.

슈퍼 앞 아이스크림 냉동고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늙은 양아치 시체들이 거기에 그대로 엎어져 있어 냄새는 좀 고약해도, 뭐, 바람이 불어주니 참을만은 하다.

이거 다 먹을 때까지 안 오면 나가리다.

시원하고 달콤하니 좋네.

반쯤 베어먹었을 때, 옆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반 남은 초코바를 길거리로 휙 던지곤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발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덩치 큰 아재다.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다.

뭔데 씨발 늦어놓고 저러고 오냐.

...얼굴이 제법 어두운데.

소주를 한 10병 나발불고 나서 자고 일어나면 딱 저런 몰골이겠다.

근데 내가 준 도끼는 왜 안 들고 나왔냐.

뭐지 저 아재?

"...아, 안녕하세요."

아재가 날 발견하곤 어색하게 목례해온다.

"늦었네요."

"...예... 좀... 자살을 해서..."

...뭐?

"...자살이요? 누가요."

"그..."

덩치 큰 아재가 말을 하려다 말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한 손으로 눈을 감싸곤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아침드라마는 찍고 있어.

기저귀 필요하다며.

아재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말했다.

"이... 모든 일들이... 너무 힘드네요."

...아...

돌겠네.

"저기, 아저씨.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는데. 이제 기저귀 필요 없어요? 없으면 난 혼자 가고."

"서, 선생님."

아재가 다급하게 내 손목을 붙잡는다.

온 얼굴에 눈물 콧물 자국에, 눈꼽은 아직 끼어있고, 머리도 며칠 안 감았는지 누워서 떡져있고, 수염에다가, 그냥 엉망진창 노숙자다.

게다가 냄새난다 씨발.

좀 씻지.

"왜요."

손을 빼고는 묻자 아재가 말했다.

"자, 잠깐만 좀 와 주실수 없겠습니까?"

...하아...

...씨발놈아 렙업하러 가야된다고.

"제발,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발요. 예?"

난 하늘을 잠깐 올려다 봤다.

옆집도 쓱 쳐다봤다.

바닥도 한 번 내려다봤다.

눈을 굴린거다.

존나 귀찮고 싫으네 그냥.

아재는 내 손 붙잡고 거의 무릎 꿇을듯이 통사정 하고있고, 보아하니 씻지 못한것 뿐만 아니라 얼굴도 헬쓱한게 밥도 못먹은 모양인데.

뭐가 그리 절박해서 이러고 있냐.

"...그래요. 뭐 어디 가자고요."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재가 살짝 화색이 되더니 나를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슈퍼 옆 골목으로 단독주택 몇 집을 건너가자 곧장 이 아재의 집이 나왔다.

구조는 우리 하숙집과 별로 다르지 않다.

1층에 2가구, 2층에 1가구.

옥탑방은 없네.

동네 단독주택 집들이 다 그렇지 뭐.

끼익.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곧장 냄새가 나를 훅 덮쳤다.

...시체 냄새다.

아니, 다른 냄새도 섞여있다.

똥오줌 냄새?

"여기서 누가 죽었어요?"

얼굴을 찡그리고 물었다.

덩치 큰 아재가 어두운 얼굴로 바닥을 쳐다보다 천천히 1층 집, 위치로 치면 수현이네 방의 문을 슬쩍 열었다.

...집 안에서 여자 하나가 목매달고 죽어있었다.

욕실 문고리에 노끈 같은걸 메고 자기 목에 걸고 주저앉아 버렸나본데.

똥오줌이 아랫도리에서 흘러나와 있다.

"...그... 나쁜 놈들한테 매일같이... 당하다가... 선생님한테 다 죽고 나서 겨우 풀려났는데... 어제 저녁에 보니까 이렇게..."

......골때리네.

덩치 큰 아재가 말했다.

"...며칠 전에 일 터지고 놈들이 문 좀 열어달라고 통사정 하길래 제가... 열어줬어요. 그날 밤에... 주인집 영감님과 손자가 놈들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이 여대생분은... 놈들에게 잡혀서 밤낮으로..."

...아, 존나 듣기싫어.

내가 말을 안하고 있자 아재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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